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팔고 자녀가 되사오는 ‘꼼수 증여’…전환사채 콜옵션의 마술

입력 2021.11.09 (12:01) 수정 2021.11.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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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옵션부 전환사채'를 발행해 편법으로 사주일가의 지분 확대에 이용한 기업들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또 자녀 명의로 시행사 등 유한책임회사를 세워 편법으로 사업 기회 등을 제공한 대형 건설사 7곳도 조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국세청은 변칙적인 방법으로 기업의 이익을 독식하거나 거액의 부를 대물림한 대기업과 중견기업 사주일가 30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 '전환사채 콜옵션' 행사로 기업 지분 늘리기, 탈세 여부 첫 검증

이번 세무조사에는 '전환사채(CB) 콜옵션'을 이용한 기업들의 편법 지분 늘리기가 처음으로 검증 대상에 올랐습니다. 세무당국의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앞으로 기업들의 전환사채 콜옵션 행사에도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전환사채는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채권입니다. 예를 들어 전환사채가 주당 1,000원으로 발행됐는데 주가가 3,000원까지 올랐다고 하면, 주당 2,000원의 시세차익이 남게 됩니다.

그런데 콜옵션은 전환사채를 다시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회사가 지정한 제3 자가 전환사채 일부(30~50%)를 살 수 있는데, 대부분 기업들은 사주 일가에 콜옵션 권리를 부여해 주식을 저렴하게 취득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승계 공고화 등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 김현수그래픽 : 김현수

국세청은 일부 기업이 콜옵션부 전환사채를 발행한 뒤 최대주주나 사주 자녀에게 콜옵션을 무상 양도한 혐의를 포착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최종환 국세청 조사1과장은 "콜옵션부 전환사채를 발행할 때 '회사가 지정하는 제3자에게 콜옵션 권리를 준다'고만 지정돼 있어 누구에게 권리를 줄 건지 공시하지 않고 있다가, 주가가 올라 주식으로 전환하는 시점에서야 사주 일가에 콜옵션 권리를 넘기고 지분 늘리기에 악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사 대상에 오른 한 철강 가공 기업은 주가가 하락할 경우 전환사채의 전환가액도 하향 조정(리픽싱)된다는 점을 노리고 주가가 낮을 때 자녀들이 콜옵션을 행사하도록 했습니다. 전환사채를 이용하면 주식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이 전환사채를 또 발행가보다 더 저렴하게 취득해 수백억의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김동일 국세청 조사국장은 "현재 콜옵션부 전환사채 발행 기업이 340여 개에 이르고, 발행 규모도 6조 원에 이른다"며 "콜옵션 전환 이익을 대주주 등에게 무상으로 양도한 사례를 선별해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자녀 명의 시행사 세워 개발 이익 몰아준 중견 건설사들 무더기 세무조사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는 자녀 명의로 유한책임회사를 세워 사업 기회나 일감을 몰아준 건설사 7곳도 포함됐습니다. 대부분이 연 매출 3,000억 이상의 중견 건설사로 알려졌습니다.

국세청은 건설사들이 사주 자녀 명의로 공시 의무가 없는 유한책임회사를 세워 내부 거래를 감춰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건설사 사주들은 자녀 명의의 시행사를 세워 '벌떼 입찰'(서류상 회사 등을 참여시켜 당첨확률을 높이는 것) 방식으로 개발 예정 택지를 낙찰받았습니다. 또 시공사로 함께 분양사업에 참여하면서 공사 비용을 낮춰주는 방식으로 자녀 회사의 분양이익을 극대화 시켜줬습니다.

최종환 조사1과장은 "건설사들이 평균 자녀 한 명당 2~3개의 유한회사를 세워 이익을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른바 함바집(건설현장식당)이나 건설자재 납품 회사까지 자녀 이름으로 세워 놓고, 실제 주요 업무는 건설사가 대신 수행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얻은 이익 수백억 원은 고스란히 건설사의 지분 늘리기 용도로 '재활용'됐습니다. 사주 자녀들은 건설사가 저가로 발행한 전환사채를 인수한 뒤 주식으로 교환해 경영권을 편법 승계해 온 겁니다.

■ 진화된 리베이트 기법…병원장 자녀 '서류 회사' 세워 대가 제공


한 약품 유통업체의 진화된 리베이트 수법도 국세청 감시망에 걸렸습니다.

이 기업은 병원장 자녀 명의로 서류상 회사를 만든 뒤 이 회사에 약품을 저렴하게 공급했습니다. 자녀 회사가 다시 병원으로 약품을 비싸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는데, 확인된 금액만 100억 원에 이릅니다.

연루된 병원만 4곳이 확인됐는데, 모두 종합병원급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세청은 이외에도 코로나 반사이익을 빼돌려 호화생활을 누려온 사주일가와 해외 장부외자금을 역외펀드로 위장해 계열사 주식을 우회 거래해 온 사주 일가 등에 대해서도 세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공시 대상인 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인 대기업도 포함돼 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번 조사 대상 법인 사주일가의 평균 재산은 3,103억 원으로, 최근 5년 사이 30.1% 늘어났습니다. 또 사주 자녀 재산도 39%나 증가했습니다.

