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나 같은 선수 없었으면”…프로볼링선수 A 씨의 진정서

입력 2021.11.20 (08:00) 수정 2021.11.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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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10년 차인 프로 볼링 선수 A 씨를 만났습니다. 석 달 전 프로볼링협회 선수협의회에 진정서를 냈다고 했습니다. 7년간 인연을 맺은 코치 B 씨가 대회 상금을 빼앗아 갔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A 씨는 '지금이라도 제가 용기를 내어 이 모든 것을 바로잡고, 저와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 진정서에 적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봤습니다.

[연관 기사] “프로볼링 코치가 7년간 상금 가로채”…“감사 표시로 받은 것”(2021.11.18 방송)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8568

■ "A급은 50%, B급은 30%"…7년간 3천여만 원 지급

A 씨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자신이 받은 상금 일부를 현금으로 줬다고 밝혔습니다. 둘이 협의된 거라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A 씨는 B 씨의 강요로 마지 못해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볼링대회에서 우승이나 준우승을 했을 땐 상금의 30%를 줬다고 했습니다. 3등을 했을 땐 50%, 나머지 등수를 했을 땐 전부 다 줬다고 했습니다. 7년간 B 씨에게 준 상금은 3천만 원이 넘습니다. 실제 거래 내역서를 취재진에게 보여줬습니다.

A 씨의 예금 거래 내역서. 프로볼링협회에서 상금이 입금되면, A 씨는 B 씨에게 줄 현금을 인출했다.A 씨의 예금 거래 내역서. 프로볼링협회에서 상금이 입금되면, A 씨는 B 씨에게 줄 현금을 인출했다.

B 씨가 상금을 달라고 한 명목은 '코칭+지공(선수 전용 볼링공에 손가락 구멍을 뚫어주는 행위)' 비용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지도를 받았다면 납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A 선수는 B 씨에게서 운동과 관련된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가르친 코치는 따로 있었고, B 씨에게는 사실상 지공만 맡겼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B 씨는 A 씨가 우승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얘를 이렇게 만들어 프로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A 씨는 B 씨가 경제적인 부분까지 관여해 다른 일을 못 하게 했고, 볼링장 청소 등 잡일도 거들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B 씨에 대한 이야기는, A 씨뿐 아니라 국가대표 출신의 다른 프로 볼링 선수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선수는 "2014년에 국가대표가 됐는데, 그 이후 B 씨가 국가대표 수당 중 50%씩, 즉 반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매달 90만 원씩 들어오는 국가대표 수당 중 40만 원을 현금으로 B 씨에게 직접 줬고, 해당 선수가 선수촌에 있어서 나오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을 통해 돈을 대신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 B 씨 "감사의 뜻으로 받아... '갈취' 아냐"

A 씨의 일기장A 씨의 일기장

A 씨가 코치 B 씨와 4년 전 인연을 끊었습니다. 슬럼프를 겪으면서 멀어졌다고 합니다. 통상 코치는 선수의 실력이 떨어질 때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선수를 붙잡아 줘야 하는데, B 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해 사이가 멀어졌다는 게 A 씨의 주장입니다.

여기에 앙심을 품었다면 바로 고발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A 씨가 4년이나 지난 뒤에야 진정서를 낸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B 씨가 또 다른 선수 등을 만나 '투자 명목'으로 돈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문제 제기를 결심했다는 겁니다.

A 씨가 문을 두드린 곳은 프로볼링협회 선수협의회였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겪은 내용을 자세히 적어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진정서 내용은 그대로 B 씨에게 전달됐습니다. B 씨가 프로볼링협회 '이사'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서를 본 B 씨는 A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취재진과 만난 B 씨는 진정서의 내용 중 특히 '갈취'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습니다.

B 씨는 "제 딴에는 아낌없이 지원했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선수)를 품고 살았다"며 "'너 이번에 몇 등 했으니까, 얼마 갖고 와야지' 라고 우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특히 "갈취를 한 적은 전혀 없다"고 강조하면서 법적인 판단을 받기 위해 고소를 진행한 것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A 씨가 나선 이유 "나와 비슷한 피해자 없었으면"

A 씨가 취재진에게 되풀이 한 말이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선수가 더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는 거였습니다.

"코치가 '해달라고 하면 해줘야 해'라는 심리를 가지고 돈을 갈취한 것"이라며 "다른 선수들이 '나도 혹시 내 코치가 그렇게 갈취하고 있지 않나?'라는 그런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코치와 선수 간, 상금을 둘러싼 논란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닙니다. 2019년에는 한 펜싱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회 입상 포상금 일부를 받았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특히 비인기 종목에서 이런 일이 더 많다고 합니다. 대회에서 우승해도 상금액이 크지 않고, 저변이 넓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치와 선수 간에 정식으로 계약을 맺지 않고, 알음알음 운동을 함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 지도자들 사이에 '도움을 줬으니, 기여한 부분에 대해 보상을 나눠 갖는게 왜 문제냐'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선수-지도자 간에 명확한 관계를 설정하고, 정한 룰에 따라 보상을 나누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 없이 주먹구구 식의 관계가 이어지면 이런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 입장에선 코치에게 먼저 상금 분배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게 어려운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프로볼링협회는 B 씨를 일단 이사직에서 내려오도록 조처했습니다.

