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중국 핵전략 ‘최소억지’에서 ‘MAD’로 가나

입력 2021.11.07 (07:00) 수정 2021.11.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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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간에는 정말 치열한 핵무기 경쟁이 펼쳐졌었죠. 이 시기 두 강대국의 핵전략을 'MAD'라고 합니다. '상호 확증파괴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의 영문 철자를 하나씩 따서 MAD로 부른 것이죠.

조금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상대방이 핵무기를 사용해 나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핵무기를 많이 만들어서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너 죽고 나 죽자'식의 파멸이 불가피하다는 인식, 소위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겠다는 것이었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미친 짓'처럼 보이는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오랜 기간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 경쟁에서 상대를 반드시 꺾어야 한다면 내가 무사할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 했고, 그래서 상대방이 감히 선제 공격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상대가 나를 압도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핵무기 경쟁을 부추긴 것이죠. 결국 두 강대국 간의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 태평양전쟁 이후론 '사용할 수 없었던 무기' 인 핵무기는 엄청난 수로 불어났습니다.

미국의 비밀문서 발굴 및 정보공개 전문 NGO라 할 수 있는 NSA (National Security Archive)가 지난 2006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냉전 시기 미국이 본토가 아닌 해외에 배치한 핵무기 수는 1만 7천여 기에 달했습니다.

소련이 한때 미국보다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었다고 하니, 전 세계가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핵미사일 버튼 하나 잘못 눌렀다가는 지구 전역이 초토화될 수 있었던 터라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전략가들은 순간적인 판단착오로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도의 핵 통제시스템을 만드는데도 전전긍긍했습니다.

전 세계 핵탄두 (2021년 추정치)전 세계 핵탄두 (2021년 추정치)

그러다 보니 이 과정을 다 지켜보던 중국의 속내는 복잡했을 것입니다. 마오쩌둥은 처음에는 핵무기를 중국이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는 '종이 호랑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거대한 인구에 타격을 미치지도 못하고, 광활한 대지에는 구멍 하나 뚫릴 뿐'이라며 애써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중국 역시 미·소의 잠재적 핵 위협이 더 고도화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조용하게, 그리고 본격적으로 핵 개발을 병행했습니다. 중국은 결국 1964년에 세계에서 5번째로 핵보유국이 됐습니다. 미국은 물론 소련도 중국의 핵 보유를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과 소련처럼 핵무기를 경쟁적으로 늘려가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을 핵무기는 물론 미사일과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같은 투발 수단에까지 쏟아붓는 것은 중국의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쉽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 듯 보였으니까요.

'핵을 갖고 있는 한 최소한 공격은 안 받을 것이다'란 믿음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급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개발해서 다 보유했지만 '최소한의 분량'만 갖는 이른바 '최소 억지 전략'을 채택해 왔던 것입니다.

2019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 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미사일 역량을 고도화시키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최근  미국도 이에 대응하는 미사일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2019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 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미사일 역량을 고도화시키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최근 미국도 이에 대응하는 미사일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마오쩌둥 사망 후 과도기를 거쳐 70년대 말 덩사오핑의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래 심지어 시진핑 주석의 집권 초 대외팽창주의가 본격화되기 직전까지도 큰 틀에서 이 같은 정책을 대외적으로 취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전체 지역을 중부, 북부, 동부, 서부, 남부 등 5개의 군구로 나눠서 각 군구 사령부의 작전 영역을 구별하고 있다. 유사시 한반도 인접 지역 작전은 북부 군구에서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 미국 국방부 2021 중국 군사안보 보고서 )중국은 전체 지역을 중부, 북부, 동부, 서부, 남부 등 5개의 군구로 나눠서 각 군구 사령부의 작전 영역을 구별하고 있다. 유사시 한반도 인접 지역 작전은 북부 군구에서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 미국 국방부 2021 중국 군사안보 보고서 )

하지만 이런 중국의 핵전략과 정책이 이제 바뀌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미 바뀌었는데 지금 표면화되는 것일까요?

