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냐, 여자냐” 신체 만진 교사…‘성인지 감수성’ 부족한 학교

입력 2021.11.2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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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에게 남학생 줄에 서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히 수치스러운 일인데…."

여학생에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일이냐며 제보자인 학부모 A씨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가해 여교사는 '여학생이다'라고 대답한 학생의 상반신에 손을 댔고, 피해 아동은 아직도 그때 느낀 수치심과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 선생님은 말로도 부족해 왜 여학생의 신체를 만졌을까?

사건이 발생한 때는 올들어 지난 2학기가 시작된 첫 날입니다. 출산휴가를 간 담임교사를 대신해 새로 부임한 기간제 여자 선생님은 급식 시간에 한 학급 20여 명의 학생들을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나눠 줄을 서라고 지시합니다.


또래보다 키가 조금 크고, 단발 머리를 한 여학생을 향해 이 선생님은 '남학생 줄에 서라'고 했고, 당황한 학생은 '자신은 여학생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여교사는 대뜸 여학생의 상반신을 손으로 만졌습니다.

피해 아동은 선생님이 자신을 여학생이라고 믿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심한 모멸감을 느꼈고,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교사가 예민한 신체 부위를 만진 행동에 성적 수치심까지 밀려들었다고 부모님께 털어놨습니다.

■ 학부모가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학교는 성범죄 인지 못해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이튿날 학교에 전화를 걸어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부장 교사는 어떻게 해주길 바라느냐고 되물었고, 우선 교사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담임 교사는 피해 아동에게 사과를 했지만, 아동은 부모님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선생님과 마주하는 것도 힘들고 싫다"고 말했습니다.

피해 아동 아버지는 다음 날 담임 교사를 교체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인사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다시 계약직 선생님을 구하려면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성희롱, 강제추행의 충격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다 못한 학부모의 강한 항의 끝에 학교에서는 사건 닷새 뒤 인사자문위원회를 열어 교사와의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 교육부, 학교 성범죄 대처법 제작해 보급…현실에서는?

교육부는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종합 지침을 담은 안내서를 제작해 모든 학교와 교육기관에 배포했습니다. 안내서에는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성폭력 관련 모든 유형을 정리하고, 각각의 유형에 따른 대응절차 단계가 나와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2017)에서 실시한 ‘초중고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실태조사’에서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유형을 신체적, 언어적, 시각적, 분위기로 구분해 유형별 예시가 구제적으로 열거돼 있다. (자료 출처:교육부)국가인권위원회(2017)에서 실시한 ‘초중고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실태조사’에서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유형을 신체적, 언어적, 시각적, 분위기로 구분해 유형별 예시가 구제적으로 열거돼 있다. (자료 출처:교육부)

예를 들어, 머리나 손, 턱, 어깨 등을 만지는 행위는 물론 복장을 지적하면서 지도봉으로 신체 부위를 누르거나 찌르는 행위는 '신체적 성희롱'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피해자가 학생이고, 가해자가 교원인 경우 사안이 인지된 즉시 학생은 학교폭력 전담기구에, 행위 교직원은 성고충상담창구에 접수하고, 접수된 사건은 관할 교육청에 서면 보고해야 합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학교장은 성범죄 발생 사실을 알게 되면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 대상입니다.

학교장 자체해결 방법도 있습니다. 2주 이상 진단서를 받지 않았거나 피해가 즉각 복구된 경우 등 자체 해결 요건을 충족하고, 모든 절차를 피해자와 보호자로부터 서면 확인을 받으면 학교장 선에서 자체 해결 처리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관할 교육청 서면 보고도, 수사기관 신고도 지켜지지 않았고, 피해 아동과 학부모에게 자체 해결 동의도 받지 않았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성(범죄) 사안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며, "조치를 전혀 안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아무리 미미하지만, 의심이 가는 상황이라도 충분히 (피해 아동을 생각)해서 학부모님이 요구한 부분인 담임교사 교체를 해드렸다." 고 밝혔습니다.

■ 갈 길 먼 학교 안의 '성인지 감수성'

피해 아동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는 학교,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발생한 행위가 성범죄 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피해 사실을 신고했을 때 피해 아동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성희롱·성폭력'의 개념은 그 대상이 아동·청소년일 경우, 성적 수치심,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건전한 성적(性的) 가치관의 형성 등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현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라고 아동복지법에 정의돼 있습니다.

담임 교사가 여학생에게 '여자냐'며 대뜸 상반신에 손을 댔을 때 피해 아동이 느낀 실체적 감정이, '학교 성희롱' 개념에 포함될 수 있음을 감지해내는 능력, 바로 학교 측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던 셈입니다.

얼마 전, KBS 보도로 알려진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의 동급생 간 성추행 사건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학교 측의 안이한 대처로 피해 학생이 심각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연관 기사] ‘학폭’ 피해자가 전학…‘영재학교’에서 무슨 일이?

