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곰돌이 푸’ 때문에 中 ‘이것까지’?…“비판이 멈출 때 민주주의는 죽는다”

입력 2021.12.02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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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브레치아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 출신 화가 바디우차오 작품들 (출처: 연합)이탈리아 브레치아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 출신 화가 바디우차오 작품들 (출처: 연합)

꿀을 좋아하는 노란 곰돌이 푸는 영국의 작가 A. A. 밀른이 쓴 원작과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캐릭터입니다. 동심을 간직한 사랑스러운 존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벽에 걸린 두 작품, 푸는 푸인데 어쩐지 좀 생소한 모습입니다.

(출처: 연합=AP)(출처: 연합=AP)

작품을 좀 더 가까이 보겠습니다. 총을 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푸 위에 올라탔고 푸는 제압돼 쓰러져 있군요.

곰돌이 푸는 외국에서 시 주석을 조롱할 때 사용되고는 합니다.

(출처: 구글)(출처: 구글)

이번 푸는 늑대의 꼬리를 단 채 음흉한 표정을 하고 뒷짐을 지고 있네요. 푸 옆으로는 '전랑'( 늑대전사·무력과 보복 등 공세적인 외교를 지향하는 중국의 외교 방식)이라는 글자가 써 있습니다.

■ '곰돌이 푸' 때문에 중국 '이것까지'?

누가 봐도 '무언가, 누군가'를 풍자한 이 작품 때문에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브레치아에서 최근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브레치아에 있는 산타줄리아 박물관에서 중국 상하이 출신 현대미술가 바디우차오의 첫 단독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부터입니다.

전시회 이름은 '중국은 가까이에 있다 (있지 않다) - 반체제 작가의 작품들' (China is (not) near - works by a dissident artist).

에밀리오 델 보노 브레치아 시장은 이탈리아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요.

편지에는 한마디로 전시회를 취소라하는 요구가 들어 있었습니다.

중국 대사관측은 바디우차오의 작품들이 "반중국적인 거짓말로 가득 차 있다."면서 전시를 강행한다면 "이탈리아와 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이탈리아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 편지에는 "이탈리아의 대중국 무역을 언급하며 은근한 경제적 위협"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 바디우차오(巴丢草)는 누구?

중국이 공식적인 편지까지 보내서 전시회를 막으려고 한 사람, 바디우차오(巴丢草)는 누구일까요?

그의 작품 어디가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바디우차오가 자신의 작품 앞에 설치된 고문 의자에 앉아 우한 시민이 쓴 일기를 읽는 행위 예술을 하고 있다. (출처: AP=연합)바디우차오가 자신의 작품 앞에 설치된 고문 의자에 앉아 우한 시민이 쓴 일기를 읽는 행위 예술을 하고 있다. (출처: AP=연합)

35살의 예술가는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대학에서는 법을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10년 넘게 호주 멜버른에 망명 중입니다.

2011년, 타이완에서 만든 텐안문 민주화 사태 관련 제작물을 보고 정치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정치 만화는 풍자 회화로 이어졌습니다. 자신의 정체도 숨겼습니다. 이름도 가명입니다. (그래서 미술계에서는 그를 '중국계 뱅크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작가 본인은 이 표현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중국으로서는 내용도 내용인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까지 불편합니다.

시진핑 국가 주석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포함한 다수의 중국 고위 관료들을 직접 그려 넣기 때문인데요.

현대 미술가 바디우차오의 작품 (출처: 구글)현대 미술가 바디우차오의 작품 (출처: 구글)

2018년 홍콩서 열릴 예정이었던 그의 전시회는 이런 풍자 때문에 중국 공안의 구금·체포 위협 속에 결국 취소됐습니다.

그 뒤 바디우차오는 자신의 얼굴을 공개합니다. 텐안문 사태 30주년을 맞는 2019년 6월 4일 날이었습니다. "자신을 검열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능력을 약화 시킬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이번엔 다르죠. 그들은 (이제) 제 얼굴을 알아요. 그들은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바디우차오, 예술 신문 The Art Newpaper과의 인터뷰 중에서. (2021년 10월 26일)


■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할 뿐입니다."