프로볼링협회 관계자는 "A 씨와 B 씨 간의 문제가 불거졌던 기간은 B 씨가 이사로 재직하기 전의 일이라 사실상 관여할 수 없다"라며 "사법적 판단이 나온 이후 별도의 요청이 있으면 상벌위원회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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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나 같은 선수 없었으면”…프로볼링선수 A 씨의 진정서
    • 입력 2021-11-20 08:00:31
    • 수정2021-11-20 08:00:36
    취재후·사건후

입단 10년 차인 프로 볼링 선수 A 씨를 만났습니다. 석 달 전 프로볼링협회 선수협의회에 진정서를 냈다고 했습니다. 7년간 인연을 맺은 코치 B 씨가 대회 상금을 빼앗아 갔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A 씨는 '지금이라도 제가 용기를 내어 이 모든 것을 바로잡고, 저와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 진정서에 적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봤습니다.

[연관 기사] “프로볼링 코치가 7년간 상금 가로채”…“감사 표시로 받은 것”(2021.11.18 방송)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8568

■ "A급은 50%, B급은 30%"…7년간 3천여만 원 지급

A 씨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자신이 받은 상금 일부를 현금으로 줬다고 밝혔습니다. 둘이 협의된 거라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A 씨는 B 씨의 강요로 마지 못해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볼링대회에서 우승이나 준우승을 했을 땐 상금의 30%를 줬다고 했습니다. 3등을 했을 땐 50%, 나머지 등수를 했을 땐 전부 다 줬다고 했습니다. 7년간 B 씨에게 준 상금은 3천만 원이 넘습니다. 실제 거래 내역서를 취재진에게 보여줬습니다.

A 씨의 예금 거래 내역서. 프로볼링협회에서 상금이 입금되면, A 씨는 B 씨에게 줄 현금을 인출했다.
B 씨가 상금을 달라고 한 명목은 '코칭+지공(선수 전용 볼링공에 손가락 구멍을 뚫어주는 행위)' 비용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지도를 받았다면 납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A 선수는 B 씨에게서 운동과 관련된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가르친 코치는 따로 있었고, B 씨에게는 사실상 지공만 맡겼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B 씨는 A 씨가 우승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얘를 이렇게 만들어 프로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A 씨는 B 씨가 경제적인 부분까지 관여해 다른 일을 못 하게 했고, 볼링장 청소 등 잡일도 거들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B 씨에 대한 이야기는, A 씨뿐 아니라 국가대표 출신의 다른 프로 볼링 선수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선수는 "2014년에 국가대표가 됐는데, 그 이후 B 씨가 국가대표 수당 중 50%씩, 즉 반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매달 90만 원씩 들어오는 국가대표 수당 중 40만 원을 현금으로 B 씨에게 직접 줬고, 해당 선수가 선수촌에 있어서 나오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을 통해 돈을 대신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 B 씨 "감사의 뜻으로 받아... '갈취' 아냐"

A 씨의 일기장
A 씨가 코치 B 씨와 4년 전 인연을 끊었습니다. 슬럼프를 겪으면서 멀어졌다고 합니다. 통상 코치는 선수의 실력이 떨어질 때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선수를 붙잡아 줘야 하는데, B 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해 사이가 멀어졌다는 게 A 씨의 주장입니다.

여기에 앙심을 품었다면 바로 고발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A 씨가 4년이나 지난 뒤에야 진정서를 낸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B 씨가 또 다른 선수 등을 만나 '투자 명목'으로 돈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문제 제기를 결심했다는 겁니다.

A 씨가 문을 두드린 곳은 프로볼링협회 선수협의회였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겪은 내용을 자세히 적어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진정서 내용은 그대로 B 씨에게 전달됐습니다. B 씨가 프로볼링협회 '이사'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서를 본 B 씨는 A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취재진과 만난 B 씨는 진정서의 내용 중 특히 '갈취'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습니다.

B 씨는 "제 딴에는 아낌없이 지원했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선수)를 품고 살았다"며 "'너 이번에 몇 등 했으니까, 얼마 갖고 와야지' 라고 우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특히 "갈취를 한 적은 전혀 없다"고 강조하면서 법적인 판단을 받기 위해 고소를 진행한 것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A 씨가 나선 이유 "나와 비슷한 피해자 없었으면"

A 씨가 취재진에게 되풀이 한 말이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선수가 더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는 거였습니다.

"코치가 '해달라고 하면 해줘야 해'라는 심리를 가지고 돈을 갈취한 것"이라며 "다른 선수들이 '나도 혹시 내 코치가 그렇게 갈취하고 있지 않나?'라는 그런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코치와 선수 간, 상금을 둘러싼 논란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닙니다. 2019년에는 한 펜싱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회 입상 포상금 일부를 받았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특히 비인기 종목에서 이런 일이 더 많다고 합니다. 대회에서 우승해도 상금액이 크지 않고, 저변이 넓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치와 선수 간에 정식으로 계약을 맺지 않고, 알음알음 운동을 함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 지도자들 사이에 '도움을 줬으니, 기여한 부분에 대해 보상을 나눠 갖는게 왜 문제냐'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선수-지도자 간에 명확한 관계를 설정하고, 정한 룰에 따라 보상을 나누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 없이 주먹구구 식의 관계가 이어지면 이런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 입장에선 코치에게 먼저 상금 분배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게 어려운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프로볼링협회는 B 씨를 일단 이사직에서 내려오도록 조처했습니다.

프로볼링협회 관계자는 "A 씨와 B 씨 간의 문제가 불거졌던 기간은 B 씨가 이사로 재직하기 전의 일이라 사실상 관여할 수 없다"라며 "사법적 판단이 나온 이후 별도의 요청이 있으면 상벌위원회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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