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주택 몰수 주민투표’…가결 그 후

입력 2021.11.06 (22:24) 수정 2021.11.0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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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달 말 독일 수도 베를린에선 지방선거와 주민투표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 사안이 하나 있었습니다.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 월세에 맞서 부동산 대기업이 소유한 주택을 유상 몰수해 공유하자는 내용이인데, 투표는 압도적으로 가결됐습니다.

관심은 실제로 기업의 자산을 몰수할 수 있을까 하는 건데요,

베를린의 주민투표, 그 이후를 김귀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베를린 시내의 한 주택가.

프리랜서 카메라맨 하비에르 모야 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베를린 인구 360만 명 중 대부분이 이런 연립주택 형태의 집에 삽니다.

화장실과 주방이 있는 38제곱미터 크기의 원룸.

가벽을 세워 침실과 작업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월세 부담 때문에 8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사이 월세는 거의 두배가 됐습니다.

[하비에르 모야/프리랜서 카메라맨 : "8년 동안 많이 올랐습니다. 38㎡ 공간에 월세 460유로, 거기에 전기요금이 있습니다. 전기요금도 올랐어요."]

관리비를 포함해 모야씨가 집에 내는 돈은 월 850유로, 약 116만 원입니다.

모야 씨는 지난 9월 주민투표 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하비에르 모야/프리랜서 카메라맨 : "딸 때문에 찬성표를 던졌어요. 딸은 대학생인데 월세가 비싸 집을 구할 수 없습니다."]

베를린의 월세는 최근 10년 간 두배 정도 올랐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세입니다.

지난해 월세 상한제를 도입해 잠시 폭등세를 막는가 했지만 올해 4월 위헌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주춤했던 월세는 다시 올랐고.

[한나 파넨슈티히 : "매우 높은 월세를 내고 있어요. 월세는 매년 약 8%씩 오르고 있어요. 제가 사는 곳에 집세를 낼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곧 이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월세 때문에) 이미 엉망이 됐습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분노는 베를린 주택을 거머쥐고 있는 거대 부동산 기업들을 향했습니다.

[아네트 로어/베를린 시민 : "정상적인 소득을 가진 사람들이 베를린에서 적당한 가격의 주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거는 교육, 건강처럼 기본적 권리입니다."]

베를린 인구의 80%가 사는 임대 주택은 150만 여채.

이 가운데 기업형 부동산 업체 열 곳 정도가 전체의 15%인 24만 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식시장에도 상장된 도이체 보넨이라는 회사는 베를린에 11만 5천채를 갖고 있습니다.

이 회사들의 주택을 몰수해 공유화하자는 시민단체의 이름이 '도이체 보넨 몰수행동'인 이유입니다.

이들은 주민투표를 제안했습니다.

베를린에 3천채 이상을 보유한 부동산 기업의 주택을 시장가격보다 낮게 몰수한 뒤 이를 공공이 보유해 싸게 공급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소 과격한 주장에 반대가 많을 거란 예상이 있었지만 결과는 찬성 56.4%, 반대 39%로 압도적 가결이었습니다.

[헨드릭 헤틀라게/'도이체 보넨 몰수 행동' 관계자 : "투표 결과에 우리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정말 성공적이었습니다. 유효 투표의 59%(실제는 56.4%)는 절대 다수의 지지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정당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습니다."]

'도이체 보넨 몰수 행동' 측은 베를린 시민들의 의사를 정치권이 정확히 반영해 몰수에 나서라고 촉구합니다.

월세에 대한 베를린 시민들의 분노는 임계치에 달해 있습니다.

시민들은 부동산 대기업들에게 자신들의 생존권이 침해받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베를린시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현재로선 예단할 수 없지만 이 분노를 외면할 순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습니다.

이번 주민투표는 권고안 성격.

시정부와 의회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의회에서 법을 만들어 시행해야 하지만, 주민투표 결과대로라면 사실상 강제 몰수 형태라 위헌 논란이 일 수 있습니다.

베를린 정치권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지방선거에서 다시 다수당을 차지한 사회민주당 소속 한국계 의원 마르셀 홉에게 물었습니다.

[마르셀 홉/베를린 시의원/사회민주당 소속 : "우리 사민당은 시민들의 요구를 이해하지만 (몰수와 국유화라는) 수단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 결정을 존중하고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법적 문제가 해결돼도 약 52조 원에 달하는 몰수 비용도 문젭니다.

홉 의원은 월세 동결과 주택공급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마르셀 홉/베를린 시의원/사회민주당 소속 : "(월세 유예제를 도입해) 일정한 기간 동안 월세를 동결시키고 인상을 막아야 합니다. 새로운 집을 지어 베를린 시민들에게 공급할 때까지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닙니다.

1년 정도 의회에서 치열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몰수와 공유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베를린 정치권이 솔로몬의 지혜를 내놓을 수 있을까.

