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데 또 고치고, 산 것 또 사고”…‘추경’에 돈 남아도는 학교

입력 2021.11.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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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요즘 코로나19에 경기까지 안좋다보니, 여기저기에서 돈이 없어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정반대인 곳이 있는데요. 바로 학교 얘기입니다. 갑자기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풀린 탓인데요. 돈이 남아돌아 걱정입니다.

멀쩡한 물건이 있는데 또 사기도 하고, 건물을 새로 색칠하기도 합니다.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 교육부 2차 추경 6조 원…"많아도 너무 많아"

올해 가을 교육계에는 돈 풍년이 들었습니다. 교육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으로 6조 원이 넘는 금액을 편성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나눠줬고, 각 학교에선 올해 9월 정도부터 이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출처:교육부출처:교육부

시도교육청별 2021년 제2차 추경 교육비특별회계 세출예산 편성 현황.pdf


강원도에 내려온 돈 3,469억 원…"고친 데 또 고치고, 사고 또 사고"

강원도교육청이 올해 가을 교육부에서 받은 예산은 3,469억 원입니다. 이 가운데 2,738억 원을 학교회계 전출금으로 썼습니다. 강원도 내 학교와 유치원 수는 1,010개. 학교마다 평균 2억 7천만 원씩 써야 하는 셈입니다.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친 홍천중학교 과학실.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친 홍천중학교 과학실.

각 학교마다 이 돈을 쓰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강원도 홍천의 한 중학교는 지난해 3,000만 원을 들여 과학실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책상부터 과학교구 수납함까지 전부 다 새 것으로 들여놨습니다. 그런데, 올해 가을 유사한 사업비가 1억 원 또 내려왔습니다.

결국, 예산을 쓰려다보니, 있는 노트북도 더 사고, 빔프로젝터도 있는 걸 새 것으로 교체해가며, 예산을 집행하고 있었습니다. 내구연한이 남은 비품도 교체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강릉의 한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는 1년 치 예산의 2배가 넘는 돈을 한 달 안에 소진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급한 대로 수업용 태블릿 PC와 휠체어, 사진 인화기를 사는 등 비품을 구매했습니다.

강릉의 한 초등학교 현관에 쌓여있는 택배 상자.강릉의 한 초등학교 현관에 쌓여있는 택배 상자.

겨울을 앞두고 서둘러 진행되는 학교 외벽 도색겨울을 앞두고 서둘러 진행되는 학교 외벽 도색

도색 사업비를 교부받은 학교의 의뢰를 받아 외벽 도색에 나선 업자는 "페인트는 수용성이기 때문에 겨울 도색은 효과가 떨어지는데 주문이 들어왔으니 일단 작업을 하고 있다"며 난색을 보였습니다.

학교들도 겨울 도색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집행 기간이 2월까지라 어쩔 수 없다며,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올 가을 도색사업지원비를 받은 강원도 내 학교는 300여 곳. 조금이라도 덜 추울 때 도색작업을 진행하려고 서두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한겨울 페인트 칠'을 면하지 못할 상황입니다.

다른 학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원격수업은 하지도 않는데 원격수업용 교사 카메라를 수십 대씩 사들이는가 하면, 체육관에서 쓰겠다며 방석을 수 백 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또, 게임기를 사기도 하고, 에어바운스를 빌려 쓰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예산 소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있으니까 쓰는 셈입니다.


■ 학교들 "예산낭비","졸속집행"…"그래도 받은 돈은 써야지"

강원도교육청에서 진행한 2회 추경 목적사업비 집행 관련 애로사항 수합 결과 일부강원도교육청에서 진행한 2회 추경 목적사업비 집행 관련 애로사항 수합 결과 일부

일선 학교에선 일찌감치 이런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KBS가 확보한 강원도교육청의 '학교별 고충내역 세부 현황'을 보면, 100여 곳의 학교에서 300건이 넘는 고충을 털어놨는데요.

여기엔 이번 예산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 일부만 옮겨보겠습니다.

