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기절, 혼자밖에 없거든요” 119 신고로 본 ‘물병 사건’

입력 2021.10.2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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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과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음료와 물을 마신 직원 3명이 잇달아 쓰러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두 명이 한 번에 쓰러졌던 18일 사건이 먼저 알려진 뒤, 이 회사에서 10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건데요.

KBS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권영세 의원실을 통해, 사건이 발생했던 날들의 119신고 기록을 입수했습니다. 사건 당시 피해자들이 처했던 다급한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 "방금 기절했는데…혼자밖에 없거든요."

먼저, 10일 사건부터 보겠습니다.

신고를 한 건 피해 당사자 A 씨로 보이는데요.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고, 현재 굉장히 어지러운 상황이라고 고통을 호소합니다. 말도 더듬으면서 말해 소방당국의 신고 기록에는 '힘들게 말함'이라는 메모도 적혀있습니다.

당시 피해자는 사무실에 혼자 있다고 말합니다. 피해자가 스스로 깨어나지 못했다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119접수자 : 네 119입니다.
A 씨 : 네 여기..여기..**동..아..그..그..마..바우뫼로 *** *층 인데요 (힘들게 말함)
119 접수자 : *** *층이요?
A 씨 : 예
119 접수자 : *층에 호수는 몇 호세요?
A 씨 : 호수 없고요
119 접수자 : 네
A 씨 : 제가 방금 기절을 했는데
119 접수자 : 네
A 씨 : 아.. 너무 어지러워 가지고 제가 지금 여기 혼자밖에 없거든요

이 피해자는 음료수를 마시고 쓰러졌고, 해당 음료수에서는 살충제나 제초제 성분으로 쓰이는 '아지드화나트륨'이라는 독극 물질이 검출됐습니다.

■ "아까 신고하지 않으셨어요?"..."이번엔 다른 분이"

A 씨가 쓰러지고 8일 뒤, 이 회사에서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판매용 물병에 든 물을 마시고 사무실 직원 두 명이 연이어 쓰러진 겁니다.

18일 최초 신고는 오후 1시 47분이었습니다.

신고자 : 갑자기 환자가 발생해서 빨리 출동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119근무자 : 그 남자분이에요 여자분이에요 환자분?
신고자 : 여자요
119 근무자 :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
신고자 : 갑자기 그 잠깐 발작이 있고요. 호흡이 조금 불안정한 것 같아요
119 근무자 : 의식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신고자 : 의식은 없어요
119 근무자 : 의식이 없다고요?
신고자 : 네
119 근무자 : 호흡은 하시고?
신고자 : 호흡은 있는데 불안정해요

그리고 40분쯤 지난 뒤인 오후 2시 29분, 119에 또다시 신고가 접수됩니다.

신고자 : 네 여기 ******인데요. 갑자기 의시을 잃은 환자가 생겨가지고 응급,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119 근무자 : ****** 아까 신고하지 않으셨어요?
신고자 : 네 다른 분이 이번엔 다른 분이 쓰러지고 계세요

(중략)

119근무자 : 네 주소? 주소가? 아니에요. 네 제가 보낼게요. 그쪽으로. 환자 남자분이에요 여자분이에요?
신고자 : 네 이번엔 남성분이에요
119근무자 : 남자분, 의식은 있어요? 말씀하세요?
신고자 : 지금 현재 의식 없어요
119근무자 : 의식, 호흡은 해요? 숨 쉬어요 안 쉬어요? 호흡 정상적으로 해요?
신고자 : 호흡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 호흡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119근무자 : 호흡은 정상적으로 하는 것 맞아요? 숨 쉬고 있고?
신고자 : 불규칙해요. 지금
119근무자 : 아 그래요?
신고자 : 의식은 없어요. 네네
119근무자 : 일단 119 출동했고요. 저희 의료진 연결할게요. 의료진 한 번 통화해보세요

이들은 판매용 물병에 든 물을 마시고 쓰러졌는데요. 피해자 두 명 가운데 남성은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23일 결국 숨졌습니다. 이 남성의 혈액에서는 10일 피해자의 음료수에서 나왔던 '아지드화나트륨'이 검출됐습니다.

사건 다음날인 19일 무단 결근했다가 숨진 채 발견된 용의자 강 씨의 몸에서도 이 성분이 검출됐고, 집에서는 같은 물질이 발견됐습니다.

■ "경찰 신고만 빨랐더라면..."

이렇게 회사 안에서 잇따라 3명이 쓰러졌지만,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시점은 18일 밤입니다. 18일 낮에 직원 2명이 잇달아 쓰러지고 7시간쯤 뒤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고가 늦어지면서 경찰의 증거물 확보에도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경찰은 물병에서 아지드화나트륨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신고가 늦어져 보존이 안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피의자가 아예 문제의 물병을 바꿔치기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때문에 회사가 경찰에 좀 더 빨리 신고를 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10일 사건이나 18일 사건의 첫 번째 피해자가 나온 직후 경찰 신고가 이뤄졌다면, 사람이 숨지는 일까지는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 회사 대표 등은 경찰 신고가 늦어진 이유 등에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경찰은 해당 회사에서 강 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들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범행 동기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찰은 부검 결과와 디지털포렌식 자료, 메모 등을 분석한 뒤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할 전망입니다. 다만 살인 혐의 등으로 입건된 강 씨가 숨진 상태여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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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금 기절, 혼자밖에 없거든요” 119 신고로 본 ‘물병 사건’
    • 입력 2021-10-29 11:52:26
    취재K

지난 10일과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음료와 물을 마신 직원 3명이 잇달아 쓰러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두 명이 한 번에 쓰러졌던 18일 사건이 먼저 알려진 뒤, 이 회사에서 10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건데요.

