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후] ‘음주측정 거부’로 처벌받자 “최선 다해 불었다”?…벌금만 더 올라

입력 2021.11.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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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당시 44살)는 지난해 5월 새벽 3시쯤 서울 강남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에 시동을 건 채로 불도 켜놓은 상태에서 운전석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차 밖으로 나온 A 씨에게서 술 냄새가 나고 A 씨의 눈이 충혈돼 힘없이 풀려있는 데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횡설수설하기까지 하자, 음주 운전을 의심했습니다.

경찰관들은 주변 CCTV를 통해 A 씨가 400미터 가량 운전한 사실을 확인했고, A 씨에게 음주 측정을 요구했습니다.

새벽 3시 반부터 1시간여 동안 경찰과 A 씨의 음주 측정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A 씨는 처음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차량에 손을 짚고 서 있거나 자신의 차량을 향해 발길질하면서 “나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 CCTV를 확인하게 해 달라. 억울하다. (음주측정기를) 안 불고 음주측정거부로 그냥 체포되겠다”고 말하면서 측정을 피했습니다.

A 씨는 그러다 겨우 음주 측정기를 입에 대긴 했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측정 내내 입김을 짧게 불거나 불어넣는 시늉만 반복해 음주 측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결국 도로교통법 위반(음주 측정 거부) 혐의로 약식 기소, 법원의 약식 명령으로 벌금 700만 원을 내게 됐습니다.

그러자 A 씨는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A 씨는 “앞의 음주측정에서는 바람을 제대로 불어넣지 않는 방법으로 음주 측정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마지막 2번의 음주 측정에서는 최선을 다해 바람을 불어넣었으나 측정이 되지 않은 것”이라면서 “음주측정 의사가 없음이 명백하게 인정되지 않는다”고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정식 판결 결과는 어땠을까?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관 B는 재판에서 A씨가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마지막 2차례의 측정과 관련해 “처음에는 A 씨가 세게 불었으나 마지막에는 거의 호흡이 끊긴 것으로 보고 있다.” “충분히 호흡이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에 부는 척하다가 나중에는 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함께 출동했던 경찰관 C도 “당시 측정을 7, 8회 시도했는데, 계속 호흡을 중간에 끊었다. 호흡을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 호흡을 불어넣으라고 말했는데, 한 번에 많은 호흡을 하고 끊거나 중간에 계속 호흡을 끊어서 측정이 안 됐다.” “호흡 측정기를 못 불어서 결괏값이 안 나오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음주측정을 모면하려고 하거나 적극적으로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 A씨가 폐활량 부족이나 호흡 곤란 등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았고 평소 그런 증세가 있는지와 관련해 아무런 주장이나 자료가 없다”며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음주 측정을 위한 호흡을 불어넣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계속 음주측정을 거부했던 정황 등을 고려하면 의도적으로 음주측정을 회피하기 위해 충분한 양의 숨을 불어 넣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또 “ 음주측정 요구를 거부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음주측정에 성실히 응한 운전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실제 피고인이 음주측정에 응했을 경우 받을 처벌과 비슷하거나 가볍다면 형평과 법 감정에 반한다”며 약식명령 벌금 700만 원보다 높은 벌금 9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A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역시 “A 씨의 직업과 언행을 고려할 때 혈중알콜농도 수치가 높게 나와 먼허가 취소될 경우 회사 운영에 미칠 어려움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이고 앞선 음주측정에서 짧은 숨만 불어넣다가 스스로 호흡을 멈췄으며 경찰관들이 호흡 부족으로 음주 측정이 되지 않았음을 지속적으로 고지한 점, 마지막 음주측정의 경우 그 직전 시도에서 0.1L 차이로 측정이 되지 않자 경찰관들이 추가 기회를 줬음에도 직전보다 숨을 적게 불어 넣어 측정에 실패한 점 등을 추가해 보면 측정불응의사를 명백히 인정할 수 있다”며 A 씨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음주측정 중 ‘삐’ 소리가 나고 측정기 화면에 ‘체취’ 단어가 나타난 것은 음주 측정기가 호흡을 감지하는 상태인 것으로 보이지만, 호흡 감지와 호흡시료의 양은 별개로 보이고, 음주측정에 필요한 충분한 호흡을 불지 않은 사실이 인정되므로 ‘삐’ 소리와 ‘체취’ 단어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음주측정에 응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청은 단계적 일상 회복이 시행된 지난 1일부터 25일까지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시행한 결과, 모두 9천 312건을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면허 취소 수준이 6천771건, 정지 수준이 2천541건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372.5건이 적발된 셈인데, 올 여름 휴가철 집중 단속 때 적발 건수(하루평균 7월 322건, 8월 307건)에 비해 급증한 수치입니다.

국내 음주운전 관련 처벌기준은 지난 2019년 6월 말부터 강화돼, 음주 측정을 거부할 경우 1년 ~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또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행정처분을 받게 되는데, 음주 측정 거부 시 단순 음주만으로도 1년간 면허가 취소됩니다.

