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경조사비 횡령 직원 실형…뒤늦은 ‘주인찾기’도 난항

입력 2021.11.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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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이 전 세계 167곳 재외공관에 흩어져 근무하는 특수한 부처입니다.

이 때문에 다른 부처와는 구별되는 몇몇 관행들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경조사 계좌'입니다.

직원들 편의 차원에서 경조사비를 외교부 명의 계좌로 접수한 뒤, 경조사 당사자에게 전달해주는 내부 서비스가 10년 넘게 운영돼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사건이 터졌습니다.

경조사 계좌를 관리하던 직원이 경조사비를 횡령한 혐의로 해고 당하고, 검찰에 고발된 겁니다. 사건 발생 1달 뒤 이 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KBS가 최근 법원 판결문 열람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 직원은 올해 8월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건의 전모가 요약돼 있는 판결문 내용과 사건의 뒷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 1심 법원 "전액 횡령 아니고 상당 부분 변제했지만…실형 불가피"

판결문을 보면, 직원 A 씨는 2018년 9월 초부터 지난해 9월 중순까지 외교부 운영지원담당관실 실무관으로 일하며 경조사 계좌 관리를 담당했습니다. 운영지원담당관실은 외교부 자금 운용·회계와 결산, 소속 공무원의 급여·복리후생, 청사 관리, 외교행낭 등에 관한 사무를 맡는 곳입니다.

범행은 2019년 8월 중순 처음 시작됐습니다. 경조사 계좌에 입금돼 있던 50만 원을 A 씨가 본인 계좌로 이체한 뒤,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듬해 9월 중순까지 13개월 동안, A 씨가 무려 117차례에 걸쳐 2억 180만 원을 개인 용도로 써 돈을 횡령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였습니다.

그는 올해 3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됐는데,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한 차례의 재판 이후 바로 선고기일이 잡혔습니다.

담당 재판부였던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7단독(판사 나우상)은 올해 8월 A 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A 씨가 실제 2억 원 전체를 개인적 용도로 소비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돈이 필요할 때 경조사 계좌에서 돈을 빼서 썼다가 다시 채워놓는 등, 횡령 기간 동안 1억 1,340만 원은 계좌에 다시 돌려놨다는 것입니다.

결국 개인적으로 쓴 돈은 8,840만 원 정도가 되는 건데 이 중 4,300만 원을 변제한 점,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은 점 등도 A 씨에겐 유리한 정상이라고 재판부는 밝혔습니다.

그러나 A 씨가 오랜 기간에 걸쳐 횡령한 금액이 적지 않고, 일부 횡령금을 도박에 사용한 점 등을 참작하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다만 A 씨가 피해 금액을 외교부에 변제하기 위해선 경제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을 하진 않았습니다.

A 씨는 판결 선고 당일 즉각 항소했습니다. 항소심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 외교부, 12년 만에 경조사 계좌 폐지…뒤늦은 '주인 찾기'는 난항

지난해 횡령 사건 직후, 외교부는 후속 조치로 곧장 경조사 계좌를 폐지했습니다. 계좌를 개설한 지 12년 만이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필요하면 이제 경조사비를 직접 당사자 계좌로 입금하라고 공지했고, 당사자 계좌를 공지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조사가 생겼다는 연락이 오면 운영지원담당관실에서 당사자에게 계좌번호를 문의하고, 당사자가 희망한다고 하면 계좌번호를 경조사 소식과 함께 내부 게시판에 공지해주는 방식입니다.

이 관계자는 "경조사를 당한 입장에서 본인 계좌를 공지한다는 건 '돈을 내라'는 건데, 그걸 민망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서 "공지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계좌를 모르니 밖(재외공관)에 있는 분들은 어떡하지 하다가 (축의·부의를) 못하게 되기도 한다. 마음을 전하는 게 원활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횡령 금액의 변제·반환도 남은 과제이지만, A 씨가 변제를 마치더라도 그 돈의 주인을 정확히 찾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접수된 모든 경조사비를 한 통장에서 한꺼번에 관리한 데다, A 씨가 1년 넘는 범행 기간 동안 경조사비 전달을 들쭉날쭉 임의로 했고 제대로 기록해두지 않아 누가 얼마만큼 돈을 전달받지 못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받을 사람은 누가 얼마만큼 돈을 보냈는지를 모르고, 보낸 사람 역시 돈이 전달이 됐는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며, 일일이 주인을 찾아주려 노력 중이지만 한계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우선 '배달 사고'가 난 돈을 정리해 경조사비를 가장 많이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직원들에게 먼저 돈을 반환해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A 씨가 항소심에서 감형을 위해 남은 돈 4천만 원 가량을 외교부에 모두 갚더라도, 그 돈은 이미 갈 곳을 잃은 만큼 '완전한' 변제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래픽: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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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부 경조사비 횡령 직원 실형…뒤늦은 ‘주인찾기’도 난항
    • 입력 2021-11-12 11:01:59
    취재K

외교부는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이 전 세계 167곳 재외공관에 흩어져 근무하는 특수한 부처입니다.