김동일 조사국장은 "일부 사주일가는 경제위기를 부의 무상이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 부를 편법적으로 대물림하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공정경쟁에 역행하는 반사회적 탈세에 대해 조사 역량을 더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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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가 팔고 자녀가 되사오는 ‘꼼수 증여’…전환사채 콜옵션의 마술
    • 입력 2021-11-09 12:01:31
    • 수정2021-11-09 16:21:29
    취재K

'콜옵션부 전환사채'를 발행해 편법으로 사주일가의 지분 확대에 이용한 기업들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또 자녀 명의로 시행사 등 유한책임회사를 세워 편법으로 사업 기회 등을 제공한 대형 건설사 7곳도 조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국세청은 변칙적인 방법으로 기업의 이익을 독식하거나 거액의 부를 대물림한 대기업과 중견기업 사주일가 30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 '전환사채 콜옵션' 행사로 기업 지분 늘리기, 탈세 여부 첫 검증

이번 세무조사에는 '전환사채(CB) 콜옵션'을 이용한 기업들의 편법 지분 늘리기가 처음으로 검증 대상에 올랐습니다. 세무당국의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앞으로 기업들의 전환사채 콜옵션 행사에도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전환사채는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채권입니다. 예를 들어 전환사채가 주당 1,000원으로 발행됐는데 주가가 3,000원까지 올랐다고 하면, 주당 2,000원의 시세차익이 남게 됩니다.

그런데 콜옵션은 전환사채를 다시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회사가 지정한 제3 자가 전환사채 일부(30~50%)를 살 수 있는데, 대부분 기업들은 사주 일가에 콜옵션 권리를 부여해 주식을 저렴하게 취득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승계 공고화 등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 김현수
국세청은 일부 기업이 콜옵션부 전환사채를 발행한 뒤 최대주주나 사주 자녀에게 콜옵션을 무상 양도한 혐의를 포착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최종환 국세청 조사1과장은 "콜옵션부 전환사채를 발행할 때 '회사가 지정하는 제3자에게 콜옵션 권리를 준다'고만 지정돼 있어 누구에게 권리를 줄 건지 공시하지 않고 있다가, 주가가 올라 주식으로 전환하는 시점에서야 사주 일가에 콜옵션 권리를 넘기고 지분 늘리기에 악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사 대상에 오른 한 철강 가공 기업은 주가가 하락할 경우 전환사채의 전환가액도 하향 조정(리픽싱)된다는 점을 노리고 주가가 낮을 때 자녀들이 콜옵션을 행사하도록 했습니다. 전환사채를 이용하면 주식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이 전환사채를 또 발행가보다 더 저렴하게 취득해 수백억의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김동일 국세청 조사국장은 "현재 콜옵션부 전환사채 발행 기업이 340여 개에 이르고, 발행 규모도 6조 원에 이른다"며 "콜옵션 전환 이익을 대주주 등에게 무상으로 양도한 사례를 선별해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자녀 명의 시행사 세워 개발 이익 몰아준 중견 건설사들 무더기 세무조사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는 자녀 명의로 유한책임회사를 세워 사업 기회나 일감을 몰아준 건설사 7곳도 포함됐습니다. 대부분이 연 매출 3,000억 이상의 중견 건설사로 알려졌습니다.

국세청은 건설사들이 사주 자녀 명의로 공시 의무가 없는 유한책임회사를 세워 내부 거래를 감춰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건설사 사주들은 자녀 명의의 시행사를 세워 '벌떼 입찰'(서류상 회사 등을 참여시켜 당첨확률을 높이는 것) 방식으로 개발 예정 택지를 낙찰받았습니다. 또 시공사로 함께 분양사업에 참여하면서 공사 비용을 낮춰주는 방식으로 자녀 회사의 분양이익을 극대화 시켜줬습니다.

최종환 조사1과장은 "건설사들이 평균 자녀 한 명당 2~3개의 유한회사를 세워 이익을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른바 함바집(건설현장식당)이나 건설자재 납품 회사까지 자녀 이름으로 세워 놓고, 실제 주요 업무는 건설사가 대신 수행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얻은 이익 수백억 원은 고스란히 건설사의 지분 늘리기 용도로 '재활용'됐습니다. 사주 자녀들은 건설사가 저가로 발행한 전환사채를 인수한 뒤 주식으로 교환해 경영권을 편법 승계해 온 겁니다.

■ 진화된 리베이트 기법…병원장 자녀 '서류 회사' 세워 대가 제공


한 약품 유통업체의 진화된 리베이트 수법도 국세청 감시망에 걸렸습니다.

이 기업은 병원장 자녀 명의로 서류상 회사를 만든 뒤 이 회사에 약품을 저렴하게 공급했습니다. 자녀 회사가 다시 병원으로 약품을 비싸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는데, 확인된 금액만 100억 원에 이릅니다.

연루된 병원만 4곳이 확인됐는데, 모두 종합병원급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세청은 이외에도 코로나 반사이익을 빼돌려 호화생활을 누려온 사주일가와 해외 장부외자금을 역외펀드로 위장해 계열사 주식을 우회 거래해 온 사주 일가 등에 대해서도 세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공시 대상인 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인 대기업도 포함돼 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번 조사 대상 법인 사주일가의 평균 재산은 3,103억 원으로, 최근 5년 사이 30.1% 늘어났습니다. 또 사주 자녀 재산도 39%나 증가했습니다.

김동일 조사국장은 "일부 사주일가는 경제위기를 부의 무상이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 부를 편법적으로 대물림하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공정경쟁에 역행하는 반사회적 탈세에 대해 조사 역량을 더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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