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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임대아파트 임차권 사시게요? 2억 원 좀 안되는데…”
입력 2021.10.16 (14:20) 수정 2021.10.16 (14:21) 취재후
전북 전주시에 들어선 민간 임대아파트전북 전주시에 들어선 민간 임대아파트

■ "임차권 사시게요? 2억 원 좀 안 되는데…."

전북 전주시에 지난해 들어선 민간 임대아파트입니다. 집주인은 건설사이고, 청약자들이 임대차 계약을 맺고 세 들어 사는 형태입니다. 84㎡ 기준 보증금 1억여 원에 월 임대료 20~40만 원을 내는 식이지요.

그런데 이런 '세 들어 살 권리'에 가격표가 붙었습니다. 아파트 임차권이 사고 팔리는 건데, 근처 부동산 중개업소에 가면 매물을 쉽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돈은 얼마나 줘야 할까요? 부동산 중개인은 고층에 전망 좋은 매물을 콕 찍어 소개하면서 1억 9천만 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임대 보증금은 따로이고, 순수하게 전 세입자에게 쥐여 줘야 할 '웃돈'만 따진 금액입니다. 가격 상담을 마치자 부동산중개인은 친절하게 '매물'을 정리해 문자메시지로 보내줬습니다.

민간 임대아파트 임차권에 붙은 ‘웃돈’민간 임대아파트 임차권에 붙은 ‘웃돈’

■ "현금다발로만 거래합니다"...계약서 없고 과세당국 감시도 사각지대

가격을 알았으니, 거래 방법이 궁금했습니다. 중개인은 계약서 따윈 쓰지 않는다고 알려줍니다. 서로 문자메시지로 내용과 날짜를 정하고 돈이 오가면 그걸로 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현금으로 가져오실 수 있죠?"라고 묻습니다.

임차권 웃돈 거래는 '돈다발'을 주고받습니다. 통장 계좌이체 안 됩니다. 며칠에 걸쳐서 5만 원권을 뽑아오라고 안내한 중개인은 "P(프리미엄) 거래는 오픈되면 안 되니까,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돈도 다 눈에 보이면 안 돼"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웃돈은 과세 당국 감시를 피해 가는 돈이 됩니다. 당연히 양도세도 취득세도 붙지 않습니다.

■ '분양 우선권' 노린 투기 수단...8년 임대 끝나면 주변 시세 70~80% 기대감

소유권 이전 등기처럼 당장 내 것으로 만드는 거래도 아닌데 왜 1억 원 넘게 내야 하나, 궁금할 수 있습니다. '웃돈 거래' 이유는 지금은 아니어도 나중엔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8년의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나면 건설사는 임대 사업을 접고 아파트를 팔 수 있습니다. 이때 분양받을 권리를 먼저 챙길 수 있는 사람은 임차인입니다.

얼마에 분양할지는 정해진 게 없습니다. 분양가는 그때 가서 임대인(건설사)이 정합니다. 다만, 앞선 분양 전환 사례를 봤을 때, 주변 시세 70~80% 수준이 될 거라 짐작할 뿐입니다. 이 갭 사이에선 웃돈을 들여도, 나중에 분양받을 때 손해는 안 날 거란 계산이 깔린 겁니다. 집값이 폭등한 사이 생긴 일종의 투기 심리이죠.

■ '웃돈 거래' 막을 법조차 없어..피해는 실수요자 몫

임차권 웃돈 거래가 낳는 부작용은 우리가 아는 부동산 투기와 같습니다. 손바뀜이 거듭될수록 웃돈은 불고(실제 지난해 이 문제를 취재했을 때 웃돈은 3천만 원 수준)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왜곡됩니다. 그 피해는 모두 실수요자 몫으로 남지요.

그런데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여러 규제, 이를테면 분양권 전매 금지나 실거주 의무 같은 제약이 임차권 거래에는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거래를 막을 마땅한 단속 규정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민간 임대주택 임차권 양도를 두고 법은 이렇게 정하고 있습니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없이 그 권리를 양도하거나 임차물을 전대하지 못한다. 임차인이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때에는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민법 제629조)

'임대인 동의 없이'는 임차권 거래하지 말라는 건데, 바꿔 말하면 임대인이 동의하면 괜찮다는 겁니다. 임차권 웃돈 거래는 임대인, 즉 건설사 '동의'가 판을 깔아준 탓입니다.

민간 임대아파트 “웃돈 거래, 책임지지 않습니다”민간 임대아파트 “웃돈 거래, 책임지지 않습니다”

■ '주거 안정' 명분 뒤 숨은 '방관자'..."건설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건설사(임대인)는 아예 한 달에 특정 하루를 정해 놓고 계약자 변경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웃돈을 주고받고 짬짜미한 사람들은 이날 함께 건설사로 가 변경 업무를 보는 것으로 임차권 거래를 마무리합니다.

사실 건설사 입장에서 굉장히 편한 일입니다. 계약 중단(종료) 임차권을 직접 회수하면 다음 임차인을 또 모집해야 하는데, 그사이 생길 수 있는 공실 상황이 회사 입장에서 싫겠지요. 알아서 다음 임차인을 구해오면 이 불편과 손해를 차단할 수 있는 겁니다.

건설사는 임차권을 두고 투기성 웃돈 거래가 이뤄지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거래는 자유로이 알아서 할 일이다. 다만, 회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건설사 관계자가 직접 한 말입니다.

