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소금 독(毒), 돈은 못 받아”…또 ‘염전 노예?’

입력 2021.10.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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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임금도 채 받지 못했고, 지금 온몸이 소금 독(毒)입니다. 병원에 가고 싶었는데, 가자고 했을 때 가지도 못 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도망쳐 나왔어요."

오늘(28일) 오전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53살 박영근 씨가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지난 4일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를 통해 관련 내용이 알려진 후 3주 정도가 지났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의 인권단체가 박 씨의 법률지원을 맡았고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4일 박 씨의 사연이 처음 알려진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지난 4일 박 씨의 사연이 처음 알려진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

박 씨는 지난 2014년 전남 신안군에 있는 한 염전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알게 된 곳이었습니다. 지난 5월 염전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약 7년을 일했습니다. 노동시간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였습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박 씨는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노동력을 착취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근로계약서가 있기는 했습니다.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월급이 140만 원이었고, 최근에는 2백만 원 정도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근로계약서는 명목일 뿐이었다고 박 씨 측은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임금체불의 근거로 통장거래내역을 공개했습니다. 내역을 보면 입금 뒤 몇 분 이내에 비슷한 액수가 출금된 내용이 확인됩니다.

박 씨 측은 고용주인 40대 장 모 씨가 돈을 입금한 뒤 다시 가져간 거라고 주장합니다. 사장이 은행 밖에서 기다리며 현금 인출을 지시했다는 겁니다. 인권단체들은 임금체불 수법이 교묘해진거라고 해석합니다.

박 씨 측이 제공한 박 씨 명의의 농협 통장 예금거래 내역서 중 일부박 씨 측이 제공한 박 씨 명의의 농협 통장 예금거래 내역서 중 일부

박 씨 측은 임금체불 이외에도 염전 내에서 감시와 감금도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염전에는 박 씨 이외에도 10여 명의 노동자가 더 있었는데, 외출은 고용주의 허락 안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즉, 1년에 한두 번가량 5인씩 조를 짠 상태로만 외출할 수 있었고, 이마저도 감시인이 동행했다고 주장합니다.

박 씨는 고된 노동과 자유가 박탈된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결국, 지난 5월 물 작업을 마친 뒤 산으로 달아나 염전을 벗어났습니다. 이후 누나 집을 찾아 생활하다가 현재는 한 쉼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박 씨는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고용주이자 염전주인 장 씨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 상습준사기, 감금, 장애인복지법 위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고소했습니다.

박 씨가 '경계선 지적 장애'를 앓고 있어 상황판단 및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인데, 고용주가 이를 악용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박 씨는 등록장애인은 아니지만, 등록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염전주 "사실 아니야"...박 씨 주장 반박

염전주는 박 씨 측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돈을 인출시킨 것은 박 씨가 쓴 사제담배 및 생활비 등에 대해 되돌려 받은 거라는 입장입니다. 감시나 감금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전남경찰청은 방송이 나간 이후 염전주인 장 씨를 임금체불과 관련된 사기 혐의 등으로 입건한 상태입니다. 관련 계좌도 압수수색 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박 씨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 11명도 참고인으로 불러 1차 조사를 마쳤습니다. 다른 노동자들은 임금체불 등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금 의혹에 대해서도 경찰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박 씨는 폭행은 없었다고 말했는데, 경찰도 마찬가지로 폭행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만큼,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고 경찰은 설명합니다.


인권단체들은 현지에서 수사 중인 경찰을 못 믿겠다고 말합니다. 지난 2014년 신안군에서 '염전노예' 사건이 터졌을 때의 경험 때문입니다.

당시 해당 지역 경찰이 수사를 소극적으로 해 강제노동의 피해자를 몇 명 찾아내지 못했는데, 대통령의 지시 이후에야 합동조사를 통해 수십 명의 피해자를 찾아냈다는 게 인권단체의 주장입니다.

인권단체들이 사건이 발생한 신안군이나 전남경찰청 앞이 아닌 서울에 있는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유입니다. 이들은 해당 지역 경찰관이 연루돼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본청 중대범죄수사과에서 수사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는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 중 1명도 참석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후유증인 듯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어눌하고, 힘들게 몇 마디를 뗐습니다.

"뭐뭐... 아주 그 아무거나... 밖에 나가면 못 나가게 하고 때리고... 자면서 또 때리고... 반찬은 김치 뿐입니더... 뭐... 그랬습니더..."

