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 상태’ 아이티…납치만 수백 건, 떠나는 국민들

입력 2021.10.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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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선교단' 17명 납치하고 몸값 200억 원 요구 …갱단이 도시 절반 차지한 '무법 천지' 아이티

카리브해(Caribbean Sea)에 있는 섬나라이자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
우리에게는 규모 7.0이었던 2010년도 대지진으로 더 익숙한 나라이지만, 현재 이 나라를 둘러싼 국제적인 이슈는 납치와 난민 문제입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16일 오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미국의 기독교 자선단체 소속 미국인과 캐나다인 17명이 납치됐습니다. 8개월 아기를 비롯해 아동 5명과 여성 6명, 남성 6명이 포함된 선교단은 이날 도시 외곽의 한 보육원을 방문하고 나오던 길에 중무장한 괴한들에 끌려갔습니다.

당시 납치된 일행 중 한 명은 소셜미디어(SNS) '왓츠앱'에 글을 올려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그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해당 자선단체는 이 선교단이 지난 8월에 있었던 대지진 이후 아이티 재건 사업을 돕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납치의 배후로는 해당 지역을 장악하고 납치와 살인, 약탈을 일삼아오는 범죄조직 '400 마우조'가 지목됐습니다. 이 갱단은 지난 4월 프랑스인 사제 5명과 수녀 2명, 사제의 친척 3명을 납치해 사제 2명의 몸값을 받아냈습니다.

이 범죄조직은 이번에도 피랍자들의 몸값을 요구했는데, 한 명당 100만 달러씩 모두 1천700만 달러(약 200억 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 시간) 아이티 법무장관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하고 미 연방수사국(FBI)과 아이티 경찰이 납치범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도 피랍자들 석방을 위해 아이티 고위 당국자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며 "조속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이티에서 갱단에 의한 이런 납치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최근 치안이 급격히 악화된 아이티에선 몸값을 노린 납치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AP통신은 유엔 통계를 인용해 올해 들어 8월까지 아이티 경찰에 신고된 납치 건수가 328건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납치 건수만 따져도, 지난해 전체의 234건보다 많습니다. 17명이 한꺼번에 납치된 이번 사건의 최근 몇 년간 아이티에서 발생한 납치 사건 중 최대 규모라고 AP통신은 전했습니다.

미 CNN에 따르면, 아이티의 비영리 기구 인권분석연구센터(CARDH)는 올해 9월까지 외국인 29명을 포함해 최소 628명이 납치됐다고 집계했습니다. 특히 지난 7월 31명이었던 수치는 8월 73명, 9월 117명 등으로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납치 범죄는 주로 전문적인 범죄조직이 저질렀는데, 미국 뉴욕타임스는 "학교 가는 아이들, 노점상, 설교 중인 성직자까지 부자든 가난하든 납치에 안전한 아이티인은 거의 없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6월엔 한국인 선교사 부부가 수도 포르토프랭스 외곽에서 납치됐다가 16일 만에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지난 11일에는 스쿨버스를 겨냥한 총격으로 5명 이상이 다쳤고, 대중 교통수단인 버스가 범죄조직에 납치당하기도 했는데, 급기야 아이티의 대중교통 운전기사 등 노동자 수천 명이 치안 불안에 항의하며 현지 시간 지난 18일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전면 파업 시위를 벌였습니다.

자주 납치의 표적이 되어온 운수업계가 시위를 주도해 주요 도시의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됐고, 다른 분야의 노동자들이 합류하면서 상점·학교 등도 문을 닫았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갱이 사회 전 계층을 납치하고 있다"면서 "파업은 정부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밝히고, 국가에 치안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AP통신은 현재 포르토프랭스의 최대 40%가 갱단에 장악된 상태라고 보도했습니다.

AP통신은, 아이티 갱단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당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 재발을 우려해 군대를 해체한 상태에서 부족한 경찰 인력으로는 치안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워 민간인들이 무장을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아이티의 납치 사건 10건 중 9건이 수도권에서 벌어지며, 이는 이미 대도시 멕시코시티나 브라질 상파울루보다 많다고 보도했습니다.


