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하수의 주인은 누구에요? 30년 간의 ‘먹는샘물 분쟁’

입력 2021.1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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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물 분쟁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일어난 ‘물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이븐 더 레인’의 한 장면 (출처: 모레나 필름)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일어난 ‘물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이븐 더 레인’의 한 장면 (출처: 모레나 필름)

모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물. 이 물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누구여야 할까요? 인간 생존의 필수조건인 물을 사적으로 소유하려는 욕구는 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물의 전쟁'도 벌어집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수사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2000년 남미 볼리비아 제3의 도시인 코차밤바(Cochabamba) 등에서 실제 일어난 현실입니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자 볼리비아 정부는 당시 자국의 물 산업의 소유권을 다국적기업에 넘겼는데요. 이 기업은 물 가격을 급격히 올렸고, 이에 코차밤바 시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사상자가 속출하는 진통 끝에 결국 시민들의 승리로 물 통제권을 돌려받습니다.

극단적인 사례 같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미국의 개발·환경·안보를 위한 태평양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지구촌 전역에서 발생한 ‘물 분쟁’은 최소 466건으로, 그 이전 10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http://www.worldwater.org/conflict/list/ 참조)

■ 제주 지하수 개발의 역사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예부터 물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는 제주에서도 비슷한 물 분쟁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역사의 시간으로 가보겠습니다. 1966년 제주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제주도 수자원 개발 기본 구상도'를 그려 제주도지사에게 전달하며 수자원 개발을 독려했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 1971년 준공된 어승생 저수지입니다. 제주도는 이 저수지를 계기로 가히 '물의 혁명 시대'를 맞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그린 ‘제주도 수자원 개발 기본 구상도’ (출처: 제주도수자원본부·제주발전연구원,  2012,  제주상수도50년)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그린 ‘제주도 수자원 개발 기본 구상도’ (출처: 제주도수자원본부·제주발전연구원, 2012, 제주상수도50년)

'제2의 물의 혁명'은 지하수 개발이었습니다. 1970년 농업진흥공사 주관으로 제주도 전역을 대상으로 한 지하수 조사사업 결과 제주 지하수의 부존형태를 밝혀냈고, 부존량도 풍부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부터입니다. 이를 근거로 1972년부터 농림부 주관으로 생활이나 농업 등에 사용할 다목적 지하수를 개발합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상수도 사용 비용보다 저렴하게 지하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사설 지하수 관정 개발이 더욱 활성화됩니다. 이 시기에 제주 지하수를 먹는샘물로 상품화하려는 사업자가 등장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한진그룹인데요. 한진그룹 계열사인 (주)제동흥산은 대한항공 기내 음료로 사용하기 위해 1984년 당시 주무부처인 보건사회부로부터 식품위생법에 근거한 먹는샘물 허가를 받았습니다. 제동흥산은 다음 해 1월부터 먹는샘물 생산에 들어가 '제주산수'라는 이름으로 1985년 바레인에 수출하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 지하수 난개발…부작용의 현실화

관련 제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하수 개발이 제주 섬 곳곳에서 이뤄지자, 1980년대 후반부터 제주지역 사회에서 지하수 난개발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관광호텔과 중산간 지역 골프장들이 제주 지하수를 다량으로 사용하면서 지하수 고갈과 바닷물 침입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실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사실로 입증되기도 했죠.

1990년 (주)제동흥산이 내국인을 상대로 먹는샘물을 판매하다가 적발된 사건은 이런 우려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습니다.

1991년 노태우 정부가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을 추진하자, 논란은 더욱 확산됐죠. 그 결과 제주특별법에 전국 최초로 제주 지하수를 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조항들이 포함됩니다. 1996년 제주특별법 개정 법률에선 제주 지하수를 보존자원으로 고시함으로써 민간사업자에 의한 먹는샘물의 도외반출도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 한진그룹의 먹는샘물 사업 역사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이전인 1984년 계열사인 (주)제동흥산에서 '제주산수'라는 이름으로 먹는샘물을 이용하기 시작한 한진그룹은 제주특별법 제정 이후인 1993년 11월부터 1~2년 단위로 제주도의회의 동의와 제주도의 연장허가를 받아 먹는샘물을 지금까지 상업적으로 계속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제품명은 제주산수에서 제주광천수로, 지금은 제주퓨어워터란 이름으로 제주 지하수를 판매하고 있죠. 관리하는 회사도 제동흥산에서 잠깐 대한항공을 거쳤다가 지금은 (주)한국공항에서 맡고 있습니다.


