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LH 매입 신혼부부 임대주택 물벼락…평가서엔 ‘만점’

입력 2021.11.16 (07:00) 수정 2021.11.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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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이라도 가야 하나, 여기서 자도 되나? 하는 생각을 계속 했거든요."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LH 매입 신혼부부 임대주택'에 입주한지 한 달도 안 됐다는 입주민 차하영 씨가 취재진에게 한 말입니다.

이 임대주택에 당첨됐을 때는 '로또'에 당첨된 거 같았다는 그는 왜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취재진에게 이런 하소연을 한 걸까요?


이 임대주택의 한 입주민은 KBS에 영상을 하나 제보해 왔습니다. 지난 8일 밤 9시 20분쯤, 지어진 지 3년도 안 된 LH 신혼부부 신축 임대 주택에서 물난리가 나고 천장까지 무너졌다는 내용입니다.

영상을 보면, 건물 10층 복도 천장에 설치된 온수관에서 뜨거운 물이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천장 자재는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천장에서도 물이 쏟아지면서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취재기자(왼쪽)와 만난 입주민 이승현 씨취재기자(왼쪽)와 만난 입주민 이승현 씨

취재진은 사고가 난 임대아파트로 찾아가 봤습니다. 여전히 천장 곳곳이 뚫려 있었습니다. 내부 배관이 그대로 보이고, 주변 천장에는 축축한 물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가동이 중단된 채 수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입주민 이승현 씨는 "복도 천장에서 많은 물이 폭포처럼 떨어졌고, 물이 배관을 타고 다른 복도 천장까지 갔기 때문에 복도에는 신발 밑창이 다 잠길 정도로 물이 찼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 씨는 "10층에서 문제가 시작됐지만, 건물이 12층까지 있는데 다른 층에서 안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게 많이 불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LH 신혼부부 매입 임대주택에 입주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차하영 씨 부부LH 신혼부부 매입 임대주택에 입주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차하영 씨 부부

이 씨의 우려 대로였습니다. 다른 층으로 올라가 봤더니, 곳곳에서 누수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이번에 온수관이 터진 건 10층이었는데, 8층 복도 천장의 자재도 떨어져 나갔고 5층 복도 천장에도 물이 샌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차하영 씨는 "천장이 내려앉는다든가 계속 누수가 있다든가 녹물이 있다든가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다든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뭔가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LH가 해당 주택 매입 전 시행한 실태조사 보고서(자료 출처: 신동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LH가 해당 주택 매입 전 시행한 실태조사 보고서(자료 출처: 신동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 LH가 매입할 때 작성한 보고서엔 "40점 만점에 32점"

2년 6개월밖에 안 된 '신축 건물'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LH가 해당 주택을 매입하기 전 작성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보고서에는 해당 주택이 40점 만점에 32점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고와 관련된 '누수' 부분에서는 모두 만점, 문제가 없다고 돼 있습니다. 입주민들이 민간 주택을 매입하기 전 실시한 '실태 조사'가 허술했던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입니다.

입주민 박소진 씨는 "다른 입주민 집 중에는 화장실 벽에 금이 가 있는 곳도 있다"라면서 배수관에 물이 흐를 때 '탁탁탁' 소리가 나서 잠잘 때 피곤하다고 말했습니다. 누수 문제뿐 아니라 다른 하자들로 입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박 씨는 "주택을 매입하기 전에 LH가 좀 더 꼼꼼하게 검수를 해주셨더라면 이런 부분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 같다"라고 덧붙였습니다.


LH는 2004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임대 사업을 위해 주택 13만 호를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2018년부터 3년간 매입 규모를 크게 늘렸습니다. 전체 규모의 1/3가량인 약 4만 7천여 호입니다.

전문가들은 LH가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물량을 늘리는 데만 치중해 주택 품질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LH가 공공임대주택을 몇만 호 공급했다는데만 몰두하면서, 공급 단계에서도 미흡한 주택이 공급되기도 하고 운영 관리 단계에서도 미흡한 점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 소장은 "미국이 공공임대주택이 백만 호 있고, 우리나라가 백십만 호 정도 있는데 미국은 연간 7조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한국은 사실상 0원에 가깝다"라면서 "사람들이 삶의 질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투입하는 걸 고려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LH는 2018년부터 임대주택 공급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부실 건물'도 매입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외부 위원이 포함된 심의절차를 통해 주택 품질 등을 고려하고 중대한 하자 등이 있는 경우 주택을 사들이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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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LH 매입 신혼부부 임대주택 물벼락…평가서엔 ‘만점’
    • 입력 2021-11-16 07:00:04
    • 수정2021-11-16 07:00:28
    취재후·사건후

"찜질방이라도 가야 하나, 여기서 자도 되나? 하는 생각을 계속 했거든요."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LH 매입 신혼부부 임대주택'에 입주한지 한 달도 안 됐다는 입주민 차하영 씨가 취재진에게 한 말입니다.

