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남은 ‘급식예산’…‘급식바우처·지역화폐·단가인상’에 썼다

입력 2021.11.18 (11:1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못 쓰고 남은 2021 급식 예산, 어떻게 처리했을까?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19는 우리가 세운 계획들을 여러 차례 망가뜨렸습니다. 돈을 버는 데 제약을 받아 돈이 모자라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동안 언론에서 꽤 다뤘습니다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돈을 쓰는 데 제약을 받아서 돈이 남아버린 상황 말입니다. 어디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학교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학생 상당수가 정상 등교를 하지 못한 채 비대면 수업을 받았습니다. 11월 16일 기준 '교육분야 코로나19 현황 자료'를 보면 유, 초, 중등 전체 학생 594만 명 중 377만 명(63.6%)만 등교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이건 전국 수치로, 실제로 서울 수도권의 등교율은 이보다 낮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급식비 예산으로 잡아 놓은 돈들이 남았습니다.

급식비는 얼마나 남았고, 남은 돈은 어떻게 썼을까요? 국회 교육위원회 박찬대 의원실(더불어민주당)과 함께 각 시·도 교육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등교일수가 많지 않았던 수도권, 즉 서울과 경기, 인천 교육청에서 주로 돈이 남았는데요. 예상 밖의 예산에 대해 지역별로 대응 방식은 달랐습니다.

■ 촘촘한 급식지원, '희망급식 바우처'

서울시교육청은 편의점과 손잡고 사업을 벌였습니다.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입니다. 학교에 오지 않는 초·중·고 학생 한 명당 10만 원씩을 제로페이 포인트로 지원했습니다. 예산은 516억 원이었습니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두 달간 편의점에서 이 돈을 쓸 수 있었죠.

교육청은 학교급식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 돈으로 도시락과 과일, 흰 우유, 샌드위치, 과채 주스 등만 살 수 있도록 제한했습니다 너무 짜거나 상대적으로 고열량인 식품을 사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이런 제한 때문에 정작 '살 게 없다'는 불만이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예산 516억 원 중에 489억 원이 사용됐고 27억 원은 쓰지 못했습니다. 사용률 95%입니다. 교육청은 3억 2,000만 원 정도를 제로페이 수수료로 지출했지만, 홍보비 등 부대비용은 쓰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박찬대 의원실의 자료를 보면 희망급식 바우처로 '무엇을 샀나'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품목 17종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건 요거트 류로 구입 비율이 25%입니다. 2위는 과채 주스 류로 19%, 3위는 흰 우유 8%, 4위는 삼각김밥 8% 그리고 5위는 7%를 차지한 가공란이었습니다.

급식을 대체할 만한 김밥과 샌드위치는 각각 6%, 도시락은 5%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이 사업을 벌이고도 급식비는 남았습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서울시교육청의 올해 급식비 불용 잔액은 270억 원으로 예상됩니다. 교육청은 이 돈으로 남은 등교 기간 급식비 지원 단가를 올리는 데 쓸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 경기도는 '지역 화폐' 5만 원…사용 폭 넓어

경기도의 경우 2021년 학교급식경비 가운데 830억 원이 남았습니다. 교육청은 이 돈을 모든 학교 재학생 166만 명에 지역 화폐로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급 금액은 1인당 5만 원입니다.

'교육회복지원금' 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돈은 경기도 지역 화폐로 지급됩니다. 우선 지역 화폐 어플리케이션에 먼저 가입하고, 학교에 신청하면 다음 달 15일에 입금이 되는 방식입니다. 이른바 재난 지원금 지급 형식과 비슷합니다. 사용처 역시 지역 화폐 가맹점에서 모두 가능해서, 편의점에서 제한된 물품만 살 수 있는 서울보다는 사용 폭이 넓습니다.

■ 인천은 무상급식비 단가 인상에 반영

인천시 교육청은 상반기 급식 잔여 예산이 284억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교육청 측은 인천의 경우 급식비 예산과 별도로 학생 1명당 '교육회복지원금' 10만 원씩을 지급하기 때문에 경기처럼 또 지역 화폐를 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서울에서 시도된 '희망급식 바우처'나 식재료 가정으로 배달(급식 꾸러미) 사업 등을 시도하기는 지역적 특성상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도서 지역을 끼고 있는 데다 개별 교육지원청별로 등교일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반기 무상급식비 단가를 올리는 데 돈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천 지역 학생 34만 5천여 명은 올해 식품 지원 단가보다 6% 내외로 이전보다 더 '비싼 밥'을 먹게 됩니다. 특히 '친환경 식재료 구입'에 우선 사용하겠다고 교육청은 밝혔습니다.

