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올해도 ‘귀무덤’ 찾는 日 전직 외교관…“알면 일본인 누구나 사죄할 것”

입력 2021.10.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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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도쿄 시내 아카사카에서 KBS 등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과 만난 아마키 나오토 전 레바논 주재 일본대사.          KBS25일 도쿄 시내 아카사카에서 KBS 등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과 만난 아마키 나오토 전 레바논 주재 일본대사. KBS

"일본인은 거의 대부분 '귀무덤'에 대해 모릅니다. 심지어 외교관인 저조차도 몰랐으니까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마음으로는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

25일 오후 일본 도쿄 시내 아카사카에서 KBS 등 한국 언론사 도쿄특파원들과 만난 아마키 나오토(天木直人·74·사진) 전 레바논 주재 일본대사는 다음 달 8일 일본 혼슈 서부 오카야마현에 있는 귀무덤(耳鼻塚)에서 조선인 희생자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낼 계획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2019년 12월 '교토 평화 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이듬해인 2020년 10월 처음으로 일본인 손에 의한 귀무덤 위령제를 교토에서 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1년 만에 다시, 이번엔 봉분도 없이 간판 하나만 덜렁 꽂혀 있는 오카야마 귀무덤을 찾아 위령하기로 한 것입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조선인 이비총(耳鼻塚).                                                       2012년 1월  24일 방송 KBS 뉴스9 화면 갈무리일본 교토에 있는 조선인 이비총(耳鼻塚). 2012년 1월 24일 방송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일본 내 귀무덤 최소 5곳"

400여 년 전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 명령을 받아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 무참히 베어 전리품으로 가져갔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죠.

이렇게 가져간 신체 일부를 묻어 놓은 곳이 바로 귀·코 무덤으로 부르는 '이비총(耳鼻塚)'입니다.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천년고도' 교토 한복판에 있는 귀무덤이 가장 규모가 큰 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고 있는 도요쿠니 신사와 매우 가깝습니다.

이런 귀무덤은 교토를 포함해 오카야마(2곳)·쓰시마·후쿠오카 등 파악된 곳만 5곳으로, 조선인 12만 6천여 명의 귀 또는 코가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키 전 대사가 다음 달 8일 위령제를 지내기로 한 오카야마의 귀무덤은 앞서 2012년 1월 KBS 9시뉴스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는데요.

당시 KBS는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의 제보를 받고,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의 한 허름한 주택 옆에 울타리도 없이 방치돼 있던 귀무덤을 취재했습니다. 귀무덤 현장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상태였는데 취재 영상 속에 보이는 것처럼 흰색 낡은 간판만이 '이곳이 바로 그 귀무덤'이란 것을 알려줄 뿐이었습니다.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 허름한 주택 옆에 울타리도 없이 방치돼 있는 조선인 귀무덤.             2012년 1월 24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 허름한 주택 옆에 울타리도 없이 방치돼 있는 조선인 귀무덤. 2012년 1월 24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前 일왕 방한, 한일 관계 푸는 계기 될 수도…"

아마키 전 대사는 1969년부터 2003년까지 외무성에서 34년간 근무한 정통 외교관입니다. 전직 외교관인 그가 40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요.

그는 "역사를 올바르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과거 잘못에 대해 사죄하고 희생자를 기려 한일 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것이 이번 위령제의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수교 이래 최악으로 평가되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자신도 30년 넘게 외교관 생활을 했지만 지금 같은 외교는 처음 본다고도 했습니다.

강제징용 문제 등을 놓고 아베·스가에 이어 기시다 정부까지 '국제법을 어긴 한국이 해결책을 내라. 공은 한국에 있다'고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는 특파원들에게 한국 측이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을 한국에 초대해 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의 방한이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말이죠.

아키히토 전 일왕은 재임 당시 수차례 반복해서 일본의 과거 침략 사실에 대해 사과했고 한국 방문 의사를 밝힌 적도 있습니다.

3년 전 일왕 자리를 아들인 나루히토(德仁) 일왕에게 물려주고 퇴임했지만, 지금도 일본 국민에게 높은 신뢰를 주고 있는 그가 방한하게 되면 그 자체가 일본이 한국에 사죄하는 의미를 가질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2006년 8월 전남 진도군 왜덕산을 찾은 일본 수군 후손들과 대학생 20여 명이 제사를 지내고 진도 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2006년 8월 16일 KBS뉴스광장 화면 갈무리2006년 8월 전남 진도군 왜덕산을 찾은 일본 수군 후손들과 대학생 20여 명이 제사를 지내고 진도 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2006년 8월 16일 KBS뉴스광장 화면 갈무리

■ "진도 '왜군 무덤' 위령 또한 의미 있을 것"

아마키 전 대사는 대화 도중 개인적인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 한국과 일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내년쯤 전남 진도에 있는 일본 수군 무덤에 위령하러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진도에는 정유재란 당시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에 몰살당한 왜군들의 시신 백여 구가 떠내려와 진도 백성들이 거둬 장사 지내준 것으로 준 묘지가 있습니다. 왜군에게 덕을 베풀었다고 하는 의미의 '왜덕산'이 바로 그 곳인데요.

