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질 때까지 해야 해” 싸움 부추기고 촬영한 고교생들

입력 2021.10.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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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의 한 고등학교 학생 A군과 B군이 싸우는 장면.경남 창원의 한 고등학교 학생 A군과 B군이 싸우는 장면.

■ 6분 동안 110여 대 맞은 학생, 코뼈 등 골절돼 수술 앞둬

지난 12일, 경남 창원의 한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2명이 싸웠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굣길에 학교 인근의 다리 밑 공터로 가서 싸운 겁니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이 싸움은 약 6분 가량 이어졌는데 '싸움'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서로 주고받은 주먹의 수를 세어보니, 한 학생이 110여 대를 맞을 동안 다른 학생은 7대만 맞았습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학생은 결국 광대뼈와 코뼈가 골절돼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다음주에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싸움이 벌어진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주위에는 같은 학교 학생 7명이 있었는데, 아무도 이처럼 일방적인 싸움을 말리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고, 게다가 이 장면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친구들에게 유포했다는 점입니다.

싸움을 구경하던 한 학생이 A군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는 장면.싸움을 구경하던 한 학생이 A군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는 장면.

"쓰러질 때까지 해야 해" 싸움 부추기고 촬영한 학생들

이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지역 사회에서는 학교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학생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취재진이 영상을 살펴보니, 당시 주위에 있던 학생들은 "쓰러질 때까지 싸워야 한다, 죽든지 아니면 죽이든지 하라"는 등의 말로 싸움을 부추기며 영상을 찍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친구가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싸움을 말려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듯 박수를 치고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피해 학생을 만나 왜 싸웠는지 물었는데, 이 학생은 평소 자신의 말투를 놀리던 상대 학생이 갑자기 싸우자고 말했고, 이 때 옆에 있던 친구들이 '싸워서 이기면 더 이상 놀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싸우게 됐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권유로 싸움이 시작되자 친구들은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SNS 단체방에서 서로 돌려본 겁니다.

피해 학생의 가족이 영상을 촬영해 유포한 학생에게 문자를 보내 따지자 이 학생은 "친구들이 영상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었고, 달라고 해서 줬다."고 답했습니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태도였다는 겁니다.

A군 학부모의 인터뷰 장면.A군 학부모의 인터뷰 장면.

■잇따르는 학교 폭력 방관·영상 유포…예방법은?

이렇게 학생들이 싸움을 부추기고, 영상을 찍어 유포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6월 말에도 창원의 다른 고등학교에서 남학생 두 명이 싸웠는데, 이때도 다른 학생들이 주위에 있었지만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웃으며 영상을 촬영해 SNS에 유포했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 사이 싸움을 했던 학생은 상대 학생으로부터 바닥과 벽에 내던져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수술을 받았습니다.

경상남도교육청은 학교 폭력의 동조자와 강화자, 방관자들도 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에 해당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학교에 공문을 발송해 교육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차용복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부장은 학기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대다수의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이 다수의 학생을 모아놓고 영상 등을 시청하는 방식이어서 실질적인 예방이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창작 연극과 같이 몰입감과 현실감을 느낄 수 있게 해 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누구나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하지 않으면, 학교 폭력으로 인한 친구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폭력을 부추기고 즐기는 일은 학생들 사이에서 계속 반복될 지도 모릅니다.

[관련 기사] 또 학생 싸움 영상 유포…경찰 수사까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01332&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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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러질 때까지 해야 해” 싸움 부추기고 촬영한 고교생들
    • 입력 2021-10-16 09:00:26
    취재K
경남 창원의 한 고등학교 학생 A군과 B군이 싸우는 장면.
■ 6분 동안 110여 대 맞은 학생, 코뼈 등 골절돼 수술 앞둬

지난 12일, 경남 창원의 한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2명이 싸웠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굣길에 학교 인근의 다리 밑 공터로 가서 싸운 겁니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이 싸움은 약 6분 가량 이어졌는데 '싸움'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서로 주고받은 주먹의 수를 세어보니, 한 학생이 110여 대를 맞을 동안 다른 학생은 7대만 맞았습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학생은 결국 광대뼈와 코뼈가 골절돼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다음주에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싸움이 벌어진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주위에는 같은 학교 학생 7명이 있었는데, 아무도 이처럼 일방적인 싸움을 말리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고, 게다가 이 장면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친구들에게 유포했다는 점입니다.

싸움을 구경하던 한 학생이 A군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는 장면.
"쓰러질 때까지 해야 해" 싸움 부추기고 촬영한 학생들

이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지역 사회에서는 학교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학생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취재진이 영상을 살펴보니, 당시 주위에 있던 학생들은 "쓰러질 때까지 싸워야 한다, 죽든지 아니면 죽이든지 하라"는 등의 말로 싸움을 부추기며 영상을 찍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친구가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싸움을 말려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듯 박수를 치고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피해 학생을 만나 왜 싸웠는지 물었는데, 이 학생은 평소 자신의 말투를 놀리던 상대 학생이 갑자기 싸우자고 말했고, 이 때 옆에 있던 친구들이 '싸워서 이기면 더 이상 놀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싸우게 됐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권유로 싸움이 시작되자 친구들은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SNS 단체방에서 서로 돌려본 겁니다.

피해 학생의 가족이 영상을 촬영해 유포한 학생에게 문자를 보내 따지자 이 학생은 "친구들이 영상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었고, 달라고 해서 줬다."고 답했습니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태도였다는 겁니다.

A군 학부모의 인터뷰 장면.
■잇따르는 학교 폭력 방관·영상 유포…예방법은?

이렇게 학생들이 싸움을 부추기고, 영상을 찍어 유포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6월 말에도 창원의 다른 고등학교에서 남학생 두 명이 싸웠는데, 이때도 다른 학생들이 주위에 있었지만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웃으며 영상을 촬영해 SNS에 유포했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 사이 싸움을 했던 학생은 상대 학생으로부터 바닥과 벽에 내던져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수술을 받았습니다.

경상남도교육청은 학교 폭력의 동조자와 강화자, 방관자들도 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에 해당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학교에 공문을 발송해 교육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차용복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부장은 학기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대다수의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이 다수의 학생을 모아놓고 영상 등을 시청하는 방식이어서 실질적인 예방이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창작 연극과 같이 몰입감과 현실감을 느낄 수 있게 해 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누구나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하지 않으면, 학교 폭력으로 인한 친구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폭력을 부추기고 즐기는 일은 학생들 사이에서 계속 반복될 지도 모릅니다.

[관련 기사] 또 학생 싸움 영상 유포…경찰 수사까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01332&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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