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에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약탈 문화재들…한국 ‘직지심체요절’도 돌아올까?

입력 2021.10.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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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아프리카 약탈 문화재 반환…영국 기관의 첫 베냉 문화재 반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지저스 칼리지가 현지 시간 27일, 식민지 시대였던 1890년대 서아프리카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했습니다.

1897년 영국군이 현재의 나이지리아에 위치한 베냉 왕국에서 약탈한 수백 점의 청동 유물 중 하나인 청동 수탉 조각상을 나이지리아 대표단에 돌려준 것인데, 영국 기관으로서는 처음 있는 베냉 문화재 반환 사례입니다. 이번에 반환한 베냉 청동 유물은 아프리카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유물의 하나로 꼽힙니다.

반환된 청동 수탉은 약탈당한 뒤 지저스칼리지 한 학생의 부모가 1905년 대학에 기증했고 대학 측이 2019년 나이지리아에 반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저스칼리지 학장은 반환 행사에 앞서 "이번 반환은 유물의 역사와 독특한 유산 가치에 대한 존중이라는 면에서 옳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유물 반환에 선구적으로 나서줬다며 대학 측에 감사를 표하고 다른 기관들도 유물을 반환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 프랑스 국립박물관도 베냉에 반환 독일도 내년부터 반환 시작

프랑스 파리의 케 브랑리 국립박물관도 현지 시간 26일부터 1892년 약탈한 유물 26점을 베냉에 반환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베냉이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5천여 점의 약탈 문화재 가운데 일부로, 프랑스 내 박물관에 있는 9만 점의 아프리카 예술품 가운데 7만여 점은 케 브랑리 박물관에 있습니다.

이번 문화재 반환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한 것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17년, 과거사를 바로잡겠다며 "아프리카 문화유산이 프랑스에 있는 것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그 뒤 베냉 문화재 26점과 세네갈 문화재 1점을 반환하는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27일 반환 행사에 참석해 "모든 젊은이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그들 나라의 역사를 소유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반환은 반환 그 이상이며 전반적인 협력 프로그램"으로 " 예술품의 양도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장기적 반환의 틀을 만들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프랑스로부터 반환된 아프리카의 약탈 문화재는 세네갈에 돌아간 칼 한 자루와 마다가스카르로 반환된 왕관 단 두 점입니다.

베냉 공화국으로 돌아갈 유물 26점은 프랑스가 1892년 다호메(베냉의 옛 이름) 왕국에 있던 아보메 왕궁에서 약탈한 것들로, 목제 의인화 조각, 왕좌, 신성한 제단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지난 26일(현지 시간)부터 31일까지 파리 케 브랑리 국립박물관에 특별 전시돼 대중에 공개된 뒤 다음 달 9일 베냉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베냉 외교부 장관은 반환과 관련, "정말로 많은 난관이 있어서 아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라면서 "역사적 순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베냉은 반환되는 문화재를 보관하기 위해 프랑스의 지원 등을 받아 별도의 박물관을 신축 중입니다.

아프리카 약탈 문화재의 약 90%는 유럽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아프리카 국가들은 식민지 시대에 유럽 탐험가와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약탈당한 수많은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해왔습니다.

독일도 내년 1897년 영국이 베냉 왕국(현 나이지리아 남부 에도주 베닌시티)에서 약탈해 독일로 팔려온 청동 문화재를 나이지리아로 반환하기로 했고, 영국 에버딘대학도 1957년 경매로 사들였던 베냉 왕(Oba)의 머리를 표현한 청동상을 반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직지심체요절(좌) /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우)프랑스에 있는 직지심체요절(좌) /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우)

■ 한국 문화재 '직지심체요절'도 언젠가는 돌아올까?…프랑스 문화장관 "다른 문화재에는 적용 안 된다" 선긋기

프랑스는 한국 문화재도 2천900점가량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직지)도 포함됩니다.

다만, 직지심체요절은 외국에 있는 대다수 한국 문화재와는 달리 약탈이나 도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구한말에 프랑스인이 적법하게 산 것으로 전해집니다.

로슬린 바셸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은, "프랑스 법률이 반환할 문화재 27점을 의도적으로 적시해 반환에 대한 일반적인 권리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또 프랑스 박물관들이 문화재를 계속 보유할 권한에 의문을 제기할 소지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베냉 문화재 반환이 법적인 선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것입니다.

사실 프랑스 박물관들이 보유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화재 9만여 점 가운데 불과 27점만을 반환하는 걸 놓고, 전문가들은 과거 식민지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지정학적 전략의 일부라고 분석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역사적인 상처를 치유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약탈 문화재 반환'이 적극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만 점의 아프리카 문화재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약탈 문화재를 소장한 영국 박물관은 어떤 입장일까?

