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프랑스 발레 스타 박세은① ‘에투알’의 연습실

입력 2021.12.01 (10:06) 수정 2021.12.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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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오페라발레단 동양인 최초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

지난 6월 발레리나 박세은이 세계 최정상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의 수석무용수 ‘에투알(별)’에 지명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1669년 설립돼 35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발레단에서 박세은 씨가 동양인 최초의 에투알이 된 것이다.

에투알로 승급한 뒤 첫 공연 <러시아의 밤/원제: Ashton / Eyal / Nijinski>을 앞두고 있는 박세은 씨를 POB의 본거지인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만났다.

오페라 가르니에 외경과 샤갈의 천장화가 장식된 공연장 내부오페라 가르니에 외경과 샤갈의 천장화가 장식된 공연장 내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유명한 건물인 '오페라 가르니에'를 들어가는 일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가르니에 극장은 화려한 연회장과 유서 깊은 무대는 공연이 없을 때도 유료 관광코스로 사용될 만큼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을 무대 뒤편까지 속속 들이 볼 기회가 덤으로 주어진 셈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기도 했던 가르니에 극장의 사무실과 무용수들의 공간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더욱이 화려한 외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내부는 한눈에 봐도 매우 낡은 곳임이 분명하다.

1800년대 후반에 지어진 건물이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니. 그러나 공연 직전 무용수들이 몸을 푸는 연습 장소는 건물이 지어진 나폴레옹 3세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난간과 건물 기둥과 벽의 장식들, 더욱이 역사적인 무용수들이 거쳐 갔던 흔적 등 낡은
공간은 역설적으로 수백 년 화려함을 뽐내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 자신만의 둥지를 튼 에투알 박세은 씨도 2011년 가방 하나를 어깨에 메고 입단하던 순간부터 '오페라 가르니에'를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연습을 시작하기 전 준비하는 박세은과 그의 발연습을 시작하기 전 준비하는 박세은과 그의 발

취재진과의 약속 때문에 약간 먼저 연습실에 도착한 박세은 씨는 단출한 발레 연습복에 가벼운 보온 자켓을 입고 있었다. 발레 토슈즈를 신기 전에 발을 보호하기 위한 붕대와 반창고 등을 꼼꼼히 붙이고 있었다.

그녀가 발레를 시작한 10살 때부터 혹사당했을 두 발은 단단한 갑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몸이 표현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을 말없이 지탱해 온 탓이리라.

박세은씨와 마크 모로(남자 주연), 그리고 이렉 무하메도프(지도위원) / 파리오페라발레단 연습실박세은씨와 마크 모로(남자 주연), 그리고 이렉 무하메도프(지도위원) / 파리오페라발레단 연습실

연습실은 4명만을 위한 공간이다. 주역을 맡은 박세은 씨와 파트너 남성 무용수인 마크 모로(POB 1급 무용수/프리미에 당쇠즈)와 코치격인 발레단 지도위원 이렉 무하메도프(전직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과 영국 로열 발레단 주역 무용수), 그리고 피아노 반주자 엘레나 보나이.

본 공연에서 주연 남녀의 앙상블 부분 춤을 연습하는 날이었다. 공연이 약 2주 정도 남은 시점이라 비록 연습복을 입은 상태지만 연습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어려운 동작은 몇 번씩을 반복하기도 했지만 이미 개인 연습을 하고 만난 정상급 프로들의 연습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코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시범을 보이거나 특별한 동작을 주문하는 일은 없었다. 눈빛과 몇 마디의 말로도 충분한 의사 소통이 됐고, 이어진 춤 동작은 훨씬 더 세련돼 가는 모양새였다.

연습실에서의 한 장면과 최종 무대 리허설 장면연습실에서의 한 장면과 최종 무대 리허설 장면

발레에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는 세계적인 무용수들이 불과 몇 미터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연습실을 가득 채운 엄청난 에너지였다.

언뜻 보면 나비가 나풀거리는 듯 보일 정도로 남녀 무용수 모두 가녀린 몸매였지만 실제로는 군살 하나 없는 근육으로만 만들어진 신체는 강력한 부드러움(?)을 연기하고 있었다.

몸과 함께 때론 슬프게 때론 기쁨에 넘쳐 변하는 얼굴 연기, 그러나 동작과 동작 사이에 표정 변화 없이 '후욱 후욱' 호흡을 조절하는 무용수들의 숨소리는 이들이 얼마나 힘을 쥐어 짜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실제 공연에선 오케스트라의 음악 소리에 묻혀 안 들릴 수도 있을 그 소리는 무용수들이 관객과 예술을 위해 쏟아 붓는 노력의 한 장면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힘들어하는 주연 무용수들연습이 끝나고 힘들어하는 주연 무용수들

연습을 시작하기 전 박세은 씨는 목감기가 며칠째 떨어지지 않아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반주가 시작되고 파트너와의 눈빛 사인이 켜지면 발걸음은 사뿐사뿐, 때로는 꽃밭을 나풀거리며 나는 나비처럼 '붕붕' 날아올랐다.

그리고 춤과 음악이 끝나는 순간, 남녀 무용수는 거의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탈진한 모습이었다.

비록 연습이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모든 열정을 쏟아 내는 무용수. 발레단에서 가장 빛나는 별인 ‘에투알’의 자리가 선망의 대상이자 동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를 충분히 알만했다.

