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어르신들 ‘문화누리카드’ 사용 저조…왜?

입력 2021.10.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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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른바 문화적 소외계층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누리카드가 2006년 처음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지자체별 카드 발급률이 천차만별이고, 발급을 받더라도 이용률도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누리카드, ‘문화 격차 해소’라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쓰이고 있는 걸까요.


■ 뭐? 문화 카드? 나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

강원도 횡성에 있는 면사무소 담당자와 함께 할머니 홀로 사시는 집을 찾았습니다. 거동도 불편하신 데다, 주변에 인가도 없어 한눈에 봐도 외부 출입이 쉽지 않아 보이셨습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시지만, 이마저도 뒤늦게 알게 돼 지난해 신청해서 지원을 받고 계십니다.

이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와 차상위계층에 발급되는 문화누리카드 발급 대상자이기도 합니다.

“어머님, 혹시 문화누리카드라고 들어보셨어요? 어머님이 필요할때 쓰실 수 있는 카드에요.”
“뭐? 문화 카드? 나는 처음 들어보는데?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 그게 어디다 쓰는 건데?”


고령의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상당수는 문화누리카드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해서 경로당이나 노인대학 등 외부 활동도 하지 못하는 농촌지역의 고령자들은 ‘문화누리카드’의 존재를 알기 어렵습니다.

국가통계 포털 KOSIS를 보면,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 가운데 60에서 100세 사이 노인 인구 비율이 가장 많은 상위 5곳은 부산광역시, 강원도, 서울특별시, 전라남도, 경상북도입니다.

이 가운데 대도시 부산과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의 문화누리카드 발급률은 전국 최하위권입니다.


■ ‘문화누리카드’ 받긴 받았는데 … 잘 쓸까요?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를 위해 일부 지역에서는 방문발급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문화누리카드를 발급받으면 쉽게 잘 쓸수 있을까요?

문화누리카드를 방문해서 발급해주는 업무를 하는 공무원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어르신들께 발급은 해드리지만, 사용 방법이 익숙지 않거나 사용처가 마땅치 않아 실사용에 어려움을 겪어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 2020년 기준 전국 229곳 지자체의 문화누리카드 예산 대비 집행률은 전국 평균이 91.6%. 이 가운데 1/3이 넘는 곳이 집행률 80%대에 그쳤습니다.

그럼 한 해에 10만 원 사용이 가능한 문화누리카드 사용은 어디서 할 수 있을까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예지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 문화누리카드 가맹점 중 가장 많은 곳은 서점이었습니다. 가맹점 수가 많다 보니 도서구입에 문화누리카드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2위부터는 가맹점수와 실제사용처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많은 가맹점을 보유한 숙박시설이나 미술관 대신 실제 많이 사용되는 곳은 시외버스나 KTX 등 교통수단, 영화관과 체육용품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가맹점 수가 많은 분야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분야가 다른 겁니다.

지역의 어르신들이 숙박시설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고 농촌지역일수록 미술관 등 문화시설 기반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남는 카드 이용금액 소진… 빨리빨리!

이런 엇박자를 정부 부처에서도 모를리 없습니다. 실제 발급과 가맹점 모집, 사용 독려를 진행하는 지자체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게 바로 ‘전화 주문’입니다. 책자를 만들어 전화로 문화누리카드를 이용해 주문을 돕는 건데 이 또한 의아한 점이 많습니다.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대부분이 종이 공예품, 액자 만들기 등 DIY 키트로 고령자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품목이고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2만 원 미만도 많았지만 5만 원을 훌쩍 넘는 것들도 보였습니다. 또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일명 ‘효도라디오’로 불리는 라디오 겸용 mp3 플레이어는 6만 원이 넘어 시중가보다 싸지도 않아 선뜻 구매하기는 부담된다고 합니다.

1년에 10만 원 받는 카드를 이렇게 한 번에 사용할 수 있을까요?

문화누리카드 발급액은 이월되지 않다보니 올해 안에 다 써야합니다. 사용처가 많지 않은 곳에 사는 카드발급자일수록 연말이 다가오면 비싸고 필요 없는 물품도 구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 문화누리카드 예산 1,700억.

문화누리카드가 취지에 맞게 잘 쓰이는 지는 고민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 문화누리카드, 이제는 좀 바꿔야 할 때

그러면 문화누리카드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용 가능한 가맹점을 늘리는 것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맹점 숫자도 중요하지만 카드발급비율인 높은 고령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분야의 가맹점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마다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연장과 미술관,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당장 인프라 정비가 어렵다면 지역의 실정과 수준에 맞는 문화 관련 행사 등을 개최해 문화누리카드를 사용할 기회를 늘려야합니다.

