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모방범죄 또 ‘모방’…불안한 도쿄 전철

입력 2021.11.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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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있어 보이려고…"

핼러윈데이인 지난 달(10월) 31일, 도쿄를 달리는 전철 안에서 흉기를 휘둘러 17명을 중경상을 입히고, 불을 지른 핫토리 교타 용의자.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이제 와서 허둥대는 건 멋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내심 떨렸다"

태연한 척 하기 위해 한 손엔 흉기를 들고 담배까지 피웠지만, 그는 사실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경찰은 소심한 성격의 용의자가 허세를 부렸다고 전했습니다.

사건 발생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일본은 이번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경찰 소식을 통해 사건 경위나 범행 준비 과정 등을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범행은 도쿄 전철 게이오선 8번째 차량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72살 남성을 흉기로 찌른 뒤 달아나는 승객을 쫓아 6번째 차량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5번째 차량과 연결 지점 바로 앞에서 라이터용 기름을 뿌렸습니다. 기름 3리터를 페트병 3개에 나눠 담아 뿌릴 계획이었습니다.

■ "호텔 욕실에서 연습했다"

경찰은 핫토리가 "최대한 많은 승객에게 기름을 뿌리기 위해 머물던 호텔 욕실에서 페트병에 물을 담아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핫토리는 승객을 '선두차량까지 몰고 가 더 이상 달아날 수 없게 한 뒤 불을 붙이고 싶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용의자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고향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간병 도우미, 넷 카페(PC방) 점원 등으로 일했습니다. 3년 전 휴대전화 관련 업체에 취직했지만 지난 5월 손님과 문제를 일으킨 뒤 그만뒀습니다.

'사형을 당해야겠다'는 생각에 살인을 계획하며 인터넷으로 흉기를 구입했습니다. 8월에 발생한 도쿄 오다큐선 무차별범죄를 모방하기로 했고, 그 즈음 악당 '조커'가 등장하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곤 도쿄로 가서 옷을 사고 머리를 염색했습니다.

■ '모방범죄'를 또 '모방'

지난 8월 6일 발생한 도쿄 오다큐선 전철 흉기 난동 사건. 36살 남성이 승객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9명이 다쳤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죽이고 싶었다"는 게 용의자가 밝힌 동기였습니다.

이 사건을 모방한 게 핫토리 용의자의 '게이오선 사건'입니다. 모방은 또 모방을 낳았습니다.

이어 11월 8일에는 구마모토현에서 주행 중인 규슈 신칸센에서 69살 남성이 바닥에 가연성 액체를 뿌리고 불을 붙였습니다. 용의자는 "게이오선 사건을 따라 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방화미수사건이 발생했던 규슈신칸센 객차방화미수사건이 발생했던 규슈신칸센 객차

그보다 이틀 앞선 6일에는 도자이선에서 50대 남성이 남녀 승객을 공구로 위협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달리는 열차 내 무차별범죄가 잇따르면서 요즘 도쿄에서는 전철을 타는 걸 주저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탑승한 뒤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상한 사람이 없는지 살피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게이오선 사건, 규슈신칸센 사건에 이은 또 다른 모방범죄의 피해자가 될 것을 두려워해 특정 번호의 차량을 피하는 승객들도 많습니다. 사건 현장에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 자연재해에 '무차별범죄'까지

달리는 열차에서 흉기 난동이나 방화 같은 무차별 범죄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등 관계기관이나 회사가 흉기난동범 제압 훈련을 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집니다.

하지만 혼란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운영 회사도, 노선도 다양해 얽히고 설킨 도쿄의 전철. 그만큼 실태도 제각각입니다.

열차 난동범 제압 훈련 중인 경찰열차 난동범 제압 훈련 중인 경찰

객차 내 보안카메라 설치율도 5%(게이큐전철)에서 100%(JR히가시니혼)까지 편차가 크고, 비상벨의 위치도 운영 회사마다 다릅니다. 비상시 대피 매뉴얼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교통정책 전문가들은 '일단 범인으로부터 달아나라' '가방 등으로 몸을 보호해라'는 식의 조언을 내놓고 있지만, 불안감이 사라질 리 없습니다.