■ 희망 찾아 고국 떠나지만…추방당해 되돌아오는 아이티인들

아이티에서는 지난 7월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사저에서 괴한에 의해 암살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또 지난 8월에는 2천200명 이상이 숨지는 규모 7.2 강진까지 일어나 극심한 혼란이 이어지는 등 아이티는 말 그대로 무정부 상태라고 할 만합니다.

전체 인구의 60%가 빈곤층이다 보니 특히 2010년 대지진 이후 아이티를 떠나 새 삶을 찾으려는 아이티인들이 늘었는데, 지난 7월 대통령 암살과 8월의 대형 지진과 태풍 뒤에도 이주민이 급증했습니다.

아이티에서 대륙의 중남미 국가들로 거기서 또 북쪽으로, 생존의 위험을 무릅쓴 채 정글을 통과하고 리오그란데강을 건너 미국으로 가려는 아이티 난민들의 행렬이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최근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인 델리오 다리 아래에 아이티에서 건너온 난민 1만 명여 명이 대규모 불법 난민촌을 형성했고, 결국 이들 일부가 아이티로 송환됐다는 소식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딱 한 달 전, 기마 국경 순찰대가 이 불법 난민촌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고삐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아이티 이주민을 가축 몰듯 쫓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커졌습니다.

이 논란 이후, 유엔 산하 국제기구들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달 30일 아이티 이주민을 보호 필요성에 대한 개별 평가 없이 추방하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각국에 촉구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와 국제이주기구(IOM),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유엔 인권사무소가 공동 성명을 내고 아이티에서 많은 인구가 빈곤과 식량 불안, 성폭력,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올해 여름에만 최소 1만 9천 명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티에선 11월로 예정됐던 대통령 선거와 상하원 의원 선거가 또다시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내년 초에 헌법 검토 작업을 먼저 진행하겠다는 이유라는데, 덕분에 2018년부터 이미 여러 차례 미뤄져 상·하원의원 대부분 임기가 종료된 의회나 대통령의 공백 상태도 더 길어지고, 치안 문제 등을 둘러싼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앙리 아이티 총리는 최근 미 국경에서 추방된 자국 이민자들과 관련해 미국의 추방 결정을 이해한다며 "모국으로 돌아온 모든 아이티인을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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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정부 상태’ 아이티…납치만 수백 건, 떠나는 국민들
    • 입력 2021-10-21 07:00:19
    취재K

■ '미국 선교단' 17명 납치하고 몸값 200억 원 요구 …갱단이 도시 절반 차지한 '무법 천지' 아이티

카리브해(Caribbean Sea)에 있는 섬나라이자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
우리에게는 규모 7.0이었던 2010년도 대지진으로 더 익숙한 나라이지만, 현재 이 나라를 둘러싼 국제적인 이슈는 납치와 난민 문제입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16일 오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미국의 기독교 자선단체 소속 미국인과 캐나다인 17명이 납치됐습니다. 8개월 아기를 비롯해 아동 5명과 여성 6명, 남성 6명이 포함된 선교단은 이날 도시 외곽의 한 보육원을 방문하고 나오던 길에 중무장한 괴한들에 끌려갔습니다.

당시 납치된 일행 중 한 명은 소셜미디어(SNS) '왓츠앱'에 글을 올려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그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해당 자선단체는 이 선교단이 지난 8월에 있었던 대지진 이후 아이티 재건 사업을 돕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납치의 배후로는 해당 지역을 장악하고 납치와 살인, 약탈을 일삼아오는 범죄조직 '400 마우조'가 지목됐습니다. 이 갱단은 지난 4월 프랑스인 사제 5명과 수녀 2명, 사제의 친척 3명을 납치해 사제 2명의 몸값을 받아냈습니다.

이 범죄조직은 이번에도 피랍자들의 몸값을 요구했는데, 한 명당 100만 달러씩 모두 1천700만 달러(약 200억 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 시간) 아이티 법무장관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하고 미 연방수사국(FBI)과 아이티 경찰이 납치범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도 피랍자들 석방을 위해 아이티 고위 당국자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며 "조속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이티에서 갱단에 의한 이런 납치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최근 치안이 급격히 악화된 아이티에선 몸값을 노린 납치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AP통신은 유엔 통계를 인용해 올해 들어 8월까지 아이티 경찰에 신고된 납치 건수가 328건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납치 건수만 따져도, 지난해 전체의 234건보다 많습니다. 17명이 한꺼번에 납치된 이번 사건의 최근 몇 년간 아이티에서 발생한 납치 사건 중 최대 규모라고 AP통신은 전했습니다.