이 때문에 다른 부처와는 구별되는 몇몇 관행들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경조사 계좌'입니다.

직원들 편의 차원에서 경조사비를 외교부 명의 계좌로 접수한 뒤, 경조사 당사자에게 전달해주는 내부 서비스가 10년 넘게 운영돼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사건이 터졌습니다.

경조사 계좌를 관리하던 직원이 경조사비를 횡령한 혐의로 해고 당하고, 검찰에 고발된 겁니다. 사건 발생 1달 뒤 이 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KBS가 최근 법원 판결문 열람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 직원은 올해 8월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건의 전모가 요약돼 있는 판결문 내용과 사건의 뒷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 1심 법원 "전액 횡령 아니고 상당 부분 변제했지만…실형 불가피"

판결문을 보면, 직원 A 씨는 2018년 9월 초부터 지난해 9월 중순까지 외교부 운영지원담당관실 실무관으로 일하며 경조사 계좌 관리를 담당했습니다. 운영지원담당관실은 외교부 자금 운용·회계와 결산, 소속 공무원의 급여·복리후생, 청사 관리, 외교행낭 등에 관한 사무를 맡는 곳입니다.

범행은 2019년 8월 중순 처음 시작됐습니다. 경조사 계좌에 입금돼 있던 50만 원을 A 씨가 본인 계좌로 이체한 뒤,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듬해 9월 중순까지 13개월 동안, A 씨가 무려 117차례에 걸쳐 2억 180만 원을 개인 용도로 써 돈을 횡령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였습니다.

그는 올해 3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됐는데,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한 차례의 재판 이후 바로 선고기일이 잡혔습니다.

담당 재판부였던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7단독(판사 나우상)은 올해 8월 A 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A 씨가 실제 2억 원 전체를 개인적 용도로 소비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돈이 필요할 때 경조사 계좌에서 돈을 빼서 썼다가 다시 채워놓는 등, 횡령 기간 동안 1억 1,340만 원은 계좌에 다시 돌려놨다는 것입니다.

결국 개인적으로 쓴 돈은 8,840만 원 정도가 되는 건데 이 중 4,300만 원을 변제한 점,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은 점 등도 A 씨에겐 유리한 정상이라고 재판부는 밝혔습니다.

그러나 A 씨가 오랜 기간에 걸쳐 횡령한 금액이 적지 않고, 일부 횡령금을 도박에 사용한 점 등을 참작하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다만 A 씨가 피해 금액을 외교부에 변제하기 위해선 경제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을 하진 않았습니다.

A 씨는 판결 선고 당일 즉각 항소했습니다. 항소심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 외교부, 12년 만에 경조사 계좌 폐지…뒤늦은 '주인 찾기'는 난항

지난해 횡령 사건 직후, 외교부는 후속 조치로 곧장 경조사 계좌를 폐지했습니다. 계좌를 개설한 지 12년 만이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필요하면 이제 경조사비를 직접 당사자 계좌로 입금하라고 공지했고, 당사자 계좌를 공지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조사가 생겼다는 연락이 오면 운영지원담당관실에서 당사자에게 계좌번호를 문의하고, 당사자가 희망한다고 하면 계좌번호를 경조사 소식과 함께 내부 게시판에 공지해주는 방식입니다.

이 관계자는 "경조사를 당한 입장에서 본인 계좌를 공지한다는 건 '돈을 내라'는 건데, 그걸 민망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서 "공지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계좌를 모르니 밖(재외공관)에 있는 분들은 어떡하지 하다가 (축의·부의를) 못하게 되기도 한다. 마음을 전하는 게 원활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횡령 금액의 변제·반환도 남은 과제이지만, A 씨가 변제를 마치더라도 그 돈의 주인을 정확히 찾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접수된 모든 경조사비를 한 통장에서 한꺼번에 관리한 데다, A 씨가 1년 넘는 범행 기간 동안 경조사비 전달을 들쭉날쭉 임의로 했고 제대로 기록해두지 않아 누가 얼마만큼 돈을 전달받지 못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받을 사람은 누가 얼마만큼 돈을 보냈는지를 모르고, 보낸 사람 역시 돈이 전달이 됐는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며, 일일이 주인을 찾아주려 노력 중이지만 한계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우선 '배달 사고'가 난 돈을 정리해 경조사비를 가장 많이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직원들에게 먼저 돈을 반환해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A 씨가 항소심에서 감형을 위해 남은 돈 4천만 원 가량을 외교부에 모두 갚더라도, 그 돈은 이미 갈 곳을 잃은 만큼 '완전한' 변제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래픽: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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