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에 시작된 지옥…12년 만에 마수 벗어난 의붓딸

입력 2021.10.31 (13:01) 수정 2021.10.3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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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자료 사진/ 본 사건과 관련 없음KBS 자료 사진/ 본 사건과 관련 없음

"피고인을 징역 25년에 처한다. 12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출소 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관련 기관에의 10년간 취업 제한을 명한다."

전주지방법원(제11형사부) 1심 재판부가 지난 27일 50대 피고인에게 내린 벌입니다. 성폭력 치료를 명한 걸 보면 성 범죄를 심판한 게 맞는데, 징역 25년은 '성 범죄 선고로는' 중형입니다. 피고인은 그만큼 끔찍한 죄를 지었습니다.

■ 9살 시작된 '지옥'…임신·낙태 반복

피고인 50대 남성 A 씨는 2002년 한 여성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여성의 딸을 의붓딸로 들였습니다. 이후 의붓딸은 잦은 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 기록을 보면 "평소 폭행과 협박으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물리적·심리적으로 대들지 못하게 속박했다는 말인데, 더 끔찍한 일은 2009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피고인은 의붓딸을 성폭행했습니다. 이때 피해자 나이는 9살에 불과했습니다.

<343회> 증거 등에 의해 유죄로 인정된 성폭행 횟수입니다. 검사가 공소장에 쓴 범죄 사실은 모조리 유죄 판결이 떨어졌습니다. 반인륜적 범행의 시기와 장소, 방법이 공소사실에 나열됐으나 여기 옮기진 않겠습니다. 소녀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핍박의 굴레에 갇혔습니다.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계부는 갖은 방법으로 협박했습니다.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했고, "거부하면 여동생을 성폭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의붓딸은 14살에 처음 임신했고 이후로도 한 번 더 임신과 낙태를 했습니다. 성인이 돼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땐 휴대전화에 위치 추적 앱을 깔아야 했는데, 계부가 감시용으로 억지로 설치한 겁니다. 피해자가 더 좌절했을 대목이 있습니다. 친엄마는 이 끔찍한 일들을 알면서 방관했습니다.

■ 소녀가 성인 될 때까지…12년 만에 피해 신고

이 사건의 적용 법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중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13세 미만 미성년자 유사 성행위>,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유사 성행위>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중 <유사 성행위>입니다. 이 밖에 피고인은 폭행, 협박, 공용물건손상 혐의도 받습니다.

적용 법조 중간에 '13세 미만'이 사라집니다. 어린이였던 피해자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될 때까지 범행이 이어졌음을 증명하는 터라 매우 씁쓸합니다. 무려 12년 만에 피해자는 지인의 도움으로 피해를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의 반성문 제출 기록피고인의 반성문 제출 기록

■ 계부 반성문 17번 제출…재판부 중형 선고 "입에 담기도…."

계부는 재판대에 오른 뒤 반성문을 냈습니다. 모두 17차례입니다. 어느 날은 하루 두 번을 써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진심으로 참회한 것인지, 그저 선처를 구하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날 반성문 제출을 양형에 고려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재판부 판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입에 담거나, 떠올리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범행이다."

"피해자로 하여금 숨 쉴 공간조차 주지 아니했으며 정신과 영혼을 파괴하고 삶을 짓밟았다. 피해자가 그동안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 왔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다소 자극적이지만 사건을 보도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혹 어딘가 있을 같은 범죄를 향해 엄중히 경고하기 위함이고, 피해자를 구한 '지인'을 우리가 모두 닮아가길 원해서입니다. 무심코 지나친 곳에 피해자는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죄는 계부가 지었지만, 12년이 지나도록 피해자를 구해내지 못한 건 우리 사회 잘못입니다. 사건 보도는 이 구조적 결함의 책임을 따져 묻기 위한 시발점 역할이 되길 기대하며 씁니다.