오롯이 내 몸으로 연출하는 예술이자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야 하는 무용. 멀게만 느껴졌던 발레가 왜 매력적인 예술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에투알의 연습실이었다.


촬영:김대원
자료조사:김남구
일부 사진제공:파리오페라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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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프랑스 발레 스타 박세은① ‘에투알’의 연습실
    • 입력 2021-12-01 10:06:47
    • 수정2021-12-01 10:16:15
    특파원 리포트

■ 파리오페라발레단 동양인 최초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

지난 6월 발레리나 박세은이 세계 최정상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의 수석무용수 ‘에투알(별)’에 지명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1669년 설립돼 35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발레단에서 박세은 씨가 동양인 최초의 에투알이 된 것이다.

에투알로 승급한 뒤 첫 공연 <러시아의 밤/원제: Ashton / Eyal / Nijinski>을 앞두고 있는 박세은 씨를 POB의 본거지인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만났다.

오페라 가르니에 외경과 샤갈의 천장화가 장식된 공연장 내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유명한 건물인 '오페라 가르니에'를 들어가는 일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가르니에 극장은 화려한 연회장과 유서 깊은 무대는 공연이 없을 때도 유료 관광코스로 사용될 만큼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을 무대 뒤편까지 속속 들이 볼 기회가 덤으로 주어진 셈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기도 했던 가르니에 극장의 사무실과 무용수들의 공간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더욱이 화려한 외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내부는 한눈에 봐도 매우 낡은 곳임이 분명하다.

1800년대 후반에 지어진 건물이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니. 그러나 공연 직전 무용수들이 몸을 푸는 연습 장소는 건물이 지어진 나폴레옹 3세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난간과 건물 기둥과 벽의 장식들, 더욱이 역사적인 무용수들이 거쳐 갔던 흔적 등 낡은
공간은 역설적으로 수백 년 화려함을 뽐내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 자신만의 둥지를 튼 에투알 박세은 씨도 2011년 가방 하나를 어깨에 메고 입단하던 순간부터 '오페라 가르니에'를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연습을 시작하기 전 준비하는 박세은과 그의 발
취재진과의 약속 때문에 약간 먼저 연습실에 도착한 박세은 씨는 단출한 발레 연습복에 가벼운 보온 자켓을 입고 있었다. 발레 토슈즈를 신기 전에 발을 보호하기 위한 붕대와 반창고 등을 꼼꼼히 붙이고 있었다.

그녀가 발레를 시작한 10살 때부터 혹사당했을 두 발은 단단한 갑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몸이 표현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을 말없이 지탱해 온 탓이리라.

박세은씨와 마크 모로(남자 주연), 그리고 이렉 무하메도프(지도위원) / 파리오페라발레단 연습실
연습실은 4명만을 위한 공간이다. 주역을 맡은 박세은 씨와 파트너 남성 무용수인 마크 모로(POB 1급 무용수/프리미에 당쇠즈)와 코치격인 발레단 지도위원 이렉 무하메도프(전직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과 영국 로열 발레단 주역 무용수), 그리고 피아노 반주자 엘레나 보나이.

본 공연에서 주연 남녀의 앙상블 부분 춤을 연습하는 날이었다. 공연이 약 2주 정도 남은 시점이라 비록 연습복을 입은 상태지만 연습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어려운 동작은 몇 번씩을 반복하기도 했지만 이미 개인 연습을 하고 만난 정상급 프로들의 연습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코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시범을 보이거나 특별한 동작을 주문하는 일은 없었다. 눈빛과 몇 마디의 말로도 충분한 의사 소통이 됐고, 이어진 춤 동작은 훨씬 더 세련돼 가는 모양새였다.

연습실에서의 한 장면과 최종 무대 리허설 장면
발레에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는 세계적인 무용수들이 불과 몇 미터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연습실을 가득 채운 엄청난 에너지였다.

언뜻 보면 나비가 나풀거리는 듯 보일 정도로 남녀 무용수 모두 가녀린 몸매였지만 실제로는 군살 하나 없는 근육으로만 만들어진 신체는 강력한 부드러움(?)을 연기하고 있었다.

몸과 함께 때론 슬프게 때론 기쁨에 넘쳐 변하는 얼굴 연기, 그러나 동작과 동작 사이에 표정 변화 없이 '후욱 후욱' 호흡을 조절하는 무용수들의 숨소리는 이들이 얼마나 힘을 쥐어 짜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실제 공연에선 오케스트라의 음악 소리에 묻혀 안 들릴 수도 있을 그 소리는 무용수들이 관객과 예술을 위해 쏟아 붓는 노력의 한 장면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힘들어하는 주연 무용수들
연습을 시작하기 전 박세은 씨는 목감기가 며칠째 떨어지지 않아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반주가 시작되고 파트너와의 눈빛 사인이 켜지면 발걸음은 사뿐사뿐, 때로는 꽃밭을 나풀거리며 나는 나비처럼 '붕붕' 날아올랐다.

그리고 춤과 음악이 끝나는 순간, 남녀 무용수는 거의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탈진한 모습이었다.

비록 연습이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모든 열정을 쏟아 내는 무용수. 발레단에서 가장 빛나는 별인 ‘에투알’의 자리가 선망의 대상이자 동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를 충분히 알만했다.

오롯이 내 몸으로 연출하는 예술이자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야 하는 무용. 멀게만 느껴졌던 발레가 왜 매력적인 예술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에투알의 연습실이었다.


촬영:김대원
자료조사:김남구
일부 사진제공:파리오페라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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