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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씨 사망 날…숨진 채 발견된 5.18 총상 부상자
입력 2021.11.25 (11:08) 취재K

갑작스런 죽음에 빈소는 적막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영정사진이 제단에 놓였습니다. 고인은 액자 넘어 누군가를 향해 환히 웃고 있었습니다.

전두환 씨가 사망한 날, 숨진 채 발견된 또 다른 이가 있었습니다. 5.18 총상 부상자 이광영 씨입니다.

이 씨는 평생을 총상 후유증에 시달리다 68세의 나이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씨와 같은 선택을 한 5.18 부상자들이 확인된 것만 40명이 넘습니다. 모두들 총상이나 구타로 인한 후유증이나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5.18의 진실을 몸에 새긴 채 버텨온 이들이 전 씨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있습니다.

■ 전두환 씨 사망 날...고향 근처 저수지서 숨진 채 발견


이광영 씨는 지난 23일 오후 전남 강진의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씨의 고향 마을 인근 저수지였습니다. 자택에 유서를 남기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가족들의 신고가 접수된 뒤였습니다.


이 씨는 A4 절반 분량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배게 맡에 놓여진 유서 봉투엔 "사랑하는 가족에게"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씨는 유서에 "5.18에 대해서는 원한도 없거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이 각오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바, 오로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내가 지고 떠나감이다"고 썼습니다. 마지막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께 가고 싶다고 적혀 있었습니

■ 부상자 돕다 총상...'헬기사격' 목격 등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난 2019년 5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두환 씨 사자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광영 씨.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지난 2019년 5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두환 씨 사자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광영 씨.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출가해 승려로 지내던 이광영 씨는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목격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광주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 씨는 광주에 남아 쓰러진 시민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골목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시민을 차로 옮기던 이 씨도 총을 맞았습니다. 이광영 씨가 화물차 짐칸 위로 올라탄 순간, 탕! 하고 총성이 울렸습니다. 계엄군의 총탄은 이 씨의 척추를 파고 들었습니다.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가 왔습니다.


하지만 5.18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8년 국회 청문회에 참석했고, 지난 2019년 전두환 씨의 5.18 사자명예훼손 재판에도 증인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이 씨는 법정에 서기 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헬기가 두 번 이동하면서 내가 타고 있는 차량을 집중적으로 사격했는데,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며 전 씨가 헬기 사격을 부인하는 일은 "우리 역사와 우리 국민을 무시하는 엄청난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본 상황은 하늘이 무너져도 진실입니다"고 덧붙였습니다.

■ 마약성 진통제 의존해 버텨..."최근 들어 통증 극심했다"


유족들과 이 씨의 지인들은 이 씨가 평생 총상 후유증에 시달려왔다고 말합니다. 통증은 최근 들어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 씨의 절친한 동지였던 5.18 부상자 강상원 씨는 "2~3분에 한 번씩 통증이 왔다. 이야기하다가도 통증에 온몸이 오그라들었다"고 말합니다. 강 씨는 "그저께 조선대병원에 통원치료를 데리고 가려고 전화통화 한 게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 씨의 동생 이광성 씨도 최근 이 씨가 극심한 통증에 힘겨워했다고 말합니다. 동생은 이광영 씨가 지난 9월과 10월 두차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인 위궤양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고 말합니다. 신경이 아직 남아있는 오른쪽 다리로 운전을 할 수 있었던 이 씨였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숨지기 며칠 전 극심한 통증이 찾아와 두번이나 교통사고를 낼 정도였습니다. 이 씨의 동생은 "형님이 그때부터 한계를 느낀 것 같다"며 흐느꼈습니다.

■ '극단적 선택' 5.18 부상자 최소 46명...지원책 미비


이 씨와 같은 선택을 한 5.18 부상자들은 확인된 것만 46명입니다. 1980년대에 25명, 1990년대에 5명, 2000년대에 12명입니다. 1980년 이후 10년간은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 줄었지만, 2004년에는 한해에만 7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이마저도 5월 단체와 학계 연구에 따른 것이지, 정부의 공식적인 집계는 아닙니다. 5월 단체는 5.18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총상을 당해 숨지거나 다쳤는지 정부 차원의 조사가 없었다고 호소합니다.


