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페이스북 아니라 메타? 수익률에 눈먼 거짓의 가상현실이 아니길

입력 2021.10.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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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은 파괴됐고 먹을 것은 구하기 힘들다. 빈부격차가 극심해 창고 같은 집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암울한 2045년. 가난한 10대 소년 '웨이드'는 이모의 판잣집에 얹혀살지만, 가상현실 세계인 '오아시스'에 접속하면 암울한 현실은 잊고 꿈과 같은 가상현실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오아시스 안에는 아바타처럼 가상의 자아가 존재해 현실과 똑같이 살아가기 때문.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 원'은 거대한 가상세계를 살아가는 실제의 사람들을 그린다. 가상세계의 공간은 현실세계의 그것과 흡사하고, 가상세계 속의 나는 현실세계보다 멋지고, 완벽하기 때문에 그 안의 삶은 현실보다 살 만하다.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이 가상세계로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사명을 '메타'로 바꾸겠다고 밝히며 메타버스로 알려진 가상의 디지털 영역에서 페이스북이 플랫폼을 넘어서 성장할 것이라고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다. 영화 속 가상현실의 실재화를 예고한 것.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소셜 네트워크 외에도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사회관계망을 망라하는 플랫폼을 여러 개 갖고 있고, 온라인 결제 시스템, 전자상거래, 미디어 등 다방면으로 손을 뻗치고 있는 거대 기술 기업이다. 페이스북이 메타로 사명 변환을 공개한 것은 미국과 유럽 등 의회에서 받고 있는 압박, 도덕성에 대한 신뢰 하락 등 현실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3차 혁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셈이다.

저커버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회사가 메타버스 기업으로 비춰지길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데스크탑에서 웹, 전화, 텍스트에서 사진, 비디오로 옮겨갔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메타버스가 모바일 인터넷의 후속작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 미래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도중에 실수가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관계망 플랫폼과 미디어,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는 페이스북에서 나의 디지털 아바타가 살고 있는 거주 공간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면 그 모습은 어떨까.

저커버그가 28일(현지 시간) 공개한 메타버스 시연저커버그가 28일(현지 시간) 공개한 메타버스 시연

저커버그가 공개한 영상은 메타버스에 대한 회사의 비전을 보여주는 장면들로 채워졌다. 가상 환경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상 스포츠를 하고, 가상 홈 오피스에서 업무 미팅으로 뛰어드는 것, 가상 아바타와 권투하는 것, 가상 릴리 패드에서 펜싱 등 운동을 한다. 호라이즌이라 불리는 가상 사무실에서 동료의 아바타와 함께 회의와 일을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 친구가 눈 앞에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는 홀로그램과 AR, VR을 모두 동원한 방식이다. 전용 고글을 쓰고 가상세계로 진입하면 펼쳐지는 세계다.

"여러분은 정말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세계나 플랫폼에 갇혀있지 않을 것입니다."

저커버그는 메타버스를 만드는 것은 단기적으로 불가능할 다른 기술 회사들, 개발자들에게 함께 하자고도 손을 내밀었다. 시작은 학습용 콘텐츠, 비디오 게임, 피트니스, 사무공간. 메타버스를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영역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안드로이드처럼 개발자들이 오픈소스를 공유하며 시작한다면 메타버스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앱과 프로그램 개발은 멀지 않아 보인다. 사용자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프로그램과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새로운 컴퓨팅 생태계에 동참할 가능성도 높다. 닌텐도의 '모여라 동물의 숲'이 대표적인 메타버스 콘텐츠임을 감안하면 현실화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실제로 저커버그는 개발자들에게 저가 혹은 무료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크리에이터 펀드 등 자본 투입을 통해 더 많은 개발자들을 유치하는 데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페이스북은 새로운 종류의 몰입 학습 앱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발자들을 위해 1억 5천만 달러를 배정했다.

저커버그가 28일(현지시간) 공개한 메타버스 시연저커버그가 28일(현지시간) 공개한 메타버스 시연

■ 벼랑 끝의 페이스북…'메타' 변신은 깊은 욕망의 실현

페이스북은 최근 몇 주 동안 역사상 가장 엄격하고 강도 높은 국회 감사에 직면했다. 미 의회의원들과 대중들은 인스타그램 사진 공유 앱이 십 대들의 자존심과 감정을 유인하는 알고리즘으로 수익률을 최대화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인들이 잊지 못한 1월 6일 국회 의사당 난입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페이스북은 가짜뉴스를 일부러 모른 척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오보를 증폭시켰고 선동적인 내용으로 불안을 부추기는 알고리즘을 (일부러) 방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자사 직원이었던 프랜시스 하우겐의 내부 고발로 낱낱이 드러난 페이스북의 욕망은, 그러나, 알고리즘 조작이 끝이 아닐 것이다.

