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부부 사망보험금 5억, 사돈 속이고 가로채

입력 2021.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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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서 부부와 외아들 등 일가족 3명이 모두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모두 앞서 가입한 생명보험이 있었는데요.

이 생명보험으로 나온 5억 원이 넘는 사망보험금을 두고, 남겨진 가족들 사이에서 황당한 횡령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 아들 부부 사망보험금 5억여 원...사돈 속이고 가로채기로 결심

2018년 11월이었습니다. A 씨 가족이 거주하는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서 A 씨와 A 씨의 부인, 이들의 외아들까지 3명이 잇따라 모두 숨졌습니다.

A 씨 부부는 각각 생명보험에 가입해 있어서 이 사고로 A 씨 앞으로 5억 3천여만 원, 부인 앞으로 3천여만 원의 사망보험금이 책정됐습니다.

원래 부부 중 한 명이 숨지면 상속 순위에 따라 배우자와 직계비속인 자녀가 이 보험금을 받게 돼 있었는데요.

화재로 부인이 먼저 숨지고 그 뒤에 남편이 숨지면서 이들 부부의 사망 보험금은 외아들에게 상속권이 모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 외아들마저 끝내 숨지면서 상속 순위에 따라 직계존속인 조부모와 외조부모, 즉 숨진 A 씨의 부모와 A 씨 부인의 부모인 사돈 부부까지 4명이 공동상속인으로 결정됐습니다.

그런데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보험금 지급 절차를 잘 알고 있었던 A 씨의 어머니인 50대 B 씨.

사돈 부부를 속이고 사망보험금을 가로채기로 결심했습니다.


■ 동의서 받고 며느리 앞으로 나온 3천만 원만 선심 쓰듯이 지급

B 씨 부부는 사고 한 달쯤 뒤 한 카페에서 사돈 부부를 만났습니다. 자식들의 채무 문제를 비롯한 재산 처리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B 씨는 사망보험금이 5억 원이 넘는 큰 돈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며느리 앞으로 나온 3천여만 원을 친부모인 사돈에게 모두 드리겠다며 선심 쓰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표로 사망보험금을 수령한다는 동의서에 서명해달라고 요구해 실제로 즉석에서 서명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B 씨는 보험회사에 보험금 청구서를 제출해 모두 5억 6천여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받았는데요.

원래대로라면 절반인 2억 8천여만 원을 사돈 측과 나눠야 하지만 3천만 원만 사돈 측에 지급했습니다.

■ "다른 보험 없고 3천만 원이 전부"...횡령 혐의로 기소

동의서에 서명할 당시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돼 경황이 없던 터라 사돈 부부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보험금 3천만 원을 B 씨에게서 받았을 때 손자가 상속받게 돼 있던 다른 보험이 더 없었냐고 물었는데요.

B 씨는 다른 보험은 없고 상속된 건 3천만 원이 전부라며 재차 사돈 부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B 씨는 이렇게 가로챈 돈을 며칠 뒤 아파트 전세보증금으로 대부분 써버렸습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사돈 측은 B 씨를 고소했고 결국,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사돈 측, 추가 사망보험금 존재 알고 동의"...1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

법정에 선 B 씨는 사돈 부부와 만난 자리에서 아들의 사망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고지했다고 공소 사실을 반박했습니다.

또 당시에 보험사 지점장과 전화 통화로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사망보험금 지급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사돈 측도 이런 사실을 알고 동의한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 B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먼저 B 씨가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돈 측이 통화 내용을 듣고 추가 사망보험금의 존재를 알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보험금 지급 동의서에 피보험자 칸이 비어있었는데, 이 역시 B 씨가 제대로 사망보험금에 대해 고지하지 않은 것이라고 봤습니다.

또 설령 B 씨 주장처럼 사돈 측이 추가 사망보험금의 존재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보험금 액수를 몰랐기 때문에 진정한 합의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유죄로 판단해 B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 "아들 보험료 대부분 부담한 점 등 참작"...항소심서 벌금 8백만 원 선고

B 씨는 1심 법원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5억 원이나 되는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횡령해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계속 범행을 부인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면서 역시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다만 아들의 보험료를 B 씨가 대부분 부담해온 점, 며느리 사망보험금 3천만 원을 사돈 측에 지급한 점, 또 B 씨 역시 아들 부부 사고로 상당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을 참작해 최근 원심보다 가벼운 벌금 8백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B 씨는 아직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은 상태인데요.

