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기적을 꿈꾸는 행복한 스케이터

입력 2021.11.30 (18:14) 수정 2022.01.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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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6살 이시형은 피겨 인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단 1점 차로 국가대표에서 떨어진 이시형. 불운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암 투병에도 불구하고 혼자 생계를 꾸려오던 어머니가 어깨를 다친 것입니다. 외할머니와 여동생까지 네 가족이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해야 하는 상황. 훈련 수당과 대관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되자 이제 피겨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KBS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며 응원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의 도움 속에 이시형은 은반 위에 섰습니다.

그렇게 5년 뒤, 이시형은 응원에 보답했습니다. '1+1'이었던 올림픽 출전권을 확정 지었습니다.

지난 3월, 남자 피겨의 간판 차준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위를 기록하며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1+1장'을 획득했습니다. 차준환을 제외한 다른 선수가 네벨혼 트로피 대회에 나가 7위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 올림픽 티켓 한 장을 더 획득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시형이 대표로 뽑혔고 총점 229.14점, 최종 5위에 올랐습니다. 이로써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 피겨 남자 싱글 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선수가 출전합니다.

그러나 출전권을 확정 지었다고 올림픽에 무조건 출전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오는 주말 펼쳐지는 1차 선발전 등 두 번의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쳐 올림픽에 나갈 선수가 최종 결정됩니다. 이시형은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또 한 번 올림픽의 기적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하 이시형과의 일문일답입니다.

KBS와 인터뷰 중인 이시형KBS와 인터뷰 중인 이시형

Q. 우선 축하합니다. 지난 9월에 열린 네벨혼 트로피를 잘 마무리했어요. 떨리지는 않았나요?
A. 제가 준비했던 경기 가운데 가장 떨렸고요. 원래 대회 전에 엄마에게 전화를 잘 하지 않아요. 그런데 너무 떨려서 숨을 못 쉬겠는 거에요. 그래서 대회 한 시간 전에 엄마한테 전화했죠. '엄마 나 못하겠어. 나 너무 떨려. 나 진짜 숨이 안 쉬어져'라고 했어요. 엄마는 너무 힘드셨겠죠. 경기를 앞두고 아들이 힘들다고 하니까요. 링크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요. 왜 선수들이 기권하는지 이해 가더라고요. 저는 지금껏 아무리 떨려도 '왜 기권을 해? 어차피 할 거면 하는 거는 거잖아.'라고 생각해왔는데요. '이래서 기권을 하는구나'하고 알게 됐어요.

Q. 링크장에서는 전혀 떨려 보이지 않았는걸요?
A. 웜업을 들어가자 컨디션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들어가자마자 떨리는 게 사라졌어요. 링크장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넘어지면 어떡하지'라고 계속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쇼트가 중요하니까요. 쇼트에서 잘해야 프리에서도 역전할 기회가 있는데 쇼트에서부터 못하면 가능성이 없어지니까요. 그런데 또 하필 마지막 번호였죠. 하하하.

Q. 쇼트프로그램은 '프린스 이고르'에 맞춘 멋진 연기였습니다.
A. 네이선 첸 선수가 2017년 한국 4대륙 대회 프리 프로그램에서 이 음악에 맞춰 연기했어요. 그때 관중석에 앉아 '나도 언젠가 네이선 챈 선수가 했던 것처럼 해보고 싶다'고 다짐했었죠. 그래서 올림픽 시즌에 이 음악을 선정했어요.

Q. 쇼트가 끝나고는 어떤 생각을 했나요?
A. 다행이다. 점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요. 7위라는 것을 알고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아쉬운 것들도 있었죠. 트리플 악셀에서 넘어졌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았다면 조금 더 순위가 올라갈 수 있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7위로 마무리해서 다행이다, 프리에서 잘하자'고 다짐했어요.

