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기자들Q] 퇴근하지 못한 ‘산재 사망자’…보수·경제지의 흔적을 찾습니다

입력 2021.11.2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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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산재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올해도 하루 평균 2.3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퇴근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산재 사망 사고가 빈번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산재 예방 대책을 내놓는 정부의 책임도 있고, 안전 관리 감독을 등한시하는 기업의 책임이나 '설마' 하는 작업 현장의 안전불감증 책임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합적인 원인들 가운데 <질문하는 기자들 Q>는 노동자 산재 사망 사고를 보도하는 데에는 인색하고, 기업이 주장하는 입장 보도에는 호의적인 일부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노동자의 죽음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기업이 경제적인 타격을 받는 건 안 된다'는 식의 보도는 우리 사회의 높은 산재 사망률에 분명히 영향을 끼친 원인으로 보입니다.


■ 극명하게 갈린 현대중공업·현대제철 사망 사고 보도량

지난 5월 8일에 현대중공업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장 모 씨가 선박 탱크 작업을 하다가 약 11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서 숨진 사고가 있었습니다. 같은 날 현대제철에선 노동자 김 모 씨가 설비 점검을 하러 갔다가 기계에 끼어서 숨졌습니다.

이 두 사고를 놓고 언론사마다 보도 방향이 달랐습니다. 이른바 진보지는 사업주의 안전 관리 감독이 부실하다면서 처벌 강화 목소리를 높였고, 일부 보수지와 경제지는 단순 사건사고 기사로 처리했습니다. 보도량에도 다음과 같이 차이가 났습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매년 최악의 살인 기업 선정식을 하는데요, 현대중공업은 단골로 1위를 하는 기업입니다. 창사 이래로 471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대제철 역시 많은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의 공장으로 부를 만큼 산재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포스코나 현대건설 등 굴지의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고요. 매년 반복되는 지점을 끊어내기 위해서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줘야 하고, 진짜 심층적인 보도가 필요한데 보도조차 안 된다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 쿠팡 관련 기사만 한 달에 5백 건 넘게 쓴 경제지들…쿠팡 노동자 사망 보도는?

쿠팡은 최근 2년간 9명의 노동자가 숨진 기업입니다. 하지만 쿠팡은 노동자 사망 사고 9건 가운데 1건만 산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쿠팡 노조는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해달라면서 공동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여건과 적정 물량 배치, 휴게공간 설치 등의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 자체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 만들어진 구조가 아니에요. 한 층이 있으면 그 층을 메자닌이라고 하는 철판으로 나눠요. 1개의 층을 높이가 낮은 층으로 다시 나누는 구조인 거죠. 움직이는 것도 문제인데, 철판 때문에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습니다. 먼지 등의 문제가 있어서 창문 환기도 하지 않아요."

-김혜윤 공공운수노조 물류센터전략사업단 조직차장-

언론은 쿠팡 노동자 사망 사고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요? 유독 경제지들이 노동자 사망 사고 보도에 인색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올해 3월에 발생한 쿠팡 노동자 사망사고 3건에 대한 경제지들의 보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3건 중 1건은 어디에서도 보도하지 않았고, 특히 한국경제는 지면으로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망 사고 보도를 제외하고, 같은 기간 세 곳의 쿠팡 관련 기사는 모두 5백 건이 넘었는데 이 가운데 지면 보도 비율은 약 40%였습니다. 대부분 쿠팡 상장 관련 기사나 쿠팡의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는 긍정적인 기사였습니다.

"쉽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광고 때문이냐, 돈 받았냐, 이렇게도 말을 하시겠지만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이라는 주체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는 거죠. 기업은 어지간하면 규제하지 말고 문제가 있더라도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하게 해줘야 된다, 이런 태도가 바탕에 깔려 있는 언론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요구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면만 보여주려고 하는 거죠."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 부주의 때문에 사고 났다?…홍정운 군 보도에 드러난 민낯

지난달 6일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에 나간 18살 특성화고등학교 학생 홍정운 군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잠수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거였습니다. 알고 보니 홍 군은 잠수 자격증도 없었고, 실습 계획에도 잠수 작업이 없었습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비극적으로 드러난 사고였습니다.