[헨드릭 헤틀라게/도이체 보넨 몰수 행동 관계자 : "우리는 부동산 대기업의 국유화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를린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를린에서 김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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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 ‘주택 몰수 주민투표’…가결 그 후
    • 입력 2021-11-06 22:24:19
    • 수정2021-11-06 22: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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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달 말 독일 수도 베를린에선 지방선거와 주민투표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 사안이 하나 있었습니다.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 월세에 맞서 부동산 대기업이 소유한 주택을 유상 몰수해 공유하자는 내용이인데, 투표는 압도적으로 가결됐습니다.

관심은 실제로 기업의 자산을 몰수할 수 있을까 하는 건데요,

베를린의 주민투표, 그 이후를 김귀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베를린 시내의 한 주택가.

프리랜서 카메라맨 하비에르 모야 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베를린 인구 360만 명 중 대부분이 이런 연립주택 형태의 집에 삽니다.

화장실과 주방이 있는 38제곱미터 크기의 원룸.

가벽을 세워 침실과 작업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월세 부담 때문에 8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사이 월세는 거의 두배가 됐습니다.

[하비에르 모야/프리랜서 카메라맨 : "8년 동안 많이 올랐습니다. 38㎡ 공간에 월세 460유로, 거기에 전기요금이 있습니다. 전기요금도 올랐어요."]

관리비를 포함해 모야씨가 집에 내는 돈은 월 850유로, 약 116만 원입니다.

모야 씨는 지난 9월 주민투표 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하비에르 모야/프리랜서 카메라맨 : "딸 때문에 찬성표를 던졌어요. 딸은 대학생인데 월세가 비싸 집을 구할 수 없습니다."]

베를린의 월세는 최근 10년 간 두배 정도 올랐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세입니다.

지난해 월세 상한제를 도입해 잠시 폭등세를 막는가 했지만 올해 4월 위헌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주춤했던 월세는 다시 올랐고.

[한나 파넨슈티히 : "매우 높은 월세를 내고 있어요. 월세는 매년 약 8%씩 오르고 있어요. 제가 사는 곳에 집세를 낼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곧 이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월세 때문에) 이미 엉망이 됐습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분노는 베를린 주택을 거머쥐고 있는 거대 부동산 기업들을 향했습니다.

[아네트 로어/베를린 시민 : "정상적인 소득을 가진 사람들이 베를린에서 적당한 가격의 주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거는 교육, 건강처럼 기본적 권리입니다."]

베를린 인구의 80%가 사는 임대 주택은 150만 여채.

이 가운데 기업형 부동산 업체 열 곳 정도가 전체의 15%인 24만 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식시장에도 상장된 도이체 보넨이라는 회사는 베를린에 11만 5천채를 갖고 있습니다.

이 회사들의 주택을 몰수해 공유화하자는 시민단체의 이름이 '도이체 보넨 몰수행동'인 이유입니다.

이들은 주민투표를 제안했습니다.

베를린에 3천채 이상을 보유한 부동산 기업의 주택을 시장가격보다 낮게 몰수한 뒤 이를 공공이 보유해 싸게 공급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소 과격한 주장에 반대가 많을 거란 예상이 있었지만 결과는 찬성 56.4%, 반대 39%로 압도적 가결이었습니다.

[헨드릭 헤틀라게/'도이체 보넨 몰수 행동' 관계자 : "투표 결과에 우리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정말 성공적이었습니다. 유효 투표의 59%(실제는 56.4%)는 절대 다수의 지지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정당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습니다."]

'도이체 보넨 몰수 행동' 측은 베를린 시민들의 의사를 정치권이 정확히 반영해 몰수에 나서라고 촉구합니다.

월세에 대한 베를린 시민들의 분노는 임계치에 달해 있습니다.

시민들은 부동산 대기업들에게 자신들의 생존권이 침해받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베를린시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현재로선 예단할 수 없지만 이 분노를 외면할 순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습니다.

이번 주민투표는 권고안 성격.

시정부와 의회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의회에서 법을 만들어 시행해야 하지만, 주민투표 결과대로라면 사실상 강제 몰수 형태라 위헌 논란이 일 수 있습니다.

베를린 정치권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지방선거에서 다시 다수당을 차지한 사회민주당 소속 한국계 의원 마르셀 홉에게 물었습니다.

[마르셀 홉/베를린 시의원/사회민주당 소속 : "우리 사민당은 시민들의 요구를 이해하지만 (몰수와 국유화라는) 수단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 결정을 존중하고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법적 문제가 해결돼도 약 52조 원에 달하는 몰수 비용도 문젭니다.

홉 의원은 월세 동결과 주택공급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마르셀 홉/베를린 시의원/사회민주당 소속 : "(월세 유예제를 도입해) 일정한 기간 동안 월세를 동결시키고 인상을 막아야 합니다. 새로운 집을 지어 베를린 시민들에게 공급할 때까지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닙니다.

1년 정도 의회에서 치열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몰수와 공유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베를린 정치권이 솔로몬의 지혜를 내놓을 수 있을까.

[헨드릭 헤틀라게/도이체 보넨 몰수 행동 관계자 : "우리는 부동산 대기업의 국유화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를린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를린에서 김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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