이때로부터 7년이 지났습니다. 엄정한 수사로 진상이 드러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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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간 소금 독(毒), 돈은 못 받아”…또 ‘염전 노예?’
    • 입력 2021-10-28 18:55:50
    취재K

"사실 저는 임금도 채 받지 못했고, 지금 온몸이 소금 독(毒)입니다. 병원에 가고 싶었는데, 가자고 했을 때 가지도 못 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도망쳐 나왔어요."

오늘(28일) 오전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53살 박영근 씨가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지난 4일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를 통해 관련 내용이 알려진 후 3주 정도가 지났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의 인권단체가 박 씨의 법률지원을 맡았고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4일 박 씨의 사연이 처음 알려진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
박 씨는 지난 2014년 전남 신안군에 있는 한 염전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알게 된 곳이었습니다. 지난 5월 염전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약 7년을 일했습니다. 노동시간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였습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박 씨는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노동력을 착취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근로계약서가 있기는 했습니다.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월급이 140만 원이었고, 최근에는 2백만 원 정도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근로계약서는 명목일 뿐이었다고 박 씨 측은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임금체불의 근거로 통장거래내역을 공개했습니다. 내역을 보면 입금 뒤 몇 분 이내에 비슷한 액수가 출금된 내용이 확인됩니다.

박 씨 측은 고용주인 40대 장 모 씨가 돈을 입금한 뒤 다시 가져간 거라고 주장합니다. 사장이 은행 밖에서 기다리며 현금 인출을 지시했다는 겁니다. 인권단체들은 임금체불 수법이 교묘해진거라고 해석합니다.

박 씨 측이 제공한 박 씨 명의의 농협 통장 예금거래 내역서 중 일부
박 씨 측은 임금체불 이외에도 염전 내에서 감시와 감금도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염전에는 박 씨 이외에도 10여 명의 노동자가 더 있었는데, 외출은 고용주의 허락 안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즉, 1년에 한두 번가량 5인씩 조를 짠 상태로만 외출할 수 있었고, 이마저도 감시인이 동행했다고 주장합니다.

박 씨는 고된 노동과 자유가 박탈된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결국, 지난 5월 물 작업을 마친 뒤 산으로 달아나 염전을 벗어났습니다. 이후 누나 집을 찾아 생활하다가 현재는 한 쉼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박 씨는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고용주이자 염전주인 장 씨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 상습준사기, 감금, 장애인복지법 위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고소했습니다.

박 씨가 '경계선 지적 장애'를 앓고 있어 상황판단 및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인데, 고용주가 이를 악용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박 씨는 등록장애인은 아니지만, 등록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염전주 "사실 아니야"...박 씨 주장 반박

염전주는 박 씨 측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돈을 인출시킨 것은 박 씨가 쓴 사제담배 및 생활비 등에 대해 되돌려 받은 거라는 입장입니다. 감시나 감금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전남경찰청은 방송이 나간 이후 염전주인 장 씨를 임금체불과 관련된 사기 혐의 등으로 입건한 상태입니다. 관련 계좌도 압수수색 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박 씨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 11명도 참고인으로 불러 1차 조사를 마쳤습니다. 다른 노동자들은 임금체불 등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금 의혹에 대해서도 경찰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박 씨는 폭행은 없었다고 말했는데, 경찰도 마찬가지로 폭행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만큼,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고 경찰은 설명합니다.


인권단체들은 현지에서 수사 중인 경찰을 못 믿겠다고 말합니다. 지난 2014년 신안군에서 '염전노예' 사건이 터졌을 때의 경험 때문입니다.

당시 해당 지역 경찰이 수사를 소극적으로 해 강제노동의 피해자를 몇 명 찾아내지 못했는데, 대통령의 지시 이후에야 합동조사를 통해 수십 명의 피해자를 찾아냈다는 게 인권단체의 주장입니다.

인권단체들이 사건이 발생한 신안군이나 전남경찰청 앞이 아닌 서울에 있는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유입니다. 이들은 해당 지역 경찰관이 연루돼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본청 중대범죄수사과에서 수사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는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 중 1명도 참석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후유증인 듯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어눌하고, 힘들게 몇 마디를 뗐습니다.

"뭐뭐... 아주 그 아무거나... 밖에 나가면 못 나가게 하고 때리고... 자면서 또 때리고... 반찬은 김치 뿐입니더... 뭐... 그랬습니더..."

이때로부터 7년이 지났습니다. 엄정한 수사로 진상이 드러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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