이탈리아의 소도시 브레치아는 바디우차오의 손을 잡았습니다.

브레치아 시장과 주요 문화 관계자들도 함께했습니다. '검열 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중국 대사관 측의 전시 철회 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바디우차오와 예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여러 공식 성명도 나왔습니다.

바디우차오가 코로나19 대유행을 주제로 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출처: 구글)바디우차오가 코로나19 대유행을 주제로 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출처: 구글)

산타 줄리아 박물관을 운영하는 브레치아 박물관 재단의 스테파노 카라조프 관장은 20년 재단 역사상 전시회에 대한 검열을 요청받은 적이 없었다면서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논의가 절박하다는 점만 확인시켜줄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브레치아 박물관 재단의 프란체스카 바졸리 회장은 "전시회는 중국 사람들이나 중국 문화·문명을 거슬리게 할 의도가 전혀 없다."면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할 뿐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에밀리오 델 보노 브레치아 시장은 “예술에서 검열은 용납되지 않는다. 권력자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일부"라고 말했고요.

로라 카스텔레티 이탈리아 브레치아 부시장은 “우리에게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뗄 수 없는 이항(등식)”이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밝혔다.로라 카스텔레티 이탈리아 브레치아 부시장은 “우리에게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뗄 수 없는 이항(등식)”이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밝혔다.

로라 카스텔레티 브레피아 부시장은 "우리에게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뗄 수 없는 이항(등식)"이라고 거들었습니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중국 대사관은 전시회를 강행하기로 한 것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홍콩의 자치권 침해를 표현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얼굴을 합성해 그린 그림. (출처: 구글)홍콩의 자치권 침해를 표현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얼굴을 합성해 그린 그림. (출처: 구글)

바디우차오는 11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비판이 멈출 때 민주주의는 죽는다."라고 썼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터키 국적의 농구 스타 에네스 칸터가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서 "입 다물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를 비판하는 것을 멈추라."며 미국을 비난하는 미국인을 비판하자, 바디우차오가 쓴소리를 한 것인데요.

내년 2월까지 계속될 그의 전시회는 전시회 개최 과정부터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내는지, '민주주의'는 또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지를 직접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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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곰돌이 푸’ 때문에 中 ‘이것까지’?…“비판이 멈출 때 민주주의는 죽는다”
    • 입력 2021-12-02 06:13:45
    특파원 리포트
이탈리아 브레치아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 출신 화가 바디우차오 작품들 (출처: 연합)
꿀을 좋아하는 노란 곰돌이 푸는 영국의 작가 A. A. 밀른이 쓴 원작과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캐릭터입니다. 동심을 간직한 사랑스러운 존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벽에 걸린 두 작품, 푸는 푸인데 어쩐지 좀 생소한 모습입니다.

(출처: 연합=AP)
작품을 좀 더 가까이 보겠습니다. 총을 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푸 위에 올라탔고 푸는 제압돼 쓰러져 있군요.

곰돌이 푸는 외국에서 시 주석을 조롱할 때 사용되고는 합니다.

(출처: 구글)
이번 푸는 늑대의 꼬리를 단 채 음흉한 표정을 하고 뒷짐을 지고 있네요. 푸 옆으로는 '전랑'( 늑대전사·무력과 보복 등 공세적인 외교를 지향하는 중국의 외교 방식)이라는 글자가 써 있습니다.

■ '곰돌이 푸' 때문에 중국 '이것까지'?

누가 봐도 '무언가, 누군가'를 풍자한 이 작품 때문에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브레치아에서 최근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브레치아에 있는 산타줄리아 박물관에서 중국 상하이 출신 현대미술가 바디우차오의 첫 단독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부터입니다.

전시회 이름은 '중국은 가까이에 있다 (있지 않다) - 반체제 작가의 작품들' (China is (not) near - works by a dissident artist).