Q. 프리프로그램인 카르멘은 쇼트프로그램보다 더 강렬해요.
A. 카르멘은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고요. 저는 이 극의 남자 주인공인 호세를 연기해요. 카르멘과 사랑에 빠진 호세는 배신을 당하자, 그 배신감으로 인해 복수합니다. 초반 연기의 1분 30초 정도는 카르멘을 보고 사랑에 빠진, '어? 이 여자 뭐지?' 이런 느낌이에요. 중반부는 카르멘과 사랑에 빠진 시기. 그리고 마지막 스텝 부분은 카르멘에게 복수를 하러 가는 세 개의 큰 줄거리로 이루어집니다. 지루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나눴고 또 최대한 관객분들에게 이러한 스토리가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Q. 이 내용을 아니까 프로그램을 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A. 음악이 세 번 바뀌어요. 초반, 중반, 후반. 안무가 선생님께서 처음에 너무 음악이 많이 바뀌면 정신이 없지 않을까 하고 우려도 하셨어요.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준비했습니다.

Q. 경기가 하나하나 다 기억나나요?
A. 들어가기 전에 많은 선수 부모님들이 영상통화로 응원해주셨어요. 임은수 선수 어머니, 위서영 선수 어머니께서도요. 부모님들이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크게 두 번 하고 들어가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인사를 하고 시작하기 직전에 생각이 난 거에요. 그래서 황급하게 심호흡 두 번 했던 기억이 나요.

Q. 경기가 시작하니 이번에도 떨리는 게 사라졌나요?
A. 갑자기 잘할 것 같았어요. 느낌이 있거든요. 확실히 쿼드러플 살코랑 트리플 악셀은 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 오늘 뛸 것 같아!' 이런 느낌이 있었어요.

Q. 정말 그 두 점프를 잘 뛰었어요.
A. 오히려 앞에 큰 점프 두개를 뛰고 나니까 더 떨리더라고요. 스핀도 정말 신경을 썼고요. 점프도 중요하지만, 스핀이나 비 점프도 중요하기 때문에…. 스텝 끝나고 허리도 아주 꺾을 수 있는 만큼 꺾었어요. 마지막 스핀 돌 때가 체력적으로 제일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것만 하면 끝난다는 마음으로 버텼죠.

Q. 다시 보니 만족스러운 경기였나요?
A.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경기였어요. 물론 아쉬운 부분이 정말 많아요. 회전이 부족한 점프들도 있었기 때문에 아쉽죠. 그래도 큰 실수는 없었고 비점프 요소들도 잘 챙긴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Q. 끝나고 팔을 뻗는 모습에서 희열이 느껴져요
A. '됐다! 땄다! 티켓!' 아직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확정은 아니었지만, 경기가 나쁘지 않아서 티켓을 딸 수 있겠다고 짐작은 했어요.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대회도 많이 취소됐었고 무관중으로 하다 보니 관중들의 환호성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독일에서는 관중이 있었고 박수를 많이 쳐주셨어요. 그래서 좀 더 신났어요. 저는 관심을 받는 게 좋아서요. 관중들이 열심히 응원해주시면 좀 더 힘이 나서 하는 것 같아요.

■ 이 악물고 다짐…"꼭 성공해야겠다."

Q. 경기 끝나고 어머니랑 통화는 했나요?
A. 끝나고 저는 안 울었는데 엄마는 좀 우셨던 것 같아요.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잘 쉬고 오라고 하셨죠. 사실 엄마는 제가 혼자 나가서 대회 치르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하세요. 그래서 대회를 실시간으로 못 보시죠. 제가 여동생이 있어요. 그럼 여동생이 옆에서 다 얘기를 해주는 거죠. '뛰었어! 못 뛰었어!' 이렇게요.

Q. 어머니와 애틋한 마음이 클 듯해요. 어린 시절 역경이 많았으니까요.
A. 제가 어렸을 때 과천에서 훈련했어요. 오후 6시에 링크장 운영시간이 끝나면,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이 우선으로 탔어요. 그 다음에 피겨 선수들이 대관했죠. 빠르면 밤 10시. 늦으면 자정이었어요. 보통 자정에서 새벽 2시 대관을 해서 많이 탔어요. 또 아침 일찍 개장하니까 새벽 6시부터 타야 해요.

