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자가 전학…‘영재학교’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21.11.1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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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학교에서 뛰어내려서 죽어야지만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해주겠냐고 부모에게 말하는 아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카이스트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 피해 학생의 심정을 대신 전하는 눈물 맺힌 학부모의 말인데요, 동급생 간에 벌어진 이 사건 이후 결국, 꿈을 접고 일반고로 전학을 해야 했던 건 피해 학생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신고 의무 몰랐다"…가해 학생과 분리 조치도 미흡

사건이 발생한 건 올들어 지난 4월 어느 날 자정 무렵. 학교 기숙사에서 18살 남학생이 동급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사흘이 지나 피해 학생은 학교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피해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 신고가 이뤄진 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 그것도 학부모가 문제제기를 한 뒤였습니다. 학교 폭력 가운데서도 성범죄는 누구든 알게 된 즉시 신고해야 하지만 학교가 이런 법을 지키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학부모의 문제 제기에 학교가 내놓은 답변이 아주 황당했습니다. '즉시 신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겁니다.

게다가 피해 학생이 신고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가해 학생이 특정되지 않아 신고할 수 없었다는 핑계도 댔습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학교 측의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바람에 아이는 계속해서 홀로 피해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피해 학생 어머니

■ '긴급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는 상황' 아냐…긴급 조치도 거부

학부모의 요청으로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교육청이 주관하는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원회가 열렸습니다. 가해 학생은 학교 봉사 20시간과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피해 학생은 학교 곳곳에서 가해 학생과 마주쳤습니다.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오고 이대로는 시험 공부를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가해 학생의 출석을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긴급 조치를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긴급 조치를 내릴 수 있는 요건인 '피해 학생을 가해 학생으로부터 긴급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겁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출석이 정지되면 가해 학생이 기말고사를 못 보고 그럼 대학에 못 간다. 그래서 안 된다.' 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더해 학교 측은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는 근거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한국과학영재학교

■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 몰랐다'…피해 학생이 학교 떠나

피해 학생은 사건 발생 이후 상담에서 "가해 학생과 마주칠 때마다 친구들이 옆에 있어서 걱정은 되지 않았다" 거나 "(방학을 앞두고) 마주칠 날이 며칠 남지 않아 견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측은 '피해 학생이 심리적으로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 당장이라도 학교에서 뛰어내려서 죽어야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해주겠냐고 부모에게 말하는 아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피해 학생은 사건 발생 여섯 달 만에 스스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꿈을 접고 자신이 원래 살던 지역의 일반고로 전학한 겁니다.

학교 측은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면서 완전한 분리 조치를 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었다"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선도해야 한다는 교육적 사명으로 최대한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가해 학생은 강제 추행 혐의로 기소된 상태입니다.

■ 교육부가 아닌 과기부 소속…사각지대에 놓인 '영재학교'

지난해 6월 전남 영광의 한 중학교에서 1학년 학생이 동급생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학교 측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분리 조치를 미흡하게 했다는 유가족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영광교육지원청은 대책본부를 꾸려 진상 조사를 벌였고, 이 주장이 사실이라는 걸 밝혀내 학교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부산시교육청이 진상 조사를 하지도 못합니다.

부산시교육청부산시교육청

한국과학영재학교가 교육부가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교육기관이기 때문입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가 학교의 부실 대응에 대해 부산시교육청에 문제를 제기하자 교육청은 "학교 폭력 사각지대에 놓이는 걸 염려해 합의 하에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원회만 열어줄 뿐 다른 조치는 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교사 채용과 같은 학교 운영 전반을 과기부와 카이스트가 맡고 있어 교육청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겁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를 관리해야 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학교가 해야 할 조치를 다 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학교 측은 취재가 시작된 이후 학교의 대응과 조치가 적절했는지 객관적인 조사를 하기 위한 감사를 상급기관인 카이스트에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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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폭’ 피해자가 전학…‘영재학교’에서 무슨 일이?
    • 입력 2021-11-10 14:07:48
    취재K

"당장이라도 학교에서 뛰어내려서 죽어야지만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해주겠냐고 부모에게 말하는 아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카이스트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 피해 학생의 심정을 대신 전하는 눈물 맺힌 학부모의 말인데요, 동급생 간에 벌어진 이 사건 이후 결국, 꿈을 접고 일반고로 전학을 해야 했던 건 피해 학생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신고 의무 몰랐다"…가해 학생과 분리 조치도 미흡

사건이 발생한 건 올들어 지난 4월 어느 날 자정 무렵. 학교 기숙사에서 18살 남학생이 동급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사흘이 지나 피해 학생은 학교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피해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 신고가 이뤄진 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 그것도 학부모가 문제제기를 한 뒤였습니다. 학교 폭력 가운데서도 성범죄는 누구든 알게 된 즉시 신고해야 하지만 학교가 이런 법을 지키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학부모의 문제 제기에 학교가 내놓은 답변이 아주 황당했습니다. '즉시 신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겁니다.

게다가 피해 학생이 신고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가해 학생이 특정되지 않아 신고할 수 없었다는 핑계도 댔습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학교 측의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바람에 아이는 계속해서 홀로 피해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
■ '긴급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는 상황' 아냐…긴급 조치도 거부

학부모의 요청으로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교육청이 주관하는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원회가 열렸습니다. 가해 학생은 학교 봉사 20시간과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피해 학생은 학교 곳곳에서 가해 학생과 마주쳤습니다.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오고 이대로는 시험 공부를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가해 학생의 출석을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긴급 조치를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긴급 조치를 내릴 수 있는 요건인 '피해 학생을 가해 학생으로부터 긴급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겁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출석이 정지되면 가해 학생이 기말고사를 못 보고 그럼 대학에 못 간다. 그래서 안 된다.' 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더해 학교 측은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는 근거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 몰랐다'…피해 학생이 학교 떠나

피해 학생은 사건 발생 이후 상담에서 "가해 학생과 마주칠 때마다 친구들이 옆에 있어서 걱정은 되지 않았다" 거나 "(방학을 앞두고) 마주칠 날이 며칠 남지 않아 견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측은 '피해 학생이 심리적으로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 당장이라도 학교에서 뛰어내려서 죽어야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해주겠냐고 부모에게 말하는 아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피해 학생은 사건 발생 여섯 달 만에 스스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꿈을 접고 자신이 원래 살던 지역의 일반고로 전학한 겁니다.

학교 측은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면서 완전한 분리 조치를 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었다"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선도해야 한다는 교육적 사명으로 최대한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가해 학생은 강제 추행 혐의로 기소된 상태입니다.

■ 교육부가 아닌 과기부 소속…사각지대에 놓인 '영재학교'

지난해 6월 전남 영광의 한 중학교에서 1학년 학생이 동급생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학교 측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분리 조치를 미흡하게 했다는 유가족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영광교육지원청은 대책본부를 꾸려 진상 조사를 벌였고, 이 주장이 사실이라는 걸 밝혀내 학교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부산시교육청이 진상 조사를 하지도 못합니다.

부산시교육청
한국과학영재학교가 교육부가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교육기관이기 때문입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가 학교의 부실 대응에 대해 부산시교육청에 문제를 제기하자 교육청은 "학교 폭력 사각지대에 놓이는 걸 염려해 합의 하에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원회만 열어줄 뿐 다른 조치는 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교사 채용과 같은 학교 운영 전반을 과기부와 카이스트가 맡고 있어 교육청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겁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를 관리해야 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학교가 해야 할 조치를 다 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학교 측은 취재가 시작된 이후 학교의 대응과 조치가 적절했는지 객관적인 조사를 하기 위한 감사를 상급기관인 카이스트에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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