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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일본에서 나가라!’ 투표 권유했더니 쏟아진 ‘혐오’
입력 2021.10.30 (08:02) 특파원 리포트

최근 일본에서 제작된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동영상의 섬네일입니다. 일본의 배우나 모델 등 유명인 14명이 등장하는 이 영상은 유튜브와 트위터 등에서 순식간에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이것은 광고도, 정부의 방송도 아닌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만든 영상입니다

영상은 이렇게 시작한 뒤, 투표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후반부엔 모두가 번갈아가며 '저도 투표하겠습니다.'라며 끝을 맺습니다.

내용은 '이렇게 투표율이 낮은지 몰랐다' '이제라도 권리를 행사하겠다.' '투표하면 달라질 수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일(10월 31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특히 젊은 층이 투표에 나설 것을 독려합니다.

일본 배우 오구리 슌.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캡처일본 배우 오구리 슌.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캡처

와타나베 켄이나 오구리 슌처럼 비교적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들도 등장합니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이 정도 출연진이면 '호화 캐스팅'이라고 할 만합니다.

시의적절하고 참신한 시도에 영상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인종이나 국적 등으로 상대를 차별하는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대상은 일본의 인기 모델 로라입니다.

투표를 독려하는 로라.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캡처투표를 독려하는 로라.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캡처

'로라는 좀 아닌 것 같은데?'
'로라는 국적 미상 아닌가?'
'왜 일본 정치에 참견?'
'참정권은 있나?'

로라는 방글라데시인 아버지와 일본-러시아의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체성은 '하프'(일본에서 혼혈을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국적은 일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릴 적 방글라데시에서 지낸 적은 있지만, 줄곧 일본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한국도 무관치 않은 사례입니다.

재일교포 소설가 유미리 씨는 10월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참정권이 없기 때문에 투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정권이 있는 분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처지나 입장을 머리나 마음 한켠에 놓아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소설가 유미리 씨의 트위터 계정소설가 유미리 씨의 트위터 계정

투표권은 없지만,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도 고려해 좋은 사람을 뽑아달라는 말입니다.

유 씨는 지난해 '내셔널 북 어워드(전미 도서상)'를 수상한 'JR우에노역 공원 출구'에서 노숙자의 삶을 그렸습니다. 2015년부터는 자신이 직접 동일본대지진의 상흔을 간직한 후쿠시마현 미나미 소마시로 이주해 책방을 경영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 씨는 작가로서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사람과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왔습니다. 유 씨는 전미 도서 상 수상 후 기자회견에서 이런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일본인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일본어로 읽고 쓰고, 일본어로 사고를 하고 있지만 국적은 한국,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일본인은 아닙니다

이 같은 배경에서 투표를 통해 참정권이 없는 사람들도 잘살 수 있는 일본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한 겁니다. 역시 유 씨를 비방하는 글이 트위터에서 이어졌습니다.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라!

귀화하지 마라. 이상한 권리만 주장하는 건 곤란하다. 일본에서 나가라

빨리 귀화해라 비국민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모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떤가요?

맥도날드에서 돈 냈으니 김치 내놓으라고 하는 거랑 같잖아


일본의 투표율 저조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33%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데 젊은이들조차도 선거에 무관심해 '실버 민주주의'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또 위의 두 사례에서 보듯, 일본의 넷우익(SNS를 중심으로 우익 성향의 목소리를 내는 일본의 네티즌)과 이들을 중심으로 한 헤이트스피치는 이런 목소리마저 위축되게 만듭니다.

일본 역대 중의원 투표율. 멘 우측이 직전 중의원 선거인 2017년(헤이세이29년)의 투표율이다 (자료: 일본 총무성)일본 역대 중의원 투표율. 멘 우측이 직전 중의원 선거인 2017년(헤이세이29년)의 투표율이다 (자료: 일본 총무성)

사회 전반의 우경화, 낮은 투표율, 바뀌지 않는 정치…. 이런 악순환이 이어지며 일본에서도 미약하나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분석 업체가 10월 6일부터 19일까지 2주 동안 '중의원선거'나 정당명 등이 포함된 일본어 트위터 내용을 분석했더니 #나는 투표하겠습니다 #선택이 많이 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24살 이하 Z세대의 트위터에서 '투표'와 '국민'이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2019년 조사에서는 '소비세' '연금' '헌법' 등의 정책 관련 키워드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일본 내에서 '투표 행위' 자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 건 분명해 보입니다.
  • [특파원 리포트] ‘일본에서 나가라!’ 투표 권유했더니 쏟아진 ‘혐오’
    • 입력 2021-10-30 08:02:07
    특파원 리포트

최근 일본에서 제작된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동영상의 섬네일입니다. 일본의 배우나 모델 등 유명인 14명이 등장하는 이 영상은 유튜브와 트위터 등에서 순식간에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이것은 광고도, 정부의 방송도 아닌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만든 영상입니다

영상은 이렇게 시작한 뒤, 투표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후반부엔 모두가 번갈아가며 '저도 투표하겠습니다.'라며 끝을 맺습니다.

