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전태일의 삶 애니메이션으로…‘태일이’ 홍준표 감독 인터뷰

입력 2021.11.2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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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태일이’가 다음 달 초 개봉 (12월 1일 예정)합니다. 시사회를 미리 본 뒤 홍준표 감독 (아래 사진)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전 구상부터 시작해 제작 기간이 3년이나 되는 '공들인' 작품입니다.

고(故) 전태일 열사는 그가 22살이 된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외치며 자신의 몸을 태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세상에 알린 상징적 인물.

연출을 맡은 홍 감독(36세)을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루머'사무실에서 만나기 전에 그의 바쁜 언론사 인터뷰 일정을 고려해 사전 질문지를 보냈습니다.

질문을 뽑아보며 1970년, 22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청년의 인생역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담기 위해서 감독 입장에서 '필요한 작업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홍 감독에게 던진 질문은 크게 2가지였습니다.

과연 30대 중반인 홍 감독이 노동운동사의 대표적 인물인 전태일을 '어떻게 공부하고, 이해했는지'가 제일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 감독이 극의 주요 무대인 평화시장, 삼일고가 등 무대 배경을 되살리는 작업에 참고한 자료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습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면서 감탄한 부분이 평화시장, 길거리 특징 있는 건물들의 세부 묘사였기 때문입니다.

홍 감독은 인물 분석에 대해선 우선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다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 처음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그 시대를 살아본 세대가 아니어서 부담이 있었다"며 "시대적으로도 어떤 분위기였는지를 모르니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른바 MZ 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나이인데다, 대학에 입학해 '전태일 평전' 등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현재 40~50대보다 한참 뒤에 태어난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촬영 전 준비단계부터 철저한 자료를 통한 고증 작업에 탄력이 붙으면서, 나중에는 '시기가 검증되지 않은 장면은 넣지 않는다'는 수준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모든 것이 사실에 기반을 둬야 해서 전태일 평전에 기록된 내용과 (전태일) 재단이 보유한 기록물과 부합하는지를 계속 확인했습니다. 태일이를 '전 회장'이라 부르며 따르는 동료들과 만든 '바보회'가 어디에서 모였는지 하는 것도 철저히 자료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또 정서적인 것들, 당시 태일이가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전태일 열사의 노트나 메모를 참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충분한 조사를 거친 뒤 탄생한 '태일이'란 만화(최호철 그림)에서도 얻을 것이 많았습니다. 특히 태일이의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면을 그리는데 만화가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바로 이어 '평화 시장'과 길거리 이발관 등 건물 하나하나에 살아있는 역사성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존에 애니메이션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상상력에 많이 의존하는데 이 작품은 그럴수 없었습니다. 실존 인물의 생애다 보니 , 단순 인터넷 이미지 검색이 아니라 명확한 시기가 표기된 뉴스나 보도된 자료를 찾았습니다. 기록에도 날짜가 명시된 것을 찾아서 건물 배경으로 그렸고, 평화시장 앞에 보이는 당시 삼일고가가 서서히 건설돼 가는 모습도 철저하게 시기별로 고증하기 위해 대한뉴스 영상 719호 '우리는 건설한다.' 편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홍 감독은 인간 '전태일'을 이해하기 위해 '근로기준법'도 일독했다고 말했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근로기준법을 쭉 읽어 보니 70년대 당시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법의 큰 틀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고 많이 놀랐고, 또 흥미로웠다"고 밝혔습니다.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에도 '실력파' 배우들이 함께했다고 제작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전태일' 역 장동윤과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 역 염혜란을 비롯해 권해효, 진선규, 박철민, 태인호 등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이 목소리로 연기했습니다.

연기나 동선에 대해서도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는데, 애니메이션이지만 일정 부분은 실제 세트를 만들어 사전 촬영도 했습니다.

실재 연기자가 동선에 따라 연기해보는 '가이드 촬영'도 시도했습니다. 이런 정성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한미사 공장'장면입니다.