그토록 원했던 전두환 씨의 사과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이광영 씨. 전 씨의 사망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먼저 눈을 감았지만, 5.18 진상규명을 향한 이 씨의 의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전두환 씨 사망 날…숨진 채 발견된 5.18 총상 부상자
    • 입력 2021-11-25 11:08:47
    취재K

갑작스런 죽음에 빈소는 적막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영정사진이 제단에 놓였습니다. 고인은 액자 넘어 누군가를 향해 환히 웃고 있었습니다.

전두환 씨가 사망한 날, 숨진 채 발견된 또 다른 이가 있었습니다. 5.18 총상 부상자 이광영 씨입니다.

이 씨는 평생을 총상 후유증에 시달리다 68세의 나이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씨와 같은 선택을 한 5.18 부상자들이 확인된 것만 40명이 넘습니다. 모두들 총상이나 구타로 인한 후유증이나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5.18의 진실을 몸에 새긴 채 버텨온 이들이 전 씨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있습니다.

■ 전두환 씨 사망 날...고향 근처 저수지서 숨진 채 발견


이광영 씨는 지난 23일 오후 전남 강진의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씨의 고향 마을 인근 저수지였습니다. 자택에 유서를 남기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가족들의 신고가 접수된 뒤였습니다.


이 씨는 A4 절반 분량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배게 맡에 놓여진 유서 봉투엔 "사랑하는 가족에게"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씨는 유서에 "5.18에 대해서는 원한도 없거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이 각오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바, 오로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내가 지고 떠나감이다"고 썼습니다. 마지막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께 가고 싶다고 적혀 있었습니

■ 부상자 돕다 총상...'헬기사격' 목격 등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난 2019년 5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두환 씨 사자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광영 씨.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지난 2019년 5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두환 씨 사자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광영 씨.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출가해 승려로 지내던 이광영 씨는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목격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광주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 씨는 광주에 남아 쓰러진 시민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골목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시민을 차로 옮기던 이 씨도 총을 맞았습니다. 이광영 씨가 화물차 짐칸 위로 올라탄 순간, 탕! 하고 총성이 울렸습니다. 계엄군의 총탄은 이 씨의 척추를 파고 들었습니다.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가 왔습니다.


하지만 5.18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8년 국회 청문회에 참석했고, 지난 2019년 전두환 씨의 5.18 사자명예훼손 재판에도 증인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이 씨는 법정에 서기 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헬기가 두 번 이동하면서 내가 타고 있는 차량을 집중적으로 사격했는데,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며 전 씨가 헬기 사격을 부인하는 일은 "우리 역사와 우리 국민을 무시하는 엄청난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본 상황은 하늘이 무너져도 진실입니다"고 덧붙였습니다.

■ 마약성 진통제 의존해 버텨..."최근 들어 통증 극심했다"


유족들과 이 씨의 지인들은 이 씨가 평생 총상 후유증에 시달려왔다고 말합니다. 통증은 최근 들어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 씨의 절친한 동지였던 5.18 부상자 강상원 씨는 "2~3분에 한 번씩 통증이 왔다. 이야기하다가도 통증에 온몸이 오그라들었다"고 말합니다. 강 씨는 "그저께 조선대병원에 통원치료를 데리고 가려고 전화통화 한 게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 씨의 동생 이광성 씨도 최근 이 씨가 극심한 통증에 힘겨워했다고 말합니다. 동생은 이광영 씨가 지난 9월과 10월 두차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인 위궤양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고 말합니다. 신경이 아직 남아있는 오른쪽 다리로 운전을 할 수 있었던 이 씨였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숨지기 며칠 전 극심한 통증이 찾아와 두번이나 교통사고를 낼 정도였습니다. 이 씨의 동생은 "형님이 그때부터 한계를 느낀 것 같다"며 흐느꼈습니다.

■ '극단적 선택' 5.18 부상자 최소 46명...지원책 미비


이 씨와 같은 선택을 한 5.18 부상자들은 확인된 것만 46명입니다. 1980년대에 25명, 1990년대에 5명, 2000년대에 12명입니다. 1980년 이후 10년간은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 줄었지만, 2004년에는 한해에만 7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이마저도 5월 단체와 학계 연구에 따른 것이지, 정부의 공식적인 집계는 아닙니다. 5월 단체는 5.18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총상을 당해 숨지거나 다쳤는지 정부 차원의 조사가 없었다고 호소합니다.


그토록 원했던 전두환 씨의 사과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이광영 씨. 전 씨의 사망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먼저 눈을 감았지만, 5.18 진상규명을 향한 이 씨의 의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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