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전두환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입력 2021.11.23 (18:54) 수정 2021.11.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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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씨가 오늘(23일) 사망했습니다.

국내외 언론매체들은 전 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1979년 12.12쿠데타를 자행한 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가 군사변란의 수괴이자 광주 학살의 책임자였음에도 과거 행적에 반성도 없었고 피해자들에게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전 씨 측은 이 같은 기사에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전 씨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이미 여러차례 사과를 했다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과거 전 씨가 남긴 발언을 찾아 따져봤습니다.

전두환 씨의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담당비서관이 전 씨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_2021년 11월 23일전두환 씨의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담당비서관이 전 씨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_2021년 11월 23일

■ 전 씨 측 “전 씨, 5.18 피해자들에게 여러차례 사과”

전 씨가 숨을 거둔 뒤 2시간 여 지난 시각인 오전 11시, 서울 연희동 전 씨 집 앞에서 전 씨 사망 관련 브리핑이 열렸습니다. 발언자는 민정기 전 비서관이었습니다. 5공화국 당시 대통령이던 전 씨의 공보담당 비서관을 지냈고 최근까지 전 씨를 보필한 핵심 측근입니다.

이 자리에서 민정기 비서관은 전 씨가 숨지기 전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남긴 말은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담당 비서관:

“지금 질문하는 뜻이 그 광주에서 여러가지 그 당시에 전 대통령이 공수부대를 배후에서 사실상 지휘했고, 그래서 발포명령도 사실상 발포명령 사실상 한거 아니냐. 거기에 대해서 사죄하라 그런 뜻 아닙니까? 그런데 그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나한테 질문하는 사람들 기자 아닙니까? 기자가 기사 쓸 때도 6하원칙에 따라 써야하는거 아니에요? 그 당시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몇날 며칠 어디에서 어떤 부대를 어떻게 지휘했고. 누구누구한테 어떻게 발포명령을 했다는 것을 적시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묻고 거기에 대해서 사죄하라고 해야지.”

“무조건 사죄하라고 하면 그게 질문이 됩니까? 질문 자체가 잘못된거예요. 그리고 광주 피해자들이든 유족에 대해서 사죄할.. 그런 뜻이 없느냐 하는것은.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전 대통령이 바로 오늘 11월 23일이 33년전에 백담사 가시던 날인데. 그날 여기서도 성명에도 발표하시고. 피해자들한테 여러가지 미안하다는 뜻을 밝히셨고. 광주 청문회때도 말씀하셨고 여러차례 그런 말씀 하셨어요. 지금 여러분들 그런 사실을 모르니까 자꾸 사죄하라고 하는데, 이미 광주 피해자들 유가족들에 대한 그런 말씀은 이미 하신 바가 있고. 단지 지금 사죄하라는 거. 그거는 아까 지금 얘기했지만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요.”

민 전 비서관은 전 씨가 백담사에 가기 전과 광주 청문회 때 피해자들에게 여러가지 미안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자꾸 사죄하라고 하는데 피해자들, 유가족에 대한 그런 말씀은 이미 하신 바가 있고” 라는 말은 전 씨가 이미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했다는 취지로 읽히기 충분했습니다.

전두환 씨는 백담사에 가기 전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5.18민주화운동을 언급했지만 사과는 없었다_1988년 11월 23일전두환 씨는 백담사에 가기 전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5.18민주화운동을 언급했지만 사과는 없었다_1988년 11월 23일

■ 국민 향해 “책임 느끼고 후회한다”했지만…‘사과’는 없어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우선 전 씨가 꼭 33년 전인 1988년 오늘, 백담사행을 앞두고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고 발표한 담화 내용부터 살펴봤습니다.

“무엇보다도 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태는 우리 민족사의 불행한 사건이며, 저로서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이 불행한 사태 진상과 성격은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서 밝혀질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그 후 대통령이 된 뒤에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후회하면서,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과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1988.11.23.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중

담화에서 전 씨는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지칭했습니다. 결과에 책임을 느끼고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후회한다면서 유족을 위해 뭐든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담화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언급한 건 이게 다입니다. 사과라는 직접적인 표현도 없었습니다. 가슴이 아픈 일이라면서도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러서 왜 사과를 한다는 내용도 없었습니다.