Q. 새벽에 운동하는 게 쉽지 않았겠네요.
A. 저희가 또 차가 없었어요. 새벽 2시에는 버스도 없었고요. 그래서 남자 탈의실에서 자고…. 사실 자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새벽 6시에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어요. 하루는 새벽 1시 30분쯤에 나와서 버스 막차를 타러 나왔어요. 그런데 과천 아이스링크장은 정부 청사와 연결되어 있어서 나갈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하 2층, 지하주차장부터 엄마와 같이 올라갔죠.

Q.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피겨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A. 저는 힘들었지만, 좋아서 한 건데요. 어머니는 정말 힘드셨어요. 사실 처음 시작할 때도 이미 엄마가 여유롭고 집안 사정이 좋은 것이 아닌 걸 알았거든요. 그렇게 쫓겨났기 때문에 엄마랑 저랑 둘이 고시원 생활도 했고요. 내가 진짜 열심히 해서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리고 또 어머니 꿈이 운동선수셨거든요. 어렸을 때 기계체조를 하셨어요.

Q. 어머니에게 운동신경을 물려받았네요.
A. 어머니도 집안에서 뒷받침을 해주신 건 아니고 학교에서 어머니 체형이 너무 예쁘시니까 너 한번 해보라 했던 거죠. 어머니도 체전 준비까지 하셨어요. 집안 사정상 대회를 나가시지는 못하셨지만요. 그래서 제가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니까, '못다 이룬 꿈을 네가 이뤄봐라. 내가 진짜 죽을 때까지 뒷바라지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만둘 생각보다는 나 정말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성공해야겠다. 이 악물고….

훈련 중인 이시형훈련 중인 이시형

■ 산 타고, 지하철 역사에서 훈련하고…"어차피 주어진 상황은 같아요."

Q. 결국, 네벨혼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뒀네요. 코로나19로 많이 힘들었을텐데요.
A. 코로나19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태릉 빙상장도 문을 닫아 스케이트 탈 곳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헬스장도 닫으면서 지상 훈련 할 곳도 없더라고요. 그러나 오히려 이 상황을 나에게 좀 더 도움이 되게 해보자고 다짐했죠. 어차피 주어진 상황은 똑같으니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상 훈련을 많이 했죠. 스케이트를 못 타니까 매일 산을 탔어요. 하하하. 매일 산타고 지하철 역사로 가서 훈련했어요. 훈련공간이 없으니까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 근처에 기둥이 있어요. 자전거 놓고 올라가는 곳인데요. 그곳에서 회전 연습하고 안무 연습했어요. 진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지나가시면서 '몇 바퀴 도는 거야?' 물어보시면 '두 바퀴예요' 말씀드렸죠.

Q. 지하철 특훈이 도움이 됐을까요? 국제대회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잘 성공했죠.
A. 제가 작년 코로나19 전에는 4회전 점프를 구사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사실 남자 선수들은 4회전 점프가 없으면 경쟁력이 떨어지죠. 그런데 코로나19로 대회가 없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볼 기회가 생겼어요. 대회가 있었으면 부상 위험 때문에 시도할 기회가 많이 없었을 거에요. 그렇게 시도하다 보니 쿼드러플 살코에 성공했죠. 그 전에도 뛰고는 있었는데 성공률이 그렇게 높지 않았고 프로그램에 넣기에는 위험부담이 컸어요. 그런데 타노, 손을 드는 것을 더하면서 성공률을 높였고요. 대회 때 시도해봐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번 연도에 가지고 오게 됐죠.

Q. 다른 4회전 점프도 뛴다고 들었는데요?
A. 4회전 루프까지 랜딩을 해봤어요. 러츠까지도 회전은 나오죠. 연습을 계속 하다가 최근 대회를 준비하느라 플립이나 러츠 같은 4회전은 다시 연습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4회전 토루프 점프는 성공률이 조금씩 나오는 것 같아서 대회 때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계속 연습하고 있습니다.

Q. 국내에서 훈련하면서 4회전을 이렇게 잘 뛰다니 대단하네요.
A. 전 '내가 4회전을 뛸 수 있을까?' 부터 모든 걸 의심했어요. 제가 키가 크다 보니까 점프를 뛰기 조금 불리하잖아요. 그러나 연습하면, 노력하면 안 되는 건 없더라고요. 또 코치 선생님과 연구를 정말 많이 하고 같이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이렇게 성공할 수 있던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해요.

