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 공·과 감안한 ‘국가장’ 결정…“불행한 헌정사 되풀이 안돼”

입력 2021.10.28 (07:47) 수정 2021.10.2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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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해설위원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가장으로 치러집니다.

12.12와 5.18등 역사적 과오로 반대 여론도 있지만 북방 정책 등 공적도 감안해 정부가 결정했습니다.

국가장에 따라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고 정부 주관으로 닷새간 장례 절차가 진행됩니다.

국가장 논란에서 보여지듯 노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에서 민주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집권한 만큼 공과가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군 소장이던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신군부 세력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습니다.

신군부는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하며 5공화국을 세웠고 노 전 대통령은 2인자가 됐습니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노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선제 열망을 수용한 6.29 선언으로 1987년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재임 중 야심 차게 추진했던 정책은 북방외교였습니다.

냉전 종식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중국, 소련 등 45개국과 국교를 열었습니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이뤄진 것도 재임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12.12쿠데타를 주도해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5.18 유혈 진압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점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 역사적 과오로 남았습니다.

정경유착으로 천문학적 뇌물을 받고 헌정사상 구속된 첫 전직 대통령이 된 점도 지탄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고인은 5.18 희생자들에게 사과하고 과오를 용서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메시지를 통해 12.12와 5.18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 올림픽과 북방정책 등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굴곡진 삶을 정리하려는 듯 생전에 뇌물 추징금을 완납했고 아들은 광주를 찾아 수차례 사죄의 뜻을 전했습니다.

다만 5.18의 진상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민주화 이후 정치 주역이었던 1노 3김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영욕이 엇갈린 그의 사망은 불행한 헌정사가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뉴스해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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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10-28 09: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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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해설위원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가장으로 치러집니다.

12.12와 5.18등 역사적 과오로 반대 여론도 있지만 북방 정책 등 공적도 감안해 정부가 결정했습니다.

국가장에 따라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고 정부 주관으로 닷새간 장례 절차가 진행됩니다.

국가장 논란에서 보여지듯 노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에서 민주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집권한 만큼 공과가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군 소장이던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신군부 세력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습니다.

신군부는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하며 5공화국을 세웠고 노 전 대통령은 2인자가 됐습니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노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선제 열망을 수용한 6.29 선언으로 1987년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재임 중 야심 차게 추진했던 정책은 북방외교였습니다.

냉전 종식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중국, 소련 등 45개국과 국교를 열었습니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이뤄진 것도 재임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12.12쿠데타를 주도해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5.18 유혈 진압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점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 역사적 과오로 남았습니다.

정경유착으로 천문학적 뇌물을 받고 헌정사상 구속된 첫 전직 대통령이 된 점도 지탄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고인은 5.18 희생자들에게 사과하고 과오를 용서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메시지를 통해 12.12와 5.18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 올림픽과 북방정책 등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굴곡진 삶을 정리하려는 듯 생전에 뇌물 추징금을 완납했고 아들은 광주를 찾아 수차례 사죄의 뜻을 전했습니다.

다만 5.18의 진상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민주화 이후 정치 주역이었던 1노 3김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영욕이 엇갈린 그의 사망은 불행한 헌정사가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뉴스해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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