농어촌 지역에 ‘찾아가는 공연’을 마련해 문화누리카드 사용을 유도하거나, 지자체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카드가 사용되도록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문화누리카드는 ‘문화 격차’를 완화하고자 도입된 제도입니다. 눈 먼 지원금이 아닌 도입 목적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모두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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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어촌 어르신들 ‘문화누리카드’ 사용 저조…왜?
    • 입력 2021-10-25 07:00:31
    취재K
이른바 문화적 소외계층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누리카드가 2006년 처음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지자체별 카드 발급률이 천차만별이고, 발급을 받더라도 이용률도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br />문화누리카드, ‘문화 격차 해소’라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쓰이고 있는 걸까요.

■ 뭐? 문화 카드? 나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

강원도 횡성에 있는 면사무소 담당자와 함께 할머니 홀로 사시는 집을 찾았습니다. 거동도 불편하신 데다, 주변에 인가도 없어 한눈에 봐도 외부 출입이 쉽지 않아 보이셨습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시지만, 이마저도 뒤늦게 알게 돼 지난해 신청해서 지원을 받고 계십니다.

이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와 차상위계층에 발급되는 문화누리카드 발급 대상자이기도 합니다.

“어머님, 혹시 문화누리카드라고 들어보셨어요? 어머님이 필요할때 쓰실 수 있는 카드에요.”
“뭐? 문화 카드? 나는 처음 들어보는데?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 그게 어디다 쓰는 건데?”


고령의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상당수는 문화누리카드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해서 경로당이나 노인대학 등 외부 활동도 하지 못하는 농촌지역의 고령자들은 ‘문화누리카드’의 존재를 알기 어렵습니다.

국가통계 포털 KOSIS를 보면,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 가운데 60에서 100세 사이 노인 인구 비율이 가장 많은 상위 5곳은 부산광역시, 강원도, 서울특별시, 전라남도, 경상북도입니다.

이 가운데 대도시 부산과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의 문화누리카드 발급률은 전국 최하위권입니다.


■ ‘문화누리카드’ 받긴 받았는데 … 잘 쓸까요?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를 위해 일부 지역에서는 방문발급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문화누리카드를 발급받으면 쉽게 잘 쓸수 있을까요?

문화누리카드를 방문해서 발급해주는 업무를 하는 공무원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어르신들께 발급은 해드리지만, 사용 방법이 익숙지 않거나 사용처가 마땅치 않아 실사용에 어려움을 겪어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 2020년 기준 전국 229곳 지자체의 문화누리카드 예산 대비 집행률은 전국 평균이 91.6%. 이 가운데 1/3이 넘는 곳이 집행률 80%대에 그쳤습니다.

그럼 한 해에 10만 원 사용이 가능한 문화누리카드 사용은 어디서 할 수 있을까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예지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 문화누리카드 가맹점 중 가장 많은 곳은 서점이었습니다. 가맹점 수가 많다 보니 도서구입에 문화누리카드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2위부터는 가맹점수와 실제사용처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많은 가맹점을 보유한 숙박시설이나 미술관 대신 실제 많이 사용되는 곳은 시외버스나 KTX 등 교통수단, 영화관과 체육용품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가맹점 수가 많은 분야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분야가 다른 겁니다.

지역의 어르신들이 숙박시설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고 농촌지역일수록 미술관 등 문화시설 기반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남는 카드 이용금액 소진… 빨리빨리!

이런 엇박자를 정부 부처에서도 모를리 없습니다. 실제 발급과 가맹점 모집, 사용 독려를 진행하는 지자체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게 바로 ‘전화 주문’입니다. 책자를 만들어 전화로 문화누리카드를 이용해 주문을 돕는 건데 이 또한 의아한 점이 많습니다.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대부분이 종이 공예품, 액자 만들기 등 DIY 키트로 고령자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품목이고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2만 원 미만도 많았지만 5만 원을 훌쩍 넘는 것들도 보였습니다. 또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일명 ‘효도라디오’로 불리는 라디오 겸용 mp3 플레이어는 6만 원이 넘어 시중가보다 싸지도 않아 선뜻 구매하기는 부담된다고 합니다.

1년에 10만 원 받는 카드를 이렇게 한 번에 사용할 수 있을까요?

문화누리카드 발급액은 이월되지 않다보니 올해 안에 다 써야합니다. 사용처가 많지 않은 곳에 사는 카드발급자일수록 연말이 다가오면 비싸고 필요 없는 물품도 구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 문화누리카드 예산 1,700억.

문화누리카드가 취지에 맞게 잘 쓰이는 지는 고민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 문화누리카드, 이제는 좀 바꿔야 할 때

그러면 문화누리카드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용 가능한 가맹점을 늘리는 것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맹점 숫자도 중요하지만 카드발급비율인 높은 고령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분야의 가맹점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마다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연장과 미술관,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당장 인프라 정비가 어렵다면 지역의 실정과 수준에 맞는 문화 관련 행사 등을 개최해 문화누리카드를 사용할 기회를 늘려야합니다.

농어촌 지역에 ‘찾아가는 공연’을 마련해 문화누리카드 사용을 유도하거나, 지자체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카드가 사용되도록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문화누리카드는 ‘문화 격차’를 완화하고자 도입된 제도입니다. 눈 먼 지원금이 아닌 도입 목적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모두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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