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 ‘올림픽 보이콧’패로 중국 길들이기…아슬아슬 ‘AGAIN 평창’

입력 2021.11.19 (16:46) 수정 2021.11.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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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할지 모르겠다”던 올림픽 보이콧, 수면 위로 오른 이유는?

지난 5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하원 인권위원회의 동계올림픽 청문회에서 내년 2월 열릴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참석을 거부했던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42년 만에 미국의 ‘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한 겁니다. 다만 모스크바 올림픽 때와는 달리 선수들은 참가시키고, 정부와 정치권 인사는 참석하지 말자는 주장이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중국 신장에서 자행된 위구르족 학살을 거론하며 “학살을 자행하는 중국을 치하하는 자리에 참석한다면 어떻게 전 세계에서 인권에 관해 말할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을 후원하는 기업들까지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 스스로도 보이콧 가능성에 대해서는 “실제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자신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도 베이징 하계올림픽 보이콧을 건의했지만, 결국 부시 대통령이 직접 개막식에 참석했던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백악관은 이미 한 달 전쯤 “보이콧 논의는 없다”고 단언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중국이 펠로시 의장의 발언을 두고 “거짓말과 허위로 가득 차 있다”, “미국 정치인들의 비열한 정치 게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좀 달라졌습니다. 현지 시각 지난 18일, 캐나다 트뤼도 총리와 회담을 마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처음으로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보이콧 검토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한 것입니다.

18일(현지 시각)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은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회담 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AP)18일(현지 시각)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은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회담 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AP)

■ 높아진 참석 거부 요구...정치적으로는 ‘회심의 패’

펠로시 의장의 언급 이후 여섯 달 사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줄곧 보이콧을 요구해온 인권 단체들의 목소리가 더 높아진 건 물론 미국의 우방인 유럽국가들이 보이콧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7월, 유럽의회가 홍콩 인권상황을 이유로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을 유럽연합(EU) 회원국에 권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영국 하원도 같은 달,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가결했습니다. 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유럽국 정부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미국과 행보를 함께할 가능성이 큽니다.

취임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줄곧 강조해 온 바이든 정부로서는 ‘중국의 인권 침해를 고려해달라’는 요구를 외면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중국과 경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쥐게 된 ‘보이콧’ 카드는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은 패입니다. 성공적 올림픽을 원하는 중국에 보이콧 카드를 빌미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미·영·호주 안보협력체 ‘오커스’를 출범시키며 사이가 살짝 벌어진 유럽 국가들과 함께 움직인다면 미국의 여전한 유럽 내 영향력을 확인시킬 수도 있습니다.

마침 지난 15일, 중국과 화상 정상회담도 치렀습니다. 그간 제기돼 오던 ‘미·중 관계 악화로 정상회담도 못 치를 수 있다’는 우려는 일단 불식시켜 좀 편해진 상황입니다. 그동안 보이콧에 대한 입장 표명을 자제해오다가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조시 로긴 칼럼니스트는 몇몇 미국 정부 당국자들을 취재한 결과, 바이든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이 결국 불참을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습니다.

14일(현지 시각) 한미, 한미일 차관협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 D.C.에 도착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가운데)14일(현지 시각) 한미, 한미일 차관협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 D.C.에 도착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가운데)

■ ‘종전선언’ 연말 시한 잡았는데...‘AGAIN 평창’ 무산되나

바이든 대통령의 보이콧 언급에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종전선언’과 남북 관계 반전을 도모하던 우리 정부의 계획도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최종건 외교 1차관은 한미일 차관협의를 위해 미국에 입국하며 기자들과 만나 종전선언에 관해 “조만간 (한미 간 논의의) 결과가 있을 것 같고, 그 뒤 북에 제안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연말 국면이고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연말에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시점을) 언급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부가 ‘연말’ 시점을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1월부터 북한은 긴 연말 결산, 이른바 총화에 들어갑니다. 한 해의 결산은 물론 내년의 국정 계획 수립도 이 총화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렇게 결정한 이듬해의 국정방향을 새해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통 신년사로 발표합니다.

2018년 남북,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튼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대표단 참석도 그해 첫날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깜짝 언급해 김여정 부부장이 개막식에 참석했습니다. 즉, 연말까지는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간의 조율이 끝나 북한에 제안하는 과정까지 이뤄져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한 관계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겁니다.

이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평창 올림픽 때처럼 남북, 북미 접촉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정부의 로드맵입니다. 현 정부의 임기 종료 시점에도 맞는 수순입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대표단이 베이징에 오지 않는다면 이런 정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빨간 불이 켜지게 된 종전선언 논의와 맞물려 미국의 ‘보이콧’ 검토에 우리 정부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반도 문제가 미·중 관계의 종속 변수로 자꾸만 밀려나는 현실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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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19 16:46:37
    • 수정2021-11-19 16: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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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할지 모르겠다”던 올림픽 보이콧, 수면 위로 오른 이유는?