비록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적군(왜군)이지만 되레 넋을 위로해 줬다는 점에서, 왜덕산은 귀무덤과는 정반대의 취지와 의미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사실이 2000년대 들어 알려지면서 2006년 일본 수군의 후손들이 이곳을 찾아 4백 년 만에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아마키 전 대사는 "(많은 일본인들이) 진도에서 위령을 하게 된다면 과거 불행했던 역사를 극복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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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올해도 ‘귀무덤’ 찾는 日 전직 외교관…“알면 일본인 누구나 사죄할 것”
    • 입력 2021-10-26 14:45:18
    특파원 리포트
25일 도쿄 시내 아카사카에서 KBS 등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과 만난 아마키 나오토 전 레바논 주재 일본대사.          KBS
"일본인은 거의 대부분 '귀무덤'에 대해 모릅니다. 심지어 외교관인 저조차도 몰랐으니까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마음으로는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

25일 오후 일본 도쿄 시내 아카사카에서 KBS 등 한국 언론사 도쿄특파원들과 만난 아마키 나오토(天木直人·74·사진) 전 레바논 주재 일본대사는 다음 달 8일 일본 혼슈 서부 오카야마현에 있는 귀무덤(耳鼻塚)에서 조선인 희생자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낼 계획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2019년 12월 '교토 평화 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이듬해인 2020년 10월 처음으로 일본인 손에 의한 귀무덤 위령제를 교토에서 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1년 만에 다시, 이번엔 봉분도 없이 간판 하나만 덜렁 꽂혀 있는 오카야마 귀무덤을 찾아 위령하기로 한 것입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조선인 이비총(耳鼻塚).                                                       2012년 1월  24일 방송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일본 내 귀무덤 최소 5곳"

400여 년 전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 명령을 받아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 무참히 베어 전리품으로 가져갔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죠.

이렇게 가져간 신체 일부를 묻어 놓은 곳이 바로 귀·코 무덤으로 부르는 '이비총(耳鼻塚)'입니다.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천년고도' 교토 한복판에 있는 귀무덤이 가장 규모가 큰 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고 있는 도요쿠니 신사와 매우 가깝습니다.

이런 귀무덤은 교토를 포함해 오카야마(2곳)·쓰시마·후쿠오카 등 파악된 곳만 5곳으로, 조선인 12만 6천여 명의 귀 또는 코가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키 전 대사가 다음 달 8일 위령제를 지내기로 한 오카야마의 귀무덤은 앞서 2012년 1월 KBS 9시뉴스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는데요.

당시 KBS는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의 제보를 받고,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의 한 허름한 주택 옆에 울타리도 없이 방치돼 있던 귀무덤을 취재했습니다. 귀무덤 현장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상태였는데 취재 영상 속에 보이는 것처럼 흰색 낡은 간판만이 '이곳이 바로 그 귀무덤'이란 것을 알려줄 뿐이었습니다.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 허름한 주택 옆에 울타리도 없이 방치돼 있는 조선인 귀무덤.             2012년 1월 24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前 일왕 방한, 한일 관계 푸는 계기 될 수도…"

아마키 전 대사는 1969년부터 2003년까지 외무성에서 34년간 근무한 정통 외교관입니다. 전직 외교관인 그가 40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요.

그는 "역사를 올바르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과거 잘못에 대해 사죄하고 희생자를 기려 한일 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것이 이번 위령제의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수교 이래 최악으로 평가되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자신도 30년 넘게 외교관 생활을 했지만 지금 같은 외교는 처음 본다고도 했습니다.

강제징용 문제 등을 놓고 아베·스가에 이어 기시다 정부까지 '국제법을 어긴 한국이 해결책을 내라. 공은 한국에 있다'고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는 특파원들에게 한국 측이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을 한국에 초대해 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의 방한이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말이죠.

아키히토 전 일왕은 재임 당시 수차례 반복해서 일본의 과거 침략 사실에 대해 사과했고 한국 방문 의사를 밝힌 적도 있습니다.

3년 전 일왕 자리를 아들인 나루히토(德仁) 일왕에게 물려주고 퇴임했지만, 지금도 일본 국민에게 높은 신뢰를 주고 있는 그가 방한하게 되면 그 자체가 일본이 한국에 사죄하는 의미를 가질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2006년 8월 전남 진도군 왜덕산을 찾은 일본 수군 후손들과 대학생 20여 명이 제사를 지내고 진도 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2006년 8월 16일 KBS뉴스광장 화면 갈무리
■ "진도 '왜군 무덤' 위령 또한 의미 있을 것"

아마키 전 대사는 대화 도중 개인적인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 한국과 일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내년쯤 전남 진도에 있는 일본 수군 무덤에 위령하러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진도에는 정유재란 당시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에 몰살당한 왜군들의 시신 백여 구가 떠내려와 진도 백성들이 거둬 장사 지내준 것으로 준 묘지가 있습니다. 왜군에게 덕을 베풀었다고 하는 의미의 '왜덕산'이 바로 그 곳인데요.

비록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적군(왜군)이지만 되레 넋을 위로해 줬다는 점에서, 왜덕산은 귀무덤과는 정반대의 취지와 의미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사실이 2000년대 들어 알려지면서 2006년 일본 수군의 후손들이 이곳을 찾아 4백 년 만에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아마키 전 대사는 "(많은 일본인들이) 진도에서 위령을 하게 된다면 과거 불행했던 역사를 극복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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