전 씨 측에서는 사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걸 사과라고 받아들일 유족과 피해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전두환 씨가 국회 5공 비리 및 광주 연속 특위 청문회에 출석했지만 부실한 증언에 위증 논란으로 비난받았다_1989년 12월 31일전두환 씨가 국회 5공 비리 및 광주 연속 특위 청문회에 출석했지만 부실한 증언에 위증 논란으로 비난받았다_1989년 12월 31일


■ 청문회에서도 “책임 통감, 자책·반성”한다지만…‘사과’ 없어

1989년 12월 31일 열린 국회 5공 비리 및 광주 연속 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전 씨의 발언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 씨는 부실 증언과 위증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 청문회가 길어져 밤 12시를 넘기자 국회를 떠나 버립니다. 이후 서면으로 제출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증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 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 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1989.12.31. 청문회 출석 전두환 씨 서면 답변 내용

전 씨는 청문회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으로 시민들이 희생된 경위와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대국민 담화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자신이 있었으니 책임은 지겠다는 입장이지, 자신이 잘못을 시인하고 유족과 피해자에게 사과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 씨 측은 전 씨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지만 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희생자 가운데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도 많아 유가족들이 크게 애통해했지만, 대통령 된 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유감스럽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전 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사죄하는 그런 뜻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 그 “미안하다”는 진짜 “미안하다”가 아니었다

이후 전 씨가 2017년 펴낸 회고록을 보면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쓰고 심지어 자신은 책임질 일이 없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헬리콥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5.18민주화운동의 발단이 김대중 전 대통령 탓이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볼 때 정보기관 책임자로서 아쉽기도 하고, 또 책임감을 느끼는 점은 광주사태의 전조를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는 것과 5월 19일 이후 상황이 폭동사태로 악화될 때 정보 기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1권 383쪽)

“또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대통령에 취임한 후 광주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치료하는 데 좀 더 노력하지 못했다는 점이다.”(1권 384쪽)

“이 책에서(...) 5.18과 관련된 사실들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 것이고, 내가 직접 겪은 사실들에 관한 내용은 매우 적다. 그 까닭은 다시 말하지만 5.18 사태에 관해 내가 한 일, 직접 겪은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5.18사태의 발단에서 종결까지의 과정에서 내가 직접 관여할 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1권 384쪽)

“그러나 조비오 신부는 그 후에도 자신의 허위 주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미국인 목사라는 피터슨이나 조비오 신부나 ‘성직자’ 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다.”(1권 484쪽)

“10.26 사태 이후 김대중 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그는 정권 쟁취를 위해 불법적인 민중혁명을 기도했다.”(1권 511쪽)

“5.17비상계엄의 전국확대가 광주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유독 광주에서만 반발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김대중 씨의 검거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1권 514쪽)

사전적 의미로 사과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이라는 뜻입니다. 전 씨 측은 그 발언들이 사실상 사과한 것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정작 전 씨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전 씨는 5.18민주화운동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기회가 무려 41년 동안 주어졌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사과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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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K] “전두환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 입력 2021-11-23 18:54:56
    • 수정2021-11-24 09:13:26
    팩트체크K

전두환 씨가 오늘(23일) 사망했습니다.

국내외 언론매체들은 전 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1979년 12.12쿠데타를 자행한 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가 군사변란의 수괴이자 광주 학살의 책임자였음에도 과거 행적에 반성도 없었고 피해자들에게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전 씨 측은 이 같은 기사에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전 씨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이미 여러차례 사과를 했다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과거 전 씨가 남긴 발언을 찾아 따져봤습니다.

전두환 씨의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담당비서관이 전 씨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_2021년 11월 23일
■ 전 씨 측 “전 씨, 5.18 피해자들에게 여러차례 사과”

전 씨가 숨을 거둔 뒤 2시간 여 지난 시각인 오전 11시, 서울 연희동 전 씨 집 앞에서 전 씨 사망 관련 브리핑이 열렸습니다. 발언자는 민정기 전 비서관이었습니다. 5공화국 당시 대통령이던 전 씨의 공보담당 비서관을 지냈고 최근까지 전 씨를 보필한 핵심 측근입니다.

이 자리에서 민정기 비서관은 전 씨가 숨지기 전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남긴 말은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담당 비서관:

“지금 질문하는 뜻이 그 광주에서 여러가지 그 당시에 전 대통령이 공수부대를 배후에서 사실상 지휘했고, 그래서 발포명령도 사실상 발포명령 사실상 한거 아니냐. 거기에 대해서 사죄하라 그런 뜻 아닙니까? 그런데 그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나한테 질문하는 사람들 기자 아닙니까? 기자가 기사 쓸 때도 6하원칙에 따라 써야하는거 아니에요? 그 당시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몇날 며칠 어디에서 어떤 부대를 어떻게 지휘했고. 누구누구한테 어떻게 발포명령을 했다는 것을 적시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묻고 거기에 대해서 사죄하라고 해야지.”

