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 속 사막화…‘갯녹음’에 신음하는 제주 바다

입력 2021.11.0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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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 바닷속 (영상제공=녹색연합)지난해 11월,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 바닷속 (영상제공=녹색연합)

해조류와 산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바위는 온통 잿빛 석회조류로 뒤덮였고, 물고기들은 그 주변을 무리 지어 다닙니다.

지난해 11월 촬영된 서귀포시 대정읍의 바닷속 모습입니다.

올해 9월, 서귀포항 일대 바닷속 (영상제공=녹색연합)올해 9월, 서귀포항 일대 바닷속 (영상제공=녹색연합)

또 다른 바닷가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올해 9월 촬영된 서귀포항 일대 바닷속. 하얗게 변해가는 바위들만 눈에 띌 뿐, 황량합니다.

바닷속에서 해조류들이 자라지 못하는, 일명 ‘갯녹음’ 현상입니다. 해조류가 사라져 바다가 황폐해진다는 점에서 ‘바닷속 사막화’라 부르기도 합니다.

지난 3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해안가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지난 3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해안가에서 물질하는 해녀들

어촌계에서는 갯녹음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채취하던 해조류가 날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은표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어촌계장은 “10여 년 전엔 톳이나 우뭇가사리만으로 1년 농사를 끝냈다”며 “하지만 요새는 해조류가 많이 안 나오다 보니 수익도 10%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해조류를 먹고 사는 성게들도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홍은표 어촌계장은 “성게들 크기도 반 토막 났다”며 “성게들이 먹고살 게 없으니 알도 거의 없어, 성게 알 가격이 크게 뛰었다”고 덧붙였습니다.

■ 녹색연합 “제주 해안마을 전역서 갯녹음 확인”

문제는 바닷속에서 확인되던 갯녹음이, 점차 연안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녹색연합이 최근 두 달 동안 썰물 때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제주 지역 조간대를 전수조사한 결과, 제주 97개 해안마을 전역에서 갯녹음이 확인됐습니다.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백화 현상’입니다. 백화 현상이란 해조류가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석회조류가 바위를 뒤덮은 뒤 죽어, 하얗게 남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은 백화 현상을 갯녹음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성산일출봉 인근 바닷가에서도 확인된 갯녹음성산일출봉 인근 바닷가에서도 확인된 갯녹음

실제로 취재진이 찾은 유명 관광지 인근 해안가에서 어렵지 않게 백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서귀포시의 한 해안가. 썰물 때 물이 빠진 해안가엔, 곳곳에 페인트를 칠한 듯 하얗게 변해버린 바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현장에 동행한 녹색연합 활동가는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원래는 초록빛 해조류들이 뒤덮고 있어야 할 해안가이지만 해조류는 사라지고, 바위들은 색을 잃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해조류가 일부라도 발견된 해안가는 18곳으로 전체의 18.5%에 그쳤습니다.

윤상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갯녹음이 해양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건 물론, 특히 세계자연유산인 제주의 경관마저 훼손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갯녹음 현상은 수치상으로도 심각합니다.

2019년 기준 한국수산자원공단이 수심 20m 이하에서 갯녹음을 조사한 결과, 제주 해역에서 확인된 면적은 5102.9ha로 전체의 33.3%에 달했습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3%가량 줄었지만, 이마저도 전국에서 두 번째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다만 녹색연합 주장대로, 갯녹음이 조간대에서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갯녹음 발생 원인조차 몰라…실태조사 시급

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 한국수산자원공단은 갯녹음을 과도한 연안 개발과 환경 오염,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 등으로 인한 복합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은 지금부터라도 갯녹음에 대한 철저한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상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제주 연안이 갯녹음 말기 상태에 왔지만, 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갯녹음 상황과 마을별 피해, 주요 원인 등을 규명하는 조사를 토대로 한 종합적인 관리 대책을 제주도정이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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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 속 사막화…‘갯녹음’에 신음하는 제주 바다
    • 입력 2021-11-05 07:01:25
    취재K
지난해 11월,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 바닷속 (영상제공=녹색연합)
해조류와 산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바위는 온통 잿빛 석회조류로 뒤덮였고, 물고기들은 그 주변을 무리 지어 다닙니다.

지난해 11월 촬영된 서귀포시 대정읍의 바닷속 모습입니다.

올해 9월, 서귀포항 일대 바닷속 (영상제공=녹색연합)
또 다른 바닷가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올해 9월 촬영된 서귀포항 일대 바닷속. 하얗게 변해가는 바위들만 눈에 띌 뿐, 황량합니다.

바닷속에서 해조류들이 자라지 못하는, 일명 ‘갯녹음’ 현상입니다. 해조류가 사라져 바다가 황폐해진다는 점에서 ‘바닷속 사막화’라 부르기도 합니다.

지난 3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해안가에서 물질하는 해녀들
어촌계에서는 갯녹음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채취하던 해조류가 날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은표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어촌계장은 “10여 년 전엔 톳이나 우뭇가사리만으로 1년 농사를 끝냈다”며 “하지만 요새는 해조류가 많이 안 나오다 보니 수익도 10%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해조류를 먹고 사는 성게들도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홍은표 어촌계장은 “성게들 크기도 반 토막 났다”며 “성게들이 먹고살 게 없으니 알도 거의 없어, 성게 알 가격이 크게 뛰었다”고 덧붙였습니다.

■ 녹색연합 “제주 해안마을 전역서 갯녹음 확인”

문제는 바닷속에서 확인되던 갯녹음이, 점차 연안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녹색연합이 최근 두 달 동안 썰물 때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제주 지역 조간대를 전수조사한 결과, 제주 97개 해안마을 전역에서 갯녹음이 확인됐습니다.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백화 현상’입니다. 백화 현상이란 해조류가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석회조류가 바위를 뒤덮은 뒤 죽어, 하얗게 남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은 백화 현상을 갯녹음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성산일출봉 인근 바닷가에서도 확인된 갯녹음
실제로 취재진이 찾은 유명 관광지 인근 해안가에서 어렵지 않게 백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서귀포시의 한 해안가. 썰물 때 물이 빠진 해안가엔, 곳곳에 페인트를 칠한 듯 하얗게 변해버린 바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현장에 동행한 녹색연합 활동가는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원래는 초록빛 해조류들이 뒤덮고 있어야 할 해안가이지만 해조류는 사라지고, 바위들은 색을 잃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해조류가 일부라도 발견된 해안가는 18곳으로 전체의 18.5%에 그쳤습니다.

윤상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갯녹음이 해양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건 물론, 특히 세계자연유산인 제주의 경관마저 훼손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갯녹음 현상은 수치상으로도 심각합니다.

2019년 기준 한국수산자원공단이 수심 20m 이하에서 갯녹음을 조사한 결과, 제주 해역에서 확인된 면적은 5102.9ha로 전체의 33.3%에 달했습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3%가량 줄었지만, 이마저도 전국에서 두 번째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다만 녹색연합 주장대로, 갯녹음이 조간대에서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갯녹음 발생 원인조차 몰라…실태조사 시급

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 한국수산자원공단은 갯녹음을 과도한 연안 개발과 환경 오염,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 등으로 인한 복합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은 지금부터라도 갯녹음에 대한 철저한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상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제주 연안이 갯녹음 말기 상태에 왔지만, 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갯녹음 상황과 마을별 피해, 주요 원인 등을 규명하는 조사를 토대로 한 종합적인 관리 대책을 제주도정이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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