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촌까지 DNA 채취”…70년 만에 돌아온 6.25 참전용사

입력 2021.10.3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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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설악산 골짜기. 이곳에서 60년 만에 발견된 군복 단추와 때 묻은 벨트는 세월을 비껴간 듯, 형체가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신발 한 켤레도 마치 어제 신었다 벗은 듯 매듭이 단단하게 묶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2011년 5월 4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저항령 일대에서 6·25 전사자들의 유해 일부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1951년 5~6월, 치열한 '설악산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 깎아지르는 바위 봉우리가 가득한 암반 지역인 데다 험준한 산맥이 이어지는 탓에, 유해발굴단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하루에 2~3시간 남짓이었습니다.

이날 발견된 유해 가운데는 제주 출신의 고(故) 송달선 하사도 있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고(故) 송달선 하사의 유품(국방부 제공)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고(故) 송달선 하사의 유품(국방부 제공)

1925년생인 고 송달선 하사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출신으로, 6·25 전쟁이 발발한 지 3개월여 만인 그해 9월, 25살의 나이에 육군으로 입대해 참전했습니다. 송 하사는 참전하기 6년 전 결혼해, 아들과 딸 1명씩을 두고 있었습니다.

11사단에 소속된 송 하사는 전국 각지를 돌며 전투를 치렀습니다. 국군 수도사단과 11사단이 동해안으로 진격하던 중인 1951년 5월 11일, 송 하사는 북한군 6사단과 맞선 설악산 전투에서 복부에 총탄을 맞아 전사합니다.

故 송달선 하사보다 먼저 입대해 참전했던 고인의 동생 송치선(92)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제주도지부장은 아흔이 넘은 지금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 역시 6·25 전쟁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해 공적을 인정받아,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입니다.

송 씨는 "전쟁 중에 형님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복무 중이던 부대로 형님의 전사를 알리는 기별이 왔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회상했습니다.

■ 아들이 남긴 DNA 시료 덕분에…70년 만에 찾은 '아버지'

형이 전장에서 숨졌다는 소식을 접한지 꼭 70년 만인 올해, 송 씨의 가족들은 국방부로부터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영영 찾을 수 없을 줄 알았던 형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강원도와 경북 칠곡 지역에서 발굴한 4명의 6·25 전사자 유해 가운데 1명이 바로 고 송달선 하사였습니다.

10년 전 강원도 설악산 바위 틈에서 발견된 유골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 남긴 DNA 시료 덕분이었습니다.

고 송달선 하사의 장남인 고 송창일(2020년 3월 작고) 씨는 2019년 12월, 제주보건소를 찾아 6·25 전사자 유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DNA 시료 채취에 응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이렇게 채취한 DNA를 감식했더니, 10년 전 강원도 설악산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와 '부자 관계'가 성립한다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고 송달선 하사의 신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DNA 채취에 응했던 고인의 장남은,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유족들은 "제주에서 부친을 맞이하기도 전에 돌아가셨지만, 하늘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서 기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8일, 고 송달선 하사의 유족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열고, 유가족에 호국영웅 귀환패와 유품이 담긴 ' '호국의 얼' 함과 위문품 등을 전달했습니다.

■ 미수습 6·25 전사자 12만여 명…유족 DNA 채취는 '5만여 명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전장에서 산화한 국군은 13만여 명. 이 가운데 지난 2000년 이후 발굴된 전사자 유해는 1만 2천여 구입니다.

하지만 유족의 DNA 시료 채취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겨우 1.3%에 불과합니다. 유가족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고령이라는 점도 향후 전사자 신원 확인에 난항이 예상되는 요인입니다.


허욱구 유해발굴감식단장은 "6·25 전사자 유해 발굴 목적은 유족을 확인하고, 유해를 현충원에 안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고 송달선 하사 유해는 10년 전 발굴된 이후 유가족 시료를 찾지 못해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가, 이후 가족이 DNA 시료 채취에 응하신 덕에 마침내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더 찾아야 할 6·25 전사자는 전국에 12만여 명. 이 중 유가족이 DNA 시료 채취에 응한 사례는 5만여 명뿐입니다.