영국은 제국주의 시절 약탈한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 '엘긴 마블'을 두고도 그리스와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데, 영국에서도 대표적인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 흔히 대영박물관)은 나이지리아에서 약탈한 유물을 '공유하고 전시할 기회'에 대해서만 말할 뿐 소유권 반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은 사실상 문화재를 반환할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히면서, 오히려 이런 흐름들로 문화재 반환의 물꼬가 터져 서구 국가 박물관들이 텅텅 비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굴당하거나 약탈 돼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온 것으로 추정되는 크메르 유물 45점 가운데 일부도굴당하거나 약탈 돼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온 것으로 추정되는 크메르 유물 45점 가운데 일부

■ 캄보디아, 뉴욕 미술관에 "도굴된 유물 돌려달라" 요구…과거 참회한 도굴꾼의 자백에 전모 드러나

본격적으로 식민화와 약탈에 나섰던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의 미술관들도 도난 유물에 대한 반환 논란에선 자유로울 수 없어 보입니다.

현지 시간 24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캄보디아 문화부 장관은 도난당한 크메르 제국 시대의 유물 45점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해당 유물이 1970∼1990년대 캄보디아가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겪던 시기에 도굴꾼들이 파헤쳐 국외로 유출한 문화재의 일부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유물들이 해외 수집가들의 손을 거쳐 해당 미술관에 기증되거나 판매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캄보디아 정부가 '사자'(Lion)라고만 명명한 한 전직 도굴꾼의 자백을 통해 알려지게 됐는데,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60대 초반의 이 도굴꾼은 과거를 참회하며 최근 2년간 정부 관리들을 수십 곳의 도굴 현장으로 안내해 자신과 다른 도굴꾼들의 소행을 상세히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도굴꾼들은 외곽 지역의 옛 사원들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석상과 청동 조각상, 황금과 보석으로 채워진 도자기 등을 빼돌렸는데, 지난해 숨진 미국의 유명 미술품 수집가 더글러스 래치포드와 2011년 숨진 맨해튼의 갤러리 소유주 도리스 위너 등이 기증한 다수의 조각상이 모두 '사자'가 빼돌린 유물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해당 유물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발견한 남은 조각과 끌로 파낸 자국 등 '사자'의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물리적 증거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또 확인된 45점 외에 1970∼2000년 사이 국외로 밀수돼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보유한 나머지 150여 점의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삭코나 장관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우리의 조각품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랍고 실망스럽다"면서 "우리는 진실이 드러나고, 모든 것이 반환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미술품 반환 사건에서 캄보디아 정부를 도왔던 미연방검찰은 미술관 관계자들을 만나 의혹이 제기된 유물에 대한 출처를 다시 조사할 것을 요청했는데, 이에 대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최근 일부 전시품에 대한 새로운 정보에 따라 미연방검찰청에 자발적으로 연락해 협력 의사를 전달했다"며 캄보디아 정부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선제적으로 조사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외에 미국 덴버 미술관도 캄보디아 정부와 협의한 뒤 래치포드와 연관된 크메르 시대의 유물 4점의 소유권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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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31 08:00:59
    취재K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아프리카 약탈 문화재 반환…영국 기관의 첫 베냉 문화재 반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지저스 칼리지가 현지 시간 27일, 식민지 시대였던 1890년대 서아프리카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했습니다.

1897년 영국군이 현재의 나이지리아에 위치한 베냉 왕국에서 약탈한 수백 점의 청동 유물 중 하나인 청동 수탉 조각상을 나이지리아 대표단에 돌려준 것인데, 영국 기관으로서는 처음 있는 베냉 문화재 반환 사례입니다. 이번에 반환한 베냉 청동 유물은 아프리카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유물의 하나로 꼽힙니다.

반환된 청동 수탉은 약탈당한 뒤 지저스칼리지 한 학생의 부모가 1905년 대학에 기증했고 대학 측이 2019년 나이지리아에 반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저스칼리지 학장은 반환 행사에 앞서 "이번 반환은 유물의 역사와 독특한 유산 가치에 대한 존중이라는 면에서 옳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유물 반환에 선구적으로 나서줬다며 대학 측에 감사를 표하고 다른 기관들도 유물을 반환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 프랑스 국립박물관도 베냉에 반환 독일도 내년부터 반환 시작

프랑스 파리의 케 브랑리 국립박물관도 현지 시간 26일부터 1892년 약탈한 유물 26점을 베냉에 반환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베냉이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5천여 점의 약탈 문화재 가운데 일부로, 프랑스 내 박물관에 있는 9만 점의 아프리카 예술품 가운데 7만여 점은 케 브랑리 박물관에 있습니다.

이번 문화재 반환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한 것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17년, 과거사를 바로잡겠다며 "아프리카 문화유산이 프랑스에 있는 것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그 뒤 베냉 문화재 26점과 세네갈 문화재 1점을 반환하는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27일 반환 행사에 참석해 "모든 젊은이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그들 나라의 역사를 소유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반환은 반환 그 이상이며 전반적인 협력 프로그램"으로 " 예술품의 양도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장기적 반환의 틀을 만들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프랑스로부터 반환된 아프리카의 약탈 문화재는 세네갈에 돌아간 칼 한 자루와 마다가스카르로 반환된 왕관 단 두 점입니다.