가족의 사망보험금을 두고 벌어진 이번 횡령 사건,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겠지만 돈이 우선시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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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부부 사망보험금 5억, 사돈 속이고 가로채
    • 입력 2021-10-27 06:00:41
    취재K

3년 전,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서 부부와 외아들 등 일가족 3명이 모두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모두 앞서 가입한 생명보험이 있었는데요.

이 생명보험으로 나온 5억 원이 넘는 사망보험금을 두고, 남겨진 가족들 사이에서 황당한 횡령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 아들 부부 사망보험금 5억여 원...사돈 속이고 가로채기로 결심

2018년 11월이었습니다. A 씨 가족이 거주하는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서 A 씨와 A 씨의 부인, 이들의 외아들까지 3명이 잇따라 모두 숨졌습니다.

A 씨 부부는 각각 생명보험에 가입해 있어서 이 사고로 A 씨 앞으로 5억 3천여만 원, 부인 앞으로 3천여만 원의 사망보험금이 책정됐습니다.

원래 부부 중 한 명이 숨지면 상속 순위에 따라 배우자와 직계비속인 자녀가 이 보험금을 받게 돼 있었는데요.

화재로 부인이 먼저 숨지고 그 뒤에 남편이 숨지면서 이들 부부의 사망 보험금은 외아들에게 상속권이 모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 외아들마저 끝내 숨지면서 상속 순위에 따라 직계존속인 조부모와 외조부모, 즉 숨진 A 씨의 부모와 A 씨 부인의 부모인 사돈 부부까지 4명이 공동상속인으로 결정됐습니다.

그런데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보험금 지급 절차를 잘 알고 있었던 A 씨의 어머니인 50대 B 씨.

사돈 부부를 속이고 사망보험금을 가로채기로 결심했습니다.


■ 동의서 받고 며느리 앞으로 나온 3천만 원만 선심 쓰듯이 지급

B 씨 부부는 사고 한 달쯤 뒤 한 카페에서 사돈 부부를 만났습니다. 자식들의 채무 문제를 비롯한 재산 처리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B 씨는 사망보험금이 5억 원이 넘는 큰 돈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며느리 앞으로 나온 3천여만 원을 친부모인 사돈에게 모두 드리겠다며 선심 쓰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표로 사망보험금을 수령한다는 동의서에 서명해달라고 요구해 실제로 즉석에서 서명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B 씨는 보험회사에 보험금 청구서를 제출해 모두 5억 6천여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받았는데요.

원래대로라면 절반인 2억 8천여만 원을 사돈 측과 나눠야 하지만 3천만 원만 사돈 측에 지급했습니다.

■ "다른 보험 없고 3천만 원이 전부"...횡령 혐의로 기소

동의서에 서명할 당시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돼 경황이 없던 터라 사돈 부부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보험금 3천만 원을 B 씨에게서 받았을 때 손자가 상속받게 돼 있던 다른 보험이 더 없었냐고 물었는데요.

B 씨는 다른 보험은 없고 상속된 건 3천만 원이 전부라며 재차 사돈 부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B 씨는 이렇게 가로챈 돈을 며칠 뒤 아파트 전세보증금으로 대부분 써버렸습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사돈 측은 B 씨를 고소했고 결국,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사돈 측, 추가 사망보험금 존재 알고 동의"...1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

법정에 선 B 씨는 사돈 부부와 만난 자리에서 아들의 사망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고지했다고 공소 사실을 반박했습니다.

또 당시에 보험사 지점장과 전화 통화로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사망보험금 지급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사돈 측도 이런 사실을 알고 동의한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 B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먼저 B 씨가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돈 측이 통화 내용을 듣고 추가 사망보험금의 존재를 알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보험금 지급 동의서에 피보험자 칸이 비어있었는데, 이 역시 B 씨가 제대로 사망보험금에 대해 고지하지 않은 것이라고 봤습니다.

또 설령 B 씨 주장처럼 사돈 측이 추가 사망보험금의 존재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보험금 액수를 몰랐기 때문에 진정한 합의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유죄로 판단해 B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 "아들 보험료 대부분 부담한 점 등 참작"...항소심서 벌금 8백만 원 선고

B 씨는 1심 법원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5억 원이나 되는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횡령해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계속 범행을 부인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면서 역시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다만 아들의 보험료를 B 씨가 대부분 부담해온 점, 며느리 사망보험금 3천만 원을 사돈 측에 지급한 점, 또 B 씨 역시 아들 부부 사고로 상당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을 참작해 최근 원심보다 가벼운 벌금 8백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B 씨는 아직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은 상태인데요.

가족의 사망보험금을 두고 벌어진 이번 횡령 사건,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겠지만 돈이 우선시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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