제주에는 전사자 2천여 명 가운데 지금까지 400여 명의 유족이 DNA 시료를 채취해, 유해 발굴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허 단장은 "촌수로 보면 가까울수록 유전자 분석이 잘 되지만, 현재 8촌 관계까지 유가족의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면서 "많은 유족분께서 DNA 시료 채취에 참여하신다면, 6·25 전사자를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6·25 전사자 유족 DNA 시료 채취는 가까운 지역 보건소를 가면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면봉으로 입 안 타액을 살짝 닦아내는 간단한 방식입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1577-5625)에 연락하면, 관계자가 유족 자택을 직접 방문해 DNA 시료를 채취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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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촌까지 DNA 채취”…70년 만에 돌아온 6.25 참전용사
    • 입력 2021-10-31 07:01:27
    취재K

1951년,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설악산 골짜기. 이곳에서 60년 만에 발견된 군복 단추와 때 묻은 벨트는 세월을 비껴간 듯, 형체가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신발 한 켤레도 마치 어제 신었다 벗은 듯 매듭이 단단하게 묶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2011년 5월 4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저항령 일대에서 6·25 전사자들의 유해 일부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1951년 5~6월, 치열한 '설악산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 깎아지르는 바위 봉우리가 가득한 암반 지역인 데다 험준한 산맥이 이어지는 탓에, 유해발굴단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하루에 2~3시간 남짓이었습니다.

이날 발견된 유해 가운데는 제주 출신의 고(故) 송달선 하사도 있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고(故) 송달선 하사의 유품(국방부 제공)
1925년생인 고 송달선 하사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출신으로, 6·25 전쟁이 발발한 지 3개월여 만인 그해 9월, 25살의 나이에 육군으로 입대해 참전했습니다. 송 하사는 참전하기 6년 전 결혼해, 아들과 딸 1명씩을 두고 있었습니다.

11사단에 소속된 송 하사는 전국 각지를 돌며 전투를 치렀습니다. 국군 수도사단과 11사단이 동해안으로 진격하던 중인 1951년 5월 11일, 송 하사는 북한군 6사단과 맞선 설악산 전투에서 복부에 총탄을 맞아 전사합니다.

故 송달선 하사보다 먼저 입대해 참전했던 고인의 동생 송치선(92)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제주도지부장은 아흔이 넘은 지금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 역시 6·25 전쟁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해 공적을 인정받아,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입니다.

송 씨는 "전쟁 중에 형님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복무 중이던 부대로 형님의 전사를 알리는 기별이 왔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회상했습니다.

■ 아들이 남긴 DNA 시료 덕분에…70년 만에 찾은 '아버지'

형이 전장에서 숨졌다는 소식을 접한지 꼭 70년 만인 올해, 송 씨의 가족들은 국방부로부터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영영 찾을 수 없을 줄 알았던 형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강원도와 경북 칠곡 지역에서 발굴한 4명의 6·25 전사자 유해 가운데 1명이 바로 고 송달선 하사였습니다.

10년 전 강원도 설악산 바위 틈에서 발견된 유골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 남긴 DNA 시료 덕분이었습니다.

고 송달선 하사의 장남인 고 송창일(2020년 3월 작고) 씨는 2019년 12월, 제주보건소를 찾아 6·25 전사자 유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DNA 시료 채취에 응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이렇게 채취한 DNA를 감식했더니, 10년 전 강원도 설악산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와 '부자 관계'가 성립한다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고 송달선 하사의 신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DNA 채취에 응했던 고인의 장남은,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유족들은 "제주에서 부친을 맞이하기도 전에 돌아가셨지만, 하늘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서 기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8일, 고 송달선 하사의 유족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열고, 유가족에 호국영웅 귀환패와 유품이 담긴 ' '호국의 얼' 함과 위문품 등을 전달했습니다.

■ 미수습 6·25 전사자 12만여 명…유족 DNA 채취는 '5만여 명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전장에서 산화한 국군은 13만여 명. 이 가운데 지난 2000년 이후 발굴된 전사자 유해는 1만 2천여 구입니다.

하지만 유족의 DNA 시료 채취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겨우 1.3%에 불과합니다. 유가족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고령이라는 점도 향후 전사자 신원 확인에 난항이 예상되는 요인입니다.


허욱구 유해발굴감식단장은 "6·25 전사자 유해 발굴 목적은 유족을 확인하고, 유해를 현충원에 안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고 송달선 하사 유해는 10년 전 발굴된 이후 유가족 시료를 찾지 못해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가, 이후 가족이 DNA 시료 채취에 응하신 덕에 마침내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더 찾아야 할 6·25 전사자는 전국에 12만여 명. 이 중 유가족이 DNA 시료 채취에 응한 사례는 5만여 명뿐입니다.

제주에는 전사자 2천여 명 가운데 지금까지 400여 명의 유족이 DNA 시료를 채취해, 유해 발굴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허 단장은 "촌수로 보면 가까울수록 유전자 분석이 잘 되지만, 현재 8촌 관계까지 유가족의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면서 "많은 유족분께서 DNA 시료 채취에 참여하신다면, 6·25 전사자를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6·25 전사자 유족 DNA 시료 채취는 가까운 지역 보건소를 가면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면봉으로 입 안 타액을 살짝 닦아내는 간단한 방식입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1577-5625)에 연락하면, 관계자가 유족 자택을 직접 방문해 DNA 시료를 채취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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