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운노조 기획④ 비린내 나는 어시장서 쭈그리고 8시간…부녀반 “최저임금이라도”

입력 2021.10.22 (16:02) 수정 2021.10.2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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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동어시장 야간 부녀반 작업 현장부산공동어시장 야간 부녀반 작업 현장

"화장실 가서 장갑 같은 거 빠는 거... 단지 그거지 샤워라는 건 상상을 할 수가 없지."

부산항운노조 소속 어류지부 야간 부녀반원으로 일하는 한 노조원의 하소연입니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어시장이 부산 서구에 자리를 잡은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여전히 열악한 업무 환경에 놓여있다고 주장하는데요.

하지만 이른바 비위생적인 '바닥 경매'를 벗어나기 위해 수년 째 추진 중인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KBS가 마련한 부산항운노조 연속 기획, 오늘은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노조원들의 실태와 그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야간 부녀반원들이 고등어를 크기별로 분류하고 있다야간 부녀반원들이 고등어를 크기별로 분류하고 있다

■ 쭈그리고 앉아 8시간…생선 비린내 나도 씻을 곳조차 없어

전국 생선 위판의 20%를 차지하는 동남권 수산물 집하장인 부산공동어시장. 매년 새해 첫 경매에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는데요,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이 같은 초매식을 열지 않았지만, 경매는 매일같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경매를 위해 배에서 잡아올린 생선을 분류하고 배열하는 일, 모두 부산항운노조 소속 어류지부에서 도맡아 하고 있는데요. 보통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이 작업은 경매가 시작되는 아침 6시 전까지 모두 마쳐야 합니다. 물량이 많아지면 초과근무가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밤샘 작업 현장을 직접 가봤는데요, 선사들이 잡아온 고등어를 소형 트럭에 싣고, 이를 다시 어시장 바닥에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풀어진 수많은 고등어 사이에 야간 부녀반원들이 쭈그리고 앉아 생선을 분류하고 있었는데요. 보통 8시간 정도 멈추지 않고 일을 해야 경매 시간에 맞춰 분류가 끝나는 만큼 현장은 쉴새가 없습니다.

걸어 다니며 급하게 식사를 하는 노조원. 고등어 신선도 유지를 위해 고강도 업무가 계속된다.걸어 다니며 급하게 식사를 하는 노조원. 고등어 신선도 유지를 위해 고강도 업무가 계속된다.

허리를 펴 볼 새도 없이 계속되는 작업은 3시간 가까이 계속됐습니다.

이윽고 새벽 1시가 좀 넘어서자 선사 측이 마련한 새참이 나왔는데요. 보온통에 담긴 국이나 국수 같은 것들이 일회용 그릇에 담겨 노조원들에게 나눠졌습니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마땅히 먹을 곳도 없어 어시장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급하게 끼니를 떼우기 바빴는데요. 심한 경우에는 걸어 다니면서 새참을 먹고, 금방 일터로 뛰어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현장 관계자는 "생선은 선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조차 가지기 어려울만큼 빠듯하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마저도 최근 야간 부녀반의 인력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 하루 물량을 처리하기 몹시 힘든 상태라고 합니다.

천 2백여 명이 하던 일을 5백여 명이 하려고 하니 일손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남성용 샤워실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남성용 샤워실

일을 마쳐도 마땅히 씻을 곳조차 없습니다. 노조 사무실에 설치된 샤워장은 지하에 딸린 남성 샤워장 하나가 고작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사용한 지 오래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있고, 곰팡이도 잔뜩 슬었습니다. 거기에 바닥에는 먼지가 깔려있고, 수도꼭지는 모두 녹슬었는데요. 수십 수백 명이 사용해야 하는 샤워장이지만, 규모는 성인 남성 다섯 명 정도가 누울 수 있는 정도로 작았습니다.

결국, 노조원들은 화장실마다 작업복을 씻을 수 있게 마련된 수도 시설에서 장비만 정리한 뒤 생선 비린내를 풍기며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밤새 꼬박 8시간 일하고 받는 돈은 정식 조합원 기준 8만 8천 원. 야간수당조차 적용하지 않은 겁니다.

임시 조합원은 이보다도 적은데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지난 1월 기준 야간 부녀반 임금표. 최저임금법상 야간수당도 보장받지 못하고 일당제로 운영되고 있다.지난 1월 기준 야간 부녀반 임금표. 최저임금법상 야간수당도 보장받지 못하고 일당제로 운영되고 있다.