■ 대기업의 반격…잇따른 승소

제주 지하수를 공적 자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제주사회 분위기와 법적 제도적 흐름과는 달리, 한진그룹 측은 끊임없이 제주 지하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는데요. 1995년 (주)제동흥산에서 먹는샘물 국내시판 허가를 요청했다가 제주도에서 이를 거부하면서 첫 소송전이 시작됐습니다. 대법원이 한국공항의 손을 들어주면서 '제주광천수''의 국내시판은 가능해졌지만, 제주도민사회의 여론이 나빠지자 "계열사내 판매로 제한" 하기로 제주도와 한진그룹 간에 타협이 이뤄지게 됩니다. 하지만 (주)한국공항은 2005년 국내시판 포기 선언을 뒤집고 제주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습니다. 결국 (주)한국공항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먹는샘물 국내시판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그렇다면 법원은 (주)한국공항에서 제주 지하수를 국내에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행위에 문제가 없다고 본 걸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2006년 6월 1심 판결은 "국내 시장 판매를 금지하고, 계열사내 판매로 제한"한다는 제주도 입장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아 나온 2심 판결은 정반대의 결론을 냈습니다.

재판이 한참 진행 중이던 2006년은 김태환 지사가 제주도지사에 재선되던 해였는데요. 하지만 김 지사는 당선되고도 공무원들의 선거 개입을 직접 지시하거나 묵인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제주도정이 제주 지하수라는 중차대한 공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1심 재판부의 판단 근거였던 헌법에는 어떤 규정이 있을까요?

대한민국 제헌 헌법 85조에서 시작해 현행 헌법 120조로 이어진 조항엔 "중요한 지하자원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기간 채취·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허'란 공익상의 필요에 따라 행정청이 특정인에게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행정청의 재량행위에 속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특허의 한 사례인 제주 지하수인 경우 허가 기준에 맞다고 해서 도지사가 반드시 이를 허가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 판매 범위 확장에 대한 요구에서 지하수 증산 요구로

주로 판매 범위를 다투던 (주)한국공항은 2011년부터 끊임없이 지하수 증산을 요구합니다. (주)한국공항에서 받은 지하수 취수 허가량은 하루 최대 100톤, 월 3천 톤입니다. 증산 요구는 대부분 제주도를 통과했지만(물론 어떤 경우엔 제주도 지하수관리심의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번번이 제주도의회에서 가로막혔죠.

위기는 2013년에 찾아왔습니다. 상정 보류라는 형태로 반대하던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신선채소 운송을 위한 중형기 투입과 도민항공료 할인 확대 등을 부대조건으로 증산할 수 있도록 수정안을 통과시킨 겁니다. 당시 박희수 제주도의회 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 상정을 보류하면서 증산계획은 백지화됐습니다. 2017년에도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결국, 도민반대 여론 때문에 지하수 증산 동의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2017년 법제처가 "변경허가 신청을 받은 경우 당시 법에서 확정된 취수량의 범위 안에서만 변경허가를 할 수 있을 뿐, 그 범위를 넘어서까지 변경허가를 해줄 수 없다"고 법률 해석을 한 뒤, (주)한국공항의 지하수 증산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 법제처는 왜 증산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까?

그렇다면 왜 법제처는 "증산 허가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까요? 그 이유를 알려면 제주특별법의 역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1991년 제정된 제주도개발특별법은,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으로, 다시 2006년 주특별자치도특별법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중간에 각 법률은 수차례 개정되기도 했고요. 제주 지하수와 관련해선 2000년 개정 제주도개발특별법과 2006년 제정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주목해야 합니다.

2000년 법률엔 먹는샘물의 제조판매를 제주지방공기업, 즉 제주도개발공사만 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지하수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사유재로 보는 게 아니라, 공공의 자원으로 보는 '공수(公水)'로 다뤄야 한다는 제주 사회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죠. 따라서 2000년 개정 법률 시행 이후에 이뤄진 (주)한국공항의 먹는샘물 지하수 개발에 대한 연장허가는 법률을 위반한 행정행위가 되는 겁니다.