작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일하는 곳이라 그 안에서 인물들의 동선을 짜는 게 쉽지 않았는데, 사전 가이드 촬영 덕분에 당시 공장의 구조와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가이드 촬영의 효용에 대해서는 제작에 참여한 프로듀서(김선구)가 자세히 설명하는 영상( 위 영상 참고)까지 제작했는데, 다양한 동선에서 연기하는 배우들과 사전 촬영 덕에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터들이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촬영팀에서는 그 장면에 맞는 렌즈값과 카메라 위치 등을 정교하게 설계할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홍 감독은 전태일을 열사로 다시 부각하기보다 '전체관람가' 영화에 맞게 "기본적으로 따스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선악(善惡) 대립 구도를 사용하지 않고, 공장주와 사장 등을 극단적인 악역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줄거리에서 악인이 등장하는 순간 보는 사람들이 그냥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거든요. 당시 시대 상황이 한, 두 명의 악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태일이가 어찌 보면 재단사로 돈을 벌고 가족과 행복을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셈이지요."

이 같은 감독의 연출 의도와 별개로 마지막에 나오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장면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를 관련 평전이나 영화로 봤던 이전 세대 입장에선 애니메이션의 경우 '분신 장면이 너무 짧았다.', ' 영화로 치면 극적인 묘사나 효과가 부족하다'는 비판인 셈입니다.

홍 감독은 "누구나 다 아는 그 '분신' 장면은 마지막까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는데, 제 결심은 '그날을 너무 강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20대 청년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행동보다, 그 직전까지 공장 계단에 앉아 혼자 고심하는 모습, 당시 주변에서 평화시장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랐을 감정 등을 전달하는 데 더 주력했다는 것.

홍 감독은 지난 3년을 오롯이 '태일이'만 생각하면서 보냈다며,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차기 작품이나 앞으로 활동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홍준표 감독은 끝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살다 간 청년의 삶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며 "이젠 사장이나 업주 같은 악인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플랫폼 노동자'로 고생하는 젊음 세대도 이 기회에 '태일이'를 보면서 이전 세대와 공감을 했으면 한다"고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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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7 08:01:08
    취재K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다음 달 초 개봉 (12월 1일 예정)합니다. 시사회를 미리 본 뒤 홍준표 감독 (아래 사진)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전 구상부터 시작해 제작 기간이 3년이나 되는 '공들인' 작품입니다.

고(故) 전태일 열사는 그가 22살이 된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외치며 자신의 몸을 태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세상에 알린 상징적 인물.

연출을 맡은 홍 감독(36세)을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루머'사무실에서 만나기 전에 그의 바쁜 언론사 인터뷰 일정을 고려해 사전 질문지를 보냈습니다.

질문을 뽑아보며 1970년, 22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청년의 인생역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담기 위해서 감독 입장에서 '필요한 작업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홍 감독에게 던진 질문은 크게 2가지였습니다.

과연 30대 중반인 홍 감독이 노동운동사의 대표적 인물인 전태일을 '어떻게 공부하고, 이해했는지'가 제일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 감독이 극의 주요 무대인 평화시장, 삼일고가 등 무대 배경을 되살리는 작업에 참고한 자료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습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면서 감탄한 부분이 평화시장, 길거리 특징 있는 건물들의 세부 묘사였기 때문입니다.

