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확 바뀐’ 中 11·11일 행사…그들이 ‘몸 사리게’ 된 이유

입력 2021.11.14 (07:00) 수정 2021.11.14 (07: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쌍십일 쇼핑 축제 미디어 행사장 모습.  (촬영:  윤재구 KBS 촬영기자)지난해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쌍십일 쇼핑 축제 미디어 행사장 모습. (촬영: 윤재구 KBS 촬영기자)

수백 명의 기자들이 빼곡히 앉아있습니다. 기자들 앞에 설치된 현란한 스크린에는 큰 단위의 숫자가 쓰여 있습니다.

분 단위로 공개된 온라인 쇼핑 거래액입니다.

해마다 11월 11일,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알리바바가 '쌍십일(雙11)' 기간에 항저우 본사에서 진행해 왔던 행사의 2020년 모습입니다.

지난해는 4천982억 위안, 우리 돈 91조 9천179억 원을 팔아 치웠습니다.

2021년 쌍십일 축제를 앞두고 알리바바 정책 설명회가 11월 3일 화상으로 진행됐다. (사진 : 이창준 KBS 촬영기자)2021년 쌍십일 축제를 앞두고 알리바바 정책 설명회가 11월 3일 화상으로 진행됐다. (사진 : 이창준 KBS 촬영기자)

그런데 이 행사, 올해는 위 사진처럼 바뀌었습니다.

기자는 컴퓨터와 마주 앉았습니다. 알리바바 직원이 화상으로 진행하는 설명회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미디어 행사 대신 11월 2~3일 항저우 현장에서 간소화된 정책 설명회가 예정돼 있었지만 이마저도 코로나19 확진자가 항저우를 지나는 기차에 타고 있었다는 이유로 취소됐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1년이라는 시간이 변화시킨 11·11 쌍십일의 모습입니다. 무엇이 수년 동안 이어왔던 행사를 확 바꿔놓았을까요?


■ 밤새며 '매출액' 공개하던 행사는 어떻게 변했나?

중국에서는 원래 1자가 4개 겹친 11월 11일을 '광군제', 일명 '싱글들의 날'로 불러왔습니다.

알리바바는 2009년, 이날을 싱글들이 쇼핑하는 날로 만들어 처음 쌍십일 쇼핑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알리바바도 이 쇼핑 축제 덕분에 급성장하면서 회사 자체가 '축제'를 맞게 됩니다.

알리바바의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타오바오’ 라이브에서 쇼핑호스트 리자치가 올해 쌍십일 행사를 진행한 모습. 리자치는 올해도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타오바오 캡처)알리바바의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타오바오’ 라이브에서 쇼핑호스트 리자치가 올해 쌍십일 행사를 진행한 모습. 리자치는 올해도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타오바오 캡처)

연중 가장 크게 할인하는 날로 알려지면서 매출은 해마다 크게 뛰었습니다. (쌍십일 쇼핑 축제 거래액 2017년 1천682억 위안, 2018년 2천135억 위안, 2019년 2천684억 위안, 2020년 4천982억 위안)

회사 성장세 또한 같이 상승세를 탔습니다. 사람들은 알리바바하면 쌍십일, 쌍십일하면 알리바바를 떠올릴 정도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죠.


알리바바의 타오바오와 경쟁 중인 중국의 또 다른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징둥’이 쌍십절 기간에 맞춰 행사를 하고 있다. (징둥 캡처)알리바바의 타오바오와 경쟁 중인 중국의 또 다른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징둥’이 쌍십절 기간에 맞춰 행사를 하고 있다. (징둥 캡처)

다른 쇼핑업체들도 알리바바의 대성공을 보고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같은 기간에 비슷한 행사를 시작하면서 11· 11 쌍십일은 중국 최대 쇼핑 축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알리바바는 해마다 11·11 쇼핑 축제 기록을 갈아치우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써왔습니다. 다른 업체를 인수·합병하고, 쇼핑 축제 기간을 연장하는 등 공격적인 정책도 펼쳤습니다.

항저우에 내·외신 기자단을 수백 명 불러모아 놓고 마치 쇼처럼 매출액을 공개해왔던 것은 이런 알리바바의 '노력의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특히 알리바바의 11 ·11 거래액이 중국 전체의 쌍십일 쇼핑 축제 성공 여부를 가늠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소비 활력을 보여주는 척도로 여겨졌기 때문에 현지 언론들도 앞다퉈 매출액을 시시각각 기사화했습니다.