"2019년도에 현장실습 제도를 보완한다고 하면서 5인 미만 영세사업체도 (현장실습을) 갈 수 있게 열어 놓은 거예요. (교육청 승인 없이) 학교 현장실습운영위원회에서 그냥 확인하면 되는 거예요. 학생들이 거의 아르바이트 수준의 현장실습을 하게 돼 버렸죠."

-김현주 전남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자문위원-

슬픔에 빠진 유족들의 마음에 한 번 더 생채기를 낸 건 언론이었습니다. 홍 군이 부주의해서 사고를 당했다는 기사들이 사고 당일 오후부터 보도되기 시작한 겁니다.

홍 군 아버지의 항의로 기사 내용은 전부 수정됐지만 이미 홍 군을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진 상태였습니다. 유족들은 댓글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상처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홍 군 사고를 외면한 언론도 상당수입니다. 관련 기사를 쓰더라도 국정감사에서 홍 군 사고를 언급한 국회의원이나 장관의 입장을 보도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보도량이 많다, 적다라는 것을 어떤 기준점을 세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보여지거든요? 그런데 그것에 비하면 보도량이 결코 많지 않다, 라고 생각이 되었고요. 특히 경제지에서는 보도량이 굉장히 적었어요."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

언론은 왜 노동자 사망사고 보도에 인색하거나 서툴까요? 이에 대한 내용은 내일(28일) 밤 10시 35분에 KBS 1TV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솔희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이현준 기자와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가 출연합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는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https://news.kbs.co.kr/vod/program.do?bcd=0193#20211114
▲ 유튜브 계정 <질문하는 기자들 Q>: https://www.youtube.com/c/%EC%A7%88%EB%AC%B8%ED%95%98%EB%8A%94%EA%B8%B0%EC%9E%90%EB%93%A4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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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하는 기자들Q] 퇴근하지 못한 ‘산재 사망자’…보수·경제지의 흔적을 찾습니다
    • 입력 2021-11-27 10:07:55
    취재K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산재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올해도 하루 평균 2.3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퇴근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산재 사망 사고가 빈번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산재 예방 대책을 내놓는 정부의 책임도 있고, 안전 관리 감독을 등한시하는 기업의 책임이나 '설마' 하는 작업 현장의 안전불감증 책임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합적인 원인들 가운데 <질문하는 기자들 Q>는 노동자 산재 사망 사고를 보도하는 데에는 인색하고, 기업이 주장하는 입장 보도에는 호의적인 일부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노동자의 죽음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기업이 경제적인 타격을 받는 건 안 된다'는 식의 보도는 우리 사회의 높은 산재 사망률에 분명히 영향을 끼친 원인으로 보입니다.


■ 극명하게 갈린 현대중공업·현대제철 사망 사고 보도량

지난 5월 8일에 현대중공업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장 모 씨가 선박 탱크 작업을 하다가 약 11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서 숨진 사고가 있었습니다. 같은 날 현대제철에선 노동자 김 모 씨가 설비 점검을 하러 갔다가 기계에 끼어서 숨졌습니다.

이 두 사고를 놓고 언론사마다 보도 방향이 달랐습니다. 이른바 진보지는 사업주의 안전 관리 감독이 부실하다면서 처벌 강화 목소리를 높였고, 일부 보수지와 경제지는 단순 사건사고 기사로 처리했습니다. 보도량에도 다음과 같이 차이가 났습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매년 최악의 살인 기업 선정식을 하는데요, 현대중공업은 단골로 1위를 하는 기업입니다. 창사 이래로 471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대제철 역시 많은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의 공장으로 부를 만큼 산재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포스코나 현대건설 등 굴지의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고요. 매년 반복되는 지점을 끊어내기 위해서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줘야 하고, 진짜 심층적인 보도가 필요한데 보도조차 안 된다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 쿠팡 관련 기사만 한 달에 5백 건 넘게 쓴 경제지들…쿠팡 노동자 사망 보도는?

