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가정집에 날아든 총알…軍 “정신적 피해 알 수 없다”

입력 2021.11.09 (11:42) 수정 2021.11.0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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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가정집에 총알이 날아들었습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집주인은 큰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이후 육군이 피해 배상액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군이 배상금액을 낮추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 집으로 날아든 총알... 軍, "유리창만 보상해 주겠다"

'쾅!'

지난 5월, 경북 영천에 사는 A 씨는 갑자기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유리창을 살펴본 A 씨는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바닥에 K2 소총 실탄으로 추정되는 탄두가 발견된 겁니다.

하마터면 큰 인명 피해가 날 뻔했습니다. 당시 A 씨의 아내가 창문 바로 앞에서 잔디를 깎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리창이 있던 방은 중3 딸이 공부하던 방이었습니다.

A 씨

"섬뜩하고 소름이 확 올라오죠.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닙니까?"

집에서 2km 떨어진 곳에는 육군 사격장이 있었습니다. 실제 사고 당시, 이곳에선 사격 훈련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자료화면] 사격 훈련 중인 군인들.[자료화면] 사격 훈련 중인 군인들.

A 씨의 항의에 군 관계자들이 찾아왔고,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한 육군 관계자가 A 씨에게 믿기 힘든 소리를 합니다.

육군 관계자(사고 당시)

"선생님, 저희가 유리창 깨진 건 보상을 해드릴게요.
그런데 원래 정신적인 피해 보상은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A 씨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지도 않고, 대뜸 정신적인 피해 보상이 안 된다는 말을 꺼낸 겁니다.

A 씨 가족이 받은 정신과 진료 확인서. 사고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큰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A 씨 가족이 받은 정신과 진료 확인서. 사고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큰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KBS의 취재가 시작되자, 육군 측은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해당 직원이 A 씨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고 조사 결과가 나오는 즉시, '국가배상법'에 따라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지난주, 그 조사 결과와 함께 국가 배상액 결정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좀 황당합니다.

■ 정신적 피해를 가늠하기 힘들다?

우선 사고는 실제 사격 훈련 도중 날아온 총알로 인한 것이 맞았습니다. 누군가 쏜 총알이 A 씨의 집으로 날아왔다는 겁니다. 군은 충분한 예방조치 없이 사격훈련이 진행됐다며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해당 사격장 건설 연도는 2009년이다. A 씨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집을 물려받았다. 애초 사격장 설계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상 결정액은 100만 원. 재산 손해만 인정됐습니다. 가정집에 총알이 날아와 온 가족이 불안에 떨고 있는 피해에 대한 보상치고는,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육군 제2작전사령부 산하 지구배상심의회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A 씨 가족이 겪고 있을 정신적 피해를 객관적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또 해당 사격장을 폐쇄했으니, 이제 사고가 반복될 가능성이 없다. 이게 군의 배상심의위원들의 근거입니다.

■ 배상액 줄이려고 거짓말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사격장 폐쇄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육군본부가 다음 달에야 사격장 폐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확인된 겁니다.

사격장을 폐쇄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도 육군 배상 심의위원들은 사격장 폐쇄를 미리 단정 짓고 배상액 산정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들 심의위원 5명 중 4명이 군 법무관과 의무관 등 육군 소속 군인이었습니다. 과연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했을까요?)


유탄 사고가 발생한 A 씨의 집.유탄 사고가 발생한 A 씨의 집.

A 씨

"군이 배상액 줄이려고 거짓말한 거 아닙니까. 다시 총을 쏠지 안 쏠지 제가 어떻게 확신을 합니까. 정말 이런 군을 믿을 수 있으시겠어요?"

변호사에게 자문해봤습니다. 역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사격장 폐쇄 사실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배상액 결정 이유에 기재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육군 제2작전사령부 관계자는 사고 이후에 사격장을 운영하지 않고 있어, 이런 점이 결정 이유에 반영된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쳐놓고도 정작 피해 배상에 나설 땐 제멋대로인 군의 대처 태도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군은 지난해 포항에서 발행한 유탄 사고 때에도, 피해자에게 소주 한 상자만 보상해 빈축을 샀었는데요. 이러한 모습이 반복되니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A 씨는 군의 행태에 화가 난다며, 현재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다음 배상 결정은 제대로 된 근거로 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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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낮 가정집에 날아든 총알…軍 “정신적 피해 알 수 없다”
    • 입력 2021-11-09 11:42:39
    • 수정2021-11-09 11:44:47
    취재K

대낮 가정집에 총알이 날아들었습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집주인은 큰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이후 육군이 피해 배상액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군이 배상금액을 낮추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 집으로 날아든 총알... 軍, "유리창만 보상해 주겠다"

'쾅!'