내용은 '이렇게 투표율이 낮은지 몰랐다' '이제라도 권리를 행사하겠다.' '투표하면 달라질 수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일(10월 31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특히 젊은 층이 투표에 나설 것을 독려합니다.

일본 배우 오구리 슌.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캡처일본 배우 오구리 슌.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캡처

와타나베 켄이나 오구리 슌처럼 비교적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들도 등장합니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이 정도 출연진이면 '호화 캐스팅'이라고 할 만합니다.

시의적절하고 참신한 시도에 영상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인종이나 국적 등으로 상대를 차별하는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대상은 일본의 인기 모델 로라입니다.

투표를 독려하는 로라.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캡처투표를 독려하는 로라. ‘보이스프로젝트 투표는 당신의 목소리’ 캡처

'로라는 좀 아닌 것 같은데?'
'로라는 국적 미상 아닌가?'
'왜 일본 정치에 참견?'
'참정권은 있나?'

로라는 방글라데시인 아버지와 일본-러시아의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체성은 '하프'(일본에서 혼혈을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국적은 일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릴 적 방글라데시에서 지낸 적은 있지만, 줄곧 일본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한국도 무관치 않은 사례입니다.

재일교포 소설가 유미리 씨는 10월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참정권이 없기 때문에 투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정권이 있는 분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처지나 입장을 머리나 마음 한켠에 놓아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소설가 유미리 씨의 트위터 계정소설가 유미리 씨의 트위터 계정

투표권은 없지만,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도 고려해 좋은 사람을 뽑아달라는 말입니다.

유 씨는 지난해 '내셔널 북 어워드(전미 도서상)'를 수상한 'JR우에노역 공원 출구'에서 노숙자의 삶을 그렸습니다. 2015년부터는 자신이 직접 동일본대지진의 상흔을 간직한 후쿠시마현 미나미 소마시로 이주해 책방을 경영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 씨는 작가로서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사람과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왔습니다. 유 씨는 전미 도서 상 수상 후 기자회견에서 이런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일본인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일본어로 읽고 쓰고, 일본어로 사고를 하고 있지만 국적은 한국,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일본인은 아닙니다

이 같은 배경에서 투표를 통해 참정권이 없는 사람들도 잘살 수 있는 일본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한 겁니다. 역시 유 씨를 비방하는 글이 트위터에서 이어졌습니다.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라!

귀화하지 마라. 이상한 권리만 주장하는 건 곤란하다. 일본에서 나가라

빨리 귀화해라 비국민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모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떤가요?

맥도날드에서 돈 냈으니 김치 내놓으라고 하는 거랑 같잖아


일본의 투표율 저조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33%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데 젊은이들조차도 선거에 무관심해 '실버 민주주의'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또 위의 두 사례에서 보듯, 일본의 넷우익(SNS를 중심으로 우익 성향의 목소리를 내는 일본의 네티즌)과 이들을 중심으로 한 헤이트스피치는 이런 목소리마저 위축되게 만듭니다.

일본 역대 중의원 투표율. 멘 우측이 직전 중의원 선거인 2017년(헤이세이29년)의 투표율이다 (자료: 일본 총무성)일본 역대 중의원 투표율. 멘 우측이 직전 중의원 선거인 2017년(헤이세이29년)의 투표율이다 (자료: 일본 총무성)

사회 전반의 우경화, 낮은 투표율, 바뀌지 않는 정치…. 이런 악순환이 이어지며 일본에서도 미약하나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분석 업체가 10월 6일부터 19일까지 2주 동안 '중의원선거'나 정당명 등이 포함된 일본어 트위터 내용을 분석했더니 #나는 투표하겠습니다 #선택이 많이 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24살 이하 Z세대의 트위터에서 '투표'와 '국민'이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2019년 조사에서는 '소비세' '연금' '헌법' 등의 정책 관련 키워드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일본 내에서 '투표 행위' 자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 건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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