저커버그는 미 언론 버지(The Verge)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생태계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미디어 경제학자 강정수 박사는 "애플과 구글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스마트폰 생태계에서는 주도권을 갖지 못한 저커버그가 증강현실, 가상현실 그리고 메타버스에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초기에는 메타버스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다수 기업은 표준과 상호 운용성 그리고 공익성을 외치겠지만 메타버스가 시장성을 갖기 시작한 순간 메타버스의 지배적 사업자가 되기 위해 기업은 치열한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직원 프랜시스 하우겐이 영국 의회에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을 고발하고 있다. “지금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극단으로 치닫도록 부추기는 사람들, 그리고 (수익률만 추구하는) 나쁜 사람들에 의해 길러지고 있습니다. 증오를 먹고 하는 알고리즘이죠.”페이스북 직원 프랜시스 하우겐이 영국 의회에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을 고발하고 있다. “지금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극단으로 치닫도록 부추기는 사람들, 그리고 (수익률만 추구하는) 나쁜 사람들에 의해 길러지고 있습니다. 증오를 먹고 하는 알고리즘이죠.”

페이스북이 사회문제가 되고, 추락한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어린이, 미성년자들이- 현실을 잊고 온라인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겠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집착하도록 하는 이를 유도하는 자극적인 영상과 게시물들으로 유인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종국에는 진실과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세뇌해간 그 알고리즘 말이다. 수익률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사실이 아닌, 거짓의, 증오로 가득 찬 게시물들을 눈 앞에 아른아른 보여주는 것이 페이스북의 마약이었던 것이다. 메타버스 자체는 어쩌면 인터넷→모바일의 다음 단계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페이스북에 의한, 페이스북을 위한 메타버스는 시작도 전에 경고등부터 켜야 할 것 같다.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는 곳."

영화 '레디 플레이 원'에서 주인공이 가상세계 '오아시스'를 가리켜 한 말이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은 오아시스를 부수고 현실로 뛰쳐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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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페이스북 아니라 메타? 수익률에 눈먼 거짓의 가상현실이 아니길
    • 입력 2021-10-31 11:00:33
    특파원 리포트

환경은 파괴됐고 먹을 것은 구하기 힘들다. 빈부격차가 극심해 창고 같은 집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암울한 2045년. 가난한 10대 소년 '웨이드'는 이모의 판잣집에 얹혀살지만, 가상현실 세계인 '오아시스'에 접속하면 암울한 현실은 잊고 꿈과 같은 가상현실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오아시스 안에는 아바타처럼 가상의 자아가 존재해 현실과 똑같이 살아가기 때문.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 원'은 거대한 가상세계를 살아가는 실제의 사람들을 그린다. 가상세계의 공간은 현실세계의 그것과 흡사하고, 가상세계 속의 나는 현실세계보다 멋지고, 완벽하기 때문에 그 안의 삶은 현실보다 살 만하다.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이 가상세계로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사명을 '메타'로 바꾸겠다고 밝히며 메타버스로 알려진 가상의 디지털 영역에서 페이스북이 플랫폼을 넘어서 성장할 것이라고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다. 영화 속 가상현실의 실재화를 예고한 것.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소셜 네트워크 외에도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사회관계망을 망라하는 플랫폼을 여러 개 갖고 있고, 온라인 결제 시스템, 전자상거래, 미디어 등 다방면으로 손을 뻗치고 있는 거대 기술 기업이다. 페이스북이 메타로 사명 변환을 공개한 것은 미국과 유럽 등 의회에서 받고 있는 압박, 도덕성에 대한 신뢰 하락 등 현실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3차 혁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셈이다.

저커버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회사가 메타버스 기업으로 비춰지길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데스크탑에서 웹, 전화, 텍스트에서 사진, 비디오로 옮겨갔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메타버스가 모바일 인터넷의 후속작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 미래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도중에 실수가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관계망 플랫폼과 미디어,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는 페이스북에서 나의 디지털 아바타가 살고 있는 거주 공간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면 그 모습은 어떨까.

