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기부금으로 다른 단체 차량 구입…장애인단체장 ‘징역형’

입력 2021.11.20 (10:01) 수정 2021.11.2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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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을 다른 단체에 나눠준 혐의가 적발된 경남지체장애인협회기부금을 다른 단체에 나눠준 혐의가 적발된 경남지체장애인협회

■장애인 교통시설 점검하라고 받은 기부금 '다른 단체에 무단 송금'

경남지체장애인연합회의 2019년 후원금 수입 보고서.

9월 5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한 은행 사회공헌부로부터 '2019 안전하고 편리한 보행로 실태조사' 사업에 써달라며 2,500만 원의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경남지체장애인연합회의 ‘2019년 후원금 수입 보고서’.경남지체장애인연합회의 ‘2019년 후원금 수입 보고서’.

연합회가 이 후원금을 어떻게 썼는지 해당 은행에 제출한 사용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장애인 보행로 실태를 조사했다며 조사요원 수당과 홍보비, 세비나 비용 등으로 2,500만 원을 쓴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현수막을 펼쳐놓고 캠페인을 벌이는 사진까지 친절하게 첨부했습니다.

‘해당 은행에 제출한 사용 보고서’.‘해당 은행에 제출한 사용 보고서’.

하지만 가짜 보고서였습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은 모집한 기부금품을 모집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연합회장은 2,500만 원 가운데 2,100만 원을 다른 단체로 송금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기부금을 받은 단체는 장애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단체!

해당 단체는 받은 2,100만 원을 차량 구매에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단체들끼리 이른바 '후원금 나누기'를 한 것입니다.

두 단체에는 함께 소속된 임원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남지체장애인연합회의 임원들 가운데 일부가 기부금을 부당하게 나눠 받은 단체의 임원이기도 한 것입니다.

연합회는 해당 시민단체가 사실은 은행으로부터 기부받게 돼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해당 시민단체가 법정기부단체가 아니어서 은행의 공식 후원을 받지 못해 후원금을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연합회와 해당 시민단체, 은행 3자 간 협의를 통해 순차 지급에 이뤄졌다는 설명인데,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보행로 실태조사 사업'으로 기부 목적이 명확하게 특정된 기부였고, 은행이 순차 지급을 약정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경남지체장애인연합회장 58살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가 같은 범죄 전력이 없고, 모집목적 이외 용도로 사용된 돈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건 아니라는 점을 참작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지난해 KBS 창원총국 보도로 드러난 '기부금 나누기' 행태는 이번 판결로 고스란히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후원금 한 푼 지원 못 받은 장애인들 "상실감 커"

연합회장과 임원들끼리 후원금을 나눈 데 대해 소속 장애인들의 상실감은 큽니다.

연합회 소속 한 지체장애인은 "기부금을 목적 외에 사용하더라도, 사정이 어려운 회원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한 병원비나 지원금으로 쓴 것도 아니다"라며 "전혀 상관도 없는 단체들의 차량 구입비로 쓰였다는 소식을 듣고 분통이 터졌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장애인단체 역시 이런 식으로 목적 외로 기부금이 쓰이면 기부자들이 장애인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기부 문화가 사그라지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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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기부금으로 다른 단체 차량 구입…장애인단체장 ‘징역형’
    • 입력 2021-11-20 10:01:06
    • 수정2021-11-20 10: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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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을 다른 단체에 나눠준 혐의가 적발된 경남지체장애인협회
■장애인 교통시설 점검하라고 받은 기부금 '다른 단체에 무단 송금'

경남지체장애인연합회의 2019년 후원금 수입 보고서.

9월 5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한 은행 사회공헌부로부터 '2019 안전하고 편리한 보행로 실태조사' 사업에 써달라며 2,500만 원의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경남지체장애인연합회의 ‘2019년 후원금 수입 보고서’.
연합회가 이 후원금을 어떻게 썼는지 해당 은행에 제출한 사용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장애인 보행로 실태를 조사했다며 조사요원 수당과 홍보비, 세비나 비용 등으로 2,500만 원을 쓴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현수막을 펼쳐놓고 캠페인을 벌이는 사진까지 친절하게 첨부했습니다.

‘해당 은행에 제출한 사용 보고서’.
하지만 가짜 보고서였습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은 모집한 기부금품을 모집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연합회장은 2,500만 원 가운데 2,100만 원을 다른 단체로 송금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기부금을 받은 단체는 장애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단체!

해당 단체는 받은 2,100만 원을 차량 구매에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단체들끼리 이른바 '후원금 나누기'를 한 것입니다.

두 단체에는 함께 소속된 임원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남지체장애인연합회의 임원들 가운데 일부가 기부금을 부당하게 나눠 받은 단체의 임원이기도 한 것입니다.

연합회는 해당 시민단체가 사실은 은행으로부터 기부받게 돼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해당 시민단체가 법정기부단체가 아니어서 은행의 공식 후원을 받지 못해 후원금을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연합회와 해당 시민단체, 은행 3자 간 협의를 통해 순차 지급에 이뤄졌다는 설명인데,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보행로 실태조사 사업'으로 기부 목적이 명확하게 특정된 기부였고, 은행이 순차 지급을 약정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경남지체장애인연합회장 58살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가 같은 범죄 전력이 없고, 모집목적 이외 용도로 사용된 돈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건 아니라는 점을 참작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지난해 KBS 창원총국 보도로 드러난 '기부금 나누기' 행태는 이번 판결로 고스란히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후원금 한 푼 지원 못 받은 장애인들 "상실감 커"

연합회장과 임원들끼리 후원금을 나눈 데 대해 소속 장애인들의 상실감은 큽니다.

연합회 소속 한 지체장애인은 "기부금을 목적 외에 사용하더라도, 사정이 어려운 회원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한 병원비나 지원금으로 쓴 것도 아니다"라며 "전혀 상관도 없는 단체들의 차량 구입비로 쓰였다는 소식을 듣고 분통이 터졌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장애인단체 역시 이런 식으로 목적 외로 기부금이 쓰이면 기부자들이 장애인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기부 문화가 사그라지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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