위 사건에서 내려진 벌금 9백만 원은 지난 25일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이른바 윤창호 법의 강화된 개정 내용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경찰청은 내년 1월까지 유흥가와 식당 등 지역별 음주운전 위험 지역을 중심으로 시간과 장소를 수시로 바꿔가며 단속을 벌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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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후] ‘음주측정 거부’로 처벌받자 “최선 다해 불었다”?…벌금만 더 올라
    • 입력 2021-11-28 09:04:39
    취재후·사건후

A 씨(당시 44살)는 지난해 5월 새벽 3시쯤 서울 강남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에 시동을 건 채로 불도 켜놓은 상태에서 운전석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차 밖으로 나온 A 씨에게서 술 냄새가 나고 A 씨의 눈이 충혈돼 힘없이 풀려있는 데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횡설수설하기까지 하자, 음주 운전을 의심했습니다.

경찰관들은 주변 CCTV를 통해 A 씨가 400미터 가량 운전한 사실을 확인했고, A 씨에게 음주 측정을 요구했습니다.

새벽 3시 반부터 1시간여 동안 경찰과 A 씨의 음주 측정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A 씨는 처음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차량에 손을 짚고 서 있거나 자신의 차량을 향해 발길질하면서 “나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 CCTV를 확인하게 해 달라. 억울하다. (음주측정기를) 안 불고 음주측정거부로 그냥 체포되겠다”고 말하면서 측정을 피했습니다.

A 씨는 그러다 겨우 음주 측정기를 입에 대긴 했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측정 내내 입김을 짧게 불거나 불어넣는 시늉만 반복해 음주 측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결국 도로교통법 위반(음주 측정 거부) 혐의로 약식 기소, 법원의 약식 명령으로 벌금 700만 원을 내게 됐습니다.

그러자 A 씨는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A 씨는 “앞의 음주측정에서는 바람을 제대로 불어넣지 않는 방법으로 음주 측정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마지막 2번의 음주 측정에서는 최선을 다해 바람을 불어넣었으나 측정이 되지 않은 것”이라면서 “음주측정 의사가 없음이 명백하게 인정되지 않는다”고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정식 판결 결과는 어땠을까?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관 B는 재판에서 A씨가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마지막 2차례의 측정과 관련해 “처음에는 A 씨가 세게 불었으나 마지막에는 거의 호흡이 끊긴 것으로 보고 있다.” “충분히 호흡이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에 부는 척하다가 나중에는 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함께 출동했던 경찰관 C도 “당시 측정을 7, 8회 시도했는데, 계속 호흡을 중간에 끊었다. 호흡을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 호흡을 불어넣으라고 말했는데, 한 번에 많은 호흡을 하고 끊거나 중간에 계속 호흡을 끊어서 측정이 안 됐다.” “호흡 측정기를 못 불어서 결괏값이 안 나오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음주측정을 모면하려고 하거나 적극적으로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 A씨가 폐활량 부족이나 호흡 곤란 등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았고 평소 그런 증세가 있는지와 관련해 아무런 주장이나 자료가 없다”며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음주 측정을 위한 호흡을 불어넣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계속 음주측정을 거부했던 정황 등을 고려하면 의도적으로 음주측정을 회피하기 위해 충분한 양의 숨을 불어 넣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또 “ 음주측정 요구를 거부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음주측정에 성실히 응한 운전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실제 피고인이 음주측정에 응했을 경우 받을 처벌과 비슷하거나 가볍다면 형평과 법 감정에 반한다”며 약식명령 벌금 700만 원보다 높은 벌금 9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A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역시 “A 씨의 직업과 언행을 고려할 때 혈중알콜농도 수치가 높게 나와 먼허가 취소될 경우 회사 운영에 미칠 어려움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이고 앞선 음주측정에서 짧은 숨만 불어넣다가 스스로 호흡을 멈췄으며 경찰관들이 호흡 부족으로 음주 측정이 되지 않았음을 지속적으로 고지한 점, 마지막 음주측정의 경우 그 직전 시도에서 0.1L 차이로 측정이 되지 않자 경찰관들이 추가 기회를 줬음에도 직전보다 숨을 적게 불어 넣어 측정에 실패한 점 등을 추가해 보면 측정불응의사를 명백히 인정할 수 있다”며 A 씨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음주측정 중 ‘삐’ 소리가 나고 측정기 화면에 ‘체취’ 단어가 나타난 것은 음주 측정기가 호흡을 감지하는 상태인 것으로 보이지만, 호흡 감지와 호흡시료의 양은 별개로 보이고, 음주측정에 필요한 충분한 호흡을 불지 않은 사실이 인정되므로 ‘삐’ 소리와 ‘체취’ 단어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음주측정에 응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청은 단계적 일상 회복이 시행된 지난 1일부터 25일까지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시행한 결과, 모두 9천 312건을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면허 취소 수준이 6천771건, 정지 수준이 2천541건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372.5건이 적발된 셈인데, 올 여름 휴가철 집중 단속 때 적발 건수(하루평균 7월 322건, 8월 307건)에 비해 급증한 수치입니다.

국내 음주운전 관련 처벌기준은 지난 2019년 6월 말부터 강화돼, 음주 측정을 거부할 경우 1년 ~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또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행정처분을 받게 되는데, 음주 측정 거부 시 단순 음주만으로도 1년간 면허가 취소됩니다.

위 사건에서 내려진 벌금 9백만 원은 지난 25일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이른바 윤창호 법의 강화된 개정 내용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경찰청은 내년 1월까지 유흥가와 식당 등 지역별 음주운전 위험 지역을 중심으로 시간과 장소를 수시로 바꿔가며 단속을 벌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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