스페인 여성 80여 명 노상 방뇨 몰래 촬영해 유포…법원은 무혐의 결정?

입력 2021.10.10 (07:0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BBC 홈페이지(2021.10.1)BBC 홈페이지(2021.10.1)

■ 여성 80여 명 노상 방뇨 몰래 촬영해 성인 사이트에 유포…무혐의라고?

여성이 구석진 골목에서 소변보는 모습을 몰래 촬영해 성인사이트에 유포했다면 그건 범죄일까 아닐까?

스페인 법원이 "범죄가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1일 BBC 방송 등은, 스페인의 파블로 무뇨스 바스케스 판사가 노상 방뇨하는 여아 등 여성 80여 명의 모습을 몰래 촬영해 성인사이트에 유포한 사건을 기각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사건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가해자가 지난 2019년 스페인 북서부 세르보 마을에서 열린 지역축제 'Maruxaina' 중에 화장실이 부족해 골목에서 소변을 본 여성들을 몰래 촬영해 성인사이트에 유포한 건입니다.

영상 대부분은 여성 피해자들의 얼굴과 성기 등이 근접 촬영돼 성인사이트에 올려졌는데, 심지어 일부 영상은 돈을 내면 볼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일부 언론은 피해자의 규모가 100명이 넘는다고 보도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지난해에야 이 사실을 알고 사생활 침해라며 법적 조치에 나섰는데, 당시에도 사건을 맡았던 바스케스 판사는 사건을 보류했고, 여성단체가 나서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번에도 그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이 판사가 내세운 기각 사유는, 사적 공간이 아닌 공공장소에서 이뤄진 촬영이므로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피해 여성의 "신체적 또는 도덕적 저항을 침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판결문에 기재했습니다.


■ "잘못된 전례로 남아 범죄자들에 면죄부 줄 것"…반대 시위, 온라인 캠페인 확산

법원의 이런 결정을 비난하는 시위와 온라인 캠페인은 #XustizaMaruxaina(Justice Maruxaina)라는 문구를 달고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습니다.

스페인 평등부 장관도 "여성의 동의 없이 사진을 찍어 유포하는 것은 성폭력이다"라고 힘을 실으면서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누군가 거리에서 당신을 촬영하고 영상을 성인사이트에 올려 돈을 버는 행위가 괜찮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는데요, 여성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잘못된 전례로 남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 반복되는 스페인 여성 범죄 '솜방망이 처벌'…3년 전 '늑대무리 사건' 상황 재현되나?

이렇게 스페인에서 여성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논란이 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남성 가해자 5명이 10대 여성 한 명을 성폭행하고 이를 촬영해 '늑대 무리'라는 별명의 단체 채팅방에 올렸던 일명 '늑대무리 사건'에 대해서도, 지난 2018년 스페인 법원은 "성폭행이 아니라 성적 학대"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일로 스페인에서는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대법원은 1·2심을 뒤집으며 강간죄를 적용해 가해자들에 대한 형량을 기존 9년에서 15년으로 늘렸습니다.

그 뒤로 스페인에서는 피해자의 의사를 중심으로 성폭행 처벌을 강화하자는 여론이 확산했는데요,

지난 7월엔 정치권에서도 피해자의 의사를 강간 처벌의 중심에 둬야 한다는, 일명 '예스 민스 예스'(only yes means yes) 규정을 담은 강간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 안은 현재 스페인 의회에서 심의중입니다.


■ '예스 민스 예스'(only yes means yes) 규정이란?

'예스 민스 예스'(only yes means yes)는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도 분명히 '좋다'는 의사를 표현했을 때에만 승낙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겐 '비동의(非同意) 간음죄'라는 말이 그나마 더 익숙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초부터 일어난 '미투' 운동 이후 이 법의 제정이 쟁점이 됐습니다.

국내 현행법상 강간죄는 유형력(폭행ㆍ협박과 같은 넓은 의미의 물리력)의 행사가 있을 때 성립됩니다.

하지만 '비동의 간음죄'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처벌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폭행·협박이 없었더라도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라면 범죄가 됩니다.

성관계에 대해 거부의 뜻을 밝혔을 경우 처벌('No Means No' rule)하는 것뿐만 아니라 명확하게 동의하지 않은 모든 경우도 처벌(only 'Yes Means Yes' rule)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선 영국,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미국 일부 주 등에서 이미 입법했고, 국내에선 지난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 논의가 진행중인데요. 아직은 부작용이나 악용의 우려가 크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고 일부에선 이 규정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행에 적용되는 것으로만 오해돼 젠더 이슈로 여겨지면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국내 입법 관련 진행 상황은 [이슈체크K] 강압 없이도 처벌…‘비동의 간음죄’가 뭐길래?(20.6.14)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스페인 여성 80여 명 노상 방뇨 몰래 촬영해 유포…법원은 무혐의 결정?
    • 입력 2021-10-10 07:05:22
    취재K
BBC 홈페이지(2021.10.1)
■ 여성 80여 명 노상 방뇨 몰래 촬영해 성인 사이트에 유포…무혐의라고?