뒤늦게 이런 문제를 파악했는지 국회는 2006년 특별자치도법을 제정하면서 부칙을 추가했는데요. "이 법 시행 당시 종전에 지하수 허가를 받은 자는 도지사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는 규정을 새로 넣은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이미 2000년 법률 개정에 따라 (주)한국공항에 연장허가를 내줄 수 없게 됐는데도, 법적 근거 없이 연장허가를 내줬고, 6년이 지난 뒤에야 뒤늦게 법률적 근거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은 제주도가 특별법령 해석을 전문가들에게 맡긴 결과 2000년에서 2006년까지 이뤄진 (주)한국공항의 먹는샘물 연장 허가에 관해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이었습니다. 법학 교수나 자문 변호사는 물론 제주도 법률 담당 공무원들조차도 법적 결합이 있다는 점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문제는 2006년 법률에서 부칙으로 추가한 "종전에 지하수 허가를 받은 자에 대해 도지사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는 규정 때문에 현재 2년마다 이뤄지는 연장허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공무원들인 경우 문제는 있지만 나중에 법적 결함을 고쳤기 때문에 이제와서 다툴 수는 없다는 입장이고요. 변호사들은 위법하긴 한데 공익과 사익 간에 이익의 차이를 비교하려고 보니 판단이 어렵고, 대법원 판례도 없으며, 법리도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법학교수만 당연 무효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습니다.


■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한국공항은 1993년 이후 매 1~2년마다 지하수 개발·이용 유효기간에 대한 연장허가를 받는 방식으로 먹는샘물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현재 제주도의회에 2023년 11월까지 2년 더 연장하는 동의안이 상정됐습니다. 11월 26일(금)에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안건을 심의하는데, 1993년에 시작한 유효기간 연장 신청은 이번이 20번째가 되고, 만약 허가를 내주게 되면 허가 기간만 30년이 됩니다. (첫 허가인 1984년을 시점으로 하면 총 허가 기간은 39년이 되는 거겠죠.)

특히 이번 심사에서 변수는 2년 전 연장허가에 동의해주면서 제주도의회가 내걸었던 조건입니다. 첫째, 법제처에 기간연장의 법적 근거에 관한 유권해석 의뢰, 둘째, 이익금의 지역 환원, 셋째, 지하수 오염 예찰 강화 등인데요. 그런데 이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상태라 심사 과정에 진통이 예상됩니다.

과연 제주도의회는 '공수(公水)'의 원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며칠 후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김선필(2013) "제주 지하수의 공공적 관리와 공동자원 개념의 도입: 먹는샘물용 지하수 증산 논란을 중심으로", 김선필(2018) "커먼즈 관점에서 바라본 제주 지하수와 공동체 관계의 변동" 등의 논문과 제주도(2017) "한국공항 먹는샘물 연장허가 관련 제주도개발특별법 법령해석 자문의견"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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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5 08:00:24
    취재K
■ 물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물 분쟁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일어난 ‘물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이븐 더 레인’의 한 장면 (출처: 모레나 필름)
모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물. 이 물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누구여야 할까요? 인간 생존의 필수조건인 물을 사적으로 소유하려는 욕구는 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물의 전쟁'도 벌어집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수사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2000년 남미 볼리비아 제3의 도시인 코차밤바(Cochabamba) 등에서 실제 일어난 현실입니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자 볼리비아 정부는 당시 자국의 물 산업의 소유권을 다국적기업에 넘겼는데요. 이 기업은 물 가격을 급격히 올렸고, 이에 코차밤바 시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사상자가 속출하는 진통 끝에 결국 시민들의 승리로 물 통제권을 돌려받습니다.

극단적인 사례 같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미국의 개발·환경·안보를 위한 태평양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지구촌 전역에서 발생한 ‘물 분쟁’은 최소 466건으로, 그 이전 10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http://www.worldwater.org/conflict/list/ 참조)

■ 제주 지하수 개발의 역사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예부터 물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는 제주에서도 비슷한 물 분쟁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역사의 시간으로 가보겠습니다. 1966년 제주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제주도 수자원 개발 기본 구상도'를 그려 제주도지사에게 전달하며 수자원 개발을 독려했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 1971년 준공된 어승생 저수지입니다. 제주도는 이 저수지를 계기로 가히 '물의 혁명 시대'를 맞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그린 ‘제주도 수자원 개발 기본 구상도’ (출처: 제주도수자원본부·제주발전연구원,  2012,  제주상수도50년)
'제2의 물의 혁명'은 지하수 개발이었습니다. 1970년 농업진흥공사 주관으로 제주도 전역을 대상으로 한 지하수 조사사업 결과 제주 지하수의 부존형태를 밝혀냈고, 부존량도 풍부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부터입니다. 이를 근거로 1972년부터 농림부 주관으로 생활이나 농업 등에 사용할 다목적 지하수를 개발합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상수도 사용 비용보다 저렴하게 지하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사설 지하수 관정 개발이 더욱 활성화됩니다. 이 시기에 제주 지하수를 먹는샘물로 상품화하려는 사업자가 등장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한진그룹인데요. 한진그룹 계열사인 (주)제동흥산은 대한항공 기내 음료로 사용하기 위해 1984년 당시 주무부처인 보건사회부로부터 식품위생법에 근거한 먹는샘물 허가를 받았습니다. 제동흥산은 다음 해 1월부터 먹는샘물 생산에 들어가 '제주산수'라는 이름으로 1985년 바레인에 수출하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 지하수 난개발…부작용의 현실화