Q. 그러고 보니 180cm가 넘으면 피겨를 그만두겠다고 했었죠?
A.. 정말 진심이었어요. '에이 180cm가 넘겠어?' 했는데 넘더라고요. 그때 힘들었던 것이 키가 자꾸 크니까 매일 매일 점프 감각이 달라 훈련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아 180cm가 넘으면 진짜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렇게 말을 했었고…. 그런데 180cm 넘고 또 말했어요. '185cm가 되면 그만두겠다. '그런데 186cm가 넘은 거에요. 그래서 지금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하죠.

Q. 그럼 지금은 키가 다 컸나요?
A. 아니요. 국가대표 검진을 일 년에 한 번씩 하는데요. 작년보다 0.5cm가 컸더라고요. 그래서 186.7cm가 됐어요. 그래. 이왕 클 거면 그냥 191cm까지 커라!

■ '현실'로 느껴지는 베이징 올림픽

Q. 인터뷰를 함께하니까, 평범한 21살의 청년 같아요. 놀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요?
A. 없어요! 제가 스케이트를 선택했고 지금 상승세잖아요. 남자 피겨스케이터는 스무 살 초반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를 만나서 노는건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스케이트는 제가 나이가 들거나 몸이 늙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고요. 친구들을 만나고 노는 걸 좋아해서 무너지는 경우를 봤기 때문에 놀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스무 살 됐다고 놀러 다니면 절대 안 돼요! 하하하. 다른데 정신 팔리잖아요? 그러면 티가 나요. 실력이 확 줄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데 절대 눈 안 돌리고 스케이트만 열심히 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Q. 밝은 모습도 보기 좋아요. 키스 앤드 크라이 존에서 좋아하는 모습도 화제가 됐었죠.
A. 어쨌든 키스 앤드 크라이라는 공간은 결과를 받는 곳이잖아요.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는 것처럼, 저희는 그곳에서 결과를 받죠. 잘하면 들뜬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지만, 못 했을 때는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래도 작년을 기점으로 대회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을 느껴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물론 무섭죠. 무섭지만, 무서운 감정은 결과 그 자체에서 나오기보다는요. 국가대표로서 나라를 대표해서 나간 대회인데 그 대회에서 못한 본인에게 속상하고 실망스러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Q. 그런데 이제 곧 그 자리에 앉습니다.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이 다가왔는데요. 어떤가요?
A. 사실 정말 떨려요. 인터뷰를 할 때 '목표가 뭐예요? 꿈이 뭐예요?' 이렇게 물어보면요. 저도 '올림픽 출전이요. 금메달이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현실성은 없었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올림픽은 너무나 큰 대회고 제 앞에 남아있는 대회들이 더 중요했어요. 저는 올림픽 티켓을 따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런 영광스러운 기회가 저에게 주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감사하게도 저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고 티켓이 두 장이 됐죠. 그때부터 실감이 되더라고요.

Q. 출전권이 두 장이 되면서 실감이 났군요.
A.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피부로 느껴지는 거에요. 올림픽이 다가오는구나…. 그래서 정말 이번에는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고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Q. 그럼 이시형 피겨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행복했던 일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하고 싶은 피겨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물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스케이트가 하고 싶어서 스케이트가 좋아서 여기까지 왔네요. 또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서 하루하루가 굉장히 행복해요. 저를 항상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응원과 사랑으로 지금까지 힘을 내서 올 수 있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많은 응원과 사랑 해주시면 무럭무럭 자라서 더 성장하는 시형이가 되겠습니다!

Q. 여담으로 MBTI 성격 테스트가 유행인데, 무슨 유형인가요?
A. ENTJ요! 대표팀 선수들은 이 테스트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해보자고 해서 다 같이 해봤는데요. 차준환 선수, 저, 임은수 선수가 ENTJ더라고요. 은수 선수는 최근에 바뀌었다고 하고요. 처음에 준환 선수가 '어? 절대 나랑 같을 리가 없는데…' 하더라고요. 그래서 준환 선수가 직접 제 성격을 생각하면서 제 MBTI 테스트들 대신해줬어요. 그런데 똑같이 ENTJ가 나오더라고요! 그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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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 올림픽 기적을 꿈꾸는 행복한 스케이터
    • 입력 2021-11-30 18:14:30
    • 수정2022-01-13 10: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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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6살 이시형은 피겨 인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단 1점 차로 국가대표에서 떨어진 이시형. 불운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암 투병에도 불구하고 혼자 생계를 꾸려오던 어머니가 어깨를 다친 것입니다. 외할머니와 여동생까지 네 가족이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해야 하는 상황. 훈련 수당과 대관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되자 이제 피겨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KBS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며 응원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의 도움 속에 이시형은 은반 위에 섰습니다.