그런데 11· 11 축제만 보고 달려온 알리바바가 미디어 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니, 뭔가 단단히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알리바바 그룹은 쌍십일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총 매출액을 적은 간단한 자료를 배포했다. 시시각각 매출액 변화를 알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알리바바 그룹은 쌍십일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총 매출액을 적은 간단한 자료를 배포했다. 시시각각 매출액 변화를 알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실제 그동안 몇 분 단위로 공개했던 매출액은 행사가 끝난 뒤에야 간단한 자료로 공개됐습니다.


■ 매출 성장세도 '뚝'…알리바바 '몸 사리는' 배경에는?

올해 쇼핑 매출액도 성적이 예년만 같지 않습니다. 물론 사상 최대 거래액 기록은 세웠습니다. 5천403억 위안, 우리돈 약 99조 9천억 원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폭발적이었던 성장세가 확 꺾였습니다. 지난해 대비 성장률이 8.4%였는데 전년은 85.6%였습니다 그동안 늘 두 자릿수였던 매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급감한 것입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2019년 이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출처: 바이두)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2019년 이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출처: 바이두)

업계에서는 알리바바의 확 달라진 모습은 지난해 10월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의 설화 사건이 발단이 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윈은 2020년 10월 24일, 금융감독 당국과 정부 인사들, 은행권 관계자들이 모인 상하이 모임에서 중국의 금융 규제가 기술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후 중국 당국은 인터넷 기업을 향한 규제를 강화했고, 알리바바는 대표적인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습니다. 4월에는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역대 최고 벌금도 맞았습니다. 우리 돈 3조 원 대 정도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알리바바가 예년처럼 수십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것이 중론입니다.

올해 쌍십절 기간을 맞아 알리바바 그룹이 거리 홍보물을 설치한 모습. (출처: 연합)올해 쌍십절 기간을 맞아 알리바바 그룹이 거리 홍보물을 설치한 모습. (출처: 연합)

여기에 시진핑 중국 주석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공동 부유'도 알리바바의 '변화'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알리바바와 같은 빅테크(거대 정보통신기업)를 규제하면서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을 대표적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공동 부유' 역시 이 기조와 닿아있습니다. 자본 확대 대신 분배와 균형을 강조합니다.

알리바바는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습니다. 회사 정책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모두 함께 잘 살자'는 중국 당국의 정책에 발맞추며 매출 성장보다는 사회적 책임에 치중하는 모습입니다.

친환경 전력을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택배 포장재를 재활용하겠다며 '지속 가능한 발전'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중소 기업의 판매를 지원하고 농·어촌의 플랫폼 입점도 돕기로 했습니다.

중국 빅테크가 '규제의 시대'를 맞은 요즘, 알리바바의 조용한 행보는 중국 IT 기업들의 '반강제적 변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확 바뀐’ 中 11·11일 행사…그들이 ‘몸 사리게’ 된 이유
    • 입력 2021-11-14 07:00:51
    • 수정2021-11-14 07:02:15
    특파원 리포트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쌍십일 쇼핑 축제 미디어 행사장 모습.  (촬영:  윤재구 KBS 촬영기자)
수백 명의 기자들이 빼곡히 앉아있습니다. 기자들 앞에 설치된 현란한 스크린에는 큰 단위의 숫자가 쓰여 있습니다.

분 단위로 공개된 온라인 쇼핑 거래액입니다.

해마다 11월 11일,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알리바바가 '쌍십일(雙11)' 기간에 항저우 본사에서 진행해 왔던 행사의 2020년 모습입니다.

지난해는 4천982억 위안, 우리 돈 91조 9천179억 원을 팔아 치웠습니다.

2021년 쌍십일 축제를 앞두고 알리바바 정책 설명회가 11월 3일 화상으로 진행됐다. (사진 : 이창준 KBS 촬영기자)
그런데 이 행사, 올해는 위 사진처럼 바뀌었습니다.

기자는 컴퓨터와 마주 앉았습니다. 알리바바 직원이 화상으로 진행하는 설명회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미디어 행사 대신 11월 2~3일 항저우 현장에서 간소화된 정책 설명회가 예정돼 있었지만 이마저도 코로나19 확진자가 항저우를 지나는 기차에 타고 있었다는 이유로 취소됐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1년이라는 시간이 변화시킨 11·11 쌍십일의 모습입니다. 무엇이 수년 동안 이어왔던 행사를 확 바꿔놓았을까요?


■ 밤새며 '매출액' 공개하던 행사는 어떻게 변했나?