독점적인 노무 공급권 가진 항운노조…수협과 협약으로 일당 정해

KBS 취재진은 지난 1월 야간 부녀반의 임금표를 입수했습니다. 정식 조합원 8만 4천 원 가량, 임시 조합원은 7만 2천5백 원가량을 받고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8시간 기준으로 따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최저임금 기준으로 봤을 때 밤 10시 이후 야간수당이 붙으면 최저임금은 10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하지만 일당제로 운영 되다 보니 이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건데요. 더 황당한 건 물량이 적어 새벽 3시부터 작업이 들어가는 날에는 다시 시급제로 일당을 준다는 겁니다.

이 일당은 사용주인 수협과 항운노조의 협약을 토대로 결정됩니다.

항만사업 특성상 화주와 선사가 수백 곳에 달해 현행법상 사용주를 특정하기 어려운데, 이 때문에 항운노조가 노조원을 업무에 투입하는 독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막강한 권한으로 일감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고, 이를 다시 노조원에게 나누는 일을 항운노조가 맡고 있는 것이죠.

새참 먹을 장소가 없어 구석에 모여 삼삼오오 식사하는 노조원들새참 먹을 장소가 없어 구석에 모여 삼삼오오 식사하는 노조원들

■ 근로기준법 적용 어려운 항운노조원…시설 개선은 서로 '네 탓'

결국, 선사 측과 노조가 임금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도 확보하지 못한 셈입니다.

'노조원의 권리'를 최우선에 둬야 할 노조의 기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인데요, 항운노조 측은 최근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이 부분이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임금 인상이 계속 되고 있고, 안전장비 등 노조원 복지를 위한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동어시장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서는 공동어시장 측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부산공동어시장 측은 오히려 일부 개보수를 진행했지만, 시일이 지나 다시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노조의 요청이 있다면 다시 시설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는데요.

결국, 서로가 공을 넘기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조원들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노동 전문가들은 부산공동어시장의 시설 현대화 전에라도 노조원의 권익 향상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며, 항운노조가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협약에 넣었더라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산노동청도 최근 공동어시장 노조원의 이 같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임금 체계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 받고 조사에 들어갔는데요. 누구나 일한 만큼의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노조원의 권익 향상'이라는 노동조합의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는 언제쯤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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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운노조 기획④ 비린내 나는 어시장서 쭈그리고 8시간…부녀반 “최저임금이라도”
    • 입력 2021-10-22 16:02:03
    • 수정2021-10-22 16:12:45
    취재K
부산공동어시장 야간 부녀반 작업 현장
"화장실 가서 장갑 같은 거 빠는 거... 단지 그거지 샤워라는 건 상상을 할 수가 없지."

부산항운노조 소속 어류지부 야간 부녀반원으로 일하는 한 노조원의 하소연입니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어시장이 부산 서구에 자리를 잡은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여전히 열악한 업무 환경에 놓여있다고 주장하는데요.

하지만 이른바 비위생적인 '바닥 경매'를 벗어나기 위해 수년 째 추진 중인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KBS가 마련한 부산항운노조 연속 기획, 오늘은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노조원들의 실태와 그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야간 부녀반원들이 고등어를 크기별로 분류하고 있다
■ 쭈그리고 앉아 8시간…생선 비린내 나도 씻을 곳조차 없어

전국 생선 위판의 20%를 차지하는 동남권 수산물 집하장인 부산공동어시장. 매년 새해 첫 경매에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는데요,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이 같은 초매식을 열지 않았지만, 경매는 매일같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경매를 위해 배에서 잡아올린 생선을 분류하고 배열하는 일, 모두 부산항운노조 소속 어류지부에서 도맡아 하고 있는데요. 보통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이 작업은 경매가 시작되는 아침 6시 전까지 모두 마쳐야 합니다. 물량이 많아지면 초과근무가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밤샘 작업 현장을 직접 가봤는데요, 선사들이 잡아온 고등어를 소형 트럭에 싣고, 이를 다시 어시장 바닥에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풀어진 수많은 고등어 사이에 야간 부녀반원들이 쭈그리고 앉아 생선을 분류하고 있었는데요. 보통 8시간 정도 멈추지 않고 일을 해야 경매 시간에 맞춰 분류가 끝나는 만큼 현장은 쉴새가 없습니다.