교육청 예산을 살펴보며 알 수 있는 것은 돈이 모자라는 것만큼 돈이 남는 상황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에 없던 사업을 새로 기획해 추진하면 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수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데다, 일회성 사업을 벌이다 보니 전례도 담당 조직도 없는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행정 처리 등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게 큰데 실질적으로는 수용자 만족도가 그렇게까지 높게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교육청의 남은 예산 사례에서 보이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남은 예산' 사례를 짚어보면 "예산이 남아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최선의 대처에 대해 한번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해 급식 예산이 남을 거라는 건 모두가 예상이 가능했습니다. 이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의 대응이 가장 빨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4월 13일에 바우처 사업을 위한 학교급식자문위원회를 개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희망급식 바우처는 5월부터 풀렸습니다.

인천시교육청은 7월 26일 미집행 예산 활용방안에 대한 의견을 지자체 측에 물었습니다. 경기도의 경우 추진 경과에 대한 기록은 보고하지 않고 지역 화폐 지급 시기는 11월로 돼 있습니다.

빨리 상황을 공개하고, 돈이 얼마나 남는지 알려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여유도 생긴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물론 그렇게 새로 기획한 사업이 늘 성공하거나 반응이 좋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급식 단가도 올려보고, 식재료 배달도 해 보고, 화폐 형태로 나눠줘 보기도 하면서 정보 값을 쌓고, 기관의 능력을 넓혀가는 계기로 삼는 건 가능해 보였습니다.

■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라"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세계 금융위기를 다룬 책 '부메랑'에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때 전 국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면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조건이 터져 나오는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돈 쓰는 것도 실험이고 시도이며 숙제입니다. 이 시기가 지난 뒤 우리는 '돈 잘 쓰는 국가, 현명한 국민'이었다고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코로나19에 남은 ‘급식예산’…‘급식바우처·지역화폐·단가인상’에 썼다
    • 입력 2021-11-18 11:18:53
    취재K

■ 못 쓰고 남은 2021 급식 예산, 어떻게 처리했을까?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19는 우리가 세운 계획들을 여러 차례 망가뜨렸습니다. 돈을 버는 데 제약을 받아 돈이 모자라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동안 언론에서 꽤 다뤘습니다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돈을 쓰는 데 제약을 받아서 돈이 남아버린 상황 말입니다. 어디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학교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학생 상당수가 정상 등교를 하지 못한 채 비대면 수업을 받았습니다. 11월 16일 기준 '교육분야 코로나19 현황 자료'를 보면 유, 초, 중등 전체 학생 594만 명 중 377만 명(63.6%)만 등교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이건 전국 수치로, 실제로 서울 수도권의 등교율은 이보다 낮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급식비 예산으로 잡아 놓은 돈들이 남았습니다.

급식비는 얼마나 남았고, 남은 돈은 어떻게 썼을까요? 국회 교육위원회 박찬대 의원실(더불어민주당)과 함께 각 시·도 교육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등교일수가 많지 않았던 수도권, 즉 서울과 경기, 인천 교육청에서 주로 돈이 남았는데요. 예상 밖의 예산에 대해 지역별로 대응 방식은 달랐습니다.

■ 촘촘한 급식지원, '희망급식 바우처'

서울시교육청은 편의점과 손잡고 사업을 벌였습니다.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입니다. 학교에 오지 않는 초·중·고 학생 한 명당 10만 원씩을 제로페이 포인트로 지원했습니다. 예산은 516억 원이었습니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두 달간 편의점에서 이 돈을 쓸 수 있었죠.