미 CNN에 따르면, 아이티의 비영리 기구 인권분석연구센터(CARDH)는 올해 9월까지 외국인 29명을 포함해 최소 628명이 납치됐다고 집계했습니다. 특히 지난 7월 31명이었던 수치는 8월 73명, 9월 117명 등으로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납치 범죄는 주로 전문적인 범죄조직이 저질렀는데, 미국 뉴욕타임스는 "학교 가는 아이들, 노점상, 설교 중인 성직자까지 부자든 가난하든 납치에 안전한 아이티인은 거의 없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6월엔 한국인 선교사 부부가 수도 포르토프랭스 외곽에서 납치됐다가 16일 만에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지난 11일에는 스쿨버스를 겨냥한 총격으로 5명 이상이 다쳤고, 대중 교통수단인 버스가 범죄조직에 납치당하기도 했는데, 급기야 아이티의 대중교통 운전기사 등 노동자 수천 명이 치안 불안에 항의하며 현지 시간 지난 18일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전면 파업 시위를 벌였습니다.

자주 납치의 표적이 되어온 운수업계가 시위를 주도해 주요 도시의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됐고, 다른 분야의 노동자들이 합류하면서 상점·학교 등도 문을 닫았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갱이 사회 전 계층을 납치하고 있다"면서 "파업은 정부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밝히고, 국가에 치안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AP통신은 현재 포르토프랭스의 최대 40%가 갱단에 장악된 상태라고 보도했습니다.

AP통신은, 아이티 갱단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당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 재발을 우려해 군대를 해체한 상태에서 부족한 경찰 인력으로는 치안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워 민간인들이 무장을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아이티의 납치 사건 10건 중 9건이 수도권에서 벌어지며, 이는 이미 대도시 멕시코시티나 브라질 상파울루보다 많다고 보도했습니다.


■ 희망 찾아 고국 떠나지만…추방당해 되돌아오는 아이티인들

아이티에서는 지난 7월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사저에서 괴한에 의해 암살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또 지난 8월에는 2천200명 이상이 숨지는 규모 7.2 강진까지 일어나 극심한 혼란이 이어지는 등 아이티는 말 그대로 무정부 상태라고 할 만합니다.

전체 인구의 60%가 빈곤층이다 보니 특히 2010년 대지진 이후 아이티를 떠나 새 삶을 찾으려는 아이티인들이 늘었는데, 지난 7월 대통령 암살과 8월의 대형 지진과 태풍 뒤에도 이주민이 급증했습니다.

아이티에서 대륙의 중남미 국가들로 거기서 또 북쪽으로, 생존의 위험을 무릅쓴 채 정글을 통과하고 리오그란데강을 건너 미국으로 가려는 아이티 난민들의 행렬이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최근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인 델리오 다리 아래에 아이티에서 건너온 난민 1만 명여 명이 대규모 불법 난민촌을 형성했고, 결국 이들 일부가 아이티로 송환됐다는 소식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딱 한 달 전, 기마 국경 순찰대가 이 불법 난민촌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고삐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아이티 이주민을 가축 몰듯 쫓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커졌습니다.

이 논란 이후, 유엔 산하 국제기구들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달 30일 아이티 이주민을 보호 필요성에 대한 개별 평가 없이 추방하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각국에 촉구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와 국제이주기구(IOM),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유엔 인권사무소가 공동 성명을 내고 아이티에서 많은 인구가 빈곤과 식량 불안, 성폭력,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올해 여름에만 최소 1만 9천 명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티에선 11월로 예정됐던 대통령 선거와 상하원 의원 선거가 또다시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내년 초에 헌법 검토 작업을 먼저 진행하겠다는 이유라는데, 덕분에 2018년부터 이미 여러 차례 미뤄져 상·하원의원 대부분 임기가 종료된 의회나 대통령의 공백 상태도 더 길어지고, 치안 문제 등을 둘러싼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앙리 아이티 총리는 최근 미 국경에서 추방된 자국 이민자들과 관련해 미국의 추방 결정을 이해한다며 "모국으로 돌아온 모든 아이티인을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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