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김구 서명문·진관사’ 태극기 3점, 나란히 보물 지정

입력 2021.10.25 (10:05) 수정 2021.10.2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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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역사적 의미가 큰 태극기 유물 3점이 나란히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됐습니다.

새로 보물이 된 태극기는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로,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되기는 처음입니다.

현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태극기 약 20점인데, 이번에 보물이 된 태극기 3점은 비교적 제작 시기가 이르고 제작 배경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데니 태극기는 현존 태극기 중에 가장 오래됐고, 가로 262㎝·세로 182.5㎝로 옛 태극기 가운데 가장 큽니다.

이 태극기는 1886년 조선 정부의 외교·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했다가 1891년 1월 조선을 떠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 소장품이었습니다. 고종이 1890년쯤 데니에게 하사했다고 전하며, 데니 후손이 1981년 우리나라에 기증했습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 주석이 1941년 3월 16일 중국에서 글을 적어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미우스)에게 준 것입니다. 김구는 태극기에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고 쓰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긴 작은 도장을 찍었습니다.

매우사 신부는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에게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해 오다 ‘안창호 유품’ 중 일부로 1985년 3월 독립기념관에 기증했습니다.

서울시 은평구 북한산 진관사에 있는 태극기는 2009년 5월 사찰 부속 건물인 칠성각 보수 공사 중에 불단 안쪽 벽체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 태극기입니다.

발견 당시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등 독립신문류 5종 19점이 태극기 안에서 확인됐는데, 신문 발행 시점이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 사이여서 태극기도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불에 타 손상된 흔적과 구멍이 곳곳에 있어 3·1 운동이나 이후 독립운동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됐습니다. 또 일장기 위에 태극의 청색 부분과 사괘를 먹으로 덧칠해 만든 점이 특징으로,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한 사례여서 항일운동사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보물로 지정한 태극기 3점은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 열망을 지켜내려는 염원을 담은 문화재이자 국기 제작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근대사의 대표 유물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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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니·김구 서명문·진관사’ 태극기 3점, 나란히 보물 지정
    • 입력 2021-10-25 10:05:30
    • 수정2021-10-25 10:09:36
    문화
한국인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역사적 의미가 큰 태극기 유물 3점이 나란히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됐습니다.

새로 보물이 된 태극기는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로,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되기는 처음입니다.

현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태극기 약 20점인데, 이번에 보물이 된 태극기 3점은 비교적 제작 시기가 이르고 제작 배경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데니 태극기는 현존 태극기 중에 가장 오래됐고, 가로 262㎝·세로 182.5㎝로 옛 태극기 가운데 가장 큽니다.

이 태극기는 1886년 조선 정부의 외교·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했다가 1891년 1월 조선을 떠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 소장품이었습니다. 고종이 1890년쯤 데니에게 하사했다고 전하며, 데니 후손이 1981년 우리나라에 기증했습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 주석이 1941년 3월 16일 중국에서 글을 적어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미우스)에게 준 것입니다. 김구는 태극기에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고 쓰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긴 작은 도장을 찍었습니다.

매우사 신부는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에게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해 오다 ‘안창호 유품’ 중 일부로 1985년 3월 독립기념관에 기증했습니다.

서울시 은평구 북한산 진관사에 있는 태극기는 2009년 5월 사찰 부속 건물인 칠성각 보수 공사 중에 불단 안쪽 벽체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 태극기입니다.

발견 당시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등 독립신문류 5종 19점이 태극기 안에서 확인됐는데, 신문 발행 시점이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 사이여서 태극기도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불에 타 손상된 흔적과 구멍이 곳곳에 있어 3·1 운동이나 이후 독립운동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됐습니다. 또 일장기 위에 태극의 청색 부분과 사괘를 먹으로 덧칠해 만든 점이 특징으로,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한 사례여서 항일운동사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보물로 지정한 태극기 3점은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 열망을 지켜내려는 염원을 담은 문화재이자 국기 제작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근대사의 대표 유물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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