교육청은 학교급식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 돈으로 도시락과 과일, 흰 우유, 샌드위치, 과채 주스 등만 살 수 있도록 제한했습니다 너무 짜거나 상대적으로 고열량인 식품을 사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이런 제한 때문에 정작 '살 게 없다'는 불만이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예산 516억 원 중에 489억 원이 사용됐고 27억 원은 쓰지 못했습니다. 사용률 95%입니다. 교육청은 3억 2,000만 원 정도를 제로페이 수수료로 지출했지만, 홍보비 등 부대비용은 쓰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박찬대 의원실의 자료를 보면 희망급식 바우처로 '무엇을 샀나'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품목 17종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건 요거트 류로 구입 비율이 25%입니다. 2위는 과채 주스 류로 19%, 3위는 흰 우유 8%, 4위는 삼각김밥 8% 그리고 5위는 7%를 차지한 가공란이었습니다.

급식을 대체할 만한 김밥과 샌드위치는 각각 6%, 도시락은 5%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이 사업을 벌이고도 급식비는 남았습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서울시교육청의 올해 급식비 불용 잔액은 270억 원으로 예상됩니다. 교육청은 이 돈으로 남은 등교 기간 급식비 지원 단가를 올리는 데 쓸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 경기도는 '지역 화폐' 5만 원…사용 폭 넓어

경기도의 경우 2021년 학교급식경비 가운데 830억 원이 남았습니다. 교육청은 이 돈을 모든 학교 재학생 166만 명에 지역 화폐로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급 금액은 1인당 5만 원입니다.

'교육회복지원금' 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돈은 경기도 지역 화폐로 지급됩니다. 우선 지역 화폐 어플리케이션에 먼저 가입하고, 학교에 신청하면 다음 달 15일에 입금이 되는 방식입니다. 이른바 재난 지원금 지급 형식과 비슷합니다. 사용처 역시 지역 화폐 가맹점에서 모두 가능해서, 편의점에서 제한된 물품만 살 수 있는 서울보다는 사용 폭이 넓습니다.

■ 인천은 무상급식비 단가 인상에 반영

인천시 교육청은 상반기 급식 잔여 예산이 284억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교육청 측은 인천의 경우 급식비 예산과 별도로 학생 1명당 '교육회복지원금' 10만 원씩을 지급하기 때문에 경기처럼 또 지역 화폐를 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서울에서 시도된 '희망급식 바우처'나 식재료 가정으로 배달(급식 꾸러미) 사업 등을 시도하기는 지역적 특성상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도서 지역을 끼고 있는 데다 개별 교육지원청별로 등교일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반기 무상급식비 단가를 올리는 데 돈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천 지역 학생 34만 5천여 명은 올해 식품 지원 단가보다 6% 내외로 이전보다 더 '비싼 밥'을 먹게 됩니다. 특히 '친환경 식재료 구입'에 우선 사용하겠다고 교육청은 밝혔습니다.

교육청 예산을 살펴보며 알 수 있는 것은 돈이 모자라는 것만큼 돈이 남는 상황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에 없던 사업을 새로 기획해 추진하면 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수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데다, 일회성 사업을 벌이다 보니 전례도 담당 조직도 없는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행정 처리 등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게 큰데 실질적으로는 수용자 만족도가 그렇게까지 높게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교육청의 남은 예산 사례에서 보이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남은 예산' 사례를 짚어보면 "예산이 남아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최선의 대처에 대해 한번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해 급식 예산이 남을 거라는 건 모두가 예상이 가능했습니다. 이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의 대응이 가장 빨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4월 13일에 바우처 사업을 위한 학교급식자문위원회를 개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희망급식 바우처는 5월부터 풀렸습니다.

인천시교육청은 7월 26일 미집행 예산 활용방안에 대한 의견을 지자체 측에 물었습니다. 경기도의 경우 추진 경과에 대한 기록은 보고하지 않고 지역 화폐 지급 시기는 11월로 돼 있습니다.

빨리 상황을 공개하고, 돈이 얼마나 남는지 알려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여유도 생긴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물론 그렇게 새로 기획한 사업이 늘 성공하거나 반응이 좋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급식 단가도 올려보고, 식재료 배달도 해 보고, 화폐 형태로 나눠줘 보기도 하면서 정보 값을 쌓고, 기관의 능력을 넓혀가는 계기로 삼는 건 가능해 보였습니다.

■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라"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세계 금융위기를 다룬 책 '부메랑'에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때 전 국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면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조건이 터져 나오는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돈 쓰는 것도 실험이고 시도이며 숙제입니다. 이 시기가 지난 뒤 우리는 '돈 잘 쓰는 국가, 현명한 국민'이었다고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