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유엔과 싸운 중국의 ‘유엔 가입 50주년’…복귀 벼르는 타이완

입력 2021.10.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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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1971년 10월 25일 표 대결을 통해 유엔에 가입하고 타이완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중국은 1971년 10월 25일 표 대결을 통해 유엔에 가입하고 타이완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중국 인민의 승리이자 세계 각국 인민의 승리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5일, 50주년을 맞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을 이같이 평가했습니다. '중국의 유엔 합법 지위 회복 50주년 기념회의'에서 한 발언입니다. 회의의 이름은 중국이 1971년 유엔 가입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 중국, 유엔 가입 50주년 자축…"중국 인민의 승리"

시 주석이 회의에서 '패권주의 반대' 등을 거론한 것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한 견제로 해석됩니다.

중국은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미국에 맞서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중국은 유엔 가입의 역사를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50년 전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한 중국 대표'로 유엔에 가입하고 중화민국(타이완)을 축출한 상황은 이를 반대하던 미국의 유엔 외교에 타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중국 관영 CCTV는 중국의 유엔 가입 50주년을 맞아 인터뷰 프로그램 등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해 방송했다.중국 관영 CCTV는 중국의 유엔 가입 50주년을 맞아 인터뷰 프로그램 등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해 방송했다.

그래서인지 중국 관영 매체는 시 주석이 주재한 유엔 가입 5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관영 CCTV의 경우 50년 전 유엔 가입의 의미를 담은 인터뷰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중국과 유엔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엔이 창설된 1945년만해도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유엔 헌장에 처음 서명한 51개국 가운데 하나이자 5대 상임이사국을 차지했습니다.

1949년 장제스 세력이 마오쩌둥의 공산당 군대에 밀려 타이완으로 패퇴한 뒤에도 대륙을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의 반대로 유엔에 가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유엔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유엔 창설 당시 4석에 불과하던 아프리카 국가가 1960년 26석으로 늘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중화인민공화국의 가입을 지지했습니다. 1965년 유엔 총회에서는 '중국 문제'를 다루자는 표결이 47 대 47 동수 부결되기도 했습니다.

■ 중국, 1971년 표 대결 끝에 유엔 진출…타이완 축출

결국 1971년 10월 25일(한국 시각 10월 26일) 중화인민공화국의 가입과 중화민국(타이완)의 축출을 담은 유엔 총회 결의 2758호는 찬성 76, 반대 35, 기권 17표로 통과됩니다.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던 아버지 부시가 미국을 대표해 타이완의 축출은 제외하는 '이중 대표' 방안을 추진했지만 무위로 끝났습니다. 부시는 미국과 중국이 '핑퐁외교'로 데탕트 시대를 연뒤 1973년부터 75년까지 사실상의 주중 미국대사인 초대 베이징 주재 연락사무소 소장을 맡아 중국과의 인연을 이어 갑니다.

주중 연락사무소 소장을 일하던 당시의 ‘아버지 부시’ 부부가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 (출처=바이두)주중 연락사무소 소장을 일하던 당시의 ‘아버지 부시’ 부부가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 (출처=바이두)

사실 중국의 유엔 가입은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에 맞서 싸웠던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고 그것도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유엔 관리하에 선거를 치러 탄생하고 유엔군이 피로 지킨 대한민국은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고도 20년이나 지나서야 북한과 동시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1992년 캄보디아에 공정부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유엔군과 싸웠던 나라가 유엔군으로 파병되는 변화가 40여년만에 이뤄진 것입니다. 중국은 이제 유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평화유지군 활동을 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타이완의 입장은 어떨까요? 1971년 미국이 '이중 대표'라는 대안을 마련했을 때 타이완은 뜻밖에도 부정적 태도였습니다. 장제스의 부인이자 국제무대에서 국민당 정부를 대표해 활발하게 활동하던 쑹메이링이 "차라리 옥쇄를 택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타이완, 1991년 이후 유엔 가입 신청…중국 반대에 좌절

유엔 탈퇴 후 절치부심하던 타이완은 20년이 흐른 1991년 유엔에 가입 신청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결의 2758호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총회 안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타이완은 2000년대 들어서도 국명을 '타이완'으로 바꿔 가입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타이완의 유엔 가입은 곧 '독립'입니다.

타이완은 유엔에서 축출된지 50주년이 된 올해도 외무부 주도로 유엔 재가입을 추진했습니다. 타이완은 2350만 타이완인이 국제기구에서 부당하게 배제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타이완의 15개 외교 동맹국(수교국) 가운데 14곳이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보낸 공동 서한과 토론회 등을 통해 타이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은 2019년 뉴욕 유엔본부에서 당시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던 17개국 유엔 주재 대사들과 만나 지지를 요청했다.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는 최근 몇 년 새 줄어들고 있다.차이잉원 타이완 총통은 2019년 뉴욕 유엔본부에서 당시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던 17개국 유엔 주재 대사들과 만나 지지를 요청했다.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는 최근 몇 년 새 줄어들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중국이라는 큰 벽에 막혀 현실적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엔 회원국 가입과는 다른 경로의 도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이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10월 22일 타이완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재타이완협회와 미국에서 타이완을 대표하는 타이완경제문화대표부가 양국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 포럼을 열었습니다.