“무조건 사죄하라고 하면 그게 질문이 됩니까? 질문 자체가 잘못된거예요. 그리고 광주 피해자들이든 유족에 대해서 사죄할.. 그런 뜻이 없느냐 하는것은.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전 대통령이 바로 오늘 11월 23일이 33년전에 백담사 가시던 날인데. 그날 여기서도 성명에도 발표하시고. 피해자들한테 여러가지 미안하다는 뜻을 밝히셨고. 광주 청문회때도 말씀하셨고 여러차례 그런 말씀 하셨어요. 지금 여러분들 그런 사실을 모르니까 자꾸 사죄하라고 하는데, 이미 광주 피해자들 유가족들에 대한 그런 말씀은 이미 하신 바가 있고. 단지 지금 사죄하라는 거. 그거는 아까 지금 얘기했지만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요.”

민 전 비서관은 전 씨가 백담사에 가기 전과 광주 청문회 때 피해자들에게 여러가지 미안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자꾸 사죄하라고 하는데 피해자들, 유가족에 대한 그런 말씀은 이미 하신 바가 있고” 라는 말은 전 씨가 이미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했다는 취지로 읽히기 충분했습니다.

전두환 씨는 백담사에 가기 전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5.18민주화운동을 언급했지만 사과는 없었다_1988년 11월 23일
■ 국민 향해 “책임 느끼고 후회한다”했지만…‘사과’는 없어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우선 전 씨가 꼭 33년 전인 1988년 오늘, 백담사행을 앞두고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고 발표한 담화 내용부터 살펴봤습니다.

“무엇보다도 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태는 우리 민족사의 불행한 사건이며, 저로서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이 불행한 사태 진상과 성격은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서 밝혀질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그 후 대통령이 된 뒤에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후회하면서,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과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1988.11.23.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중

담화에서 전 씨는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지칭했습니다. 결과에 책임을 느끼고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후회한다면서 유족을 위해 뭐든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담화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언급한 건 이게 다입니다. 사과라는 직접적인 표현도 없었습니다. 가슴이 아픈 일이라면서도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러서 왜 사과를 한다는 내용도 없었습니다.

전 씨 측에서는 사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걸 사과라고 받아들일 유족과 피해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전두환 씨가 국회 5공 비리 및 광주 연속 특위 청문회에 출석했지만 부실한 증언에 위증 논란으로 비난받았다_1989년 12월 31일

■ 청문회에서도 “책임 통감, 자책·반성”한다지만…‘사과’ 없어

1989년 12월 31일 열린 국회 5공 비리 및 광주 연속 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전 씨의 발언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 씨는 부실 증언과 위증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 청문회가 길어져 밤 12시를 넘기자 국회를 떠나 버립니다. 이후 서면으로 제출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증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 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 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1989.12.31. 청문회 출석 전두환 씨 서면 답변 내용

전 씨는 청문회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으로 시민들이 희생된 경위와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대국민 담화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자신이 있었으니 책임은 지겠다는 입장이지, 자신이 잘못을 시인하고 유족과 피해자에게 사과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 씨 측은 전 씨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지만 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희생자 가운데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도 많아 유가족들이 크게 애통해했지만, 대통령 된 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유감스럽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전 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사죄하는 그런 뜻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 그 “미안하다”는 진짜 “미안하다”가 아니었다

이후 전 씨가 2017년 펴낸 회고록을 보면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쓰고 심지어 자신은 책임질 일이 없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헬리콥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5.18민주화운동의 발단이 김대중 전 대통령 탓이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볼 때 정보기관 책임자로서 아쉽기도 하고, 또 책임감을 느끼는 점은 광주사태의 전조를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는 것과 5월 19일 이후 상황이 폭동사태로 악화될 때 정보 기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1권 383쪽)

“또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대통령에 취임한 후 광주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치료하는 데 좀 더 노력하지 못했다는 점이다.”(1권 384쪽)

“이 책에서(...) 5.18과 관련된 사실들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 것이고, 내가 직접 겪은 사실들에 관한 내용은 매우 적다. 그 까닭은 다시 말하지만 5.18 사태에 관해 내가 한 일, 직접 겪은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5.18사태의 발단에서 종결까지의 과정에서 내가 직접 관여할 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1권 384쪽)

“그러나 조비오 신부는 그 후에도 자신의 허위 주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미국인 목사라는 피터슨이나 조비오 신부나 ‘성직자’ 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다.”(1권 484쪽)

“10.26 사태 이후 김대중 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그는 정권 쟁취를 위해 불법적인 민중혁명을 기도했다.”(1권 511쪽)

“5.17비상계엄의 전국확대가 광주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유독 광주에서만 반발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김대중 씨의 검거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1권 514쪽)

사전적 의미로 사과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이라는 뜻입니다. 전 씨 측은 그 발언들이 사실상 사과한 것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정작 전 씨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전 씨는 5.18민주화운동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기회가 무려 41년 동안 주어졌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사과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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