중국 관영 언론인 환구시보가 11월 1일 인터넷판 사설을 통해 의미심장한 언급을 내놓아 이목을 끌었었는데요. 환구시보는 "중국이 스스로 할 일을 잘해서 본국 핵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중국이 핵 선제 불사용을 선포한 유일한 핵 대국으로, 2차 타격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2차 타격 능력'이란 '적국의 핵 공격을 받은 뒤에도 살아남아 자국의 핵무기로 반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런 2차 타격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곧 보유 핵무기의 수를 더 많이 늘려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죠.

사실 이전에도 몇몇 중국 언론들이 이와 유사한 언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환구시보가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핵 선제 불사용 의지가 의심스럽다" 면서 미국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고 핵 억제력과 2차 타격 능력 강화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11월3일 중국의 군사력을 평가한 연례 군사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면서 지난해 전망했던 것과 달리 중국의 핵무기 역량이 빠르게 강화돼 오는 2030년 최소한 핵무기가 1,000기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미국 국방부는 11월3일 중국의 군사력을 평가한 연례 군사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면서 지난해 전망했던 것과 달리 중국의 핵무기 역량이 빠르게 강화돼 오는 2030년 최소한 핵무기가 1,000기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일까요? 11월 3일에 미국 국방부가 중국에 초점을 맞춘 <2021 군사·안보 보고서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1)>를 의회에 보고하면서 그 내용이 공개됐는데요.

192페이지에 달하는 긴 보고서에는 중국의 군사력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고, 군 통치조직과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 대외관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상세하게 분석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보고서와 비교해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중국의 핵전력에 관한 것입니다.
미 국방부는 자신들이 예견했던 속도나 크기와 달리 중국이 빠른 속도로 핵무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는데요. '오는 2030년까지 중국이 최소한 1,00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죠.

미국과 소련이 그동안 다양한 전략무기 감축 협정을 통해 핵무기의 수를 점차 줄여온 것에 비하면 중국은 이제 반대로 핵무기 보유를 점점 늘려가고 있는 것이죠. 이와 함께 지하 격납고인 '사일로(SILO)' 기반의 미사일 시스템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SLBM 등 핵미사일 투발 수단을 급격히 증강시키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미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무기 감축은 중국에게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면서 미국 역시 핵무기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었죠. 그때도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에 비하면 중국 핵무기는 훨씬 적다"면서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이 중국에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역공을 펼쳤었는데요.

앞으로 미국에서 나온 보고서에 대해 중국 당국의 공식 논평이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중국이 핵무기 역량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과거 대외적으로 중국의 핵전략으로 여겨졌던 '최소억지 전략'에도 변화가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해 보입니다.

중국 북부 군구의 해군사령부는 칭다오에,  동부 군구의 해군사령부는 닝보에, 남부 군구의  해군사령부는 잔장에 위치해 있다.중국 북부 군구의 해군사령부는 칭다오에, 동부 군구의 해군사령부는 닝보에, 남부 군구의 해군사령부는 잔장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향후 동북아시아와 인도 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중국과 미국의 핵 대결이 더욱 가열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현재로선 당장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앞으로도 그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그리고 소련 연방 해체 이후 소련의 핵무기를 대부분 승계한 러시아가 핵을 감축하기 위한 노력을 했던 만큼, 중국 역시 미국과 핵 감축 논의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중국이 미국과 핵과 전략무기 감축을 논의할 정도의 역량을 보유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면 중국은 핵무기 역량 강화를 위해 더 노력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되면 냉전시기처럼 '공포의 균형'을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핵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핵무기 확보 경쟁이 재연되면서 '상호 확증파괴 전략' 이른바 'MAD'가 다시 전면에 떠오를 수도 있을 법합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함께 손을 맞잡고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변화의 물결로 미래세대를 이끌어야 할 책임 있는 국가들과 외교안보 전략가들이 냉전 시대를 풍미했던, 지금은 먼지 쌓인 핵전략을 다시 끄집어내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그건 분명 인류 모두에 비극일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치열한 패권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포의 무기고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면, 그 공포는 전염되고 확산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지요.