미국측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세계보건기구와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타이완이 의미있는 참여를 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타이완 외무부도 미국의 굳건한 지지에 감사의 뜻을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습니다. 중국이 유엔 가입 50주년이라는 의미있는 기념식을 갖기 직전, 미국과 타이완이 보란듯 고위급 회의를 열며 자극한 모양새입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타이완이 미국의 대중 견제 카드로 무게를 더해가는 국제적 동향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타이완 방어'를 언급하고 중국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타이완 문제는 미중 갈등의 파고가 높아질 수록 더욱 주목받는 양상입니다.

■ '유엔 가입'은 국제 정세 반영

중국의 유엔 가입 50주년을 돌이켜보면 몇가지 의미있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선 중국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 3세계 외교에 왜 그리 공을 들이는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50년 전 중국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밀어올린 현실적 힘은 바로 유엔에 진출한 신생 아프리카 국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숫자'가 곧 힘이었습니다.

2020년 6월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 중국은 1956년 이집트와의 수교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중국은 아프리카 최대 채권국이다.2020년 6월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 중국은 1956년 이집트와의 수교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중국은 아프리카 최대 채권국이다.

중국은 지금도 이른바 '일대일로' 정책 등을 추진하며 아프리카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제기구 수장으로도 자국에 우호적인 아프리카 출신 인사들을 적극 밀고 있습니다. 친중 논란이 잦은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도 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출신입니다.

또하나, 유엔의 변화는 격동하는 국제 정세를 반영합니다. 중국이 유엔에 가입한 1971년은 미국의 키신저가 중국을 비밀 방문한 해입니다. 키신저의 방중은 이후 데탕트와 미중 수교로 이어졌습니다. 즉 중국의 유엔 가입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미중 데탕트의 마중물 역할을 한 측면이 있습니다.

19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은 늘 소련의 거부권에 가로막혔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지자 한국의 유엔 가입은 기정사실화됐고 고립을 우려한 북한도 함께 유엔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의 유엔 가입은 이듬해 한중 수교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도 했습니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국제 정세에 가장 큰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이어 아프가니스탄 철수의 명분, 쿼드·오커스 등 신생 안보협의체의 출범으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에 맞서 러시아의 잇단 연합 군사훈련, 타이완에 대한 군사적 압박 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역내 긴장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다시 거론되는 타이완의 유엔 가입 논의는 그 현실성을 떠나 국제적 관심의 촛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가늠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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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유엔과 싸운 중국의 ‘유엔 가입 50주년’…복귀 벼르는 타이완
    • 입력 2021-10-26 07:00:59
    특파원 리포트
중국은 1971년 10월 25일 표 대결을 통해 유엔에 가입하고 타이완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중국 인민의 승리이자 세계 각국 인민의 승리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5일, 50주년을 맞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을 이같이 평가했습니다. '중국의 유엔 합법 지위 회복 50주년 기념회의'에서 한 발언입니다. 회의의 이름은 중국이 1971년 유엔 가입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 중국, 유엔 가입 50주년 자축…"중국 인민의 승리"

시 주석이 회의에서 '패권주의 반대' 등을 거론한 것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한 견제로 해석됩니다.

중국은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미국에 맞서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중국은 유엔 가입의 역사를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50년 전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한 중국 대표'로 유엔에 가입하고 중화민국(타이완)을 축출한 상황은 이를 반대하던 미국의 유엔 외교에 타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중국 관영 CCTV는 중국의 유엔 가입 50주년을 맞아 인터뷰 프로그램 등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해 방송했다.
그래서인지 중국 관영 매체는 시 주석이 주재한 유엔 가입 5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관영 CCTV의 경우 50년 전 유엔 가입의 의미를 담은 인터뷰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중국과 유엔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엔이 창설된 1945년만해도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유엔 헌장에 처음 서명한 51개국 가운데 하나이자 5대 상임이사국을 차지했습니다.

1949년 장제스 세력이 마오쩌둥의 공산당 군대에 밀려 타이완으로 패퇴한 뒤에도 대륙을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의 반대로 유엔에 가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유엔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유엔 창설 당시 4석에 불과하던 아프리카 국가가 1960년 26석으로 늘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중화인민공화국의 가입을 지지했습니다. 1965년 유엔 총회에서는 '중국 문제'를 다루자는 표결이 47 대 47 동수 부결되기도 했습니다.

