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악마는 디테일에…희비 가를 여론조사 문항

입력 2021.10.18 (15:34) 수정 2021.11.2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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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세부 사항을 정할 때,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철저하고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는 의미의 관용어입니다. 합의서나 계약서 쓸 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 국민의힘, 여론조사 세부 문항 논의…'디테일 싸움' 시작

본 경선 여론조사 문항을 어떻게 설계할지를 놓고 논의 중인 국민의힘에서도 이 문구는 유효합니다. 11월 5일 최종 대선 후보 1인을 선출하는데 여론조사 결과가 50% 반영되는 만큼, 어떤 식으로 문항을 넣느냐에 따라 후보별 유·불리가 갈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정해진 건 '본선 경쟁력을 묻기로 한다' 뿐입니다.

큰 틀에서의 방향성만 잡은 건데,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세부 문항을 정하기 위해 지난 15일 여론조사 전문가위원회를 꾸리고 첫 회의를 했습니다.

윤석열 캠프의 김장수 정책총괄팀장과 홍준표 캠프의 김정기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 유승민 캠프의 유경준 의원, 원희룡 캠프의 유은종 상황부실장도 대리인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회의를 마친 뒤 "각 후보 측의 입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자리였다"며 캠프 간 이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 양자 가상대결이냐, 4지 선다형이냐…문항 따라 승패 영향

가장 쟁점이 큰 사안은 여론조사 문항을 '양자 가상대결'로 할지 '4지 선다형'으로 할 지입니다.

양자 가상대결이란 민주당 이재명 후보 대 국민의힘 후보를 각각 한 명씩 선택지로 놓고 질문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OOO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하겠습니까?'라는 질문지에 원희룡·유승민·윤석열·홍준표 후보 이름을 각각 넣어 응답자에게 4차례 묻는 식입니다.


반면, 4지 선다형은 보기에 이재명 후보를 넣고, 국민의힘 후보 4명 중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를 질문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맞서 국민의힘 후보 중 누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보기를 두고, 4명의 후보를 한꺼번에 제시해 묻는 식입니다.


■ 윤·원 캠프는 '양자 대결'…홍 캠프는 '4지 선다', 유 캠프는 '중립'

윤석열, 원희룡 후보 캠프는 양자 가상대결 방식을 선호하는 기류입니다. 이미 지난달 정홍원 선관위원장이 브리핑을 통해 여당 후보와 일대일 가상 대결을 언급한 바 있다는 겁니다.

양자 가상대결이 이른바 '역선택'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캠프 관계자는 "이미 선관위에서 양자 가상대결 방식을 선호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그러니 우리도 기본적으로 양자 가상대결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원희룡 캠프 관계자도 "선관위 입장을 기본적으로 존중한다"면서 "우리는 양자 가상대결 방식을 조금 더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홍준표 후보 캠프는 4지 선다형을 도입하자는 입장입니다. 당 선관위도 본선 경쟁력을 측정한다고만 했을 뿐, 양자 대결 방식을 결정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홍준표 캠프 관계자는 "양자 가상대결은 결괏값을 객관적으로 지표화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후보 간 유·불리를 떠나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추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대선 후보 선출을 하는데, 양자 가상대결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유승민 후보 캠프는 당헌·당규에 따라, 잡음 없이 결정돼야 한다며 중립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4지 선다형 선호에 조금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 "양자 대결·4지 선다 둘 다 장단점 있어"

전문가들은 양자 가상대결과 4지 선다형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한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4지 선다형으로 했을 땐 결괏값을 쉽게 도출할 수 있지만, 양자 가상대결은 지표화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양자 가상대결은 응답에 따라 도출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 책임당원 투표 결과(50%)와 여론조사 결과(50%)를 '등가성 원리'로 맞추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세부 사항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또다시 유·불리가 생기는 등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역선택을 방지하는 취지를 살리려면 '4지 선다형'보다 '양자 가상대결'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밝혔습니다.

■ '그래도 누구를 뽑겠냐'…'재질문' 도입도 쟁점

양자 가상대결과 4지 선다형뿐만 아니라 지지 후보가 없다고 응답했을 때 '그래도 누구를 뽑겠냐'는 취지의 재질문을 넣을지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 4·7 재보궐 선거 때 당 내 경선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에 '재질문' 조항을 도입했는데, 이같은 방식이 오세훈 당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전례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각 캠프는 아직 세부 문항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각론에서 더 논의해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국민의힘 선관위는 이번 주까지 각 캠프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를 거친 뒤, 여론조사 문항을 확정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여론조사 세부 문항은 어떻게 설계할지, 문구는 무엇을 넣을지, 하나하나가 승패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결정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캠프 간 신경전은 가열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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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악마는 디테일에…희비 가를 여론조사 문항
    • 입력 2021-10-18 15:34:30
    • 수정2021-11-26 10:37:28
    여심야심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세부 사항을 정할 때,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철저하고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는 의미의 관용어입니다. 합의서나 계약서 쓸 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 국민의힘, 여론조사 세부 문항 논의…'디테일 싸움' 시작