도쿄는 '지옥철'이라고 불릴 만큼 승객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열차 안전대책은 지진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중심으로 마련돼 왔습니다. 여기에 '무차별 범죄'까지 추가되면서 일본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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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3 17:57:57
    특파원 리포트

■ "멋있어 보이려고…"

핼러윈데이인 지난 달(10월) 31일, 도쿄를 달리는 전철 안에서 흉기를 휘둘러 17명을 중경상을 입히고, 불을 지른 핫토리 교타 용의자.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이제 와서 허둥대는 건 멋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내심 떨렸다"

태연한 척 하기 위해 한 손엔 흉기를 들고 담배까지 피웠지만, 그는 사실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경찰은 소심한 성격의 용의자가 허세를 부렸다고 전했습니다.

사건 발생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일본은 이번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경찰 소식을 통해 사건 경위나 범행 준비 과정 등을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범행은 도쿄 전철 게이오선 8번째 차량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72살 남성을 흉기로 찌른 뒤 달아나는 승객을 쫓아 6번째 차량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5번째 차량과 연결 지점 바로 앞에서 라이터용 기름을 뿌렸습니다. 기름 3리터를 페트병 3개에 나눠 담아 뿌릴 계획이었습니다.

■ "호텔 욕실에서 연습했다"

경찰은 핫토리가 "최대한 많은 승객에게 기름을 뿌리기 위해 머물던 호텔 욕실에서 페트병에 물을 담아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핫토리는 승객을 '선두차량까지 몰고 가 더 이상 달아날 수 없게 한 뒤 불을 붙이고 싶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용의자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고향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간병 도우미, 넷 카페(PC방) 점원 등으로 일했습니다. 3년 전 휴대전화 관련 업체에 취직했지만 지난 5월 손님과 문제를 일으킨 뒤 그만뒀습니다.

'사형을 당해야겠다'는 생각에 살인을 계획하며 인터넷으로 흉기를 구입했습니다. 8월에 발생한 도쿄 오다큐선 무차별범죄를 모방하기로 했고, 그 즈음 악당 '조커'가 등장하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곤 도쿄로 가서 옷을 사고 머리를 염색했습니다.

■ '모방범죄'를 또 '모방'

지난 8월 6일 발생한 도쿄 오다큐선 전철 흉기 난동 사건. 36살 남성이 승객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9명이 다쳤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죽이고 싶었다"는 게 용의자가 밝힌 동기였습니다.

이 사건을 모방한 게 핫토리 용의자의 '게이오선 사건'입니다. 모방은 또 모방을 낳았습니다.

이어 11월 8일에는 구마모토현에서 주행 중인 규슈 신칸센에서 69살 남성이 바닥에 가연성 액체를 뿌리고 불을 붙였습니다. 용의자는 "게이오선 사건을 따라 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방화미수사건이 발생했던 규슈신칸센 객차
그보다 이틀 앞선 6일에는 도자이선에서 50대 남성이 남녀 승객을 공구로 위협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달리는 열차 내 무차별범죄가 잇따르면서 요즘 도쿄에서는 전철을 타는 걸 주저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탑승한 뒤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상한 사람이 없는지 살피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게이오선 사건, 규슈신칸센 사건에 이은 또 다른 모방범죄의 피해자가 될 것을 두려워해 특정 번호의 차량을 피하는 승객들도 많습니다. 사건 현장에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 자연재해에 '무차별범죄'까지

달리는 열차에서 흉기 난동이나 방화 같은 무차별 범죄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등 관계기관이나 회사가 흉기난동범 제압 훈련을 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집니다.

하지만 혼란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운영 회사도, 노선도 다양해 얽히고 설킨 도쿄의 전철. 그만큼 실태도 제각각입니다.

열차 난동범 제압 훈련 중인 경찰
객차 내 보안카메라 설치율도 5%(게이큐전철)에서 100%(JR히가시니혼)까지 편차가 크고, 비상벨의 위치도 운영 회사마다 다릅니다. 비상시 대피 매뉴얼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교통정책 전문가들은 '일단 범인으로부터 달아나라' '가방 등으로 몸을 보호해라'는 식의 조언을 내놓고 있지만, 불안감이 사라질 리 없습니다.

도쿄는 '지옥철'이라고 불릴 만큼 승객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열차 안전대책은 지진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중심으로 마련돼 왔습니다. 여기에 '무차별 범죄'까지 추가되면서 일본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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