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반일’하면 표적? “日우익의 ‘역사지우기’ 방식”

입력 2021.10.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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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국에서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받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렸던 전직 기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표적'입니다.

일본의 부끄러운 역사를 들춰냈다는 이유로 혹독한 대가를 치룬 우에무라 다카시 씨. 영화는 그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차분한 어조로 보여줍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대작품으로 선정된 영화 ‘표적’ 포스터부산국제영화제 초대작품으로 선정된 영화 ‘표적’ 포스터

극우논객들의 '날조기자'라는 음해, 집과 일터로 날아드는 협박장, 딸 살해 협박까지….

우에무라 씨가 일본군 위안부 기사를 쓴 뒤 고통받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니시지마 신지 감독은 그에게 다시 한 번 주목했고, 4년에 걸쳐 다큐를 완성했습니다.

니시지마 신지. 영화 ‘표적’ 감독니시지마 신지. 영화 ‘표적’ 감독

■ '표적'이 된 언론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뒤 일본으로 돌아와 격리 중인 니시지마 감독을 화상으로 인터뷰했습니다. 먼저 다큐 제작에 나서게 된 계기를 물었습니다.

저 말고도 일본의 여러 언론이 (당시에) 같은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사히 신문사만을 표적으로 한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그게 너무 이상했습니다. 20년도 더 된 기사를 날조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데 특정 언론을 노린 공격이라는 점에서 이대로라면 일본의 저널리즘이 위험해지겠다는 생각에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우에무라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30년 전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으로 세상에 들춰냈습니다. 일본의 다른 언론들도 우에무라 씨의 기사를 따라서 보도할 수밖에 없는 의미있는 특종 기사였습니다.

당시 일본 민영방송사의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니시지마 감독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를 즉각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사히신문 해당 기사가 '날조 기사'라는 비난과 음해가 시작된 겁니다.

우에무라 씨가 자신에게 온 협박장(엽서)을 읽고 있다. 영화 ‘표적’ 캡처우에무라 씨가 자신에게 온 협박장(엽서)을 읽고 있다. 영화 ‘표적’ 캡처

"너는 일본인의 치욕이다. 사상 최악의 신문기자가 날조기사를 쓰고 일본의 명예를 훼손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

일본 내 발행부수 2위인 아사히신문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우익 성향이 강한 일본 정부와는 날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니시지마 감독은 아사히신문과 우에무라 씨가 '표적'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 '역사 지우기' 흐름 만든 건 일본 정부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역사 수정주의, 과거의 역사를 지우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우경화를 부채질한 정치 권력이 있습니다.

우에무라 씨를 향한 ‘날조기사’ 비방에 앞장 섰던 대표적 극우논객 사쿠라이 요시코우에무라 씨를 향한 ‘날조기사’ 비방에 앞장 섰던 대표적 극우논객 사쿠라이 요시코

우에무라 씨를 향한 공격이 시작된 건 2014년입니다. 당시 일본의 총리는 아베 신조였습니다.

아베의 생각이 드러나는 발언도 영화에 등장합니다. 영화는 비방과 음해를 선동하고 조장한 건 마치 정치권력에 다름 아니었다는 얘기를 하는 듯합니다.

아사히신문 기사에 대해 발언하는 아베 전 총리. 영화 ‘표적’ 캡처아사히신문 기사에 대해 발언하는 아베 전 총리. 영화 ‘표적’ 캡처

"원래대로라면 개별적인 보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이 (아사히신문의) 오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큰 상처를 받았고 괴로워했고, 분노를 느꼈던 게 사실입니다. 방금 의원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일본의 명예는 크게 훼손됐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성노예를 강요했다는 중상이 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반일 꼬리표' 붙여 언론 길들이기

일본의 언론은 그렇게 길들여졌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언론 보도는 찾아보기 힘든 게 일본의 현실입니다.

'일본'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쓰는 건 우에무라 씨처럼 거대한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는 '위험한 일'이라는 걸 일본의 언론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위안부라는 불리한 역사는 일본에서는 없애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기사를 쓰는 신문사, 방송국 등 언론에는 '반일'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구분합니다. 국가가 주도해서 이런 풍조를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말해도 반일 꼬리표가 붙습니다.

역사, 진실을 조사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고, 국가의 정책이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게 언론의 역할 아닐까요? 이대로라면 보도를 조정해서 여론을 유도하고, 위축시켜서 정치권력에 유리한 내용만을 언론이 보도하게 돼 그들의 의도대로 될 것입니다.