지난 5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하원 인권위원회의 동계올림픽 청문회에서 내년 2월 열릴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참석을 거부했던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42년 만에 미국의 ‘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한 겁니다. 다만 모스크바 올림픽 때와는 달리 선수들은 참가시키고, 정부와 정치권 인사는 참석하지 말자는 주장이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중국 신장에서 자행된 위구르족 학살을 거론하며 “학살을 자행하는 중국을 치하하는 자리에 참석한다면 어떻게 전 세계에서 인권에 관해 말할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을 후원하는 기업들까지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 스스로도 보이콧 가능성에 대해서는 “실제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자신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도 베이징 하계올림픽 보이콧을 건의했지만, 결국 부시 대통령이 직접 개막식에 참석했던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백악관은 이미 한 달 전쯤 “보이콧 논의는 없다”고 단언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중국이 펠로시 의장의 발언을 두고 “거짓말과 허위로 가득 차 있다”, “미국 정치인들의 비열한 정치 게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좀 달라졌습니다. 현지 시각 지난 18일, 캐나다 트뤼도 총리와 회담을 마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처음으로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보이콧 검토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한 것입니다.

18일(현지 시각)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은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회담 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AP)
■ 높아진 참석 거부 요구...정치적으로는 ‘회심의 패’

펠로시 의장의 언급 이후 여섯 달 사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줄곧 보이콧을 요구해온 인권 단체들의 목소리가 더 높아진 건 물론 미국의 우방인 유럽국가들이 보이콧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7월, 유럽의회가 홍콩 인권상황을 이유로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을 유럽연합(EU) 회원국에 권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영국 하원도 같은 달,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가결했습니다. 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유럽국 정부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미국과 행보를 함께할 가능성이 큽니다.

취임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줄곧 강조해 온 바이든 정부로서는 ‘중국의 인권 침해를 고려해달라’는 요구를 외면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중국과 경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쥐게 된 ‘보이콧’ 카드는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은 패입니다. 성공적 올림픽을 원하는 중국에 보이콧 카드를 빌미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미·영·호주 안보협력체 ‘오커스’를 출범시키며 사이가 살짝 벌어진 유럽 국가들과 함께 움직인다면 미국의 여전한 유럽 내 영향력을 확인시킬 수도 있습니다.

마침 지난 15일, 중국과 화상 정상회담도 치렀습니다. 그간 제기돼 오던 ‘미·중 관계 악화로 정상회담도 못 치를 수 있다’는 우려는 일단 불식시켜 좀 편해진 상황입니다. 그동안 보이콧에 대한 입장 표명을 자제해오다가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조시 로긴 칼럼니스트는 몇몇 미국 정부 당국자들을 취재한 결과, 바이든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이 결국 불참을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습니다.

14일(현지 시각) 한미, 한미일 차관협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 D.C.에 도착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가운데)
■ ‘종전선언’ 연말 시한 잡았는데...‘AGAIN 평창’ 무산되나

바이든 대통령의 보이콧 언급에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종전선언’과 남북 관계 반전을 도모하던 우리 정부의 계획도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최종건 외교 1차관은 한미일 차관협의를 위해 미국에 입국하며 기자들과 만나 종전선언에 관해 “조만간 (한미 간 논의의) 결과가 있을 것 같고, 그 뒤 북에 제안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연말 국면이고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연말에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시점을) 언급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부가 ‘연말’ 시점을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1월부터 북한은 긴 연말 결산, 이른바 총화에 들어갑니다. 한 해의 결산은 물론 내년의 국정 계획 수립도 이 총화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렇게 결정한 이듬해의 국정방향을 새해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통 신년사로 발표합니다.

2018년 남북,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튼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대표단 참석도 그해 첫날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깜짝 언급해 김여정 부부장이 개막식에 참석했습니다. 즉, 연말까지는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간의 조율이 끝나 북한에 제안하는 과정까지 이뤄져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한 관계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겁니다.

이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평창 올림픽 때처럼 남북, 북미 접촉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정부의 로드맵입니다. 현 정부의 임기 종료 시점에도 맞는 수순입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대표단이 베이징에 오지 않는다면 이런 정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빨간 불이 켜지게 된 종전선언 논의와 맞물려 미국의 ‘보이콧’ 검토에 우리 정부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반도 문제가 미·중 관계의 종속 변수로 자꾸만 밀려나는 현실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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