그렇게 5년 뒤, 이시형은 응원에 보답했습니다. '1+1'이었던 올림픽 출전권을 확정 지었습니다.

지난 3월, 남자 피겨의 간판 차준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위를 기록하며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1+1장'을 획득했습니다. 차준환을 제외한 다른 선수가 네벨혼 트로피 대회에 나가 7위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 올림픽 티켓 한 장을 더 획득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시형이 대표로 뽑혔고 총점 229.14점, 최종 5위에 올랐습니다. 이로써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 피겨 남자 싱글 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선수가 출전합니다.

그러나 출전권을 확정 지었다고 올림픽에 무조건 출전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오는 주말 펼쳐지는 1차 선발전 등 두 번의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쳐 올림픽에 나갈 선수가 최종 결정됩니다. 이시형은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또 한 번 올림픽의 기적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하 이시형과의 일문일답입니다.

KBS와 인터뷰 중인 이시형
Q. 우선 축하합니다. 지난 9월에 열린 네벨혼 트로피를 잘 마무리했어요. 떨리지는 않았나요?
A. 제가 준비했던 경기 가운데 가장 떨렸고요. 원래 대회 전에 엄마에게 전화를 잘 하지 않아요. 그런데 너무 떨려서 숨을 못 쉬겠는 거에요. 그래서 대회 한 시간 전에 엄마한테 전화했죠. '엄마 나 못하겠어. 나 너무 떨려. 나 진짜 숨이 안 쉬어져'라고 했어요. 엄마는 너무 힘드셨겠죠. 경기를 앞두고 아들이 힘들다고 하니까요. 링크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요. 왜 선수들이 기권하는지 이해 가더라고요. 저는 지금껏 아무리 떨려도 '왜 기권을 해? 어차피 할 거면 하는 거는 거잖아.'라고 생각해왔는데요. '이래서 기권을 하는구나'하고 알게 됐어요.

Q. 링크장에서는 전혀 떨려 보이지 않았는걸요?
A. 웜업을 들어가자 컨디션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들어가자마자 떨리는 게 사라졌어요. 링크장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넘어지면 어떡하지'라고 계속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쇼트가 중요하니까요. 쇼트에서 잘해야 프리에서도 역전할 기회가 있는데 쇼트에서부터 못하면 가능성이 없어지니까요. 그런데 또 하필 마지막 번호였죠. 하하하.

Q. 쇼트프로그램은 '프린스 이고르'에 맞춘 멋진 연기였습니다.
A. 네이선 첸 선수가 2017년 한국 4대륙 대회 프리 프로그램에서 이 음악에 맞춰 연기했어요. 그때 관중석에 앉아 '나도 언젠가 네이선 챈 선수가 했던 것처럼 해보고 싶다'고 다짐했었죠. 그래서 올림픽 시즌에 이 음악을 선정했어요.

Q. 쇼트가 끝나고는 어떤 생각을 했나요?
A. 다행이다. 점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요. 7위라는 것을 알고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아쉬운 것들도 있었죠. 트리플 악셀에서 넘어졌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았다면 조금 더 순위가 올라갈 수 있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7위로 마무리해서 다행이다, 프리에서 잘하자'고 다짐했어요.