관련 제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하수 개발이 제주 섬 곳곳에서 이뤄지자, 1980년대 후반부터 제주지역 사회에서 지하수 난개발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관광호텔과 중산간 지역 골프장들이 제주 지하수를 다량으로 사용하면서 지하수 고갈과 바닷물 침입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실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사실로 입증되기도 했죠.

1990년 (주)제동흥산이 내국인을 상대로 먹는샘물을 판매하다가 적발된 사건은 이런 우려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습니다.

1991년 노태우 정부가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을 추진하자, 논란은 더욱 확산됐죠. 그 결과 제주특별법에 전국 최초로 제주 지하수를 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조항들이 포함됩니다. 1996년 제주특별법 개정 법률에선 제주 지하수를 보존자원으로 고시함으로써 민간사업자에 의한 먹는샘물의 도외반출도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 한진그룹의 먹는샘물 사업 역사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이전인 1984년 계열사인 (주)제동흥산에서 '제주산수'라는 이름으로 먹는샘물을 이용하기 시작한 한진그룹은 제주특별법 제정 이후인 1993년 11월부터 1~2년 단위로 제주도의회의 동의와 제주도의 연장허가를 받아 먹는샘물을 지금까지 상업적으로 계속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제품명은 제주산수에서 제주광천수로, 지금은 제주퓨어워터란 이름으로 제주 지하수를 판매하고 있죠. 관리하는 회사도 제동흥산에서 잠깐 대한항공을 거쳤다가 지금은 (주)한국공항에서 맡고 있습니다.


■ 대기업의 반격…잇따른 승소

제주 지하수를 공적 자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제주사회 분위기와 법적 제도적 흐름과는 달리, 한진그룹 측은 끊임없이 제주 지하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는데요. 1995년 (주)제동흥산에서 먹는샘물 국내시판 허가를 요청했다가 제주도에서 이를 거부하면서 첫 소송전이 시작됐습니다. 대법원이 한국공항의 손을 들어주면서 '제주광천수''의 국내시판은 가능해졌지만, 제주도민사회의 여론이 나빠지자 "계열사내 판매로 제한" 하기로 제주도와 한진그룹 간에 타협이 이뤄지게 됩니다. 하지만 (주)한국공항은 2005년 국내시판 포기 선언을 뒤집고 제주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습니다. 결국 (주)한국공항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먹는샘물 국내시판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그렇다면 법원은 (주)한국공항에서 제주 지하수를 국내에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행위에 문제가 없다고 본 걸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2006년 6월 1심 판결은 "국내 시장 판매를 금지하고, 계열사내 판매로 제한"한다는 제주도 입장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아 나온 2심 판결은 정반대의 결론을 냈습니다.

재판이 한참 진행 중이던 2006년은 김태환 지사가 제주도지사에 재선되던 해였는데요. 하지만 김 지사는 당선되고도 공무원들의 선거 개입을 직접 지시하거나 묵인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제주도정이 제주 지하수라는 중차대한 공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1심 재판부의 판단 근거였던 헌법에는 어떤 규정이 있을까요?

대한민국 제헌 헌법 85조에서 시작해 현행 헌법 120조로 이어진 조항엔 "중요한 지하자원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기간 채취·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허'란 공익상의 필요에 따라 행정청이 특정인에게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행정청의 재량행위에 속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특허의 한 사례인 제주 지하수인 경우 허가 기준에 맞다고 해서 도지사가 반드시 이를 허가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 판매 범위 확장에 대한 요구에서 지하수 증산 요구로

주로 판매 범위를 다투던 (주)한국공항은 2011년부터 끊임없이 지하수 증산을 요구합니다. (주)한국공항에서 받은 지하수 취수 허가량은 하루 최대 100톤, 월 3천 톤입니다. 증산 요구는 대부분 제주도를 통과했지만(물론 어떤 경우엔 제주도 지하수관리심의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번번이 제주도의회에서 가로막혔죠.

