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든 남성 앞에 남겨진 우리 가족, 그곳에 경찰은 없었다

입력 2021.11.19 (16:26) 수정 2021.11.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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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사흘 뒤 만난 피해 가족의 아버지 B 씨는 울컥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가면서도,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옆에 있던 20대 딸은 끔찍했던 기억이 고통스러운 듯 결국 자리를 피했습니다.

평온하고 단란했던 한 가정에 들이닥친 악몽 같은 사건, 2021년 11월 15일 인천 남동구에서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입니다.

뉴스 보도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B 씨의 기억을 비교적 상세히 풀어보겠습니다. 다른 이유를 떠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아주 작은 기회라도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엄청난 비명소리에 뛰어 올라가…내려오는 경찰과 1층에서 마주쳐"

"딸의 말을 들어보면 (범인은) 외투 호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4층에서 조용히 내려오더래요. 흉기를 숨기고요. 그리고는 아내를 향해 휘둘렀습니다. 제가 경찰이랑 1층에 내려가서 "경찰서로 어떻게 이관을 해야…"라고 말을 꺼내는데 비명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문을 열었는데 엄청난 비명소리가 나니까 놀라잖아요. (1층에 함께 있던) 경찰한테 빨리 올라가자고, 그리고 따라오는 줄 알았어요. "

정신없이 3층으로 뛰어 올라가던 B씨의 기억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내려오고 엇갈린거죠. 1층에서 내려오는 경찰과 마주쳤어요. '119' 이런 소리를 하면서 경찰이 놀라서 소리지르면서 나갔어요. 경찰은 소리지르면서 나가고 나는 경찰 들어오라고, "올라갑시다'"하면서 올라간 거죠."

■ "흉기 든 A 씨 손을 잡고 있던 딸…딸 살리려 직접 제압"

경찰이 동행한 줄 알았지만 1층 공동현관문이 잠기면서 결국 3층에 도착한 건 B 씨 혼자였습니다. 집 앞은 참혹했습니다. 흉기를 든 A 씨, 그를 막고 있던 B 씨의 딸, 피를 흘리고 있는 B 씨의 아내, 그리고 B 씨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딸이 흉기를 든 범인 손을 잡고 있었어요. 아내는 바닥에 쓰러져있었고 피를 많이 흘렸고요. 지혈을 해야하는데 딸이 위험하잖아요, 흉기를 다시 휘두를 수 있으니까. 딸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 지혈을 포기하고 A씨를 잡아서 반대쪽으로 끌고가서 제압했어요. 다 제압해서 움직이지 못하게끔 해놓으니까 경찰이 왔죠. A씨는 이미 늘어져 있었는데 경찰이 테이저건을 사용하고, 다른 경찰은 아내를 데리고 내려가고… A씨 수갑채우는거까지 봤는데, 그 다음은 기억이 안나요."

■ "경찰 계속 불렀는데…A 씨 제압한 뒤에야 올라와"

B 씨는 A 씨를 제압하는 동안에도 계속 경찰을 불렀다고 말합니다.

"경찰! 경찰!' 계속 불렀어요. 그 시간이 얼마나 긴 지… (A 씨를) 붙잡고 있다가 나중에는 힘이 없어서, 이걸 제압 못하면 다시 휘두를거 같으니까 오죽했으면 내가 흉기를 빼앗아서 쳤겠어요. 그걸 그 와중에도 칼등으로 쳐야 안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제압을 했어요. 만약에 내가 1층에서 조금만 멀리 나갔으면, 10m만 더 갔어도 우리 다 죽었어요. 그러니 내가 경찰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 "경찰 대처 빨랐다면 피해 줄일 수 있었을 것"

B 씨의 아내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B 씨도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고, 딸도 손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경찰이 이렇다면 정말 여기 살고 싶지 않아요. 물론 좋은 경찰 분들도 있어요, 저도 도움받은 적도 있고 그런 분들은 '업고 다니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나요. 같이 올라와서 제압하고 내가 아내를 바로 데리고 내려갔으면, 의식 회복할 수 있었다고 봐요."

■ 부실 대응 경찰관 2명 대기발령…"경찰이 그곳에 없었다."

어제(18일) 송민헌 청장 이름의 사과문을 발표했던 인천경찰청은 현장에 출동했던 논현경찰서 모 지구대 소속 A 경위와 B 순경을 대기 발령했습니다.