Q. 프리프로그램인 카르멘은 쇼트프로그램보다 더 강렬해요.
A. 카르멘은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고요. 저는 이 극의 남자 주인공인 호세를 연기해요. 카르멘과 사랑에 빠진 호세는 배신을 당하자, 그 배신감으로 인해 복수합니다. 초반 연기의 1분 30초 정도는 카르멘을 보고 사랑에 빠진, '어? 이 여자 뭐지?' 이런 느낌이에요. 중반부는 카르멘과 사랑에 빠진 시기. 그리고 마지막 스텝 부분은 카르멘에게 복수를 하러 가는 세 개의 큰 줄거리로 이루어집니다. 지루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나눴고 또 최대한 관객분들에게 이러한 스토리가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Q. 이 내용을 아니까 프로그램을 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A. 음악이 세 번 바뀌어요. 초반, 중반, 후반. 안무가 선생님께서 처음에 너무 음악이 많이 바뀌면 정신이 없지 않을까 하고 우려도 하셨어요.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준비했습니다.

Q. 경기가 하나하나 다 기억나나요?
A. 들어가기 전에 많은 선수 부모님들이 영상통화로 응원해주셨어요. 임은수 선수 어머니, 위서영 선수 어머니께서도요. 부모님들이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크게 두 번 하고 들어가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인사를 하고 시작하기 직전에 생각이 난 거에요. 그래서 황급하게 심호흡 두 번 했던 기억이 나요.

Q. 경기가 시작하니 이번에도 떨리는 게 사라졌나요?
A. 갑자기 잘할 것 같았어요. 느낌이 있거든요. 확실히 쿼드러플 살코랑 트리플 악셀은 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 오늘 뛸 것 같아!' 이런 느낌이 있었어요.

Q. 정말 그 두 점프를 잘 뛰었어요.
A. 오히려 앞에 큰 점프 두개를 뛰고 나니까 더 떨리더라고요. 스핀도 정말 신경을 썼고요. 점프도 중요하지만, 스핀이나 비 점프도 중요하기 때문에…. 스텝 끝나고 허리도 아주 꺾을 수 있는 만큼 꺾었어요. 마지막 스핀 돌 때가 체력적으로 제일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것만 하면 끝난다는 마음으로 버텼죠.

Q. 다시 보니 만족스러운 경기였나요?
A.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경기였어요. 물론 아쉬운 부분이 정말 많아요. 회전이 부족한 점프들도 있었기 때문에 아쉽죠. 그래도 큰 실수는 없었고 비점프 요소들도 잘 챙긴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Q. 끝나고 팔을 뻗는 모습에서 희열이 느껴져요
A. '됐다! 땄다! 티켓!' 아직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확정은 아니었지만, 경기가 나쁘지 않아서 티켓을 딸 수 있겠다고 짐작은 했어요.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대회도 많이 취소됐었고 무관중으로 하다 보니 관중들의 환호성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독일에서는 관중이 있었고 박수를 많이 쳐주셨어요. 그래서 좀 더 신났어요. 저는 관심을 받는 게 좋아서요. 관중들이 열심히 응원해주시면 좀 더 힘이 나서 하는 것 같아요.

■ 이 악물고 다짐…"꼭 성공해야겠다."

Q. 경기 끝나고 어머니랑 통화는 했나요?
A. 끝나고 저는 안 울었는데 엄마는 좀 우셨던 것 같아요.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잘 쉬고 오라고 하셨죠. 사실 엄마는 제가 혼자 나가서 대회 치르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하세요. 그래서 대회를 실시간으로 못 보시죠. 제가 여동생이 있어요. 그럼 여동생이 옆에서 다 얘기를 해주는 거죠. '뛰었어! 못 뛰었어!' 이렇게요.

Q. 어머니와 애틋한 마음이 클 듯해요. 어린 시절 역경이 많았으니까요.
A. 제가 어렸을 때 과천에서 훈련했어요. 오후 6시에 링크장 운영시간이 끝나면,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이 우선으로 탔어요. 그 다음에 피겨 선수들이 대관했죠. 빠르면 밤 10시. 늦으면 자정이었어요. 보통 자정에서 새벽 2시 대관을 해서 많이 탔어요. 또 아침 일찍 개장하니까 새벽 6시부터 타야 해요.