위기는 2013년에 찾아왔습니다. 상정 보류라는 형태로 반대하던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신선채소 운송을 위한 중형기 투입과 도민항공료 할인 확대 등을 부대조건으로 증산할 수 있도록 수정안을 통과시킨 겁니다. 당시 박희수 제주도의회 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 상정을 보류하면서 증산계획은 백지화됐습니다. 2017년에도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결국, 도민반대 여론 때문에 지하수 증산 동의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2017년 법제처가 "변경허가 신청을 받은 경우 당시 법에서 확정된 취수량의 범위 안에서만 변경허가를 할 수 있을 뿐, 그 범위를 넘어서까지 변경허가를 해줄 수 없다"고 법률 해석을 한 뒤, (주)한국공항의 지하수 증산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 법제처는 왜 증산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까?

그렇다면 왜 법제처는 "증산 허가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까요? 그 이유를 알려면 제주특별법의 역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1991년 제정된 제주도개발특별법은,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으로, 다시 2006년 주특별자치도특별법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중간에 각 법률은 수차례 개정되기도 했고요. 제주 지하수와 관련해선 2000년 개정 제주도개발특별법과 2006년 제정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주목해야 합니다.

2000년 법률엔 먹는샘물의 제조판매를 제주지방공기업, 즉 제주도개발공사만 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지하수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사유재로 보는 게 아니라, 공공의 자원으로 보는 '공수(公水)'로 다뤄야 한다는 제주 사회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죠. 따라서 2000년 개정 법률 시행 이후에 이뤄진 (주)한국공항의 먹는샘물 지하수 개발에 대한 연장허가는 법률을 위반한 행정행위가 되는 겁니다.

뒤늦게 이런 문제를 파악했는지 국회는 2006년 특별자치도법을 제정하면서 부칙을 추가했는데요. "이 법 시행 당시 종전에 지하수 허가를 받은 자는 도지사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는 규정을 새로 넣은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이미 2000년 법률 개정에 따라 (주)한국공항에 연장허가를 내줄 수 없게 됐는데도, 법적 근거 없이 연장허가를 내줬고, 6년이 지난 뒤에야 뒤늦게 법률적 근거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은 제주도가 특별법령 해석을 전문가들에게 맡긴 결과 2000년에서 2006년까지 이뤄진 (주)한국공항의 먹는샘물 연장 허가에 관해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이었습니다. 법학 교수나 자문 변호사는 물론 제주도 법률 담당 공무원들조차도 법적 결합이 있다는 점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문제는 2006년 법률에서 부칙으로 추가한 "종전에 지하수 허가를 받은 자에 대해 도지사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는 규정 때문에 현재 2년마다 이뤄지는 연장허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공무원들인 경우 문제는 있지만 나중에 법적 결함을 고쳤기 때문에 이제와서 다툴 수는 없다는 입장이고요. 변호사들은 위법하긴 한데 공익과 사익 간에 이익의 차이를 비교하려고 보니 판단이 어렵고, 대법원 판례도 없으며, 법리도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법학교수만 당연 무효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습니다.


■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한국공항은 1993년 이후 매 1~2년마다 지하수 개발·이용 유효기간에 대한 연장허가를 받는 방식으로 먹는샘물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현재 제주도의회에 2023년 11월까지 2년 더 연장하는 동의안이 상정됐습니다. 11월 26일(금)에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안건을 심의하는데, 1993년에 시작한 유효기간 연장 신청은 이번이 20번째가 되고, 만약 허가를 내주게 되면 허가 기간만 30년이 됩니다. (첫 허가인 1984년을 시점으로 하면 총 허가 기간은 39년이 되는 거겠죠.)

특히 이번 심사에서 변수는 2년 전 연장허가에 동의해주면서 제주도의회가 내걸었던 조건입니다. 첫째, 법제처에 기간연장의 법적 근거에 관한 유권해석 의뢰, 둘째, 이익금의 지역 환원, 셋째, 지하수 오염 예찰 강화 등인데요. 그런데 이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상태라 심사 과정에 진통이 예상됩니다.

과연 제주도의회는 '공수(公水)'의 원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며칠 후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김선필(2013) "제주 지하수의 공공적 관리와 공동자원 개념의 도입: 먹는샘물용 지하수 증산 논란을 중심으로", 김선필(2018) "커먼즈 관점에서 바라본 제주 지하수와 공동체 관계의 변동" 등의 논문과 제주도(2017) "한국공항 먹는샘물 연장허가 관련 제주도개발특별법 법령해석 자문의견"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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