홍 감독은 인물 분석에 대해선 우선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다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 처음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그 시대를 살아본 세대가 아니어서 부담이 있었다"며 "시대적으로도 어떤 분위기였는지를 모르니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른바 MZ 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나이인데다, 대학에 입학해 '전태일 평전' 등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현재 40~50대보다 한참 뒤에 태어난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촬영 전 준비단계부터 철저한 자료를 통한 고증 작업에 탄력이 붙으면서, 나중에는 '시기가 검증되지 않은 장면은 넣지 않는다'는 수준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모든 것이 사실에 기반을 둬야 해서 전태일 평전에 기록된 내용과 (전태일) 재단이 보유한 기록물과 부합하는지를 계속 확인했습니다. 태일이를 '전 회장'이라 부르며 따르는 동료들과 만든 '바보회'가 어디에서 모였는지 하는 것도 철저히 자료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또 정서적인 것들, 당시 태일이가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전태일 열사의 노트나 메모를 참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충분한 조사를 거친 뒤 탄생한 '태일이'란 만화(최호철 그림)에서도 얻을 것이 많았습니다. 특히 태일이의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면을 그리는데 만화가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바로 이어 '평화 시장'과 길거리 이발관 등 건물 하나하나에 살아있는 역사성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존에 애니메이션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상상력에 많이 의존하는데 이 작품은 그럴수 없었습니다. 실존 인물의 생애다 보니 , 단순 인터넷 이미지 검색이 아니라 명확한 시기가 표기된 뉴스나 보도된 자료를 찾았습니다. 기록에도 날짜가 명시된 것을 찾아서 건물 배경으로 그렸고, 평화시장 앞에 보이는 당시 삼일고가가 서서히 건설돼 가는 모습도 철저하게 시기별로 고증하기 위해 대한뉴스 영상 719호 '우리는 건설한다.' 편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홍 감독은 인간 '전태일'을 이해하기 위해 '근로기준법'도 일독했다고 말했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근로기준법을 쭉 읽어 보니 70년대 당시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법의 큰 틀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고 많이 놀랐고, 또 흥미로웠다"고 밝혔습니다.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에도 '실력파' 배우들이 함께했다고 제작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전태일' 역 장동윤과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 역 염혜란을 비롯해 권해효, 진선규, 박철민, 태인호 등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이 목소리로 연기했습니다.

연기나 동선에 대해서도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는데, 애니메이션이지만 일정 부분은 실제 세트를 만들어 사전 촬영도 했습니다.

실재 연기자가 동선에 따라 연기해보는 '가이드 촬영'도 시도했습니다. 이런 정성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한미사 공장'장면입니다.


작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일하는 곳이라 그 안에서 인물들의 동선을 짜는 게 쉽지 않았는데, 사전 가이드 촬영 덕분에 당시 공장의 구조와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가이드 촬영의 효용에 대해서는 제작에 참여한 프로듀서(김선구)가 자세히 설명하는 영상( 위 영상 참고)까지 제작했는데, 다양한 동선에서 연기하는 배우들과 사전 촬영 덕에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터들이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촬영팀에서는 그 장면에 맞는 렌즈값과 카메라 위치 등을 정교하게 설계할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홍 감독은 전태일을 열사로 다시 부각하기보다 '전체관람가' 영화에 맞게 "기본적으로 따스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선악(善惡) 대립 구도를 사용하지 않고, 공장주와 사장 등을 극단적인 악역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줄거리에서 악인이 등장하는 순간 보는 사람들이 그냥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거든요. 당시 시대 상황이 한, 두 명의 악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태일이가 어찌 보면 재단사로 돈을 벌고 가족과 행복을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셈이지요."

이 같은 감독의 연출 의도와 별개로 마지막에 나오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장면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를 관련 평전이나 영화로 봤던 이전 세대 입장에선 애니메이션의 경우 '분신 장면이 너무 짧았다.', ' 영화로 치면 극적인 묘사나 효과가 부족하다'는 비판인 셈입니다.

홍 감독은 "누구나 다 아는 그 '분신' 장면은 마지막까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는데, 제 결심은 '그날을 너무 강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20대 청년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행동보다, 그 직전까지 공장 계단에 앉아 혼자 고심하는 모습, 당시 주변에서 평화시장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랐을 감정 등을 전달하는 데 더 주력했다는 것.

홍 감독은 지난 3년을 오롯이 '태일이'만 생각하면서 보냈다며,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차기 작품이나 앞으로 활동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홍준표 감독은 끝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살다 간 청년의 삶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며 "이젠 사장이나 업주 같은 악인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플랫폼 노동자'로 고생하는 젊음 세대도 이 기회에 '태일이'를 보면서 이전 세대와 공감을 했으면 한다"고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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