걸어 다니며 급하게 식사를 하는 노조원. 고등어 신선도 유지를 위해 고강도 업무가 계속된다.
허리를 펴 볼 새도 없이 계속되는 작업은 3시간 가까이 계속됐습니다.

이윽고 새벽 1시가 좀 넘어서자 선사 측이 마련한 새참이 나왔는데요. 보온통에 담긴 국이나 국수 같은 것들이 일회용 그릇에 담겨 노조원들에게 나눠졌습니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마땅히 먹을 곳도 없어 어시장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급하게 끼니를 떼우기 바빴는데요. 심한 경우에는 걸어 다니면서 새참을 먹고, 금방 일터로 뛰어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현장 관계자는 "생선은 선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조차 가지기 어려울만큼 빠듯하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마저도 최근 야간 부녀반의 인력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 하루 물량을 처리하기 몹시 힘든 상태라고 합니다.

천 2백여 명이 하던 일을 5백여 명이 하려고 하니 일손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남성용 샤워실
일을 마쳐도 마땅히 씻을 곳조차 없습니다. 노조 사무실에 설치된 샤워장은 지하에 딸린 남성 샤워장 하나가 고작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사용한 지 오래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있고, 곰팡이도 잔뜩 슬었습니다. 거기에 바닥에는 먼지가 깔려있고, 수도꼭지는 모두 녹슬었는데요. 수십 수백 명이 사용해야 하는 샤워장이지만, 규모는 성인 남성 다섯 명 정도가 누울 수 있는 정도로 작았습니다.

결국, 노조원들은 화장실마다 작업복을 씻을 수 있게 마련된 수도 시설에서 장비만 정리한 뒤 생선 비린내를 풍기며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밤새 꼬박 8시간 일하고 받는 돈은 정식 조합원 기준 8만 8천 원. 야간수당조차 적용하지 않은 겁니다.

임시 조합원은 이보다도 적은데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지난 1월 기준 야간 부녀반 임금표. 최저임금법상 야간수당도 보장받지 못하고 일당제로 운영되고 있다.
독점적인 노무 공급권 가진 항운노조…수협과 협약으로 일당 정해

KBS 취재진은 지난 1월 야간 부녀반의 임금표를 입수했습니다. 정식 조합원 8만 4천 원 가량, 임시 조합원은 7만 2천5백 원가량을 받고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8시간 기준으로 따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최저임금 기준으로 봤을 때 밤 10시 이후 야간수당이 붙으면 최저임금은 10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하지만 일당제로 운영 되다 보니 이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건데요. 더 황당한 건 물량이 적어 새벽 3시부터 작업이 들어가는 날에는 다시 시급제로 일당을 준다는 겁니다.

이 일당은 사용주인 수협과 항운노조의 협약을 토대로 결정됩니다.

항만사업 특성상 화주와 선사가 수백 곳에 달해 현행법상 사용주를 특정하기 어려운데, 이 때문에 항운노조가 노조원을 업무에 투입하는 독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막강한 권한으로 일감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고, 이를 다시 노조원에게 나누는 일을 항운노조가 맡고 있는 것이죠.

새참 먹을 장소가 없어 구석에 모여 삼삼오오 식사하는 노조원들
■ 근로기준법 적용 어려운 항운노조원…시설 개선은 서로 '네 탓'

결국, 선사 측과 노조가 임금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도 확보하지 못한 셈입니다.

'노조원의 권리'를 최우선에 둬야 할 노조의 기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인데요, 항운노조 측은 최근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이 부분이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임금 인상이 계속 되고 있고, 안전장비 등 노조원 복지를 위한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동어시장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서는 공동어시장 측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부산공동어시장 측은 오히려 일부 개보수를 진행했지만, 시일이 지나 다시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노조의 요청이 있다면 다시 시설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는데요.

결국, 서로가 공을 넘기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조원들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노동 전문가들은 부산공동어시장의 시설 현대화 전에라도 노조원의 권익 향상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며, 항운노조가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협약에 넣었더라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산노동청도 최근 공동어시장 노조원의 이 같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임금 체계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 받고 조사에 들어갔는데요. 누구나 일한 만큼의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노조원의 권익 향상'이라는 노동조합의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는 언제쯤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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