베냉 공화국으로 돌아갈 유물 26점은 프랑스가 1892년 다호메(베냉의 옛 이름) 왕국에 있던 아보메 왕궁에서 약탈한 것들로, 목제 의인화 조각, 왕좌, 신성한 제단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지난 26일(현지 시간)부터 31일까지 파리 케 브랑리 국립박물관에 특별 전시돼 대중에 공개된 뒤 다음 달 9일 베냉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베냉 외교부 장관은 반환과 관련, "정말로 많은 난관이 있어서 아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라면서 "역사적 순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베냉은 반환되는 문화재를 보관하기 위해 프랑스의 지원 등을 받아 별도의 박물관을 신축 중입니다.

아프리카 약탈 문화재의 약 90%는 유럽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아프리카 국가들은 식민지 시대에 유럽 탐험가와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약탈당한 수많은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해왔습니다.

독일도 내년 1897년 영국이 베냉 왕국(현 나이지리아 남부 에도주 베닌시티)에서 약탈해 독일로 팔려온 청동 문화재를 나이지리아로 반환하기로 했고, 영국 에버딘대학도 1957년 경매로 사들였던 베냉 왕(Oba)의 머리를 표현한 청동상을 반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직지심체요절(좌) /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우)
■ 한국 문화재 '직지심체요절'도 언젠가는 돌아올까?…프랑스 문화장관 "다른 문화재에는 적용 안 된다" 선긋기

프랑스는 한국 문화재도 2천900점가량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직지)도 포함됩니다.

다만, 직지심체요절은 외국에 있는 대다수 한국 문화재와는 달리 약탈이나 도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구한말에 프랑스인이 적법하게 산 것으로 전해집니다.

로슬린 바셸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은, "프랑스 법률이 반환할 문화재 27점을 의도적으로 적시해 반환에 대한 일반적인 권리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또 프랑스 박물관들이 문화재를 계속 보유할 권한에 의문을 제기할 소지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베냉 문화재 반환이 법적인 선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것입니다.

사실 프랑스 박물관들이 보유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화재 9만여 점 가운데 불과 27점만을 반환하는 걸 놓고, 전문가들은 과거 식민지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지정학적 전략의 일부라고 분석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역사적인 상처를 치유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약탈 문화재 반환'이 적극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만 점의 아프리카 문화재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약탈 문화재를 소장한 영국 박물관은 어떤 입장일까?

영국은 제국주의 시절 약탈한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 '엘긴 마블'을 두고도 그리스와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데, 영국에서도 대표적인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 흔히 대영박물관)은 나이지리아에서 약탈한 유물을 '공유하고 전시할 기회'에 대해서만 말할 뿐 소유권 반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은 사실상 문화재를 반환할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히면서, 오히려 이런 흐름들로 문화재 반환의 물꼬가 터져 서구 국가 박물관들이 텅텅 비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굴당하거나 약탈 돼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온 것으로 추정되는 크메르 유물 45점 가운데 일부
■ 캄보디아, 뉴욕 미술관에 "도굴된 유물 돌려달라" 요구…과거 참회한 도굴꾼의 자백에 전모 드러나

본격적으로 식민화와 약탈에 나섰던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의 미술관들도 도난 유물에 대한 반환 논란에선 자유로울 수 없어 보입니다.

현지 시간 24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캄보디아 문화부 장관은 도난당한 크메르 제국 시대의 유물 45점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해당 유물이 1970∼1990년대 캄보디아가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겪던 시기에 도굴꾼들이 파헤쳐 국외로 유출한 문화재의 일부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유물들이 해외 수집가들의 손을 거쳐 해당 미술관에 기증되거나 판매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캄보디아 정부가 '사자'(Lion)라고만 명명한 한 전직 도굴꾼의 자백을 통해 알려지게 됐는데,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60대 초반의 이 도굴꾼은 과거를 참회하며 최근 2년간 정부 관리들을 수십 곳의 도굴 현장으로 안내해 자신과 다른 도굴꾼들의 소행을 상세히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도굴꾼들은 외곽 지역의 옛 사원들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석상과 청동 조각상, 황금과 보석으로 채워진 도자기 등을 빼돌렸는데, 지난해 숨진 미국의 유명 미술품 수집가 더글러스 래치포드와 2011년 숨진 맨해튼의 갤러리 소유주 도리스 위너 등이 기증한 다수의 조각상이 모두 '사자'가 빼돌린 유물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해당 유물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발견한 남은 조각과 끌로 파낸 자국 등 '사자'의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물리적 증거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또 확인된 45점 외에 1970∼2000년 사이 국외로 밀수돼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보유한 나머지 150여 점의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삭코나 장관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우리의 조각품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랍고 실망스럽다"면서 "우리는 진실이 드러나고, 모든 것이 반환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미술품 반환 사건에서 캄보디아 정부를 도왔던 미연방검찰은 미술관 관계자들을 만나 의혹이 제기된 유물에 대한 출처를 다시 조사할 것을 요청했는데, 이에 대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최근 일부 전시품에 대한 새로운 정보에 따라 미연방검찰청에 자발적으로 연락해 협력 의사를 전달했다"며 캄보디아 정부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선제적으로 조사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외에 미국 덴버 미술관도 캄보디아 정부와 협의한 뒤 래치포드와 연관된 크메르 시대의 유물 4점의 소유권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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