니시지마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일본 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반일 꼬리표'를 붙이는 사회는 끝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니시지마 신지,  영화 ‘표적’ 감독니시지마 신지, 영화 ‘표적’ 감독

또 불행한 역사라고 해도 그것을 올바르게 전하려는 움직임이 일본에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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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반일’하면 표적? “日우익의 ‘역사지우기’ 방식”
    • 입력 2021-10-26 07:00:59
    특파원 리포트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국에서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받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렸던 전직 기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표적'입니다.

일본의 부끄러운 역사를 들춰냈다는 이유로 혹독한 대가를 치룬 우에무라 다카시 씨. 영화는 그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차분한 어조로 보여줍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대작품으로 선정된 영화 ‘표적’ 포스터
극우논객들의 '날조기자'라는 음해, 집과 일터로 날아드는 협박장, 딸 살해 협박까지….

우에무라 씨가 일본군 위안부 기사를 쓴 뒤 고통받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니시지마 신지 감독은 그에게 다시 한 번 주목했고, 4년에 걸쳐 다큐를 완성했습니다.

니시지마 신지. 영화 ‘표적’ 감독
■ '표적'이 된 언론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뒤 일본으로 돌아와 격리 중인 니시지마 감독을 화상으로 인터뷰했습니다. 먼저 다큐 제작에 나서게 된 계기를 물었습니다.

저 말고도 일본의 여러 언론이 (당시에) 같은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사히 신문사만을 표적으로 한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그게 너무 이상했습니다. 20년도 더 된 기사를 날조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데 특정 언론을 노린 공격이라는 점에서 이대로라면 일본의 저널리즘이 위험해지겠다는 생각에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우에무라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30년 전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으로 세상에 들춰냈습니다. 일본의 다른 언론들도 우에무라 씨의 기사를 따라서 보도할 수밖에 없는 의미있는 특종 기사였습니다.

당시 일본 민영방송사의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니시지마 감독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를 즉각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사히신문 해당 기사가 '날조 기사'라는 비난과 음해가 시작된 겁니다.

우에무라 씨가 자신에게 온 협박장(엽서)을 읽고 있다. 영화 ‘표적’ 캡처
"너는 일본인의 치욕이다. 사상 최악의 신문기자가 날조기사를 쓰고 일본의 명예를 훼손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

일본 내 발행부수 2위인 아사히신문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우익 성향이 강한 일본 정부와는 날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니시지마 감독은 아사히신문과 우에무라 씨가 '표적'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 '역사 지우기' 흐름 만든 건 일본 정부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역사 수정주의, 과거의 역사를 지우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우경화를 부채질한 정치 권력이 있습니다.

우에무라 씨를 향한 ‘날조기사’ 비방에 앞장 섰던 대표적 극우논객 사쿠라이 요시코
우에무라 씨를 향한 공격이 시작된 건 2014년입니다. 당시 일본의 총리는 아베 신조였습니다.

아베의 생각이 드러나는 발언도 영화에 등장합니다. 영화는 비방과 음해를 선동하고 조장한 건 마치 정치권력에 다름 아니었다는 얘기를 하는 듯합니다.

아사히신문 기사에 대해 발언하는 아베 전 총리. 영화 ‘표적’ 캡처
"원래대로라면 개별적인 보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이 (아사히신문의) 오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큰 상처를 받았고 괴로워했고, 분노를 느꼈던 게 사실입니다. 방금 의원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일본의 명예는 크게 훼손됐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성노예를 강요했다는 중상이 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반일 꼬리표' 붙여 언론 길들이기

일본의 언론은 그렇게 길들여졌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언론 보도는 찾아보기 힘든 게 일본의 현실입니다.

'일본'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쓰는 건 우에무라 씨처럼 거대한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는 '위험한 일'이라는 걸 일본의 언론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위안부라는 불리한 역사는 일본에서는 없애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기사를 쓰는 신문사, 방송국 등 언론에는 '반일'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구분합니다. 국가가 주도해서 이런 풍조를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말해도 반일 꼬리표가 붙습니다.

역사, 진실을 조사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고, 국가의 정책이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게 언론의 역할 아닐까요? 이대로라면 보도를 조정해서 여론을 유도하고, 위축시켜서 정치권력에 유리한 내용만을 언론이 보도하게 돼 그들의 의도대로 될 것입니다.


니시지마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일본 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반일 꼬리표'를 붙이는 사회는 끝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니시지마 신지,  영화 ‘표적’ 감독
또 불행한 역사라고 해도 그것을 올바르게 전하려는 움직임이 일본에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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