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연인 집 불나자 뛰어들었다던 남성…알고 보니 스토킹 방화범

입력 2021.11.04 (17:01) 수정 2021.11.05 (09:0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3년 전 한 여성이 살고 있던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 5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당시 여성은 여행을 떠나 집을 비운 상태였는데요.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아파트 CCTV에 이 여성의 전 남자친구인 40대 A 씨가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포착된 겁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헤어진 여성에게 물건을 돌려주려고 집을 찾아갔고, 갑자기 불이 나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진술했는데요.

화재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헤어진 여성에 앙심 품은 남성, 여성 집 찾아가 불 지르기로 결심

2018년 1월 A 씨는 여성 B 씨를 만나 3개월가량 사귀다 헤어졌습니다. 사귀던 중 A 씨는 B 씨에게 5백만 원을 빌려줬는데 헤어지고 두 달쯤 뒤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B 씨는 헤어진 뒤에도 A 씨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계속 하는 등 스토커처럼 행동한다며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날 A 씨는 5백만 원을 돌려받지 못한 것에 대해 B 씨를 사기죄로 형사고소 했습니다. 이렇게 맞불을 놓은 끝에 너무했다 싶었는지 이들은 잠시 화해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사이가 다시 나빠졌고 앙심을 품은 A 씨는 B 씨 집에 불을 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 양말만 신고 아파트 돌아다닌 옛 남자친구...방화 혐의로 재판 넘겨져

2018년 7월 26일 새벽, A 씨는 B 씨 집인 충남 아산시의 한 아파트 인근 야외주차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그리고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아파트 출입구 옆 창문을 넘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뒤 비상계단으로 5층인 B 씨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미리 알고 있었던 A 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작은방 침대 매트리스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습니다.

A 씨는 곧장 집을 빠져나왔고 불은 순식간에 방 전체로 옮겨붙어 내부 60㎡를 태워 소방서 추산 5천3백여만 원의 재산피해를 낸 뒤 40분 만에 꺼졌습니다.

새벽에 갑작스럽게 난 불에 아파트 주민 10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도 빚어졌습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한 경찰은 아파트 CCTV에 집주인의 옛 남자친구인 A 씨가 양말만 신고 돌아다닌 모습이 찍힌 사실을 확인했고 검찰은 A 씨를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 "사람들 구하려고 아파트 들어가...신발 벗은 건 다한증 때문"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수사 과정에 이어 법정에서도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B 씨 집을 찾아간 것은 USB와 차량용 휴대전화 거치대를 돌려주기 위해서였고 "불이야"라고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듣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불이 난 방에서 발견된 멀티콘센트 전원선에서 단락흔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전기적 원인으로 불이 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양말만 신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것은 다한증이 있어서 차 안에서 신발을 벗고 있었는데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뛰쳐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 남성 빠져나오고 5분 뒤 화재경보기 작동...1심에서 징역 2년 선고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먼저 CCTV 등으로 확인된 A 씨의 행적이 진술과 달랐습니다.

사건 당일 새벽 2시 53분, A 씨가 비상계단 1층 출입문으로 아파트를 빠져나오는 모습이 CCTV에 찍혔습니다. 앞서 A 씨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CCTV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은 화재경보기가 작동하기 전 5분 이내에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화재경보기가 작동한 시간은 A 씨가 아파트 비상계단 출입문에서 나오고 5분 뒤인 새벽 2시 58분이었습니다.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는 A 씨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A 씨의 휴대전화를 분석한 결과 사건 당일 수차례 화재 사고 기사를 찾아보거나 '화재 용의자 조사', '화재 용의자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등의 검색어를 입력했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재판부는 또 A 씨에게 확실한 범행 동기가 있고 발화지점이 전기적 요인으로 불이 나기 어려워 보이는 점, A 씨가 CCTV 사각지대인 아파트 1층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고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양말만 신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이유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에 반성의 기미도 없어"...항소심서 징역 3년 선고

A 씨는 항소했지만, 오히려 죗값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대전고법 형사3부는 최근 A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1년이 가중된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던 B 씨가 겪었을 정신적 충격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A 씨가 수사과정에서 행적을 거짓 진술하고 법정에서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등 최소한의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양말만 신고 CCTV 사각지대를 골라 아파트 내부로 진입해 불을 지르는 등 치밀한 계획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 점, 15층 규모의 아파트에서 큰 인명피해까지 일어날 수 있었던 범행인 점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옛 연인 집 불나자 뛰어들었다던 남성…알고 보니 스토킹 방화범
    • 입력 2021-11-04 17:01:07
    • 수정2021-11-05 09:03:43
    취재K

3년 전 한 여성이 살고 있던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 5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당시 여성은 여행을 떠나 집을 비운 상태였는데요.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아파트 CCTV에 이 여성의 전 남자친구인 40대 A 씨가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포착된 겁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헤어진 여성에게 물건을 돌려주려고 집을 찾아갔고, 갑자기 불이 나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진술했는데요.