- 무분별한 예산 교부로 인한 낭비 우려
- 불필요한 예산
- 기본운영비도 집행이 안 되고 있음
- 졸속 집행, 동절기 부실 공사 우려
- 규모 미고려, 기한촉박, 미신청 예산 교부, 유사한 사업 명칭만 바뀌어 교부
- 업무과중, 수요조사 없는 예산교부로 인한 낭비 요인 발생
- 현장체험학습이 불가능함에도 고3 학생 체험학습비 등 1회성 비용으로 예산 낭비
- 교육회복 지원사업 등 유사한 성격의 교부금이 주로 간식비 등으로 집행되고 있어 사업 실효성
의문


강원도 춘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시기에 반드시 필요해서 집행되는 예산인지, 아니면 예산을 털어 쓰기 위해서 억지로 학교로 밀어내는 건지 사실 좀 의문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는 학교들까지 '예산 낭비'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원도교육청도 이 돈을 다 쓰지 못하면 내년에 교육부의 예산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각급 학교를 대상으로 예산 집행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 교육부 "현장 고충 알고 있지만, 교육 결손 회복 위해 집행 필요"

KBS의 취재가 시작되자 교육부가 입장을 밝혔습니다.

"경기 회복으로 내국세 세입이 확대되면서 법률상 내국세와 연동된 지방재정교부금이 7월 말에 증액 편성됐고,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결손을 회복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을 위해 추경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하반기 추경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집행할 수 있는 기간이 충분하지 않아 집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교과 보충이나 방역, 학교 교육 정상화 등을 위해 학교 차원에서 신속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덧붙였습니다.

"다만, 원래 예산은 동일 회계연도 안에 편성과 집행이 원칙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내년도 예산으로 이월하여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 "다들 어려운 시기에, 이런 세금 낭비 안타까워…."

이런 실태을 접한 국민들은 분노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먹고살기도 힘든데, 모범을 보여야할 교육계에서 '돈잔치'를 벌이는 게 말이 되는 거냐?"
"당장 예산을 반납하고, 꼭 필요한데 나눠줘라!"
"차라리 불우이웃 돕기에 써라!"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관련 법 개정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고친 데 또 고치고, 필요 없어도 사고…“예산 낭비 아닌가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7649&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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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친 데 또 고치고, 산 것 또 사고”…‘추경’에 돈 남아도는 학교
    • 입력 2021-11-21 08:00:33
    취재K
요즘 코로나19에 경기까지 안좋다보니, 여기저기에서 돈이 없어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정반대인 곳이 있는데요. 바로 학교 얘기입니다. 갑자기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풀린 탓인데요. 돈이 남아돌아 걱정입니다.<br /><br />멀쩡한 물건이 있는데 또 사기도 하고, 건물을 새로 색칠하기도 합니다.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br />

■ 교육부 2차 추경 6조 원…"많아도 너무 많아"

올해 가을 교육계에는 돈 풍년이 들었습니다. 교육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으로 6조 원이 넘는 금액을 편성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나눠줬고, 각 학교에선 올해 9월 정도부터 이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출처:교육부
시도교육청별 2021년 제2차 추경 교육비특별회계 세출예산 편성 현황.pdf


강원도에 내려온 돈 3,469억 원…"고친 데 또 고치고, 사고 또 사고"

강원도교육청이 올해 가을 교육부에서 받은 예산은 3,469억 원입니다. 이 가운데 2,738억 원을 학교회계 전출금으로 썼습니다. 강원도 내 학교와 유치원 수는 1,010개. 학교마다 평균 2억 7천만 원씩 써야 하는 셈입니다.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친 홍천중학교 과학실.
각 학교마다 이 돈을 쓰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강원도 홍천의 한 중학교는 지난해 3,000만 원을 들여 과학실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책상부터 과학교구 수납함까지 전부 다 새 것으로 들여놨습니다. 그런데, 올해 가을 유사한 사업비가 1억 원 또 내려왔습니다.