중국에서는 원래 1자가 4개 겹친 11월 11일을 '광군제', 일명 '싱글들의 날'로 불러왔습니다.

알리바바는 2009년, 이날을 싱글들이 쇼핑하는 날로 만들어 처음 쌍십일 쇼핑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알리바바도 이 쇼핑 축제 덕분에 급성장하면서 회사 자체가 '축제'를 맞게 됩니다.

알리바바의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타오바오’ 라이브에서 쇼핑호스트 리자치가 올해 쌍십일 행사를 진행한 모습. 리자치는 올해도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타오바오 캡처)
연중 가장 크게 할인하는 날로 알려지면서 매출은 해마다 크게 뛰었습니다. (쌍십일 쇼핑 축제 거래액 2017년 1천682억 위안, 2018년 2천135억 위안, 2019년 2천684억 위안, 2020년 4천982억 위안)

회사 성장세 또한 같이 상승세를 탔습니다. 사람들은 알리바바하면 쌍십일, 쌍십일하면 알리바바를 떠올릴 정도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죠.


알리바바의 타오바오와 경쟁 중인 중국의 또 다른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징둥’이 쌍십절 기간에 맞춰 행사를 하고 있다. (징둥 캡처)
다른 쇼핑업체들도 알리바바의 대성공을 보고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같은 기간에 비슷한 행사를 시작하면서 11· 11 쌍십일은 중국 최대 쇼핑 축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알리바바는 해마다 11·11 쇼핑 축제 기록을 갈아치우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써왔습니다. 다른 업체를 인수·합병하고, 쇼핑 축제 기간을 연장하는 등 공격적인 정책도 펼쳤습니다.

항저우에 내·외신 기자단을 수백 명 불러모아 놓고 마치 쇼처럼 매출액을 공개해왔던 것은 이런 알리바바의 '노력의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특히 알리바바의 11 ·11 거래액이 중국 전체의 쌍십일 쇼핑 축제 성공 여부를 가늠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소비 활력을 보여주는 척도로 여겨졌기 때문에 현지 언론들도 앞다퉈 매출액을 시시각각 기사화했습니다.

그런데 11· 11 축제만 보고 달려온 알리바바가 미디어 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니, 뭔가 단단히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알리바바 그룹은 쌍십일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총 매출액을 적은 간단한 자료를 배포했다. 시시각각 매출액 변화를 알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실제 그동안 몇 분 단위로 공개했던 매출액은 행사가 끝난 뒤에야 간단한 자료로 공개됐습니다.


■ 매출 성장세도 '뚝'…알리바바 '몸 사리는' 배경에는?

올해 쇼핑 매출액도 성적이 예년만 같지 않습니다. 물론 사상 최대 거래액 기록은 세웠습니다. 5천403억 위안, 우리돈 약 99조 9천억 원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폭발적이었던 성장세가 확 꺾였습니다. 지난해 대비 성장률이 8.4%였는데 전년은 85.6%였습니다 그동안 늘 두 자릿수였던 매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급감한 것입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2019년 이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출처: 바이두)
업계에서는 알리바바의 확 달라진 모습은 지난해 10월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의 설화 사건이 발단이 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윈은 2020년 10월 24일, 금융감독 당국과 정부 인사들, 은행권 관계자들이 모인 상하이 모임에서 중국의 금융 규제가 기술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후 중국 당국은 인터넷 기업을 향한 규제를 강화했고, 알리바바는 대표적인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습니다. 4월에는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역대 최고 벌금도 맞았습니다. 우리 돈 3조 원 대 정도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알리바바가 예년처럼 수십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것이 중론입니다.

올해 쌍십절 기간을 맞아 알리바바 그룹이 거리 홍보물을 설치한 모습. (출처: 연합)
여기에 시진핑 중국 주석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공동 부유'도 알리바바의 '변화'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알리바바와 같은 빅테크(거대 정보통신기업)를 규제하면서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을 대표적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공동 부유' 역시 이 기조와 닿아있습니다. 자본 확대 대신 분배와 균형을 강조합니다.

알리바바는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습니다. 회사 정책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모두 함께 잘 살자'는 중국 당국의 정책에 발맞추며 매출 성장보다는 사회적 책임에 치중하는 모습입니다.

친환경 전력을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택배 포장재를 재활용하겠다며 '지속 가능한 발전'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중소 기업의 판매를 지원하고 농·어촌의 플랫폼 입점도 돕기로 했습니다.

중국 빅테크가 '규제의 시대'를 맞은 요즘, 알리바바의 조용한 행보는 중국 IT 기업들의 '반강제적 변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