Q. 새벽에 운동하는 게 쉽지 않았겠네요.
A. 저희가 또 차가 없었어요. 새벽 2시에는 버스도 없었고요. 그래서 남자 탈의실에서 자고…. 사실 자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새벽 6시에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어요. 하루는 새벽 1시 30분쯤에 나와서 버스 막차를 타러 나왔어요. 그런데 과천 아이스링크장은 정부 청사와 연결되어 있어서 나갈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하 2층, 지하주차장부터 엄마와 같이 올라갔죠.

Q.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피겨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A. 저는 힘들었지만, 좋아서 한 건데요. 어머니는 정말 힘드셨어요. 사실 처음 시작할 때도 이미 엄마가 여유롭고 집안 사정이 좋은 것이 아닌 걸 알았거든요. 그렇게 쫓겨났기 때문에 엄마랑 저랑 둘이 고시원 생활도 했고요. 내가 진짜 열심히 해서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리고 또 어머니 꿈이 운동선수셨거든요. 어렸을 때 기계체조를 하셨어요.

Q. 어머니에게 운동신경을 물려받았네요.
A. 어머니도 집안에서 뒷받침을 해주신 건 아니고 학교에서 어머니 체형이 너무 예쁘시니까 너 한번 해보라 했던 거죠. 어머니도 체전 준비까지 하셨어요. 집안 사정상 대회를 나가시지는 못하셨지만요. 그래서 제가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니까, '못다 이룬 꿈을 네가 이뤄봐라. 내가 진짜 죽을 때까지 뒷바라지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만둘 생각보다는 나 정말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성공해야겠다. 이 악물고….

훈련 중인 이시형
■ 산 타고, 지하철 역사에서 훈련하고…"어차피 주어진 상황은 같아요."

Q. 결국, 네벨혼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뒀네요. 코로나19로 많이 힘들었을텐데요.
A. 코로나19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태릉 빙상장도 문을 닫아 스케이트 탈 곳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헬스장도 닫으면서 지상 훈련 할 곳도 없더라고요. 그러나 오히려 이 상황을 나에게 좀 더 도움이 되게 해보자고 다짐했죠. 어차피 주어진 상황은 똑같으니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상 훈련을 많이 했죠. 스케이트를 못 타니까 매일 산을 탔어요. 하하하. 매일 산타고 지하철 역사로 가서 훈련했어요. 훈련공간이 없으니까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 근처에 기둥이 있어요. 자전거 놓고 올라가는 곳인데요. 그곳에서 회전 연습하고 안무 연습했어요. 진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지나가시면서 '몇 바퀴 도는 거야?' 물어보시면 '두 바퀴예요' 말씀드렸죠.

Q. 지하철 특훈이 도움이 됐을까요? 국제대회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잘 성공했죠.
A. 제가 작년 코로나19 전에는 4회전 점프를 구사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사실 남자 선수들은 4회전 점프가 없으면 경쟁력이 떨어지죠. 그런데 코로나19로 대회가 없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볼 기회가 생겼어요. 대회가 있었으면 부상 위험 때문에 시도할 기회가 많이 없었을 거에요. 그렇게 시도하다 보니 쿼드러플 살코에 성공했죠. 그 전에도 뛰고는 있었는데 성공률이 그렇게 높지 않았고 프로그램에 넣기에는 위험부담이 컸어요. 그런데 타노, 손을 드는 것을 더하면서 성공률을 높였고요. 대회 때 시도해봐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번 연도에 가지고 오게 됐죠.

Q. 다른 4회전 점프도 뛴다고 들었는데요?
A. 4회전 루프까지 랜딩을 해봤어요. 러츠까지도 회전은 나오죠. 연습을 계속 하다가 최근 대회를 준비하느라 플립이나 러츠 같은 4회전은 다시 연습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4회전 토루프 점프는 성공률이 조금씩 나오는 것 같아서 대회 때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계속 연습하고 있습니다.

Q. 국내에서 훈련하면서 4회전을 이렇게 잘 뛰다니 대단하네요.
A. 전 '내가 4회전을 뛸 수 있을까?' 부터 모든 걸 의심했어요. 제가 키가 크다 보니까 점프를 뛰기 조금 불리하잖아요. 그러나 연습하면, 노력하면 안 되는 건 없더라고요. 또 코치 선생님과 연구를 정말 많이 하고 같이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이렇게 성공할 수 있던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해요.