여성이 구석진 골목에서 소변보는 모습을 몰래 촬영해 성인사이트에 유포했다면 그건 범죄일까 아닐까?

스페인 법원이 "범죄가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1일 BBC 방송 등은, 스페인의 파블로 무뇨스 바스케스 판사가 노상 방뇨하는 여아 등 여성 80여 명의 모습을 몰래 촬영해 성인사이트에 유포한 사건을 기각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사건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가해자가 지난 2019년 스페인 북서부 세르보 마을에서 열린 지역축제 'Maruxaina' 중에 화장실이 부족해 골목에서 소변을 본 여성들을 몰래 촬영해 성인사이트에 유포한 건입니다.

영상 대부분은 여성 피해자들의 얼굴과 성기 등이 근접 촬영돼 성인사이트에 올려졌는데, 심지어 일부 영상은 돈을 내면 볼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일부 언론은 피해자의 규모가 100명이 넘는다고 보도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지난해에야 이 사실을 알고 사생활 침해라며 법적 조치에 나섰는데, 당시에도 사건을 맡았던 바스케스 판사는 사건을 보류했고, 여성단체가 나서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번에도 그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이 판사가 내세운 기각 사유는, 사적 공간이 아닌 공공장소에서 이뤄진 촬영이므로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피해 여성의 "신체적 또는 도덕적 저항을 침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판결문에 기재했습니다.


■ "잘못된 전례로 남아 범죄자들에 면죄부 줄 것"…반대 시위, 온라인 캠페인 확산

법원의 이런 결정을 비난하는 시위와 온라인 캠페인은 #XustizaMaruxaina(Justice Maruxaina)라는 문구를 달고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습니다.

스페인 평등부 장관도 "여성의 동의 없이 사진을 찍어 유포하는 것은 성폭력이다"라고 힘을 실으면서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누군가 거리에서 당신을 촬영하고 영상을 성인사이트에 올려 돈을 버는 행위가 괜찮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는데요, 여성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잘못된 전례로 남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 반복되는 스페인 여성 범죄 '솜방망이 처벌'…3년 전 '늑대무리 사건' 상황 재현되나?

이렇게 스페인에서 여성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논란이 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남성 가해자 5명이 10대 여성 한 명을 성폭행하고 이를 촬영해 '늑대 무리'라는 별명의 단체 채팅방에 올렸던 일명 '늑대무리 사건'에 대해서도, 지난 2018년 스페인 법원은 "성폭행이 아니라 성적 학대"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일로 스페인에서는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대법원은 1·2심을 뒤집으며 강간죄를 적용해 가해자들에 대한 형량을 기존 9년에서 15년으로 늘렸습니다.

그 뒤로 스페인에서는 피해자의 의사를 중심으로 성폭행 처벌을 강화하자는 여론이 확산했는데요,

지난 7월엔 정치권에서도 피해자의 의사를 강간 처벌의 중심에 둬야 한다는, 일명 '예스 민스 예스'(only yes means yes) 규정을 담은 강간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 안은 현재 스페인 의회에서 심의중입니다.


■ '예스 민스 예스'(only yes means yes) 규정이란?

'예스 민스 예스'(only yes means yes)는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도 분명히 '좋다'는 의사를 표현했을 때에만 승낙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겐 '비동의(非同意) 간음죄'라는 말이 그나마 더 익숙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초부터 일어난 '미투' 운동 이후 이 법의 제정이 쟁점이 됐습니다.

국내 현행법상 강간죄는 유형력(폭행ㆍ협박과 같은 넓은 의미의 물리력)의 행사가 있을 때 성립됩니다.

하지만 '비동의 간음죄'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처벌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폭행·협박이 없었더라도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라면 범죄가 됩니다.

성관계에 대해 거부의 뜻을 밝혔을 경우 처벌('No Means No' rule)하는 것뿐만 아니라 명확하게 동의하지 않은 모든 경우도 처벌(only 'Yes Means Yes' rule)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선 영국,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미국 일부 주 등에서 이미 입법했고, 국내에선 지난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 논의가 진행중인데요. 아직은 부작용이나 악용의 우려가 크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고 일부에선 이 규정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행에 적용되는 것으로만 오해돼 젠더 이슈로 여겨지면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국내 입법 관련 진행 상황은 [이슈체크K] 강압 없이도 처벌…‘비동의 간음죄’가 뭐길래?(20.6.14)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