국제관계 이론에서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교과서 삼아 국제평화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Idealism)와 국제무대에서 나라 간 관계를 '생존투쟁의 장'으로 보는 현실주의(Realism) 시각이 2개의 큰 줄기를 이어왔습니다.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영구 평화의 이상은 도대체 언제쯤 달성될 수 있는 것일까요. 미·중간의 패권경쟁은 물론 한반도의 엄중한 외교·안보적 상황 모두 신경 써야 할 상황에서 북한의 핵과 중국의 핵이 동시에 던지는 시사점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때입니다.

(인포그래픽 :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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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07 07:00:50
    • 수정2021-11-07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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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간에는 정말 치열한 핵무기 경쟁이 펼쳐졌었죠. 이 시기 두 강대국의 핵전략을 'MAD'라고 합니다. '상호 확증파괴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의 영문 철자를 하나씩 따서 MAD로 부른 것이죠.

조금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상대방이 핵무기를 사용해 나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핵무기를 많이 만들어서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너 죽고 나 죽자'식의 파멸이 불가피하다는 인식, 소위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겠다는 것이었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미친 짓'처럼 보이는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오랜 기간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 경쟁에서 상대를 반드시 꺾어야 한다면 내가 무사할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 했고, 그래서 상대방이 감히 선제 공격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상대가 나를 압도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핵무기 경쟁을 부추긴 것이죠. 결국 두 강대국 간의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 태평양전쟁 이후론 '사용할 수 없었던 무기' 인 핵무기는 엄청난 수로 불어났습니다.

미국의 비밀문서 발굴 및 정보공개 전문 NGO라 할 수 있는 NSA (National Security Archive)가 지난 2006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냉전 시기 미국이 본토가 아닌 해외에 배치한 핵무기 수는 1만 7천여 기에 달했습니다.

소련이 한때 미국보다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었다고 하니, 전 세계가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핵미사일 버튼 하나 잘못 눌렀다가는 지구 전역이 초토화될 수 있었던 터라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전략가들은 순간적인 판단착오로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도의 핵 통제시스템을 만드는데도 전전긍긍했습니다.

전 세계 핵탄두 (2021년 추정치)
그러다 보니 이 과정을 다 지켜보던 중국의 속내는 복잡했을 것입니다. 마오쩌둥은 처음에는 핵무기를 중국이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는 '종이 호랑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거대한 인구에 타격을 미치지도 못하고, 광활한 대지에는 구멍 하나 뚫릴 뿐'이라며 애써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중국 역시 미·소의 잠재적 핵 위협이 더 고도화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조용하게, 그리고 본격적으로 핵 개발을 병행했습니다. 중국은 결국 1964년에 세계에서 5번째로 핵보유국이 됐습니다. 미국은 물론 소련도 중국의 핵 보유를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과 소련처럼 핵무기를 경쟁적으로 늘려가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을 핵무기는 물론 미사일과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같은 투발 수단에까지 쏟아붓는 것은 중국의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쉽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 듯 보였으니까요.

'핵을 갖고 있는 한 최소한 공격은 안 받을 것이다'란 믿음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급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개발해서 다 보유했지만 '최소한의 분량'만 갖는 이른바 '최소 억지 전략'을 채택해 왔던 것입니다.

2019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 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미사일 역량을 고도화시키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최근  미국도 이에 대응하는 미사일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마오쩌둥 사망 후 과도기를 거쳐 70년대 말 덩사오핑의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래 심지어 시진핑 주석의 집권 초 대외팽창주의가 본격화되기 직전까지도 큰 틀에서 이 같은 정책을 대외적으로 취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전체 지역을 중부, 북부, 동부, 서부, 남부 등 5개의 군구로 나눠서 각 군구 사령부의 작전 영역을 구별하고 있다. 유사시 한반도 인접 지역 작전은 북부 군구에서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 미국 국방부 2021 중국 군사안보 보고서 )
하지만 이런 중국의 핵전략과 정책이 이제 바뀌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미 바뀌었는데 지금 표면화되는 것일까요?