감찰 조사가 진행 중이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피해자를 버리고 도망간 경찰 파면 요구"라는 제목의 청원 글도 올라왔습니다. 지원 요청을 이유로 현장을 이탈하는 것이 최선의 판단이었는지, 적절한 무기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었는지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아야 할 부분은 결국 하나일 겁니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 경찰이 현장에 없었다는 것' 바로 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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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흉기 든 남성 앞에 남겨진 우리 가족, 그곳에 경찰은 없었다
    • 입력 2021-11-19 16:26:35
    • 수정2021-11-19 16:27:23
    취재K

사건 발생 사흘 뒤 만난 피해 가족의 아버지 B 씨는 울컥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가면서도,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옆에 있던 20대 딸은 끔찍했던 기억이 고통스러운 듯 결국 자리를 피했습니다.

평온하고 단란했던 한 가정에 들이닥친 악몽 같은 사건, 2021년 11월 15일 인천 남동구에서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입니다.

뉴스 보도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B 씨의 기억을 비교적 상세히 풀어보겠습니다. 다른 이유를 떠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아주 작은 기회라도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엄청난 비명소리에 뛰어 올라가…내려오는 경찰과 1층에서 마주쳐"

"딸의 말을 들어보면 (범인은) 외투 호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4층에서 조용히 내려오더래요. 흉기를 숨기고요. 그리고는 아내를 향해 휘둘렀습니다. 제가 경찰이랑 1층에 내려가서 "경찰서로 어떻게 이관을 해야…"라고 말을 꺼내는데 비명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문을 열었는데 엄청난 비명소리가 나니까 놀라잖아요. (1층에 함께 있던) 경찰한테 빨리 올라가자고, 그리고 따라오는 줄 알았어요. "

정신없이 3층으로 뛰어 올라가던 B씨의 기억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내려오고 엇갈린거죠. 1층에서 내려오는 경찰과 마주쳤어요. '119' 이런 소리를 하면서 경찰이 놀라서 소리지르면서 나갔어요. 경찰은 소리지르면서 나가고 나는 경찰 들어오라고, "올라갑시다'"하면서 올라간 거죠."

■ "흉기 든 A 씨 손을 잡고 있던 딸…딸 살리려 직접 제압"

경찰이 동행한 줄 알았지만 1층 공동현관문이 잠기면서 결국 3층에 도착한 건 B 씨 혼자였습니다. 집 앞은 참혹했습니다. 흉기를 든 A 씨, 그를 막고 있던 B 씨의 딸, 피를 흘리고 있는 B 씨의 아내, 그리고 B 씨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딸이 흉기를 든 범인 손을 잡고 있었어요. 아내는 바닥에 쓰러져있었고 피를 많이 흘렸고요. 지혈을 해야하는데 딸이 위험하잖아요, 흉기를 다시 휘두를 수 있으니까. 딸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 지혈을 포기하고 A씨를 잡아서 반대쪽으로 끌고가서 제압했어요. 다 제압해서 움직이지 못하게끔 해놓으니까 경찰이 왔죠. A씨는 이미 늘어져 있었는데 경찰이 테이저건을 사용하고, 다른 경찰은 아내를 데리고 내려가고… A씨 수갑채우는거까지 봤는데, 그 다음은 기억이 안나요."

■ "경찰 계속 불렀는데…A 씨 제압한 뒤에야 올라와"

B 씨는 A 씨를 제압하는 동안에도 계속 경찰을 불렀다고 말합니다.

"경찰! 경찰!' 계속 불렀어요. 그 시간이 얼마나 긴 지… (A 씨를) 붙잡고 있다가 나중에는 힘이 없어서, 이걸 제압 못하면 다시 휘두를거 같으니까 오죽했으면 내가 흉기를 빼앗아서 쳤겠어요. 그걸 그 와중에도 칼등으로 쳐야 안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제압을 했어요. 만약에 내가 1층에서 조금만 멀리 나갔으면, 10m만 더 갔어도 우리 다 죽었어요. 그러니 내가 경찰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 "경찰 대처 빨랐다면 피해 줄일 수 있었을 것"

B 씨의 아내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B 씨도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고, 딸도 손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경찰이 이렇다면 정말 여기 살고 싶지 않아요. 물론 좋은 경찰 분들도 있어요, 저도 도움받은 적도 있고 그런 분들은 '업고 다니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나요. 같이 올라와서 제압하고 내가 아내를 바로 데리고 내려갔으면, 의식 회복할 수 있었다고 봐요."

■ 부실 대응 경찰관 2명 대기발령…"경찰이 그곳에 없었다."

어제(18일) 송민헌 청장 이름의 사과문을 발표했던 인천경찰청은 현장에 출동했던 논현경찰서 모 지구대 소속 A 경위와 B 순경을 대기 발령했습니다.

감찰 조사가 진행 중이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피해자를 버리고 도망간 경찰 파면 요구"라는 제목의 청원 글도 올라왔습니다. 지원 요청을 이유로 현장을 이탈하는 것이 최선의 판단이었는지, 적절한 무기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었는지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아야 할 부분은 결국 하나일 겁니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 경찰이 현장에 없었다는 것' 바로 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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