화재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헤어진 여성에 앙심 품은 남성, 여성 집 찾아가 불 지르기로 결심

2018년 1월 A 씨는 여성 B 씨를 만나 3개월가량 사귀다 헤어졌습니다. 사귀던 중 A 씨는 B 씨에게 5백만 원을 빌려줬는데 헤어지고 두 달쯤 뒤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B 씨는 헤어진 뒤에도 A 씨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계속 하는 등 스토커처럼 행동한다며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날 A 씨는 5백만 원을 돌려받지 못한 것에 대해 B 씨를 사기죄로 형사고소 했습니다. 이렇게 맞불을 놓은 끝에 너무했다 싶었는지 이들은 잠시 화해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사이가 다시 나빠졌고 앙심을 품은 A 씨는 B 씨 집에 불을 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 양말만 신고 아파트 돌아다닌 옛 남자친구...방화 혐의로 재판 넘겨져

2018년 7월 26일 새벽, A 씨는 B 씨 집인 충남 아산시의 한 아파트 인근 야외주차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그리고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아파트 출입구 옆 창문을 넘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뒤 비상계단으로 5층인 B 씨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미리 알고 있었던 A 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작은방 침대 매트리스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습니다.

A 씨는 곧장 집을 빠져나왔고 불은 순식간에 방 전체로 옮겨붙어 내부 60㎡를 태워 소방서 추산 5천3백여만 원의 재산피해를 낸 뒤 40분 만에 꺼졌습니다.

새벽에 갑작스럽게 난 불에 아파트 주민 10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도 빚어졌습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한 경찰은 아파트 CCTV에 집주인의 옛 남자친구인 A 씨가 양말만 신고 돌아다닌 모습이 찍힌 사실을 확인했고 검찰은 A 씨를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 "사람들 구하려고 아파트 들어가...신발 벗은 건 다한증 때문"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수사 과정에 이어 법정에서도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B 씨 집을 찾아간 것은 USB와 차량용 휴대전화 거치대를 돌려주기 위해서였고 "불이야"라고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듣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불이 난 방에서 발견된 멀티콘센트 전원선에서 단락흔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전기적 원인으로 불이 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양말만 신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것은 다한증이 있어서 차 안에서 신발을 벗고 있었는데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뛰쳐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 남성 빠져나오고 5분 뒤 화재경보기 작동...1심에서 징역 2년 선고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먼저 CCTV 등으로 확인된 A 씨의 행적이 진술과 달랐습니다.

사건 당일 새벽 2시 53분, A 씨가 비상계단 1층 출입문으로 아파트를 빠져나오는 모습이 CCTV에 찍혔습니다. 앞서 A 씨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CCTV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은 화재경보기가 작동하기 전 5분 이내에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화재경보기가 작동한 시간은 A 씨가 아파트 비상계단 출입문에서 나오고 5분 뒤인 새벽 2시 58분이었습니다.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는 A 씨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A 씨의 휴대전화를 분석한 결과 사건 당일 수차례 화재 사고 기사를 찾아보거나 '화재 용의자 조사', '화재 용의자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등의 검색어를 입력했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재판부는 또 A 씨에게 확실한 범행 동기가 있고 발화지점이 전기적 요인으로 불이 나기 어려워 보이는 점, A 씨가 CCTV 사각지대인 아파트 1층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고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양말만 신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이유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에 반성의 기미도 없어"...항소심서 징역 3년 선고

A 씨는 항소했지만, 오히려 죗값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대전고법 형사3부는 최근 A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1년이 가중된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던 B 씨가 겪었을 정신적 충격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A 씨가 수사과정에서 행적을 거짓 진술하고 법정에서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등 최소한의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양말만 신고 CCTV 사각지대를 골라 아파트 내부로 진입해 불을 지르는 등 치밀한 계획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 점, 15층 규모의 아파트에서 큰 인명피해까지 일어날 수 있었던 범행인 점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