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한파]① 한·중·일 얼려버린 ‘북극 한기’…차곡차곡 쌓이다 ‘폭발’

입력 2021.10.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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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실종됐습니다. 여름에서 곧장 겨울로 향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아침 서울의 기온은 1.3도로 예년보다 9도 가까이 낮았습니다. 10월 중순 기온으론 64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는데요. 11월 하순에 해당되는 때 이른 추위에 패딩을 꺼내야 했습니다.

추위는 잠시 누그러지나 했더니 오늘(20일) 아침 다시 찬 바람이 강해졌습니다.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밀려오면서 이번 주말까지는 예년 기온을 밑도는 쌀쌀한 날씨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 한·중·일 '이상 한파'…"기압배치는 이미 겨울"

지난 10일 중국 간쑤성 난산생태공원_출처: 중국 신화통신지난 10일 중국 간쑤성 난산생태공원_출처: 중국 신화통신

10월에 찾아온 '이상 한파'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중국에도 '반세기만의 한파'가 찾아왔습니다. 지난 17일 베이징의 최저기온은 영하 2도까지 떨어져 이맘때 기온으로는 관측 52년 만에 가장 낮았습니다.

평년보다 20일이나 빠른 추위에 베이징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에 한파경보까지 발령됐는데요. 이보다 앞선 10일에는 중국 서북부에 있는 간쑤성에 많은 눈이 내리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선 보통 '입동' 절기 전후인 11월 15일부터 중앙난방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올가을은 일찍 시작된 추위에 난방 없이 버텨야 할 시간도 길어질 전망입니다.

출처: 일본 요미우리신문출처: 일본 요미우리신문

일본에는 이른 추위와 함께 첫눈이 내렸습니다. 지난 17일 홋카이도에선 최저기온이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 곳곳에서 첫눈이 관측됐는데요. 지난해보다 17일이나 빨랐습니다.

일본 기상청은 강한 한랭기단의 영향으로 일본 주변의 기압 배치가 이미 겨울로 바뀌었고 현재 기온은 11월 중순과 비슷하다고 밝혔습니다.

■ '이상 한파' 어디서 왔나?

올해 동아시아를 얼려버린 이상 한파는 그럼 어디서, 왜 갑자기 나타난 걸까요? 답은 북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달 역대 12번째를 기록한 북극 얼음 면적지난달 역대 12번째를 기록한 북극 얼음 면적

매년 9월 중순이면 "북극의 얼음이 역대 몇 번째로 많이 녹았다"는 기사가 쏟아져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올가을은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거의 해마다 최소치를 경신하곤 했던 북극의 얼음 면적이 지난달 16일에는 평균 492만㎢로 측정됐는데요.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79년 이후 '12번째'를 기록했습니다.


가장 많은 얼음이 녹았던 해는 2012년이었습니다. 9월 중순 최소치가 338만㎢로 올해보다 150만㎢ 이상 작았습니다. 또 지난해의 경우 9월 얼음 면적이 381만㎢까지 줄어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작았습니다.

북극의 바다 얼음이 가장 많이 녹은 2012년, 그리고 역대 2위인 지난해와 비교해도 올해는 얼음이 덜 녹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평년과 비교해 많이 녹은 것은 맞지만 '기록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올해 여름 북극 주변을 도는 제트기류가 이례적으로 강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강한 제트기류 때문에 차가운 북극의 공기는 극 주변에 갇혀서 중위도로 내려오지 못했는데요. 그 결과 북극의 여름은 선선했고 과거 세워진 기록들보다는 얼음이 덜 녹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북극 기류의 흐름을 보여주는 '북극진동' 지수(AO)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최근 북극진동(AO) 지수최근 북극진동(AO) 지수

위 그래프를 보면, 7월 내내 북극진동 지수가 거의 '양의 값'(+)에 머물러 있습니다. 북극 주변을 도는 제트기류가 강력했다는 뜻인데요. 이 때문에 북극은 추웠지만, 반대로 북극의 찬 공기가 내려오지 않은 우리나라는 찌는 듯한 폭염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9월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됐습니다.

북극진동 지수가 '음의 값'(-)으로 내려갔고(극 제트기류 약화) 10월 들어서도 북극발 찬 공기가 본격적으로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찾아온 이른 추위도 북극의 영향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극진동 지수가 음의 값을 가지면 시베리아 고기압이 발달해 북서풍이 강해지는 등 동아시아에 한파가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집니다.

■ 북극 한기,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번 한파가 갑작스러운 것은 늦더위가 물러가자마자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김백민 교수는 "여름 내내 북극에 차가운 공기가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남쪽 아열대 고기압이 수축하자마자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는 유독 남쪽 북태평양 고기압이 10월까지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장마가 끝난 뒤 '찜통더위'를 몰고 오는 거대한 공기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18호 태풍 '곤파스'가 지난 14일 소멸함과 동시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빠르게 수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0월 중순이라는 계절적 시기도 한몫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열대 고기압이 수축한 자리로 지난 주말부터 북쪽 대륙 고기압이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계절은 여름에서 겨울로 급변했고 우리는 '반팔'에서 '패딩'으로 황급히 옷을 바꿔입어야 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여름이 지난 뒤 자연스럽게 남쪽과 북쪽의 공기가 힘겨루기하며 서서히 기온이 내려갔을 텐데요. 올해는 유난히 늦게까지 버틴 남쪽 고기압과 유난히 강한 북쪽 고기압의 '선수 교체'가 순식간에 이뤄진 겁니다. '강 대 강' 대결의 결과입니다.