앞서 징역 25년을 두고 '성 범죄 선고로는' 중형이라고 썼습니다. 아동을 성폭행한 범죄자에게 이 정도가 충분한 처벌인지는 계속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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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살에 시작된 지옥…12년 만에 마수 벗어난 의붓딸
    • 입력 2021-10-31 13:01:51
    • 수정2021-10-31 13:25:55
    취재K
KBS 자료 사진/ 본 사건과 관련 없음
"피고인을 징역 25년에 처한다. 12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출소 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관련 기관에의 10년간 취업 제한을 명한다."

전주지방법원(제11형사부) 1심 재판부가 지난 27일 50대 피고인에게 내린 벌입니다. 성폭력 치료를 명한 걸 보면 성 범죄를 심판한 게 맞는데, 징역 25년은 '성 범죄 선고로는' 중형입니다. 피고인은 그만큼 끔찍한 죄를 지었습니다.

■ 9살 시작된 '지옥'…임신·낙태 반복

피고인 50대 남성 A 씨는 2002년 한 여성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여성의 딸을 의붓딸로 들였습니다. 이후 의붓딸은 잦은 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 기록을 보면 "평소 폭행과 협박으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물리적·심리적으로 대들지 못하게 속박했다는 말인데, 더 끔찍한 일은 2009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피고인은 의붓딸을 성폭행했습니다. 이때 피해자 나이는 9살에 불과했습니다.

<343회> 증거 등에 의해 유죄로 인정된 성폭행 횟수입니다. 검사가 공소장에 쓴 범죄 사실은 모조리 유죄 판결이 떨어졌습니다. 반인륜적 범행의 시기와 장소, 방법이 공소사실에 나열됐으나 여기 옮기진 않겠습니다. 소녀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핍박의 굴레에 갇혔습니다.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계부는 갖은 방법으로 협박했습니다.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했고, "거부하면 여동생을 성폭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의붓딸은 14살에 처음 임신했고 이후로도 한 번 더 임신과 낙태를 했습니다. 성인이 돼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땐 휴대전화에 위치 추적 앱을 깔아야 했는데, 계부가 감시용으로 억지로 설치한 겁니다. 피해자가 더 좌절했을 대목이 있습니다. 친엄마는 이 끔찍한 일들을 알면서 방관했습니다.

■ 소녀가 성인 될 때까지…12년 만에 피해 신고

이 사건의 적용 법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중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13세 미만 미성년자 유사 성행위>,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유사 성행위>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중 <유사 성행위>입니다. 이 밖에 피고인은 폭행, 협박, 공용물건손상 혐의도 받습니다.

적용 법조 중간에 '13세 미만'이 사라집니다. 어린이였던 피해자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될 때까지 범행이 이어졌음을 증명하는 터라 매우 씁쓸합니다. 무려 12년 만에 피해자는 지인의 도움으로 피해를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의 반성문 제출 기록
■ 계부 반성문 17번 제출…재판부 중형 선고 "입에 담기도…."

계부는 재판대에 오른 뒤 반성문을 냈습니다. 모두 17차례입니다. 어느 날은 하루 두 번을 써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진심으로 참회한 것인지, 그저 선처를 구하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날 반성문 제출을 양형에 고려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재판부 판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입에 담거나, 떠올리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범행이다."

"피해자로 하여금 숨 쉴 공간조차 주지 아니했으며 정신과 영혼을 파괴하고 삶을 짓밟았다. 피해자가 그동안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 왔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다소 자극적이지만 사건을 보도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혹 어딘가 있을 같은 범죄를 향해 엄중히 경고하기 위함이고, 피해자를 구한 '지인'을 우리가 모두 닮아가길 원해서입니다. 무심코 지나친 곳에 피해자는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죄는 계부가 지었지만, 12년이 지나도록 피해자를 구해내지 못한 건 우리 사회 잘못입니다. 사건 보도는 이 구조적 결함의 책임을 따져 묻기 위한 시발점 역할이 되길 기대하며 씁니다.

앞서 징역 25년을 두고 '성 범죄 선고로는' 중형이라고 썼습니다. 아동을 성폭행한 범죄자에게 이 정도가 충분한 처벌인지는 계속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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