본 경선 여론조사 문항을 어떻게 설계할지를 놓고 논의 중인 국민의힘에서도 이 문구는 유효합니다. 11월 5일 최종 대선 후보 1인을 선출하는데 여론조사 결과가 50% 반영되는 만큼, 어떤 식으로 문항을 넣느냐에 따라 후보별 유·불리가 갈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정해진 건 '본선 경쟁력을 묻기로 한다' 뿐입니다.

큰 틀에서의 방향성만 잡은 건데,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세부 문항을 정하기 위해 지난 15일 여론조사 전문가위원회를 꾸리고 첫 회의를 했습니다.

윤석열 캠프의 김장수 정책총괄팀장과 홍준표 캠프의 김정기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 유승민 캠프의 유경준 의원, 원희룡 캠프의 유은종 상황부실장도 대리인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회의를 마친 뒤 "각 후보 측의 입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자리였다"며 캠프 간 이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 양자 가상대결이냐, 4지 선다형이냐…문항 따라 승패 영향

가장 쟁점이 큰 사안은 여론조사 문항을 '양자 가상대결'로 할지 '4지 선다형'으로 할 지입니다.

양자 가상대결이란 민주당 이재명 후보 대 국민의힘 후보를 각각 한 명씩 선택지로 놓고 질문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OOO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하겠습니까?'라는 질문지에 원희룡·유승민·윤석열·홍준표 후보 이름을 각각 넣어 응답자에게 4차례 묻는 식입니다.


반면, 4지 선다형은 보기에 이재명 후보를 넣고, 국민의힘 후보 4명 중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를 질문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맞서 국민의힘 후보 중 누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보기를 두고, 4명의 후보를 한꺼번에 제시해 묻는 식입니다.


■ 윤·원 캠프는 '양자 대결'…홍 캠프는 '4지 선다', 유 캠프는 '중립'

윤석열, 원희룡 후보 캠프는 양자 가상대결 방식을 선호하는 기류입니다. 이미 지난달 정홍원 선관위원장이 브리핑을 통해 여당 후보와 일대일 가상 대결을 언급한 바 있다는 겁니다.

양자 가상대결이 이른바 '역선택'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캠프 관계자는 "이미 선관위에서 양자 가상대결 방식을 선호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그러니 우리도 기본적으로 양자 가상대결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원희룡 캠프 관계자도 "선관위 입장을 기본적으로 존중한다"면서 "우리는 양자 가상대결 방식을 조금 더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홍준표 후보 캠프는 4지 선다형을 도입하자는 입장입니다. 당 선관위도 본선 경쟁력을 측정한다고만 했을 뿐, 양자 대결 방식을 결정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홍준표 캠프 관계자는 "양자 가상대결은 결괏값을 객관적으로 지표화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후보 간 유·불리를 떠나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추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대선 후보 선출을 하는데, 양자 가상대결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유승민 후보 캠프는 당헌·당규에 따라, 잡음 없이 결정돼야 한다며 중립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4지 선다형 선호에 조금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 "양자 대결·4지 선다 둘 다 장단점 있어"

전문가들은 양자 가상대결과 4지 선다형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한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4지 선다형으로 했을 땐 결괏값을 쉽게 도출할 수 있지만, 양자 가상대결은 지표화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양자 가상대결은 응답에 따라 도출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 책임당원 투표 결과(50%)와 여론조사 결과(50%)를 '등가성 원리'로 맞추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세부 사항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또다시 유·불리가 생기는 등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역선택을 방지하는 취지를 살리려면 '4지 선다형'보다 '양자 가상대결'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밝혔습니다.

■ '그래도 누구를 뽑겠냐'…'재질문' 도입도 쟁점

양자 가상대결과 4지 선다형뿐만 아니라 지지 후보가 없다고 응답했을 때 '그래도 누구를 뽑겠냐'는 취지의 재질문을 넣을지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 4·7 재보궐 선거 때 당 내 경선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에 '재질문' 조항을 도입했는데, 이같은 방식이 오세훈 당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전례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각 캠프는 아직 세부 문항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각론에서 더 논의해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국민의힘 선관위는 이번 주까지 각 캠프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를 거친 뒤, 여론조사 문항을 확정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여론조사 세부 문항은 어떻게 설계할지, 문구는 무엇을 넣을지, 하나하나가 승패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결정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캠프 간 신경전은 가열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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