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짓는다는 민간 임대아파트의 취지, '무법 투기'와 '사업자 방관' 앞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 [취재후] “임대아파트 임차권 사시게요? 2억 원 좀 안되는데…”
    • 입력 2021-10-16 14:20:39
    • 수정2021-10-16 14:21:55
    취재후
전북 전주시에 들어선 민간 임대아파트전북 전주시에 들어선 민간 임대아파트

■ "임차권 사시게요? 2억 원 좀 안 되는데…."

전북 전주시에 지난해 들어선 민간 임대아파트입니다. 집주인은 건설사이고, 청약자들이 임대차 계약을 맺고 세 들어 사는 형태입니다. 84㎡ 기준 보증금 1억여 원에 월 임대료 20~40만 원을 내는 식이지요.

그런데 이런 '세 들어 살 권리'에 가격표가 붙었습니다. 아파트 임차권이 사고 팔리는 건데, 근처 부동산 중개업소에 가면 매물을 쉽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돈은 얼마나 줘야 할까요? 부동산 중개인은 고층에 전망 좋은 매물을 콕 찍어 소개하면서 1억 9천만 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임대 보증금은 따로이고, 순수하게 전 세입자에게 쥐여 줘야 할 '웃돈'만 따진 금액입니다. 가격 상담을 마치자 부동산중개인은 친절하게 '매물'을 정리해 문자메시지로 보내줬습니다.

민간 임대아파트 임차권에 붙은 ‘웃돈’민간 임대아파트 임차권에 붙은 ‘웃돈’

■ "현금다발로만 거래합니다"...계약서 없고 과세당국 감시도 사각지대

가격을 알았으니, 거래 방법이 궁금했습니다. 중개인은 계약서 따윈 쓰지 않는다고 알려줍니다. 서로 문자메시지로 내용과 날짜를 정하고 돈이 오가면 그걸로 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현금으로 가져오실 수 있죠?"라고 묻습니다.

임차권 웃돈 거래는 '돈다발'을 주고받습니다. 통장 계좌이체 안 됩니다. 며칠에 걸쳐서 5만 원권을 뽑아오라고 안내한 중개인은 "P(프리미엄) 거래는 오픈되면 안 되니까,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돈도 다 눈에 보이면 안 돼"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웃돈은 과세 당국 감시를 피해 가는 돈이 됩니다. 당연히 양도세도 취득세도 붙지 않습니다.

■ '분양 우선권' 노린 투기 수단...8년 임대 끝나면 주변 시세 70~80% 기대감

소유권 이전 등기처럼 당장 내 것으로 만드는 거래도 아닌데 왜 1억 원 넘게 내야 하나, 궁금할 수 있습니다. '웃돈 거래' 이유는 지금은 아니어도 나중엔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8년의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나면 건설사는 임대 사업을 접고 아파트를 팔 수 있습니다. 이때 분양받을 권리를 먼저 챙길 수 있는 사람은 임차인입니다.

얼마에 분양할지는 정해진 게 없습니다. 분양가는 그때 가서 임대인(건설사)이 정합니다. 다만, 앞선 분양 전환 사례를 봤을 때, 주변 시세 70~80% 수준이 될 거라 짐작할 뿐입니다. 이 갭 사이에선 웃돈을 들여도, 나중에 분양받을 때 손해는 안 날 거란 계산이 깔린 겁니다. 집값이 폭등한 사이 생긴 일종의 투기 심리이죠.

■ '웃돈 거래' 막을 법조차 없어..피해는 실수요자 몫

임차권 웃돈 거래가 낳는 부작용은 우리가 아는 부동산 투기와 같습니다. 손바뀜이 거듭될수록 웃돈은 불고(실제 지난해 이 문제를 취재했을 때 웃돈은 3천만 원 수준)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왜곡됩니다. 그 피해는 모두 실수요자 몫으로 남지요.

그런데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여러 규제, 이를테면 분양권 전매 금지나 실거주 의무 같은 제약이 임차권 거래에는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거래를 막을 마땅한 단속 규정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민간 임대주택 임차권 양도를 두고 법은 이렇게 정하고 있습니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없이 그 권리를 양도하거나 임차물을 전대하지 못한다. 임차인이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때에는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민법 제629조)

'임대인 동의 없이'는 임차권 거래하지 말라는 건데, 바꿔 말하면 임대인이 동의하면 괜찮다는 겁니다. 임차권 웃돈 거래는 임대인, 즉 건설사 '동의'가 판을 깔아준 탓입니다.

민간 임대아파트 “웃돈 거래, 책임지지 않습니다”민간 임대아파트 “웃돈 거래, 책임지지 않습니다”

■ '주거 안정' 명분 뒤 숨은 '방관자'..."건설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건설사(임대인)는 아예 한 달에 특정 하루를 정해 놓고 계약자 변경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웃돈을 주고받고 짬짜미한 사람들은 이날 함께 건설사로 가 변경 업무를 보는 것으로 임차권 거래를 마무리합니다.

사실 건설사 입장에서 굉장히 편한 일입니다. 계약 중단(종료) 임차권을 직접 회수하면 다음 임차인을 또 모집해야 하는데, 그사이 생길 수 있는 공실 상황이 회사 입장에서 싫겠지요. 알아서 다음 임차인을 구해오면 이 불편과 손해를 차단할 수 있는 겁니다.

건설사는 임차권을 두고 투기성 웃돈 거래가 이뤄지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거래는 자유로이 알아서 할 일이다. 다만, 회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건설사 관계자가 직접 한 말입니다.

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짓는다는 민간 임대아파트의 취지, '무법 투기'와 '사업자 방관' 앞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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