저커버그가 28일(현지 시간) 공개한 메타버스 시연
저커버그가 공개한 영상은 메타버스에 대한 회사의 비전을 보여주는 장면들로 채워졌다. 가상 환경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상 스포츠를 하고, 가상 홈 오피스에서 업무 미팅으로 뛰어드는 것, 가상 아바타와 권투하는 것, 가상 릴리 패드에서 펜싱 등 운동을 한다. 호라이즌이라 불리는 가상 사무실에서 동료의 아바타와 함께 회의와 일을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 친구가 눈 앞에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는 홀로그램과 AR, VR을 모두 동원한 방식이다. 전용 고글을 쓰고 가상세계로 진입하면 펼쳐지는 세계다.

"여러분은 정말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세계나 플랫폼에 갇혀있지 않을 것입니다."

저커버그는 메타버스를 만드는 것은 단기적으로 불가능할 다른 기술 회사들, 개발자들에게 함께 하자고도 손을 내밀었다. 시작은 학습용 콘텐츠, 비디오 게임, 피트니스, 사무공간. 메타버스를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영역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안드로이드처럼 개발자들이 오픈소스를 공유하며 시작한다면 메타버스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앱과 프로그램 개발은 멀지 않아 보인다. 사용자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프로그램과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새로운 컴퓨팅 생태계에 동참할 가능성도 높다. 닌텐도의 '모여라 동물의 숲'이 대표적인 메타버스 콘텐츠임을 감안하면 현실화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실제로 저커버그는 개발자들에게 저가 혹은 무료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크리에이터 펀드 등 자본 투입을 통해 더 많은 개발자들을 유치하는 데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페이스북은 새로운 종류의 몰입 학습 앱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발자들을 위해 1억 5천만 달러를 배정했다.

저커버그가 28일(현지시간) 공개한 메타버스 시연
■ 벼랑 끝의 페이스북…'메타' 변신은 깊은 욕망의 실현

페이스북은 최근 몇 주 동안 역사상 가장 엄격하고 강도 높은 국회 감사에 직면했다. 미 의회의원들과 대중들은 인스타그램 사진 공유 앱이 십 대들의 자존심과 감정을 유인하는 알고리즘으로 수익률을 최대화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인들이 잊지 못한 1월 6일 국회 의사당 난입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페이스북은 가짜뉴스를 일부러 모른 척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오보를 증폭시켰고 선동적인 내용으로 불안을 부추기는 알고리즘을 (일부러) 방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자사 직원이었던 프랜시스 하우겐의 내부 고발로 낱낱이 드러난 페이스북의 욕망은, 그러나, 알고리즘 조작이 끝이 아닐 것이다.

저커버그는 미 언론 버지(The Verge)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생태계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미디어 경제학자 강정수 박사는 "애플과 구글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스마트폰 생태계에서는 주도권을 갖지 못한 저커버그가 증강현실, 가상현실 그리고 메타버스에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초기에는 메타버스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다수 기업은 표준과 상호 운용성 그리고 공익성을 외치겠지만 메타버스가 시장성을 갖기 시작한 순간 메타버스의 지배적 사업자가 되기 위해 기업은 치열한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직원 프랜시스 하우겐이 영국 의회에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을 고발하고 있다. “지금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극단으로 치닫도록 부추기는 사람들, 그리고 (수익률만 추구하는) 나쁜 사람들에 의해 길러지고 있습니다. 증오를 먹고 하는 알고리즘이죠.”
페이스북이 사회문제가 되고, 추락한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어린이, 미성년자들이- 현실을 잊고 온라인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겠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집착하도록 하는 이를 유도하는 자극적인 영상과 게시물들으로 유인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종국에는 진실과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세뇌해간 그 알고리즘 말이다. 수익률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사실이 아닌, 거짓의, 증오로 가득 찬 게시물들을 눈 앞에 아른아른 보여주는 것이 페이스북의 마약이었던 것이다. 메타버스 자체는 어쩌면 인터넷→모바일의 다음 단계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페이스북에 의한, 페이스북을 위한 메타버스는 시작도 전에 경고등부터 켜야 할 것 같다.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는 곳."

영화 '레디 플레이 원'에서 주인공이 가상세계 '오아시스'를 가리켜 한 말이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은 오아시스를 부수고 현실로 뛰쳐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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