매번 같은 날씨는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올해 가을 역시 이례적인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10월 중순에 찾아온 추위에 벌써 올겨울이 얼마나 추울지 궁금해집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올겨울 얼마나 추울지, 또 북극의 온난화로 인한 미래 기후는 어떨지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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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 한파]① 한·중·일 얼려버린 ‘북극 한기’…차곡차곡 쌓이다 ‘폭발’
    • 입력 2021-10-20 06:03:58
    취재K

가을이 실종됐습니다. 여름에서 곧장 겨울로 향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아침 서울의 기온은 1.3도로 예년보다 9도 가까이 낮았습니다. 10월 중순 기온으론 64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는데요. 11월 하순에 해당되는 때 이른 추위에 패딩을 꺼내야 했습니다.

추위는 잠시 누그러지나 했더니 오늘(20일) 아침 다시 찬 바람이 강해졌습니다.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밀려오면서 이번 주말까지는 예년 기온을 밑도는 쌀쌀한 날씨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 한·중·일 '이상 한파'…"기압배치는 이미 겨울"

지난 10일 중국 간쑤성 난산생태공원_출처: 중국 신화통신
10월에 찾아온 '이상 한파'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중국에도 '반세기만의 한파'가 찾아왔습니다. 지난 17일 베이징의 최저기온은 영하 2도까지 떨어져 이맘때 기온으로는 관측 52년 만에 가장 낮았습니다.

평년보다 20일이나 빠른 추위에 베이징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에 한파경보까지 발령됐는데요. 이보다 앞선 10일에는 중국 서북부에 있는 간쑤성에 많은 눈이 내리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선 보통 '입동' 절기 전후인 11월 15일부터 중앙난방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올가을은 일찍 시작된 추위에 난방 없이 버텨야 할 시간도 길어질 전망입니다.

출처: 일본 요미우리신문
일본에는 이른 추위와 함께 첫눈이 내렸습니다. 지난 17일 홋카이도에선 최저기온이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 곳곳에서 첫눈이 관측됐는데요. 지난해보다 17일이나 빨랐습니다.

일본 기상청은 강한 한랭기단의 영향으로 일본 주변의 기압 배치가 이미 겨울로 바뀌었고 현재 기온은 11월 중순과 비슷하다고 밝혔습니다.

■ '이상 한파' 어디서 왔나?

올해 동아시아를 얼려버린 이상 한파는 그럼 어디서, 왜 갑자기 나타난 걸까요? 답은 북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달 역대 12번째를 기록한 북극 얼음 면적
매년 9월 중순이면 "북극의 얼음이 역대 몇 번째로 많이 녹았다"는 기사가 쏟아져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올가을은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거의 해마다 최소치를 경신하곤 했던 북극의 얼음 면적이 지난달 16일에는 평균 492만㎢로 측정됐는데요.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79년 이후 '12번째'를 기록했습니다.


가장 많은 얼음이 녹았던 해는 2012년이었습니다. 9월 중순 최소치가 338만㎢로 올해보다 150만㎢ 이상 작았습니다. 또 지난해의 경우 9월 얼음 면적이 381만㎢까지 줄어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작았습니다.

북극의 바다 얼음이 가장 많이 녹은 2012년, 그리고 역대 2위인 지난해와 비교해도 올해는 얼음이 덜 녹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평년과 비교해 많이 녹은 것은 맞지만 '기록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올해 여름 북극 주변을 도는 제트기류가 이례적으로 강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강한 제트기류 때문에 차가운 북극의 공기는 극 주변에 갇혀서 중위도로 내려오지 못했는데요. 그 결과 북극의 여름은 선선했고 과거 세워진 기록들보다는 얼음이 덜 녹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북극 기류의 흐름을 보여주는 '북극진동' 지수(AO)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최근 북극진동(AO) 지수
위 그래프를 보면, 7월 내내 북극진동 지수가 거의 '양의 값'(+)에 머물러 있습니다. 북극 주변을 도는 제트기류가 강력했다는 뜻인데요. 이 때문에 북극은 추웠지만, 반대로 북극의 찬 공기가 내려오지 않은 우리나라는 찌는 듯한 폭염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9월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됐습니다.

북극진동 지수가 '음의 값'(-)으로 내려갔고(극 제트기류 약화) 10월 들어서도 북극발 찬 공기가 본격적으로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찾아온 이른 추위도 북극의 영향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극진동 지수가 음의 값을 가지면 시베리아 고기압이 발달해 북서풍이 강해지는 등 동아시아에 한파가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집니다.

■ 북극 한기,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번 한파가 갑작스러운 것은 늦더위가 물러가자마자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김백민 교수는 "여름 내내 북극에 차가운 공기가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남쪽 아열대 고기압이 수축하자마자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는 유독 남쪽 북태평양 고기압이 10월까지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장마가 끝난 뒤 '찜통더위'를 몰고 오는 거대한 공기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18호 태풍 '곤파스'가 지난 14일 소멸함과 동시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빠르게 수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0월 중순이라는 계절적 시기도 한몫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열대 고기압이 수축한 자리로 지난 주말부터 북쪽 대륙 고기압이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계절은 여름에서 겨울로 급변했고 우리는 '반팔'에서 '패딩'으로 황급히 옷을 바꿔입어야 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여름이 지난 뒤 자연스럽게 남쪽과 북쪽의 공기가 힘겨루기하며 서서히 기온이 내려갔을 텐데요. 올해는 유난히 늦게까지 버틴 남쪽 고기압과 유난히 강한 북쪽 고기압의 '선수 교체'가 순식간에 이뤄진 겁니다. '강 대 강' 대결의 결과입니다.

매번 같은 날씨는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올해 가을 역시 이례적인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10월 중순에 찾아온 추위에 벌써 올겨울이 얼마나 추울지 궁금해집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올겨울 얼마나 추울지, 또 북극의 온난화로 인한 미래 기후는 어떨지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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