쿠팡은 최근 2년간 9명의 노동자가 숨진 기업입니다. 하지만 쿠팡은 노동자 사망 사고 9건 가운데 1건만 산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쿠팡 노조는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해달라면서 공동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여건과 적정 물량 배치, 휴게공간 설치 등의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 자체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 만들어진 구조가 아니에요. 한 층이 있으면 그 층을 메자닌이라고 하는 철판으로 나눠요. 1개의 층을 높이가 낮은 층으로 다시 나누는 구조인 거죠. 움직이는 것도 문제인데, 철판 때문에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습니다. 먼지 등의 문제가 있어서 창문 환기도 하지 않아요."

-김혜윤 공공운수노조 물류센터전략사업단 조직차장-

언론은 쿠팡 노동자 사망 사고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요? 유독 경제지들이 노동자 사망 사고 보도에 인색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올해 3월에 발생한 쿠팡 노동자 사망사고 3건에 대한 경제지들의 보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3건 중 1건은 어디에서도 보도하지 않았고, 특히 한국경제는 지면으로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망 사고 보도를 제외하고, 같은 기간 세 곳의 쿠팡 관련 기사는 모두 5백 건이 넘었는데 이 가운데 지면 보도 비율은 약 40%였습니다. 대부분 쿠팡 상장 관련 기사나 쿠팡의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는 긍정적인 기사였습니다.

"쉽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광고 때문이냐, 돈 받았냐, 이렇게도 말을 하시겠지만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이라는 주체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는 거죠. 기업은 어지간하면 규제하지 말고 문제가 있더라도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하게 해줘야 된다, 이런 태도가 바탕에 깔려 있는 언론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요구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면만 보여주려고 하는 거죠."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 부주의 때문에 사고 났다?…홍정운 군 보도에 드러난 민낯

지난달 6일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에 나간 18살 특성화고등학교 학생 홍정운 군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잠수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거였습니다. 알고 보니 홍 군은 잠수 자격증도 없었고, 실습 계획에도 잠수 작업이 없었습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비극적으로 드러난 사고였습니다.

"2019년도에 현장실습 제도를 보완한다고 하면서 5인 미만 영세사업체도 (현장실습을) 갈 수 있게 열어 놓은 거예요. (교육청 승인 없이) 학교 현장실습운영위원회에서 그냥 확인하면 되는 거예요. 학생들이 거의 아르바이트 수준의 현장실습을 하게 돼 버렸죠."

-김현주 전남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자문위원-

슬픔에 빠진 유족들의 마음에 한 번 더 생채기를 낸 건 언론이었습니다. 홍 군이 부주의해서 사고를 당했다는 기사들이 사고 당일 오후부터 보도되기 시작한 겁니다.

홍 군 아버지의 항의로 기사 내용은 전부 수정됐지만 이미 홍 군을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진 상태였습니다. 유족들은 댓글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상처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홍 군 사고를 외면한 언론도 상당수입니다. 관련 기사를 쓰더라도 국정감사에서 홍 군 사고를 언급한 국회의원이나 장관의 입장을 보도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보도량이 많다, 적다라는 것을 어떤 기준점을 세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보여지거든요? 그런데 그것에 비하면 보도량이 결코 많지 않다, 라고 생각이 되었고요. 특히 경제지에서는 보도량이 굉장히 적었어요."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

언론은 왜 노동자 사망사고 보도에 인색하거나 서툴까요? 이에 대한 내용은 내일(28일) 밤 10시 35분에 KBS 1TV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솔희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이현준 기자와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가 출연합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는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https://news.kbs.co.kr/vod/program.do?bcd=0193#20211114
▲ 유튜브 계정 <질문하는 기자들 Q>: https://www.youtube.com/c/%EC%A7%88%EB%AC%B8%ED%95%98%EB%8A%94%EA%B8%B0%EC%9E%90%EB%93%A4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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