지난 5월, 경북 영천에 사는 A 씨는 갑자기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유리창을 살펴본 A 씨는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바닥에 K2 소총 실탄으로 추정되는 탄두가 발견된 겁니다.

하마터면 큰 인명 피해가 날 뻔했습니다. 당시 A 씨의 아내가 창문 바로 앞에서 잔디를 깎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리창이 있던 방은 중3 딸이 공부하던 방이었습니다.

A 씨

"섬뜩하고 소름이 확 올라오죠.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닙니까?"

집에서 2km 떨어진 곳에는 육군 사격장이 있었습니다. 실제 사고 당시, 이곳에선 사격 훈련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자료화면] 사격 훈련 중인 군인들.
A 씨의 항의에 군 관계자들이 찾아왔고,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한 육군 관계자가 A 씨에게 믿기 힘든 소리를 합니다.

육군 관계자(사고 당시)

"선생님, 저희가 유리창 깨진 건 보상을 해드릴게요.
그런데 원래 정신적인 피해 보상은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A 씨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지도 않고, 대뜸 정신적인 피해 보상이 안 된다는 말을 꺼낸 겁니다.

A 씨 가족이 받은 정신과 진료 확인서. 사고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큰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KBS의 취재가 시작되자, 육군 측은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해당 직원이 A 씨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고 조사 결과가 나오는 즉시, '국가배상법'에 따라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지난주, 그 조사 결과와 함께 국가 배상액 결정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좀 황당합니다.

■ 정신적 피해를 가늠하기 힘들다?

우선 사고는 실제 사격 훈련 도중 날아온 총알로 인한 것이 맞았습니다. 누군가 쏜 총알이 A 씨의 집으로 날아왔다는 겁니다. 군은 충분한 예방조치 없이 사격훈련이 진행됐다며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해당 사격장 건설 연도는 2009년이다. A 씨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집을 물려받았다. 애초 사격장 설계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상 결정액은 100만 원. 재산 손해만 인정됐습니다. 가정집에 총알이 날아와 온 가족이 불안에 떨고 있는 피해에 대한 보상치고는,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육군 제2작전사령부 산하 지구배상심의회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A 씨 가족이 겪고 있을 정신적 피해를 객관적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또 해당 사격장을 폐쇄했으니, 이제 사고가 반복될 가능성이 없다. 이게 군의 배상심의위원들의 근거입니다.

■ 배상액 줄이려고 거짓말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사격장 폐쇄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육군본부가 다음 달에야 사격장 폐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확인된 겁니다.

사격장을 폐쇄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도 육군 배상 심의위원들은 사격장 폐쇄를 미리 단정 짓고 배상액 산정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들 심의위원 5명 중 4명이 군 법무관과 의무관 등 육군 소속 군인이었습니다. 과연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했을까요?)


유탄 사고가 발생한 A 씨의 집.
A 씨

"군이 배상액 줄이려고 거짓말한 거 아닙니까. 다시 총을 쏠지 안 쏠지 제가 어떻게 확신을 합니까. 정말 이런 군을 믿을 수 있으시겠어요?"

변호사에게 자문해봤습니다. 역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사격장 폐쇄 사실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배상액 결정 이유에 기재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육군 제2작전사령부 관계자는 사고 이후에 사격장을 운영하지 않고 있어, 이런 점이 결정 이유에 반영된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쳐놓고도 정작 피해 배상에 나설 땐 제멋대로인 군의 대처 태도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군은 지난해 포항에서 발행한 유탄 사고 때에도, 피해자에게 소주 한 상자만 보상해 빈축을 샀었는데요. 이러한 모습이 반복되니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A 씨는 군의 행태에 화가 난다며, 현재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다음 배상 결정은 제대로 된 근거로 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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