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면 수치 올라가는 ‘디지털’ 수도계량기?…전국 수십만 개 유통

입력 2021.11.02 (14:22) 수정 2021.11.0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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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해부터 3년 동안 2천6백억 원을 들여 이른바 '스마트미터링', 즉 수도계량과 검침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들여 디지털로 전환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정확한 계량을 위해서인데요.

황당하게도 지자체와 수자원공사 등에 납품된 상당수 디지털 수도계량기들이 간단한 조작으로도 계량 값이 올라가는것으로 KBS 취재결과 드러났습니다.

■ 지시부 돌릴 때마다 계량 값 늘어…센서 함께 돌며 내부 자석에 영향 받아

디지털 수도계량기는 물을 사용하면 쓴 만큼의 양이 화면에 숫자로 표시됩니다.

그런데 시중에 유통된 디지털 계량기 상당수가 화면이 있는 이른바 지시부를 손으로 돌릴 때마다 계량 값이 올라간다는 믿기 힘든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제보 내용 검증을 위해 KBS가 4개 업체의 디지털 계량기 표본을 확보해 확인해봤습니다.

이 가운데 3개는 수자원공사에 납품한 업체의 제품이었습니다. 지시부를 몇 차례 돌리자 제보 내용처럼 4개 제품 모두 화면에 표시된 숫자가 올라갔습니다.



원래 디지털 계량기는 내부로 물이 지나가면서 자석으로 된 '임펠러'가 돌면 센서가 이를 측정해 숫자로 나타내는 구조인데요.

지시부를 돌릴 때 센서까지 함께 돌아가면서 자석의 영향을 받아 수치가 바뀌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제품은 180도 회전할 때마다 0.3ml가량 계량 값이 늘었고 실제 가정에 설치된 제품들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됐습니다.

상수도 업계 관계자는 국내 계량기 업체 30~40곳 가운데 2~3곳을 빼고는 생산한 제품에서 이런 현상이 공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 검침 편의 때문에 지시부 돌아가게 설계…공인 기관 승인도 통과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인 수도미터 기술기준에는 '외부에 조정장치가 있는 계량기는 임의로 조정할 수 없도록 봉인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디지털 수도계량기들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이유는 검침할 때 편의를 위해서였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설치한 디지털 계량기들의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 있거나 각도가 틀어져 똑바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지시부를 돌려 검침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설계됐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원격 검침 시스템이 대부분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검침할 때 지시부를 돌리는 경우가 많아 작지만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겁니다.

그러나 이런 디지털 계량기는 공인 기관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의 형식 승인까지 통과했습니다.

연구원 측은 기술기준이 지시부의 회전 여부까지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고, 또 계량기 자체 성능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통과시켰다고 밝혔습니다.



■ 최근 3년 동안 90만 개 유통 추정…디지털 수도계량기 신뢰도 우려

이처럼 조작이 가능하고 오차가 생길 수 있는 디지털 계량기는 최근 3년 동안 조달청을 통해서만 90만 개가량 유통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따라 전국 스마트 관망관리 인프라 구축사업의 30%가량을 담당하는 수자원공사도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는데요.

납품 예정인 디지털 계량기 2만 8천여 개에 대해 인수를 중단하고 이미 납품된 제품 5만 천여 개 가운데 아직 설치하지 않은 제품은 설치를 중단했습니다.

또 계약을 맺은 업체 9곳의 제품을 표본조사하고 실제 계량 값이 바뀌는 업체의 납품 및 설치된 제품에 대해서는 이달 중순까지 전수조사할 계획입니다.

실제 조작할 수 있는 양과 오차는 작을 수 있겠지만, 정확한 계량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디지털 수도계량기의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는 후속 조치가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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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리면 수치 올라가는 ‘디지털’ 수도계량기?…전국 수십만 개 유통
    • 입력 2021-11-02 14:22:15
    • 수정2021-11-02 17:47:32
    취재K

정부가 지난해부터 3년 동안 2천6백억 원을 들여 이른바 '스마트미터링', 즉 수도계량과 검침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들여 디지털로 전환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정확한 계량을 위해서인데요.

황당하게도 지자체와 수자원공사 등에 납품된 상당수 디지털 수도계량기들이 간단한 조작으로도 계량 값이 올라가는것으로 KBS 취재결과 드러났습니다.

■ 지시부 돌릴 때마다 계량 값 늘어…센서 함께 돌며 내부 자석에 영향 받아

디지털 수도계량기는 물을 사용하면 쓴 만큼의 양이 화면에 숫자로 표시됩니다.

그런데 시중에 유통된 디지털 계량기 상당수가 화면이 있는 이른바 지시부를 손으로 돌릴 때마다 계량 값이 올라간다는 믿기 힘든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제보 내용 검증을 위해 KBS가 4개 업체의 디지털 계량기 표본을 확보해 확인해봤습니다.

이 가운데 3개는 수자원공사에 납품한 업체의 제품이었습니다. 지시부를 몇 차례 돌리자 제보 내용처럼 4개 제품 모두 화면에 표시된 숫자가 올라갔습니다.



원래 디지털 계량기는 내부로 물이 지나가면서 자석으로 된 '임펠러'가 돌면 센서가 이를 측정해 숫자로 나타내는 구조인데요.

지시부를 돌릴 때 센서까지 함께 돌아가면서 자석의 영향을 받아 수치가 바뀌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제품은 180도 회전할 때마다 0.3ml가량 계량 값이 늘었고 실제 가정에 설치된 제품들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됐습니다.

상수도 업계 관계자는 국내 계량기 업체 30~40곳 가운데 2~3곳을 빼고는 생산한 제품에서 이런 현상이 공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 검침 편의 때문에 지시부 돌아가게 설계…공인 기관 승인도 통과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인 수도미터 기술기준에는 '외부에 조정장치가 있는 계량기는 임의로 조정할 수 없도록 봉인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디지털 수도계량기들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이유는 검침할 때 편의를 위해서였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설치한 디지털 계량기들의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 있거나 각도가 틀어져 똑바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지시부를 돌려 검침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설계됐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원격 검침 시스템이 대부분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검침할 때 지시부를 돌리는 경우가 많아 작지만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겁니다.

그러나 이런 디지털 계량기는 공인 기관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의 형식 승인까지 통과했습니다.

연구원 측은 기술기준이 지시부의 회전 여부까지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고, 또 계량기 자체 성능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통과시켰다고 밝혔습니다.



■ 최근 3년 동안 90만 개 유통 추정…디지털 수도계량기 신뢰도 우려

이처럼 조작이 가능하고 오차가 생길 수 있는 디지털 계량기는 최근 3년 동안 조달청을 통해서만 90만 개가량 유통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따라 전국 스마트 관망관리 인프라 구축사업의 30%가량을 담당하는 수자원공사도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는데요.

납품 예정인 디지털 계량기 2만 8천여 개에 대해 인수를 중단하고 이미 납품된 제품 5만 천여 개 가운데 아직 설치하지 않은 제품은 설치를 중단했습니다.

또 계약을 맺은 업체 9곳의 제품을 표본조사하고 실제 계량 값이 바뀌는 업체의 납품 및 설치된 제품에 대해서는 이달 중순까지 전수조사할 계획입니다.

실제 조작할 수 있는 양과 오차는 작을 수 있겠지만, 정확한 계량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디지털 수도계량기의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는 후속 조치가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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