예비 교원의 성인지 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교육 현장의 성,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을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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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냐, 여자냐” 신체 만진 교사…‘성인지 감수성’ 부족한 학교
    • 입력 2021-11-23 13:57:00
    취재K

"여학생에게 남학생 줄에 서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히 수치스러운 일인데…."

여학생에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일이냐며 제보자인 학부모 A씨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가해 여교사는 '여학생이다'라고 대답한 학생의 상반신에 손을 댔고, 피해 아동은 아직도 그때 느낀 수치심과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 선생님은 말로도 부족해 왜 여학생의 신체를 만졌을까?

사건이 발생한 때는 올들어 지난 2학기가 시작된 첫 날입니다. 출산휴가를 간 담임교사를 대신해 새로 부임한 기간제 여자 선생님은 급식 시간에 한 학급 20여 명의 학생들을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나눠 줄을 서라고 지시합니다.


또래보다 키가 조금 크고, 단발 머리를 한 여학생을 향해 이 선생님은 '남학생 줄에 서라'고 했고, 당황한 학생은 '자신은 여학생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여교사는 대뜸 여학생의 상반신을 손으로 만졌습니다.

피해 아동은 선생님이 자신을 여학생이라고 믿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심한 모멸감을 느꼈고,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교사가 예민한 신체 부위를 만진 행동에 성적 수치심까지 밀려들었다고 부모님께 털어놨습니다.

■ 학부모가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학교는 성범죄 인지 못해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이튿날 학교에 전화를 걸어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부장 교사는 어떻게 해주길 바라느냐고 되물었고, 우선 교사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담임 교사는 피해 아동에게 사과를 했지만, 아동은 부모님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선생님과 마주하는 것도 힘들고 싫다"고 말했습니다.

피해 아동 아버지는 다음 날 담임 교사를 교체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인사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다시 계약직 선생님을 구하려면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성희롱, 강제추행의 충격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다 못한 학부모의 강한 항의 끝에 학교에서는 사건 닷새 뒤 인사자문위원회를 열어 교사와의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 교육부, 학교 성범죄 대처법 제작해 보급…현실에서는?

교육부는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종합 지침을 담은 안내서를 제작해 모든 학교와 교육기관에 배포했습니다. 안내서에는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성폭력 관련 모든 유형을 정리하고, 각각의 유형에 따른 대응절차 단계가 나와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2017)에서 실시한 ‘초중고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실태조사’에서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유형을 신체적, 언어적, 시각적, 분위기로 구분해 유형별 예시가 구제적으로 열거돼 있다. (자료 출처:교육부)
예를 들어, 머리나 손, 턱, 어깨 등을 만지는 행위는 물론 복장을 지적하면서 지도봉으로 신체 부위를 누르거나 찌르는 행위는 '신체적 성희롱'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피해자가 학생이고, 가해자가 교원인 경우 사안이 인지된 즉시 학생은 학교폭력 전담기구에, 행위 교직원은 성고충상담창구에 접수하고, 접수된 사건은 관할 교육청에 서면 보고해야 합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학교장은 성범죄 발생 사실을 알게 되면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 대상입니다.

학교장 자체해결 방법도 있습니다. 2주 이상 진단서를 받지 않았거나 피해가 즉각 복구된 경우 등 자체 해결 요건을 충족하고, 모든 절차를 피해자와 보호자로부터 서면 확인을 받으면 학교장 선에서 자체 해결 처리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관할 교육청 서면 보고도, 수사기관 신고도 지켜지지 않았고, 피해 아동과 학부모에게 자체 해결 동의도 받지 않았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성(범죄) 사안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며, "조치를 전혀 안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아무리 미미하지만, 의심이 가는 상황이라도 충분히 (피해 아동을 생각)해서 학부모님이 요구한 부분인 담임교사 교체를 해드렸다." 고 밝혔습니다.

■ 갈 길 먼 학교 안의 '성인지 감수성'

피해 아동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는 학교,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발생한 행위가 성범죄 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피해 사실을 신고했을 때 피해 아동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성희롱·성폭력'의 개념은 그 대상이 아동·청소년일 경우, 성적 수치심,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건전한 성적(性的) 가치관의 형성 등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현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라고 아동복지법에 정의돼 있습니다.

담임 교사가 여학생에게 '여자냐'며 대뜸 상반신에 손을 댔을 때 피해 아동이 느낀 실체적 감정이, '학교 성희롱' 개념에 포함될 수 있음을 감지해내는 능력, 바로 학교 측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던 셈입니다.

얼마 전, KBS 보도로 알려진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의 동급생 간 성추행 사건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학교 측의 안이한 대처로 피해 학생이 심각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연관 기사] ‘학폭’ 피해자가 전학…‘영재학교’에서 무슨 일이?

예비 교원의 성인지 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교육 현장의 성,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을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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