KBS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권영세 의원실을 통해, 사건이 발생했던 날들의 119신고 기록을 입수했습니다. 사건 당시 피해자들이 처했던 다급한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 "방금 기절했는데…혼자밖에 없거든요."

먼저, 10일 사건부터 보겠습니다.

신고를 한 건 피해 당사자 A 씨로 보이는데요.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고, 현재 굉장히 어지러운 상황이라고 고통을 호소합니다. 말도 더듬으면서 말해 소방당국의 신고 기록에는 '힘들게 말함'이라는 메모도 적혀있습니다.

당시 피해자는 사무실에 혼자 있다고 말합니다. 피해자가 스스로 깨어나지 못했다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119접수자 : 네 119입니다.
A 씨 : 네 여기..여기..**동..아..그..그..마..바우뫼로 *** *층 인데요 (힘들게 말함)
119 접수자 : *** *층이요?
A 씨 : 예
119 접수자 : *층에 호수는 몇 호세요?
A 씨 : 호수 없고요
119 접수자 : 네
A 씨 : 제가 방금 기절을 했는데
119 접수자 : 네
A 씨 : 아.. 너무 어지러워 가지고 제가 지금 여기 혼자밖에 없거든요

이 피해자는 음료수를 마시고 쓰러졌고, 해당 음료수에서는 살충제나 제초제 성분으로 쓰이는 '아지드화나트륨'이라는 독극 물질이 검출됐습니다.

■ "아까 신고하지 않으셨어요?"..."이번엔 다른 분이"

A 씨가 쓰러지고 8일 뒤, 이 회사에서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판매용 물병에 든 물을 마시고 사무실 직원 두 명이 연이어 쓰러진 겁니다.

18일 최초 신고는 오후 1시 47분이었습니다.

신고자 : 갑자기 환자가 발생해서 빨리 출동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119근무자 : 그 남자분이에요 여자분이에요 환자분?
신고자 : 여자요
119 근무자 :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
신고자 : 갑자기 그 잠깐 발작이 있고요. 호흡이 조금 불안정한 것 같아요
119 근무자 : 의식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신고자 : 의식은 없어요
119 근무자 : 의식이 없다고요?
신고자 : 네
119 근무자 : 호흡은 하시고?
신고자 : 호흡은 있는데 불안정해요

그리고 40분쯤 지난 뒤인 오후 2시 29분, 119에 또다시 신고가 접수됩니다.

신고자 : 네 여기 ******인데요. 갑자기 의시을 잃은 환자가 생겨가지고 응급,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119 근무자 : ****** 아까 신고하지 않으셨어요?
신고자 : 네 다른 분이 이번엔 다른 분이 쓰러지고 계세요

(중략)

119근무자 : 네 주소? 주소가? 아니에요. 네 제가 보낼게요. 그쪽으로. 환자 남자분이에요 여자분이에요?
신고자 : 네 이번엔 남성분이에요
119근무자 : 남자분, 의식은 있어요? 말씀하세요?
신고자 : 지금 현재 의식 없어요
119근무자 : 의식, 호흡은 해요? 숨 쉬어요 안 쉬어요? 호흡 정상적으로 해요?
신고자 : 호흡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 호흡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119근무자 : 호흡은 정상적으로 하는 것 맞아요? 숨 쉬고 있고?
신고자 : 불규칙해요. 지금
119근무자 : 아 그래요?
신고자 : 의식은 없어요. 네네
119근무자 : 일단 119 출동했고요. 저희 의료진 연결할게요. 의료진 한 번 통화해보세요

이들은 판매용 물병에 든 물을 마시고 쓰러졌는데요. 피해자 두 명 가운데 남성은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23일 결국 숨졌습니다. 이 남성의 혈액에서는 10일 피해자의 음료수에서 나왔던 '아지드화나트륨'이 검출됐습니다.

사건 다음날인 19일 무단 결근했다가 숨진 채 발견된 용의자 강 씨의 몸에서도 이 성분이 검출됐고, 집에서는 같은 물질이 발견됐습니다.

■ "경찰 신고만 빨랐더라면..."

이렇게 회사 안에서 잇따라 3명이 쓰러졌지만,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시점은 18일 밤입니다. 18일 낮에 직원 2명이 잇달아 쓰러지고 7시간쯤 뒤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고가 늦어지면서 경찰의 증거물 확보에도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경찰은 물병에서 아지드화나트륨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신고가 늦어져 보존이 안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피의자가 아예 문제의 물병을 바꿔치기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때문에 회사가 경찰에 좀 더 빨리 신고를 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10일 사건이나 18일 사건의 첫 번째 피해자가 나온 직후 경찰 신고가 이뤄졌다면, 사람이 숨지는 일까지는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 회사 대표 등은 경찰 신고가 늦어진 이유 등에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경찰은 해당 회사에서 강 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들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범행 동기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찰은 부검 결과와 디지털포렌식 자료, 메모 등을 분석한 뒤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할 전망입니다. 다만 살인 혐의 등으로 입건된 강 씨가 숨진 상태여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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