에밀리오 델 보노 브레치아 시장은 이탈리아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요.

편지에는 한마디로 전시회를 취소라하는 요구가 들어 있었습니다.

중국 대사관측은 바디우차오의 작품들이 "반중국적인 거짓말로 가득 차 있다."면서 전시를 강행한다면 "이탈리아와 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이탈리아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 편지에는 "이탈리아의 대중국 무역을 언급하며 은근한 경제적 위협"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 바디우차오(巴丢草)는 누구?

중국이 공식적인 편지까지 보내서 전시회를 막으려고 한 사람, 바디우차오(巴丢草)는 누구일까요?

그의 작품 어디가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바디우차오가 자신의 작품 앞에 설치된 고문 의자에 앉아 우한 시민이 쓴 일기를 읽는 행위 예술을 하고 있다. (출처: AP=연합)
35살의 예술가는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대학에서는 법을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10년 넘게 호주 멜버른에 망명 중입니다.

2011년, 타이완에서 만든 텐안문 민주화 사태 관련 제작물을 보고 정치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정치 만화는 풍자 회화로 이어졌습니다. 자신의 정체도 숨겼습니다. 이름도 가명입니다. (그래서 미술계에서는 그를 '중국계 뱅크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작가 본인은 이 표현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중국으로서는 내용도 내용인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까지 불편합니다.

시진핑 국가 주석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포함한 다수의 중국 고위 관료들을 직접 그려 넣기 때문인데요.

현대 미술가 바디우차오의 작품 (출처: 구글)
2018년 홍콩서 열릴 예정이었던 그의 전시회는 이런 풍자 때문에 중국 공안의 구금·체포 위협 속에 결국 취소됐습니다.

그 뒤 바디우차오는 자신의 얼굴을 공개합니다. 텐안문 사태 30주년을 맞는 2019년 6월 4일 날이었습니다. "자신을 검열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능력을 약화 시킬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이번엔 다르죠. 그들은 (이제) 제 얼굴을 알아요. 그들은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바디우차오, 예술 신문 The Art Newpaper과의 인터뷰 중에서. (2021년 10월 26일)


■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할 뿐입니다."

이탈리아의 소도시 브레치아는 바디우차오의 손을 잡았습니다.

브레치아 시장과 주요 문화 관계자들도 함께했습니다. '검열 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중국 대사관 측의 전시 철회 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바디우차오와 예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여러 공식 성명도 나왔습니다.

바디우차오가 코로나19 대유행을 주제로 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출처: 구글)
산타 줄리아 박물관을 운영하는 브레치아 박물관 재단의 스테파노 카라조프 관장은 20년 재단 역사상 전시회에 대한 검열을 요청받은 적이 없었다면서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논의가 절박하다는 점만 확인시켜줄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브레치아 박물관 재단의 프란체스카 바졸리 회장은 "전시회는 중국 사람들이나 중국 문화·문명을 거슬리게 할 의도가 전혀 없다."면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할 뿐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에밀리오 델 보노 브레치아 시장은 “예술에서 검열은 용납되지 않는다. 권력자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일부"라고 말했고요.

로라 카스텔레티 이탈리아 브레치아 부시장은 “우리에게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뗄 수 없는 이항(등식)”이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밝혔다.
로라 카스텔레티 브레피아 부시장은 "우리에게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뗄 수 없는 이항(등식)"이라고 거들었습니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중국 대사관은 전시회를 강행하기로 한 것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홍콩의 자치권 침해를 표현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얼굴을 합성해 그린 그림. (출처: 구글)
바디우차오는 11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비판이 멈출 때 민주주의는 죽는다."라고 썼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터키 국적의 농구 스타 에네스 칸터가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서 "입 다물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를 비판하는 것을 멈추라."며 미국을 비난하는 미국인을 비판하자, 바디우차오가 쓴소리를 한 것인데요.

내년 2월까지 계속될 그의 전시회는 전시회 개최 과정부터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내는지, '민주주의'는 또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지를 직접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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