이 임대주택에 당첨됐을 때는 '로또'에 당첨된 거 같았다는 그는 왜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취재진에게 이런 하소연을 한 걸까요?


이 임대주택의 한 입주민은 KBS에 영상을 하나 제보해 왔습니다. 지난 8일 밤 9시 20분쯤, 지어진 지 3년도 안 된 LH 신혼부부 신축 임대 주택에서 물난리가 나고 천장까지 무너졌다는 내용입니다.

영상을 보면, 건물 10층 복도 천장에 설치된 온수관에서 뜨거운 물이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천장 자재는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천장에서도 물이 쏟아지면서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취재기자(왼쪽)와 만난 입주민 이승현 씨
취재진은 사고가 난 임대아파트로 찾아가 봤습니다. 여전히 천장 곳곳이 뚫려 있었습니다. 내부 배관이 그대로 보이고, 주변 천장에는 축축한 물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가동이 중단된 채 수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입주민 이승현 씨는 "복도 천장에서 많은 물이 폭포처럼 떨어졌고, 물이 배관을 타고 다른 복도 천장까지 갔기 때문에 복도에는 신발 밑창이 다 잠길 정도로 물이 찼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 씨는 "10층에서 문제가 시작됐지만, 건물이 12층까지 있는데 다른 층에서 안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게 많이 불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LH 신혼부부 매입 임대주택에 입주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차하영 씨 부부
이 씨의 우려 대로였습니다. 다른 층으로 올라가 봤더니, 곳곳에서 누수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이번에 온수관이 터진 건 10층이었는데, 8층 복도 천장의 자재도 떨어져 나갔고 5층 복도 천장에도 물이 샌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차하영 씨는 "천장이 내려앉는다든가 계속 누수가 있다든가 녹물이 있다든가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다든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뭔가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LH가 해당 주택 매입 전 시행한 실태조사 보고서(자료 출처: 신동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 LH가 매입할 때 작성한 보고서엔 "40점 만점에 32점"

2년 6개월밖에 안 된 '신축 건물'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LH가 해당 주택을 매입하기 전 작성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보고서에는 해당 주택이 40점 만점에 32점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고와 관련된 '누수' 부분에서는 모두 만점, 문제가 없다고 돼 있습니다. 입주민들이 민간 주택을 매입하기 전 실시한 '실태 조사'가 허술했던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입니다.

입주민 박소진 씨는 "다른 입주민 집 중에는 화장실 벽에 금이 가 있는 곳도 있다"라면서 배수관에 물이 흐를 때 '탁탁탁' 소리가 나서 잠잘 때 피곤하다고 말했습니다. 누수 문제뿐 아니라 다른 하자들로 입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박 씨는 "주택을 매입하기 전에 LH가 좀 더 꼼꼼하게 검수를 해주셨더라면 이런 부분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 같다"라고 덧붙였습니다.


LH는 2004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임대 사업을 위해 주택 13만 호를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2018년부터 3년간 매입 규모를 크게 늘렸습니다. 전체 규모의 1/3가량인 약 4만 7천여 호입니다.

전문가들은 LH가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물량을 늘리는 데만 치중해 주택 품질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LH가 공공임대주택을 몇만 호 공급했다는데만 몰두하면서, 공급 단계에서도 미흡한 주택이 공급되기도 하고 운영 관리 단계에서도 미흡한 점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 소장은 "미국이 공공임대주택이 백만 호 있고, 우리나라가 백십만 호 정도 있는데 미국은 연간 7조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한국은 사실상 0원에 가깝다"라면서 "사람들이 삶의 질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투입하는 걸 고려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LH는 2018년부터 임대주택 공급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부실 건물'도 매입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외부 위원이 포함된 심의절차를 통해 주택 품질 등을 고려하고 중대한 하자 등이 있는 경우 주택을 사들이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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