■ 중국, 1971년 표 대결 끝에 유엔 진출…타이완 축출

결국 1971년 10월 25일(한국 시각 10월 26일) 중화인민공화국의 가입과 중화민국(타이완)의 축출을 담은 유엔 총회 결의 2758호는 찬성 76, 반대 35, 기권 17표로 통과됩니다.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던 아버지 부시가 미국을 대표해 타이완의 축출은 제외하는 '이중 대표' 방안을 추진했지만 무위로 끝났습니다. 부시는 미국과 중국이 '핑퐁외교'로 데탕트 시대를 연뒤 1973년부터 75년까지 사실상의 주중 미국대사인 초대 베이징 주재 연락사무소 소장을 맡아 중국과의 인연을 이어 갑니다.

주중 연락사무소 소장을 일하던 당시의 ‘아버지 부시’ 부부가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 (출처=바이두)
사실 중국의 유엔 가입은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에 맞서 싸웠던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고 그것도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유엔 관리하에 선거를 치러 탄생하고 유엔군이 피로 지킨 대한민국은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고도 20년이나 지나서야 북한과 동시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1992년 캄보디아에 공정부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유엔군과 싸웠던 나라가 유엔군으로 파병되는 변화가 40여년만에 이뤄진 것입니다. 중국은 이제 유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평화유지군 활동을 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타이완의 입장은 어떨까요? 1971년 미국이 '이중 대표'라는 대안을 마련했을 때 타이완은 뜻밖에도 부정적 태도였습니다. 장제스의 부인이자 국제무대에서 국민당 정부를 대표해 활발하게 활동하던 쑹메이링이 "차라리 옥쇄를 택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타이완, 1991년 이후 유엔 가입 신청…중국 반대에 좌절

유엔 탈퇴 후 절치부심하던 타이완은 20년이 흐른 1991년 유엔에 가입 신청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결의 2758호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총회 안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타이완은 2000년대 들어서도 국명을 '타이완'으로 바꿔 가입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타이완의 유엔 가입은 곧 '독립'입니다.

타이완은 유엔에서 축출된지 50주년이 된 올해도 외무부 주도로 유엔 재가입을 추진했습니다. 타이완은 2350만 타이완인이 국제기구에서 부당하게 배제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타이완의 15개 외교 동맹국(수교국) 가운데 14곳이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보낸 공동 서한과 토론회 등을 통해 타이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은 2019년 뉴욕 유엔본부에서 당시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던 17개국 유엔 주재 대사들과 만나 지지를 요청했다.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는 최근 몇 년 새 줄어들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중국이라는 큰 벽에 막혀 현실적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엔 회원국 가입과는 다른 경로의 도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이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10월 22일 타이완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재타이완협회와 미국에서 타이완을 대표하는 타이완경제문화대표부가 양국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 포럼을 열었습니다.

미국측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세계보건기구와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타이완이 의미있는 참여를 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타이완 외무부도 미국의 굳건한 지지에 감사의 뜻을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습니다. 중국이 유엔 가입 50주년이라는 의미있는 기념식을 갖기 직전, 미국과 타이완이 보란듯 고위급 회의를 열며 자극한 모양새입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타이완이 미국의 대중 견제 카드로 무게를 더해가는 국제적 동향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타이완 방어'를 언급하고 중국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타이완 문제는 미중 갈등의 파고가 높아질 수록 더욱 주목받는 양상입니다.

■ '유엔 가입'은 국제 정세 반영

중국의 유엔 가입 50주년을 돌이켜보면 몇가지 의미있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선 중국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 3세계 외교에 왜 그리 공을 들이는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50년 전 중국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밀어올린 현실적 힘은 바로 유엔에 진출한 신생 아프리카 국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숫자'가 곧 힘이었습니다.

2020년 6월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 중국은 1956년 이집트와의 수교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중국은 아프리카 최대 채권국이다.
중국은 지금도 이른바 '일대일로' 정책 등을 추진하며 아프리카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제기구 수장으로도 자국에 우호적인 아프리카 출신 인사들을 적극 밀고 있습니다. 친중 논란이 잦은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도 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출신입니다.

또하나, 유엔의 변화는 격동하는 국제 정세를 반영합니다. 중국이 유엔에 가입한 1971년은 미국의 키신저가 중국을 비밀 방문한 해입니다. 키신저의 방중은 이후 데탕트와 미중 수교로 이어졌습니다. 즉 중국의 유엔 가입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미중 데탕트의 마중물 역할을 한 측면이 있습니다.

19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은 늘 소련의 거부권에 가로막혔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지자 한국의 유엔 가입은 기정사실화됐고 고립을 우려한 북한도 함께 유엔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의 유엔 가입은 이듬해 한중 수교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도 했습니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국제 정세에 가장 큰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이어 아프가니스탄 철수의 명분, 쿼드·오커스 등 신생 안보협의체의 출범으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에 맞서 러시아의 잇단 연합 군사훈련, 타이완에 대한 군사적 압박 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역내 긴장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다시 거론되는 타이완의 유엔 가입 논의는 그 현실성을 떠나 국제적 관심의 촛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가늠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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