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가 친환경이라고?’…美 연구소에 공개 저격당한 ‘K-택소노미’

입력 2021.11.0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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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 시계는 1분 남았고,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개막식에서 한 말입니다. 기후재앙에 대한 ‘위기감’이 오롯이 담긴 말입니다.

사용할 전기를 만들고, 공장을 돌리기 위해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쓰면서 탄소가 나옵니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활동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활동도 하면서 탄소 배출을 가능한 줄이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겁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무엇이 친환경인가?’입니다.

단어를 모르면 사전을 찾듯,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녹색 사업을 하거나 투자하기 위해선 어떤 사업과 산업이 친환경인지 알려주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무엇이 친환경·녹색 사업인지 구분해주는 ‘사전’ 같은 걸 만들고 있습니다. 친환경·녹색 사업을 알려주는 기준인데, 이걸 ‘녹색분류체계’, 다른 말로 ‘택소노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 택소노미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른바 ‘K-택소노미’입니다. 주체는 환경부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가 우리나라 ‘K-택소노미’를 공개 저격하고 나섰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 ‘LNG(천연가스)’가 친환경?


환경부가 ‘K-택소노미’를 만들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입니다. 올 상반기 초안을 만들고 의견수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갑자기 ‘K-택소노미’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추가했습니다.

엄밀히 말해 LNG는 화석연료인데, 화석연료를 친환경에 포함 시킨 게 의아합니다. 그래서 이유를 직접 물어봤습니다.

환경부 관계자의 답은 이랬습니다. “산업계 요구가 커서 LNG를 K-택소노미에 추가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LNG가 화석연료는 맞지만, 석탄에서 LNG로 (전력) 발전을 전환하는 정부 방침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한시적으로 LNG를 넣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산업계에서는 LNG가 K-택소노미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반환경’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환경으로 낙인이 찍힐 경우 투자에 불이익이 있어서 수정안에 추가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산업계의 요구’로 LNG가 친환경으로 바뀐 이유라는 겁니다.


■ ‘LNG가 친환경이라고?’…한국 공개 저격한 美 연구소

K-택소노미에 LNG를 포함 시킨다는 소식에 나라 안팎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택소노미는 기후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녹색 경제활동을 알려주는 일종의 ‘인증’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화석연료로 탄소를 배출하는 LNG가 K-택소노미에 들어가면, 이를 참고했다가 기후위기를 가속화 시키는 LNG 발전소 등에 투자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에너지경제·재무분석 연구소(IEEFA)가 결국 한국을 공개 저격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 K-택소노미에 LNG가 들어가면 세계 금융시장에서 신뢰와 투자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KBS가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크리스티나 응(Christina Ng) 팀장을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보셨듯이 크리스티나 팀장은 “LNG는 엄연한 화석연료다. LNG가 포함된다면, K-택소노미는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거로 볼 수 있다.”라면서 세계 ESG 투자자들이 한국 투자를 꺼릴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결국, 투자 불이익을 걱정해 추가한 ‘LNG’가 오히려 투자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탄소중립’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것

우리나라의 택소노미 작업은 매우 빠른 편입니다. K-택소노미는 올 연말쯤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친환경·녹색 사업으로 인정하는 K-택소노미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첫 단추를 잘못 낀 셈이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 법인인 ‘기후솔루션’도 LNG를 포함한 택소노미 제정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입니다.

한수연 / 기후솔루션 연구원
“택소노미는 ‘어떤 경제활동이 녹색(친환경)경제 활동’인지 알려주는 일종의 투자 참고 자료입니다. 택소노미에 LNG 발전을 포함하는 것은 기후위기 극복에 기여하지 않는 화석연료 발전 활동에 녹색인증을 부여해, 이른바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용인하는 꼴이 됩니다.”

“시기적으로 EU(유럽연합) 다음으로 앞서지만, 내용은 후퇴해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도 K-택소노미를 보고 ‘우리도 택소노미에 LNG를 넣어도 되겠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30년까지 한시적으로 LNG를 택소노미에 포함한다고 하지만, 투자는 초기에 이뤄집니다. 2030년 이후에 기준을 강화한들 LNG 발전소에 이미 투자가 이뤄진 후죠.”

K-택소노미 간담회에 참가하는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역시 “금융 지원을 차단하는 네거티브 성격의 규제라면 LNG가 포함될 수 있지만, K-택소노미는 (친환경·녹색 경제를 인정하는) 포지티브 성격의 작업이다. 환경부가 ‘무엇이 녹색경제로 규정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당초 작업을 잊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정부는 K-택소노미를 탄소중립위원회와 국회 등에 보고하고, 12월에 확정합니다. K-택소노미는 ‘녹색채권 가이드라인’ 부록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탄소 감축이 시작돼야 합니다. 기후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친환경 경제활동의 환경을 만드는 것도 시급합니다.