결국, 예산을 쓰려다보니, 있는 노트북도 더 사고, 빔프로젝터도 있는 걸 새 것으로 교체해가며, 예산을 집행하고 있었습니다. 내구연한이 남은 비품도 교체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강릉의 한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는 1년 치 예산의 2배가 넘는 돈을 한 달 안에 소진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급한 대로 수업용 태블릿 PC와 휠체어, 사진 인화기를 사는 등 비품을 구매했습니다.

강릉의 한 초등학교 현관에 쌓여있는 택배 상자.
겨울을 앞두고 서둘러 진행되는 학교 외벽 도색
도색 사업비를 교부받은 학교의 의뢰를 받아 외벽 도색에 나선 업자는 "페인트는 수용성이기 때문에 겨울 도색은 효과가 떨어지는데 주문이 들어왔으니 일단 작업을 하고 있다"며 난색을 보였습니다.

학교들도 겨울 도색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집행 기간이 2월까지라 어쩔 수 없다며,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올 가을 도색사업지원비를 받은 강원도 내 학교는 300여 곳. 조금이라도 덜 추울 때 도색작업을 진행하려고 서두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한겨울 페인트 칠'을 면하지 못할 상황입니다.

다른 학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원격수업은 하지도 않는데 원격수업용 교사 카메라를 수십 대씩 사들이는가 하면, 체육관에서 쓰겠다며 방석을 수 백 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또, 게임기를 사기도 하고, 에어바운스를 빌려 쓰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예산 소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있으니까 쓰는 셈입니다.


■ 학교들 "예산낭비","졸속집행"…"그래도 받은 돈은 써야지"

강원도교육청에서 진행한 2회 추경 목적사업비 집행 관련 애로사항 수합 결과 일부
일선 학교에선 일찌감치 이런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KBS가 확보한 강원도교육청의 '학교별 고충내역 세부 현황'을 보면, 100여 곳의 학교에서 300건이 넘는 고충을 털어놨는데요.

여기엔 이번 예산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 일부만 옮겨보겠습니다.

- 무분별한 예산 교부로 인한 낭비 우려
- 불필요한 예산
- 기본운영비도 집행이 안 되고 있음
- 졸속 집행, 동절기 부실 공사 우려
- 규모 미고려, 기한촉박, 미신청 예산 교부, 유사한 사업 명칭만 바뀌어 교부
- 업무과중, 수요조사 없는 예산교부로 인한 낭비 요인 발생
- 현장체험학습이 불가능함에도 고3 학생 체험학습비 등 1회성 비용으로 예산 낭비
- 교육회복 지원사업 등 유사한 성격의 교부금이 주로 간식비 등으로 집행되고 있어 사업 실효성
의문


강원도 춘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시기에 반드시 필요해서 집행되는 예산인지, 아니면 예산을 털어 쓰기 위해서 억지로 학교로 밀어내는 건지 사실 좀 의문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는 학교들까지 '예산 낭비'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원도교육청도 이 돈을 다 쓰지 못하면 내년에 교육부의 예산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각급 학교를 대상으로 예산 집행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 교육부 "현장 고충 알고 있지만, 교육 결손 회복 위해 집행 필요"

KBS의 취재가 시작되자 교육부가 입장을 밝혔습니다.

"경기 회복으로 내국세 세입이 확대되면서 법률상 내국세와 연동된 지방재정교부금이 7월 말에 증액 편성됐고,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결손을 회복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을 위해 추경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하반기 추경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집행할 수 있는 기간이 충분하지 않아 집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교과 보충이나 방역, 학교 교육 정상화 등을 위해 학교 차원에서 신속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덧붙였습니다.

"다만, 원래 예산은 동일 회계연도 안에 편성과 집행이 원칙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내년도 예산으로 이월하여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 "다들 어려운 시기에, 이런 세금 낭비 안타까워…."

이런 실태을 접한 국민들은 분노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먹고살기도 힘든데, 모범을 보여야할 교육계에서 '돈잔치'를 벌이는 게 말이 되는 거냐?"
"당장 예산을 반납하고, 꼭 필요한데 나눠줘라!"
"차라리 불우이웃 돕기에 써라!"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관련 법 개정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고친 데 또 고치고, 필요 없어도 사고…“예산 낭비 아닌가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7649&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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