중국 관영 언론인 환구시보가 11월 1일 인터넷판 사설을 통해 의미심장한 언급을 내놓아 이목을 끌었었는데요. 환구시보는 "중국이 스스로 할 일을 잘해서 본국 핵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중국이 핵 선제 불사용을 선포한 유일한 핵 대국으로, 2차 타격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2차 타격 능력'이란 '적국의 핵 공격을 받은 뒤에도 살아남아 자국의 핵무기로 반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런 2차 타격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곧 보유 핵무기의 수를 더 많이 늘려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죠.

사실 이전에도 몇몇 중국 언론들이 이와 유사한 언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환구시보가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핵 선제 불사용 의지가 의심스럽다" 면서 미국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고 핵 억제력과 2차 타격 능력 강화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11월3일 중국의 군사력을 평가한 연례 군사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면서 지난해 전망했던 것과 달리 중국의 핵무기 역량이 빠르게 강화돼 오는 2030년 최소한 핵무기가 1,000기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일까요? 11월 3일에 미국 국방부가 중국에 초점을 맞춘 <2021 군사·안보 보고서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1)>를 의회에 보고하면서 그 내용이 공개됐는데요.

192페이지에 달하는 긴 보고서에는 중국의 군사력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고, 군 통치조직과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 대외관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상세하게 분석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보고서와 비교해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중국의 핵전력에 관한 것입니다.
미 국방부는 자신들이 예견했던 속도나 크기와 달리 중국이 빠른 속도로 핵무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는데요. '오는 2030년까지 중국이 최소한 1,00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죠.

미국과 소련이 그동안 다양한 전략무기 감축 협정을 통해 핵무기의 수를 점차 줄여온 것에 비하면 중국은 이제 반대로 핵무기 보유를 점점 늘려가고 있는 것이죠. 이와 함께 지하 격납고인 '사일로(SILO)' 기반의 미사일 시스템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SLBM 등 핵미사일 투발 수단을 급격히 증강시키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미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무기 감축은 중국에게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면서 미국 역시 핵무기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었죠. 그때도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에 비하면 중국 핵무기는 훨씬 적다"면서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이 중국에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역공을 펼쳤었는데요.

앞으로 미국에서 나온 보고서에 대해 중국 당국의 공식 논평이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중국이 핵무기 역량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과거 대외적으로 중국의 핵전략으로 여겨졌던 '최소억지 전략'에도 변화가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해 보입니다.

중국 북부 군구의 해군사령부는 칭다오에,  동부 군구의 해군사령부는 닝보에, 남부 군구의  해군사령부는 잔장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향후 동북아시아와 인도 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중국과 미국의 핵 대결이 더욱 가열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현재로선 당장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앞으로도 그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그리고 소련 연방 해체 이후 소련의 핵무기를 대부분 승계한 러시아가 핵을 감축하기 위한 노력을 했던 만큼, 중국 역시 미국과 핵 감축 논의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중국이 미국과 핵과 전략무기 감축을 논의할 정도의 역량을 보유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면 중국은 핵무기 역량 강화를 위해 더 노력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되면 냉전시기처럼 '공포의 균형'을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핵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핵무기 확보 경쟁이 재연되면서 '상호 확증파괴 전략' 이른바 'MAD'가 다시 전면에 떠오를 수도 있을 법합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함께 손을 맞잡고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변화의 물결로 미래세대를 이끌어야 할 책임 있는 국가들과 외교안보 전략가들이 냉전 시대를 풍미했던, 지금은 먼지 쌓인 핵전략을 다시 끄집어내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그건 분명 인류 모두에 비극일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치열한 패권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포의 무기고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면, 그 공포는 전염되고 확산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지요.

국제관계 이론에서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교과서 삼아 국제평화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Idealism)와 국제무대에서 나라 간 관계를 '생존투쟁의 장'으로 보는 현실주의(Realism) 시각이 2개의 큰 줄기를 이어왔습니다.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영구 평화의 이상은 도대체 언제쯤 달성될 수 있는 것일까요. 미·중간의 패권경쟁은 물론 한반도의 엄중한 외교·안보적 상황 모두 신경 써야 할 상황에서 북한의 핵과 중국의 핵이 동시에 던지는 시사점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때입니다.

(인포그래픽 :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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