Q. 그러고 보니 180cm가 넘으면 피겨를 그만두겠다고 했었죠?
A.. 정말 진심이었어요. '에이 180cm가 넘겠어?' 했는데 넘더라고요. 그때 힘들었던 것이 키가 자꾸 크니까 매일 매일 점프 감각이 달라 훈련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아 180cm가 넘으면 진짜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렇게 말을 했었고…. 그런데 180cm 넘고 또 말했어요. '185cm가 되면 그만두겠다. '그런데 186cm가 넘은 거에요. 그래서 지금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하죠.

Q. 그럼 지금은 키가 다 컸나요?
A. 아니요. 국가대표 검진을 일 년에 한 번씩 하는데요. 작년보다 0.5cm가 컸더라고요. 그래서 186.7cm가 됐어요. 그래. 이왕 클 거면 그냥 191cm까지 커라!

■ '현실'로 느껴지는 베이징 올림픽

Q. 인터뷰를 함께하니까, 평범한 21살의 청년 같아요. 놀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요?
A. 없어요! 제가 스케이트를 선택했고 지금 상승세잖아요. 남자 피겨스케이터는 스무 살 초반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를 만나서 노는건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스케이트는 제가 나이가 들거나 몸이 늙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고요. 친구들을 만나고 노는 걸 좋아해서 무너지는 경우를 봤기 때문에 놀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스무 살 됐다고 놀러 다니면 절대 안 돼요! 하하하. 다른데 정신 팔리잖아요? 그러면 티가 나요. 실력이 확 줄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데 절대 눈 안 돌리고 스케이트만 열심히 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Q. 밝은 모습도 보기 좋아요. 키스 앤드 크라이 존에서 좋아하는 모습도 화제가 됐었죠.
A. 어쨌든 키스 앤드 크라이라는 공간은 결과를 받는 곳이잖아요.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는 것처럼, 저희는 그곳에서 결과를 받죠. 잘하면 들뜬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지만, 못 했을 때는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래도 작년을 기점으로 대회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을 느껴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물론 무섭죠. 무섭지만, 무서운 감정은 결과 그 자체에서 나오기보다는요. 국가대표로서 나라를 대표해서 나간 대회인데 그 대회에서 못한 본인에게 속상하고 실망스러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Q. 그런데 이제 곧 그 자리에 앉습니다.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이 다가왔는데요. 어떤가요?
A. 사실 정말 떨려요. 인터뷰를 할 때 '목표가 뭐예요? 꿈이 뭐예요?' 이렇게 물어보면요. 저도 '올림픽 출전이요. 금메달이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현실성은 없었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올림픽은 너무나 큰 대회고 제 앞에 남아있는 대회들이 더 중요했어요. 저는 올림픽 티켓을 따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런 영광스러운 기회가 저에게 주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감사하게도 저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고 티켓이 두 장이 됐죠. 그때부터 실감이 되더라고요.

Q. 출전권이 두 장이 되면서 실감이 났군요.
A.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피부로 느껴지는 거에요. 올림픽이 다가오는구나…. 그래서 정말 이번에는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고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Q. 그럼 이시형 피겨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행복했던 일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하고 싶은 피겨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물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스케이트가 하고 싶어서 스케이트가 좋아서 여기까지 왔네요. 또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서 하루하루가 굉장히 행복해요. 저를 항상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응원과 사랑으로 지금까지 힘을 내서 올 수 있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많은 응원과 사랑 해주시면 무럭무럭 자라서 더 성장하는 시형이가 되겠습니다!

Q. 여담으로 MBTI 성격 테스트가 유행인데, 무슨 유형인가요?
A. ENTJ요! 대표팀 선수들은 이 테스트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해보자고 해서 다 같이 해봤는데요. 차준환 선수, 저, 임은수 선수가 ENTJ더라고요. 은수 선수는 최근에 바뀌었다고 하고요. 처음에 준환 선수가 '어? 절대 나랑 같을 리가 없는데…' 하더라고요. 그래서 준환 선수가 직접 제 성격을 생각하면서 제 MBTI 테스트들 대신해줬어요. 그런데 똑같이 ENTJ가 나오더라고요! 그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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