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기준으로 친환경·녹색 경제활동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겁니다. 국내외의 걱정 어린 시선이 한국에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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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NG가 친환경이라고?’…美 연구소에 공개 저격당한 ‘K-택소노미’
    • 입력 2021-11-05 07:01:24
    취재K

“지구 종말 시계는 1분 남았고,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개막식에서 한 말입니다. 기후재앙에 대한 ‘위기감’이 오롯이 담긴 말입니다.

사용할 전기를 만들고, 공장을 돌리기 위해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쓰면서 탄소가 나옵니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활동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활동도 하면서 탄소 배출을 가능한 줄이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겁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무엇이 친환경인가?’입니다.

단어를 모르면 사전을 찾듯,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녹색 사업을 하거나 투자하기 위해선 어떤 사업과 산업이 친환경인지 알려주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무엇이 친환경·녹색 사업인지 구분해주는 ‘사전’ 같은 걸 만들고 있습니다. 친환경·녹색 사업을 알려주는 기준인데, 이걸 ‘녹색분류체계’, 다른 말로 ‘택소노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 택소노미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른바 ‘K-택소노미’입니다. 주체는 환경부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가 우리나라 ‘K-택소노미’를 공개 저격하고 나섰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 ‘LNG(천연가스)’가 친환경?


환경부가 ‘K-택소노미’를 만들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입니다. 올 상반기 초안을 만들고 의견수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갑자기 ‘K-택소노미’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추가했습니다.

엄밀히 말해 LNG는 화석연료인데, 화석연료를 친환경에 포함 시킨 게 의아합니다. 그래서 이유를 직접 물어봤습니다.

환경부 관계자의 답은 이랬습니다. “산업계 요구가 커서 LNG를 K-택소노미에 추가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LNG가 화석연료는 맞지만, 석탄에서 LNG로 (전력) 발전을 전환하는 정부 방침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한시적으로 LNG를 넣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산업계에서는 LNG가 K-택소노미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반환경’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환경으로 낙인이 찍힐 경우 투자에 불이익이 있어서 수정안에 추가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산업계의 요구’로 LNG가 친환경으로 바뀐 이유라는 겁니다.


■ ‘LNG가 친환경이라고?’…한국 공개 저격한 美 연구소

K-택소노미에 LNG를 포함 시킨다는 소식에 나라 안팎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택소노미는 기후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녹색 경제활동을 알려주는 일종의 ‘인증’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화석연료로 탄소를 배출하는 LNG가 K-택소노미에 들어가면, 이를 참고했다가 기후위기를 가속화 시키는 LNG 발전소 등에 투자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에너지경제·재무분석 연구소(IEEFA)가 결국 한국을 공개 저격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 K-택소노미에 LNG가 들어가면 세계 금융시장에서 신뢰와 투자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KBS가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크리스티나 응(Christina Ng) 팀장을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보셨듯이 크리스티나 팀장은 “LNG는 엄연한 화석연료다. LNG가 포함된다면, K-택소노미는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거로 볼 수 있다.”라면서 세계 ESG 투자자들이 한국 투자를 꺼릴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결국, 투자 불이익을 걱정해 추가한 ‘LNG’가 오히려 투자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탄소중립’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것

우리나라의 택소노미 작업은 매우 빠른 편입니다. K-택소노미는 올 연말쯤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친환경·녹색 사업으로 인정하는 K-택소노미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첫 단추를 잘못 낀 셈이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 법인인 ‘기후솔루션’도 LNG를 포함한 택소노미 제정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입니다.

한수연 / 기후솔루션 연구원
“택소노미는 ‘어떤 경제활동이 녹색(친환경)경제 활동’인지 알려주는 일종의 투자 참고 자료입니다. 택소노미에 LNG 발전을 포함하는 것은 기후위기 극복에 기여하지 않는 화석연료 발전 활동에 녹색인증을 부여해, 이른바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용인하는 꼴이 됩니다.”

“시기적으로 EU(유럽연합) 다음으로 앞서지만, 내용은 후퇴해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도 K-택소노미를 보고 ‘우리도 택소노미에 LNG를 넣어도 되겠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30년까지 한시적으로 LNG를 택소노미에 포함한다고 하지만, 투자는 초기에 이뤄집니다. 2030년 이후에 기준을 강화한들 LNG 발전소에 이미 투자가 이뤄진 후죠.”

K-택소노미 간담회에 참가하는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역시 “금융 지원을 차단하는 네거티브 성격의 규제라면 LNG가 포함될 수 있지만, K-택소노미는 (친환경·녹색 경제를 인정하는) 포지티브 성격의 작업이다. 환경부가 ‘무엇이 녹색경제로 규정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당초 작업을 잊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정부는 K-택소노미를 탄소중립위원회와 국회 등에 보고하고, 12월에 확정합니다. K-택소노미는 ‘녹색채권 가이드라인’ 부록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탄소 감축이 시작돼야 합니다. 기후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친환경 경제활동의 환경을 만드는 것도 시급합니다.

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기준으로 친환경·녹색 경제활동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겁니다. 국내외의 걱정 어린 시선이 한국에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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